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235)

숲에서 광인을 만나다

산길 안내를 맡은 건 약초꾼 홍씨였다.

무당산 인근에서만 30년을 약초꾼으로 일해온 전문가 중 전문가였다.

모르는 산길이 없고 안 가본 장소가 없었다.

눈 감고도 산을 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안 가는 게 좋을 거요."

그런 그조차 입산을 경고했다.

"산에서 오래 산 사람은 다 알지요. 요즘 산의 기운이 보통 드센 게 아닙니다. 산 호랑이도 꼬리를 말고 숨어있는 판에 올라갔다가는 경칩니다."

"제 몸 지킬 재주는 있습니다. 목격이 잦은 구역까지만 안내해주시죠."

"어허, 위험하다니까."

"사례는 넉넉하게 하겠습니다."

"지금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번쩍이는 금자에 금세 태도를 바꿨다.

거부하기에는 손위의 주머니가 너무 무거웠다.

귀신보다 강한 게 돈이었다.

"산에 오르거든 내 뒤만 딱 붙어서 따라오쇼. 옆으로 샜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니까."

짐을 챙겨서 곧바로 산을 올랐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조금 올라가자 금세 거친 산세가 나타났다.

농으로 ‘신선이 산다’고 전해지는 무당산이었다.

"대충 이 부근이오. 이곳 너머에서 약초꾼들이 여럿 사라졌지. 댁들이 무림인인건 알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무공이 높다고 귀신이 안 잡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산을 오르기를 한참.

중턱 갈림길에서 홍씨가 걸음을 세웠다.

어딘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장소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사례금입니다."

"허, 허어! 이렇게나 많이 주는 거요?"

묵직한 금자에 홍씨가 다시 한번 놀랐다.

사람들이 기피 하는 길이라지만, 보수가 과했다.

"침묵에 대한 대가이기도 합니다. 마을에서 누군가 저희에 관해 묻거늘 무당산을 돌아서 떠났다고 해주세요."

"어······암요. 금만큼 무거운 게 제 입입죠."

뭔가 있다, 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홍씨는 침묵했다.

입을 다물게 하기에는 충분한 금자였다.

귀신 운운하며 엄포놓던 모습과 다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길 아래로 총총 멀어졌다.

돈의 위력이었다.

"굳이 그렇게 입막음까지 해야 할 일이야?"

"내 예상대로라면 산길을 헤매는 것이 우리만이 아닐 것 같아서."

"우리만이 아니라니?"

본래 습작 속 이번 사건은 한참 뒤의 벌어질 일이다.

시기상으로는 맞물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앞선 몇 번의 경험으로 명한은 한 가지 가정을 세웠다.

‘사건의 시기가 가속화되고 있어.’

이번에도 그러지 말란 보장은 없다.

"무당산 인근에서 귀신놀음이 벌어지면 어디에서 가장 먼저 움직일까?"

"무당파?"

"그래. 무당파에서 사건을 해결하라고 사람을 파견한다면 마을을 기점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아. 어쩌면 우리 뒤를 쫓고 있을 수도 있지."

"흐응. 무당파라. 무당파의 태극검이 절기라 하던데."

"호승심은 넣어 둬. 아무리 정도가 몰락했어도 무당파는 무당파야."

그 앞마당에서 사고 치는 건 지양하는 편이 낫다.

‘이 시기라면 그 사람은 면벽 중이긴 하겠지만.’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다.

"그럼, 찾아보자고. 성성아, 쌍아야."

명한의 부름에 산길을 타고 오르던 성성이와 쌍각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길은 사람이 찾지만, 그 외는 짐승이 낫다.

성성이가 킁킁거리며 바닥의 냄새를 맡았다.

보통 인간의 수십배 이상의 후각을 지닌 성성이었다.

"크응!"

금세 흔적을 찾아냈다.

#

명한이 찾는 건 어디까지나 귀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귀신과 다르게 사람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시간과 노력이 있으면 추적이 가능했다.

바닥을 킁킁거리는 성성이를 쫓기를 한 시진.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곳에 당도했다.

"이건······"

"싸움의 흔적이네."

