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235)

배움에 나이는 없다

노유곽은 말 그대로의 사람이었다.

산길을 타고 걷다, 그대로 몸 뉘여 자기가 일쑤.

땅을 침대 삼고 하늘을 이불로 여겼다.

익숙지 않은 명한 일행은 고역이었다.

무공이 높다고 노숙와 야행이 쉬운 건 아니었다.

"어르신, 오늘은 오리고기를 준비했습니다. 인근 마을에서 구해온 노주가 있으니 반주 삼아 한잔하시죠."

"오호라. 아까부터 좋은 냄새가 난다 싶더니, 오리고기였구만. 크으. 기름진 오리에는 독주가 딱이지."

"그럴 것 같아서 분주도 넉넉하게 챙겨 왔습니다."

"클클클. 좀 아는구만, 알아."

하지만 그럼에도 명한은 군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마을 인근을 지나갈 때면 웃돈을 줘서라도 술을 구하고, 어떻게 해서는 좋은 안주를 만들었다.

마땅치 않을 때는 직접 사냥도 했다.

"고놈, 며칠이면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집요하구만."

"어르신 모시는 일에 힘들게 무에 있습니까."

"오리 기름보다 네놈 혓바닥 기름이 더 찰지다."

"술을 더 내오라는 말씀이시죠?"

"허허, 그놈 참."

입속의 혀가 되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한두 번이면 애쓴다 싶지만, 며칠이고 계속 이어지다 보니 노유곽도 슬슬 녹아들었다.

게다가.

"그놈 참. 허리가 계속 뜬다. 몸의 중심으로 딱 누른 채 휘둘러야 힘이 살아."

"네, 어르신."

틈날 때마다 전해주는 봉술에 명한이 기가 막힌 재능을 보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열을 가르치면 백을 깨우쳤다.

‘하필 이런 재능이 정도에서 나오지 않고······’

아쉬움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어르신. 대무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어린 계집아, 닿지 못할 나무임을 모르느냐?"

"닿지 않아도 계속 뛸 뿐입니다. 제 검은 오로지 앞만 보도록 만들어졌으니까요."

"클클. 참 묘한 것들이구나."

하물며 명한과 함께하는 은소소는 또 어떤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빼어난 검기와 주눅 들지 않는 호승심은 왕년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셈하고 이득 챙기기 바쁜 정도의 젊은 놈들과 비교하면 용과 기린이었다.

‘정도의 미래가 밝진 않겠어.’

정, 사, 마 어디에도 적을 두지 않고 바람같이 사는 노유곽 조차 걱정이 들 정도였다.

"어르신, 안주 내왔어요. 오늘은 간장을 살짝 두르고 기름에 볶아 봤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오, 그래. 네가 고생이 많다. 늙은이 수발드는게 쉽진 않지?"

"헤헤헤. 괜찮아요. 천······아니, 고향에 있을 때는 도련님 수발드는 거로 익숙한걸요."

"그러냐?"

앞의 둘은 무인이라 치자.

하지만 이 몸종이라 말하는 어린 향아는 어떤가.

재주를 드러낸 적은 없지만, 안주와 술을 내올 때 딛는 보법만 봐도 눈에 띈다.

"아이야, 걷는 법은 누구에게 배웠느냐?"

"보법 말인가요? 이건 도련님께서 찾아주신 책으로 배웠어요."

"네 도련님이?"

"네. 이게 저와 딱 맞는다고 찾아주셨어요. 이상한가요?"

"아니지. 아니야. 이상하지 않아. 너무 잘 맞아서 그게 의아하면 의아하지."

수많은 기인을 만나 봤고, 수없이 많은 무공을 겪어 봤던 것이 노유곽이다.

그만큼 무림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부했다.

‘어허. 저 보법은 대체 무엇일꼬.’

그런 그가 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보법이었다.

무인도 아닌 몸종이.

노유곽이 명한 일행을 떠나지 못하는 건 술과 안주의 달콤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르신, 향아의 걸음이 썩 나쁘지는 않지요?"

"크흠, 큼. 그래. 중심이 잘 잡혀 있고, 이동은 가벼우니 그야말로 좋은 걸음이구나. 네가 저 걸음을 가르쳤다고?"

"제가 무슨 수로 저걸 가르치겠습니까? 운 좋게 고서를 찾아 향아에게 어울릴 것 같아 선물했을 뿐이지요."

