드디어 사절
몇 가지 의도가 있었다.
소림사를 방문하기로 돼 있던 신교의 사절이 오래전에 실종되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렇다면 증명과 더불어 첫인상을 새겨줄 필요가 있었다.
녹림을 토벌하며 평판을 쌓은 것과 같은 이치.
선행에 손을 들어주는 이가 셋이라면 강함에 끌리는 이가 둘은 된다.
최소한의 격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청성의 검이 무정하다 욕하지 마시오!"
도운비의 검이 매섭게 쏟아졌다.
청성의 자랑 청풍검이었다.
그 가닥 하나하나가 매서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
명한은 이를 경시하지 않고 타구봉을 뽑아서 낭(浪)의 요령으로 휘감았다.
봉 끝에 감기는 검기는 마치 미역 줄기와 같았다.
쿵.
땅으로 찍는 일격에 검기가 바람처럼 흩어졌다.
"타구봉? 어째서 그쪽이 개방의 신물을!?"
"오는 길에 선물을 받아서."
명한이 길게 한 걸음 내디디며 타구봉을 휘둘렀다.
타(打)의 요령이 담긴 일격이었다.
도운비는 검기를 끌어 점으로 이에 맞섰으나, 충격을 전부 해소하지는 못했다.
두 걸음을 물러난 뒤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검 끝이 파르르 떨렸다.
"······타구봉법까지. 개방의 절기라도 훔쳐 배웠소?"
"훔치다니. 지나는 길에 만난 늙은 거지에게 선물 받은 거라니까."
"헛소리!"
도운비의 검에 새파란 기운이 서렸다.
청풍검으로 맺은 검강이었다.
‘화경!?’, ‘화경의 고수였다니.’ 주변에서 온갖 경탄 성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를 전면에서 맞서는 명한은 침착했다.
‘억지로 쥐어짜고 있군.’
온전히 화경에 들어선 힘이 아니었다.
"그렇게 쥐어짜다가는 다칠 텐데?"
"청성의 검에는 두려움이 없소이다."
"꽤 오냐오냐 자랐군."
타구봉을 움켜쥔 채 자세를 낮추는 명한.
몸 안의 내공이 가이신공을 따라 천천히 바닥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그 단단함이 마치 청석과 같았다.
"와 봐."
"······사양하지 않겠소!"
말끝을 잡으며 달려나가는 도운비.
그의 검이 하나의 빛줄기가 되어 명한의 면전으로 쇄도했다.
마치 돌을 찍는 정(釘)과 같은 일격이었다.
청풍검의 필살초식, 청풍관수(淸風貫水)였다.
"컥!?"
하지만 그 날카로운 검격이 명한에 닿은 순간.
도운비는 거대한 산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검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 반탄력은 몸을 헤집었다.
열 걸음이나 넘게 물러난 뒤로도 충격이 해소되지 않아, 오장이 뒤틀렸다.
"크윽!"
죽은 피가 입을 통해서 쏟아졌다.
족히 몇 주는 정양해야 할 내상이었다.
"사형!!"
"도 형제! 감히 청성의 무인을 괴롭히다니!"
"저 사악한 자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모두 협공합시다!"
도운비의 패퇴에 남은 이들이 분분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정도 무림의 신성이 다쳤다는 건, 압박하기 좋은 명분이었다.
― 멈추시오!!
하지만 그 순간.
"크으으윽!!"
"으윽!"
하늘로부터 거대한 울림이 내리꽂혔다.
산을 깎아서 만든 철퇴와 같은 무거움이었다.
무기를 뽑으며 기세를 돋우던 이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불문사자후(佛門獅子吼)!"
"소림사의 방장께서 나왔다는 건가!?"
소림사의 방장임을 증명하는 진신절기.
가사의 펄럭임 뒤로 노승이 장내의 중심으로 내려섰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기운.
"······인제(仁帝), 허공. 이게 오제의 힘인가."
"과연 소림사의 방장이로군."