깊이 파인 바닥, 갈라진 나무.

복잡하게 새겨진 흔적들은 이곳이 싸움의 현장임을 증명했다.

명한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흔적을 더듬었다.

"한 명을 여럿이 둘러싼 건가? 발자국이 꽤 어지럽게 나 있네."

"여기, 이곳부터야. 아마 뒤를 쫓는 누군가와 맞서다가 도망친 모양인데?"

"흐음. 어쩌면 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당?"

"응. 추적자의 발걸음을 봐. 고수의 것이야."

은소소가 명한의 손끝을 보며 끄덕였다.

고수의 발놀림은 그 깊이와 거리를 보면 안다.

추적자는 매우 정갈하게 보법을 밟고 있었다.

"누굴 쫓는 거지? 네가 찾는 것과 관련이 있나?"

"어쩌면."

시기상으로는 조금 이르지만, 정황은 확실하다.

무당산 인근의 귀신놀음.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역시 사건들이 가속화되고 있어. 내 영향인가?’

의구심은 여전하지만, 지금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무당산에서 얻을 기연은 지금껏 얻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게다가.

‘은소소의 문제도 있고.’

명한이 발끝으로 흔적을 지우며 일어났다.

― 쿵!

그리고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명한과 은소소. 그리고 향아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저 앞이다."

쫓기는 사람이든 쫓는 사람이든.

둘 중 하나는 분명했다.

#

"쫓아! 계집이 벗어나면 안 된다!"

"뒤를 잡아! 도망칠 곳을 전부 막아라!"

"확실하게 잡아! 본문의 명예가 달렸다!"

품 넓은 백의를 입은 사람들이 산길을 빠르게 달렸다.

걸음이 날래고 보폭은 넓었다.

사슴과 영양을 닮은 상승의 보법이었다.

순식간에 방위를 장악하고 거리 안으로 사냥감을 몰아넣었다.

"스······"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사냥감.

종아리에 닿을 듯 길게 기른 머리카락에 초점 없는 눈동자.

어딘가 정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물이었다.

품 안에 대나무 바구니를 안은 채 주변 이들을 피해서 계속해서 뛰었다.

"움직인다! 막아!"

"시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서 백의인들을 뚫으려는 광인.

머리카락이 안개처럼 출렁이다가 하나로 뭉쳐서는 그대로 날아갔다.

마치 철로 된 망치와 같았다.

백의인은 옷 소매에서 불진(拂塵) 꺼내 머리카락에 맞섰으나, 힘에서 밀렸다.

굉음과 함께 나무둥치에 처박혔다.

"삼 사저!"

"방심하지 마라! 방위를 지키고 발을 묶어!"

"제길, 이 사형! 앞이요, 앞!"

광인 차림의 여자는 뚫린 방위를 그대로 돌파했다.

반걸음 뒤에서 포위망을 잡던 백의인 쪽.

손발이 엉킨 남자는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철퇴처럼 휘두르는 머리카락에 가슴을 얻어맞고 바닥을 굴렀다.

"쿨럭!"

"이 사형! 젠장, 이래서 우리끼리는 무리라고 했는데!"

"시끄러워! 변명할 시간 있으면 발이나 묶어!"

"말은 쉽지!"

한쪽이 뚫리면 나머지가 힘든 법.

우르르 쏠리며 무너진 진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이 사형, 검을 허락해 주세요!"

"쿨럭! 쿨럭! 안 된다! 품 안의 바구니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살수를 쓰면 안 돼!"

"하지만 사형! 이대로라면 우리가 당합니다!"

"무당의 이름을 떠올려라! 이유 없이 살계를 여는 건 불허한다!"

백의인들이 밀리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불진은 어디까지나 설법의 도구.

지극한 고수라면 모르겠지만, 검보다 수에 불리함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시이이이······"

"제길!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사제!"

결국, 백의인 중 한 명이 불진을 버리고 검을 꺼내 들었다.

명이 궁하니 도리보다 앞선 것이었다.

시퍼런 검광에 광인의 시선이 저절로 쏠렸다.