"허어. 고서를 찾았는데 몸종에게 주었다?"

"말이 몸종이지 가족과 같은 아이입니다. 저 아이도 보신할 수단은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래. 네 말이 옳다."

노유곽이 쓰린 웃음을 지었다.

그가 정, 사, 마의 결을 떠나서 방랑을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

개방의 무림맹 탈퇴 건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정도의 인간들조차 우리 개방 문호를 하인처럼 다루었는데, 여기 이 아이들은 다르구나.’

어디가 정이고 어디가 마일까.

술맛이 쓰게 느껴졌다.

"젊은 아이야. 너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노유곽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내 것을 지키고, 불의에 응하지 않으며, 하늘 아래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하지만 명한은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답했다.

"네가 사는 그곳에서 가능한 일일까?"

"몸 둔 곳은 정하지 못했으나, 갈 곳은 제 손으로 정해보렵니다."

"······허허. 허허허허. 그래, 네 말이 옳다. 하늘 아래 미물인 것이 우리 인간이거늘. 어느 그늘에 누워있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다 자기 하기 나름인 것을."

노유곽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참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주제인데, 반절도 살지 않은 젊은 명한에게서 답을 얻었다.

‘어쩌면 이것이 인연인지도 모르겠군.’

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을 꿇고 앉아 보아라."

"······네, 어르신."

명한은 반문 앞이 무릎을 꿇었다.

"본디, 이것은 우리 개방의 상징. 허나, 조사의 유지가 끊기고 그 맥마저 사라진 지금. 이를 전함에 정과 마의 경계는 의미가 없구나."

"어르신?"

"받거라. 네가 익히고 후에 전할 자가 생긴다면 그때 전하도록 해라."

팍, 소리를 내며 명한의 앞에 박히는 죽통하나.

깨진 흔적이 여럿인 오래된 대나무 통이었다.

‘······설마 이걸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명한은 이 죽통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개방의 사조께서 깨달음을 새겨놓은 대나무 조각이니라. 한때 개방의 신물처럼 다뤄지기도 했지. 지금에 와서는 그저······무거운 짐이구나."

"제가 이걸 받아도 되는 걸까요?"

"그 물건을 전하기 위해 걸음을 하던 차였다. 본래라면 무당산의 신룡이라 불리는 젊은이를 찾아갈까 했는데······이것이 또 인연인가 보구나."

무당산의 신룡.

바로 막군천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습작에서는 실제로 노유곽이 막군천을 만나서 이 죽통을 건넨다.

다만, 그 시기는 반년 후.

명한이 긴 시간을 앞당겨서 죽통을 넘겨받게 된 것이다.

"어르신······아니, 스승께 제자가 인사를 올립니다."

"어허. 스승은 무슨. 난 애물단지를 네게 맡겼을 뿐, 사제간의 연을 맺은 적은 없다."

"하오나, 어르신······"

"됐다. 정 사제간이 필요하면 네놈보다 저기 저 어린 계집아이를 내어다오."

"향아를 말인가요?"

이건 명한도 예상하지 못하던 부분.

"검을 쓰는 아이는 이미 틀이 잡혀서 어렵다. 반면, 네놈은 아직 형과 기의 균형도 모자라고 다듬을 곳이 많긴 하지만······지나치게 심계가 깊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저 어린아이는 마음이 맑고 몸에 묵은 때가 없으니 가르칠 맛이 있겠구나."

"향아에게 어르신의 무공을 가르치시겠다는 건가요?"

"이 늙은이가 그래도 손재주는 조금 있다. 저 아이 보법에 어울릴 만한 것이 몇 개 있으니, 가르쳐 보는 것도 좋겠지."

"······향아야, 이쪽으로 와 봐."

이 정도면 농담은 아니다.

명한이 마차 한쪽에서 요리중인 향아를 불러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종종 다가오는 향아.

"이분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려라."

"네?"

"앞으로 네 사부가 되실 분이다."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어르신께서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제자로 삼아 재주를 전하겠다고 해. 큰 영광이니 실례를 범하지 말고."

"저, 저를요? 어르신 절 왜······?"

"네 안주가 맛있어서 그랬다고 해두마."

"하지만 제가 어르신의 제자가 되면 도련님은 어떻게 해요? 수발은 누가 하고?"

"네가 그리 말하면 내가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아이 같지 않냐. 좋은 기회니 정성을 다해서 배우기나 해."