소림사의 방장이자, 삼왕오제 중 오제의 일축을 담당하는 허공이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모든 불씨는 단번에 사그라졌다.
"아미타불. 시주들께서는 무기를 거두시지요."
"으, 으음."
"······큼."
소림사 방장의 말이었다.
성내던 이들이 무기를 집어넣고 물러났다.
"도 시주. 몸은 괜찮으십니까?"
"······가벼운 부상일 뿐입니다. 이 도모, 주제도 모르고 나섰으니 부끄러움에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허공이 손을 내밀었지만, 도운비는 잡지 않았다.
입가의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그대로 몸을 돌려서 물러났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구겨진 모습이었다.
"어이, 청성의 검. 받아라."
그런 도운비를 향해 명한이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이건 뭐요?"
"약. 그 꼴로 제대로 싸움이나 할 수 있겠어? 회복해서 다시 오라고."
"······"
"자존심이 구겨졌으면 다시 펴야지. 꽁해서 약마저 거부할 셈인가?"
"후에 재대결을 신청하겠소."
"기다리지."
절절 끓는 분을 억누르며 도운비가 약을 받아갔다.
화가 나도 참을 줄은 아는 성격이었다.
‘청성은 반반인가.’
명한이 그 뒷모습에 눈을 반짝였다.
"아미타불."
"음?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후배, 소백이 소림사의 방장을 뵙습니다."
헛기침에 명한이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다.
군더더기 없는 깍듯한 태도였다.
"소 시주였구려. 소승, 허공이라 하옵니다."
"허공 대사의 명성이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천마께서도 칭찬이 자자하셨죠."
"으음!"
천마.
그 두 글자에 장내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직접 그를 만나본 사람은 이 안에서도 소수.
하지만 무림을 공포로 밀어 넣었던 그 이름에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천하제일인.
무림의 군림자.
이름만으로 세상을 긴장시키는 초월자였다.
"허면, 소 시주께서 신교에서 출발했다고 알려진 사절이 맞는 것인지요?"
"방장께서도 제 신분을 의심하십니까?"
"팔두 금마차와 나이에 맞지 않는 실력. 허나, 소림사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바. 신중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주께서 이해해 주시구려."
"과연, 소림사의 방장다운 태도입니다. 허니, 저도 증명에 최선을 다하지요. 소소야, 부탁할게."
"응."
명한의 부름에 앞으로 나선 은소소.
그녀는 말없이 검을 꺼내, 허공의 앞으로 휘둘렀다.
닿지 않는 검격.
내공조차 거의 실리지 않는 초식이었다.
하지만 허공의 눈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흔들렸다.
"······천마검. 천마응출."
이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가사 안쪽, 가슴을 가로지르는 깊은 상처의 원흉이 바로 이 검인 것을.
"아미타불."
허공이 염불로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소승, 허공. 소림사의 방장으로 천마신교의 사절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더 이상의 확인은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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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의 혼란이 수습되고 명한은 정식 사절로 소림사 안쪽으로 향했다.
그 뒤를 수십, 수백의 시선이 비수처럼 따라왔다.
아무리 사절이라고 해도 신교의 인물.
정도 무림에 있어서 신교는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방장께서도 고민이 많겠습니다."
명한이 앞선 허공을 향해 넌지시 말했다.
"아미타불. 소승은 그저 평안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속세의 불씨가 짚 섬 위로 떨어졌는데, 평안이 가당키나 할까요. 소림의 고요함은 존중하나, 흐르는 강물을 억지로 막는 것도 아니 될 일이지요."
"······소 시주의 부친. 천마께서는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분의 생각을 제가 어찌 알까요. 혈육이라고 하나, 천인과 범인의 간극이 있는데."
허공이 입술을 달싹이다 그만두었다.
깊은 질문은 아직 할 때가 아니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림사, 가장 안쪽에 자리한 방장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다섯 사람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면면에서 느껴지는 관록과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청성, 점창, 화산, 아미, 곤륜. 각 파의 장문인들께서 이곳에 모여 계셨군요."