"검······피······"

처음으로 나온 바람 소리가 아닌 말.

허나, 그조차도 제대로 된 건 아니었다.

넋 나간 목소리로 읊조리다, 한 번에 폭발하여 뛰었다.

검을 든 백의인 쪽이었다.

"무당의 검을 보여주마!"

검기를 덧씌워 부드럽게 휘는 백의인의 검.

무당이 자랑하는 양의검법(兩儀劍法)의 초식이었다.

식(式)의 정교함은 일류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뭐······!?’ 하지만 광인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허리가 꺾여 바닥에 닿을 듯 몸을 뒤집더니, 물 위를 튀는 돌조각처럼 미끄러졌다.

검은 몸에 닿지 않은 채 그 위로 스쳐 갔다.

"사제!!"

완전히 자리가 바뀐 뒤, 텅 비어버린 등.

광인은 기형적으로 꺾인 몸을 바로 하더니 머리카락을 휘둘렀다.

이번엔 철퇴가 아닌 채찍이었다.

순식간에 백의인의 목을 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해도, 떨어지면 즉사.

이 사형이라 불린 남자가 저도 모르게 검에 손을 올렸다.

사제의 목숨과 규칙의 상충.

"떨어져라!"

하지만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벼락과도 같이 청색의 대나무 봉 하나가 둘 사이로 떨어진 것이다.

봉은 광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백의인을 구해냈다.

"무당산에서 살계를 열려 하다니. 네놈이 바로 그 귀신이렸다!"

노호성을 터뜨리며 봉 위에 내려서는 인물.

바로 명한이었다.

때를 기다리다 매우 적절하게 등장했다.

"어디서 오신 분이오?"

"문답은 차후에. 우선은 이 미치광이부터 처리하도록 하지요."

명한은 질문을 대충 넘기며 몸을 날렸다.

쿵, 하고 딛는 걸음에 타구봉이 떠서 그의 손에 잡혔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무기.

백의인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타구봉? 개방의 인물이오?"

"그저 떠도는 방랑객일 뿐이라오. 지금은 이자의 만행부터 멈춰야 하지 않겠소?"

자연스럽게 답하며 봉을 휘둘러 괴인을 밀쳤다.

머리카락이 살아있는 생명처럼 그 위를 휘감았지만, 척(斥)의 힘이 튕겨냈다.

바람과 같이 회전하며 광인의 가슴팍을 쳤다.

헉 소리를 내며 휘청거리는 광인.

"살계는 아니 되오! 그 여자의 바구니 안에 아이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아이?"

"시이이!!"

아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건 명한보다 광인이었다.

하나로 뭉쳐있던 머리카락이 수십, 수백 가닥으로 나뉘더니 비처럼 쏟아졌다.

묶고 때리기보다 죽이기 위한 수였다.

"그렇게 둘 수는 없어요!"

이에 이번에는 향아가 나섰다.

월보로 귀신같이 그 앞을 막아서더니, 손을 교차해서 휘둘러 강렬한 흡기(吸氣)를 만들었다.

노유곽에게서 배운 절기 중 하나.

광인의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힘을 잃고 빨려 들어갔다.

"하, 항룡이십팔장!?"

너무나 유명한 장법이었다.

"어헛! 힘이 과하다!"

"아앗! 죄송해요!"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힘의 여파가 원을 이루지 못하고 측면으로 방출.

땅이 푹 꺼짐과 동시에 광인이 여력을 발판 삼아서 크게 물러났다.

"어딜!"

이에 명한이 타구봉을 비도처럼 던졌지만, 되레 이를 밟고 거리를 더 벌릴 뿐이었다.

광인은 순식간에 산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허어. 이렇게 놓치다니."

아쉬움에 혀를 차는 명한.

‘도망쳐라, 도망쳐. 아직은 잡힐 때가 아니야.’

하지만 속내는 전혀 아니었다.

"끄응.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무당의 청운이라 하옵니다."

"아! 고명하신 청운 도사님이셨군요. 전······명한이라 합니다. 보다시피 떠돌이죠."

목표는 잡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포권 뒤로 감춰진 건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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