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35)

아는 것이 힘이다

일대에서 가장 화려한 기루를 뽑으라 한다면 누구나 입을 모아서 말할 것이다.

강을 넘어가 남쪽에 청설루가 있다면, 이곳에는 황하루가 있다고.

그 화려함이 항주의 그것과 비견된다는 곳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내 이런 취급은 처음이네!"

"대체 장사를 하자는 건가, 말자는 건가!?"

그런 황하루의 앞.

좋은 옷을 챙겨입은 유생들이 한가득 모여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본래라면 술과 노래에 젖어있을 시간.

오늘은 돌아가는 상황이 평소와 달랐다.

"죄송합니다. 오늘 황하루는 한 공자께서 대관하셨어요."

"그게 대체 말이나 되는가? 황하루가 어디 싸구려 기루도 아니고. 이 넓은 곳을 통째로 대관하다니."

"실제로 그리한걸, 제가 어쩌겠어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세요."

"허어, 참! 대체 뉘집 자식이기에 돈을 그리 물 쓰듯 한단 말인가!"

"가세, 가! 더러워서 상대하지 말아야지! 누군 돈이 없어서 안 쓰나?"

하지만 아무리 역정을 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황하루 전체를 대관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사실.

그 사람이 돈을 물 쓰듯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

황하루의 총관이 그 씀씀이에 눈이 돌아가서 유생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잉. 가기 전에 하나만 좀 물어보세. 대관한 양반이 대체 어느 고관 댁 인물인가?"

"저기 그······"

"이만큼 화려하게 돈을 쓰는데, 숨기기라도 할 셈인가? 이름이라도 좀 알자 이거네. 큰댁 영감들이 오기라도 했나?"

"그게, 영감님이 아닙니다."

"뭐?"

"겨우 약관이나 될까 싶은 분들이에요."

약관이라는 소리에 유생들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어린놈이 돈 지랄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퉤! 황하루도 품격이 떨어지는구만!"

"어린놈이 벌써 향락에나 취하고! 에잉, 쯧쯧!"

"가세! 가세나!"

그래 봐야 할 수 있는 건 역정이 전부였다.

황하루 정문을 향해서 삿대질하고는 우르르 물러났다.

"······만년 유생 주제에 개소리는. 차라리 돈이나 펑펑 쓰는 사람이 낫지."

그 모습에 문지기가 조용히 이죽거렸다.

백날 찾아와 시와 풍류 타령하는 유생보다야 돈을 펑펑 쓰는 약관 공자가 나았다.

문 잘 지키라고 두둑하게 돈도 받아 두었고.

‘근데 대체 누구지? 그 나이에 금자를 뿌리고.’

잠시 생각해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천하의 악당이든 부처든 아무 상관 없었다.

돈만 잘 쓰면 그만.

품 안의 금자를 툭툭 치며 히죽 웃었다.

#

"귀가 간지럽네?"

밖에서 유생과 문지기가 한참 씨름하고 있을 즈음.

명한은 황하루 안쪽에서 더없는 호강을 누리고 있었다.

"어머, 어머. 공자님, 제가 귀 손질을 해 드릴까요?"

"유화야, 너보다는 내가 낫지 않을까? 제 허벅지에 누워주세요."

"무슨 소리야? 공자님, 제가 훨씬 부드럽게 잘 하거든요. 제 허벅지에 누워주세요."

사근사근 말을 붙여오는 황하루의 기생들이었다.

기루를 통째로 대관한 터라 특별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불려 나왔다.

돈을 물 쓰듯 쓰는 잘생긴 약관의 청년.

엉겨 붙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주 살판이 나셨군, 그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호강을 해보겠어. 불편하면 잘생긴 남자들로 교체해줄까?"

"흥, 됐어."

물론, 즐기는 건 명한 뿐이었다.

따라 나와 어색하게 자리를 차지한 은소소나 몸종 입장으로 구경만 해야 하는 향아나 딱히 즐겁지는 않았다.

"대체 그 총관이라는 인간은 어디까지 간 거야? 황하루의 주인을 부르러 갔다면서."

"어머, 화내지 마세요. 총관이 걸음이 느린 만큼 제가 술로 채워드릴게요."

"······"

"후후후. 부끄러워하신다. 이 공자님도 귀여우신데?"

붉어진 은소소의 얼굴에 명한이 가볍게 웃었다.

무에 취해서 살았다고 하더니, 이런 쪽에서는 내성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 은 공자 입에서 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람에게 이 금괴를 주도록 하지."