"하지만 도련님······"

"배워. 나는 네가 잡일만 하는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았으면 한다."

망설이는 향아의 어깨를 명한이 다독였다.

벽안지체이니 노유곽의 지도를 받으면 용이 여의주를 만난 격.

하지만 그런 실리를 떠나서도 명한은 진심이었다.

‘현생의 나처럼 기회도 못 잡는 건 싫거든.’

내 사람은 챙기고 싶었다.

"······네. 도련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 번 배워볼게요. 이제 사부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클클. 예는 됐으니 가서 안주나 마저 해와라. 먹고 마시면서 차차 알아보도록 하자."

"네, 네! 사부님."

오제의 제자 향아.

명한이 얻은 죽통만큼 커다란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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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타구봉법]

[분류 : 무공]

[등급 : 천하급]

[습득제한 : 심, 기, 체 합이 100이상]

[설명 : 개방방주의 증명과도 같은 무공. 개를 때려서 쫓는 방식에서 유래한 봉법으로, 타격에 특화되어 있다. 내공 소모가 적은 것이 장점]

[이름 : 항룡이십팔장]

[분류 : 무공]

[등급 : 천하급]

[습득제한 : 기 수치 70이상]

[설명 : 개방 조사의 심득이 담긴 무공. 용에 대항하는 스물여덟 가지의 장법이라는 의미. 하나하나가 강력한 위력을 지녔으나 내공 소모가 막심하다]

명한은 죽통을 열어서 그 안의 무공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천하급의 어마어마한 절기였다.

다만, 등급이 높은 만큼 제한조건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 내 상태가······"

[이름 : 소백]

[등급 : 23급]

[체질 : 연단성체(練團成體) / 천하급]

[능력 : 심(33급) / 기(37급) / 체(31급)]

[생명 : 750 / 750]

[내공 : 90년 / 90년]

[독단 : 65년 / 65년]

[무공 : 오독경 / 지중급(9성)]

[무공 : 가이신공 / 천하급(8성)]

[상태 : 백독불침 / 환골탈태]

[사역수 : 쌍각사 / 성성이]

예전과 비교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환골탈태 이후 엄청나게 올라간 심, 기, 체 수치에 내공과 생명은 이미 궁곡을 넘어섰다.

다만, 그럼에도 항룡이십팔장을 수련하기에는 수치가 부족하다.

‘그나마 타구봉법의 조건은 맞춰서 다행인가.’

종합 수치 101.

제한인 100을 1넘어선 상태였다.

"습득, 타구봉법."

안되는 항룡이십팔장은 두고 타구봉법부터 익혔다.

죽통 전체가 빛에 휘감기더니 몸 안으로 흡수됐다.

다행히 무공서와는 다르게 사라지진 않았다.

[무공 : 타구봉법 / 천하급(4성)]

"오. 바로 4성인가."

노유곽에게 배운 몇 가지 초식이 기초가 됐다.

능력으로 바로 습득하지 않더라도 배워 둔 건 그대로 적용된다는 의미였다.

명한이 바닥의 나뭇가지를 차서 올렸다.

"대충 이런 느낌인가."

그대로 나뭇가지를 쥔 채 타구봉법을 펼쳤다.

타구봉은 기본적으로 때리는 타(打)에 미는 척(斥).

휘감는 낭(浪)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초식 역시 이 기본에서 파생된 방식.

호신이 주가 되며 거리를 제압하는 것이 타구봉법의 핵심이었다.

타악. 탁.

땅과 나무. 허공을 번갈아 때리는 명한의 타법이 제법 날카로웠다.

"······아직은 많이 어색하네."

하지만 명한은 뭔가 마뜩잖았다.

타구봉법을 노유곽에게서 배울 때와는 무언가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습득은 습득일 뿐 체득이 아니라는 건가."

전에는 몰랐던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이건 오독경도 가이신공도 비슷했다.

분명 등급이 오르고 경지가 깊어진 건 맞지만, 무언가 미세하게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이 미묘함을 이겨낼 때, 진짜로 이 세계의 사람이 되는 걸까?"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영역.

손님이 아닌 주인이 돼야 하는 부분이었다.

"······음!?"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걸 탐구하기는 어렵다.

명한이 나뭇가지를 다시 움켜쥐며 몸을 긴장시켰다.

바람 사이로 전해지는 희미한 살기.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소백."

환사, 위궁.

다시 한번 자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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