소림사의 허공을 포함, 여섯 문파의 장문인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대가 신교에서 보낸 사절이라는 건가?"
"오만하기 짝이 없군. 이리도 어린아이를 사절로 보내다니.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말을 삼가시오. 나이는 어리나 신교의 소궁주요. 자격이라면 차고 넘치겠지."
"흥. 소문을 듣자 하니, 사십팔 궁 소궁 중 끝자락에 위치했다고 하던데. 신교도 결국 써먹기 좋은 패로 보낸 것 아닌가?"
의견이 분분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수습했을 터.
그에 대한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미타불. 소 시주는 사절로 본사를 찾았습니다. 객에게 무례하면 소승과 본사를 업신여기는 격. 부디 예의를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크, 크흠."
"허공 대사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결국, 허공이 나서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침묵을 확인한 뒤, 허공이 명한에게 물었다.
"소 시주. 본사를 찾은 이유를 전해주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모인 걸 보니 대충은 눈치채고 있던 거 아닙니까? 암암리에 신교에 첩자를 숨겨두고 있을 테니."
"감히! 정도가 그런 간악한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불같이 화를 낸 건 청성의 장문인.
‘화경 초입. 됨됨이는 도운비보다 못하군.’
그리 신경 쓸 위인은 아니었다.
"그렇게 군자의 모습을 흉내 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흉내가 아니라, 행동을 보이는 것이 군자라 이건가요?"
"구차하게 말로만 떠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게······구왕채와 녹림을 처단하며 명성을 얻은 대협께서 하시는 말."
은근히 웃으며 행적을 되짚는 건 아미파의 장문인.
구파의 장문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인물이었다.
‘백순순. 화경의 중반 경지. 가장 잇속에 밝은 인물이지.’
어리기에 셈도 빠르고 그만큼 생각이 트여 있다.
쓰기에 따라 적이 되기도 아군이 되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그만. 여기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오. 우리의 짐작이 어떻든, 신교의 의지가 중요할 터. 소 공자는 사절의 책분을 다하시오."
뒤이어 말하는 이가 바로 화산의 장문인.
삼왕 중 마지막 하나인 악왕(岳王), 악무군이었다.
장내에 모인 모든 이들 중 명한이 가장 견제하는 사람.
‘삼왕에 묶이지만, 실력은 그들보다 위.’
설정에 따르면 오제인 허공과도 동수인 고수였다.
"화산의 악 장문인이시군요."
"나를 아시오?"
"화산의 악 장문인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과연, 소문보다 훨씬 대단한 기도를 가지고 계시군요."
"······흠. 금칠은 됐소. 허공대사나 백 선사께서도 계시거늘. 화산의 악 모는 그저 필부일 뿐이외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명한이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살폈다.
‘명리를 탐하지는 않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야. 화산도 반반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 건가.’
편 가르기가 쉬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군소리는 짧게 줄이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이게 신교의······천마의 생각입니다."
짧게 숨을 고르며 품 안의 서신을 꺼내 들었다.
신교를 떠나서 소림사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날인으로 박힌 ‘천마’의 상징에 분위기가 단번에 얼어붙었다.
"역시 소문대로 천마는 무림맹을 움직이려는 건가?"
"섣부른 생각은 그만두시게나. 서신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토론할 내용이네."
"으음. 그럼 허공 대사께서 저희를 대표해서 서신을 읽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다시금 갈라지는 의견에 악무군이 중재했다.
모든 이들 중 가장 명망 높은 이가 허공.
이견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소승이 신교의 서신을 읽어 보겠소이다."
명한의 손에서 허공의 손으로 넘어가는 서신.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림사의 음모에서 살아남아라]
[의뢰 등급 : ???]
[제한 시간 : -]
[완료 보상 : 천상급 영약, 천상급 장비, ???]
알림 창이 머리 위로 떠올랐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