"그, 금괴!? 정말이신가요?"

"이 공자님이 허풍떠는 걸 봤나? 평생 가도 못 만질 돈을 벌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봐."

"제가 할게요! 제 장기가 춤이랍니다!"

"저는 악기를 다룰 줄 알아요!"

"제 노래가 일품이에요!"

아예 판을 키웠다.

바닥에 던진 금괴에 기생들이 저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금 앞에서 품위 지킬 사람은 없었다.

"뭣들 하는 거지?"

이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딘가 차갑고 날 선 목소리에 기생들이 얼어붙었다.

눈앞에 금괴를 두고도 멈출 만큼 목소리의 주인을 두려워한다는 의미였다.

"이제야 황하루의 주인이 나오셨군."

명한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봤다.

애초에 황하루에 방문한 이유가 그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이야기는 총관에게서 들었습니다. 황하루의 주인, 이월이라고 하옵니다."

성큼 다가와 품격 있게 인사를 건네는 이월.

큰 키에 화려한 외모.

현대로 치자면 모델 같은 인상을 자아내는 인물이었다.

"직접 보니 소문보다 더 아름답군."

"과찬입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황하루를 통째로 대관한 공자님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소백이다."

"소백······공자님 이군요."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를 명한은 놓치지 않았다.

‘역시. 내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는 건가.’

모른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그리 서 있지 말고 와서 앉지."

"그러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이리 황하루를 방문하신 이유······여흥을 위함입니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습니까?"

"답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라도 있나?"

"소녀의 마음가짐이라 해 두죠."

부드러운 답이나 숨긴 의도가 있다.

명한이 술잔을 손끝으로 돌리며 잠시 고민하다, 짧게 답했다.

"금괴는 너희가 나눠서 가지거라. 나는 이곳의 주인과 긴밀히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그 말씀은······?"

"여흥은 여기까지라는 말이다."

이에 명한이 손짓하니, 기생들은 금괴를 들고 날듯이 물러났다.

이월도 이를 막지 않았다.

금괴 하나보다 중요한 건 눈앞에 앉은 남자.

‘소백이라면 분명 천마의 자식 중 하나.’

천하제일 세력, 신교의 소주인이었다.

#

황하루 가장 위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관대작이나 명망 높은 인물이 올 때나 개방하는 공간이었다.

"이곳이라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밖으로는 새어나가지 않습니다."

"특실이라 이건가."

"특별한 분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니까요."

명한이 상석으로 자리를 옮기며 주변을 눈으로 훑었다.

말은 새어나가지 않는다고 했으나 모두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월은 뒷세계의 주민. 호락호락 보면 안 되지.’

겉의 아름다움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럼······이 누추한 기루까지 고귀하신 분이 발걸음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고귀하신 분이라. 내가 누구인지 알아낸 것이냐?"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하는 드높은 분. 하늘 아래 무의 정점이 되신 분의 아드님 아니신지요."

"과연. 흑점(黑店)의 안주인 다운 안목이군."

"······!"

순간, 이월의 소매에서 은색 침이 번개처럼 쏟아졌다.

명한의 미간, 목, 가슴팍을 노린 공격이었다.

그야말로 절묘한 순간의 기습.

"천마의 혈육에게 망설임 없이 공격이라. 과감하군."

하지만 명한에게는 쌍각사라는 호위무사가 존재했다.

바람보다 빠르게 기어 나온 쌍각사의 몸에 침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특성, 사피(蛇皮)의 효과로 어지간한 날붙이는 쌍각사에게 통용되지 않았다.

"큭!"

이를 앙다물며 소매로 손을 가져가는 이월.

다음 공격을 위한 수.

아니, 그보다 과감한 선택이었다.

소매에서 뽑혀 나온 은색의 실이 그녀의 목을 휘감아서 순식간에 조였다.

"조직의 보호도 좋지만, 몇 마디 말이라도 섞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크윽!"

물론, 그걸 그대로 봐 줄 명한이 아니다.

어느새 기어간 쌍각사가 이월의 손가락을 물어서 몸을 마비시켰다.

힘 빠진 몸으로는 목을 죄고 싶어도 죌 수 없었다.

"죽여라. 내 입에서는 무엇도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

"알아내? 뭘?"

"흑점의 지부를 캐내기 위해서 온 것 아닌가!?"

"자의식 과잉이군. 굳이 내가 그런 잡무 때문에 직접 움직일 거 같아?"

"자, 잡무?"

이월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흑점은 정마대전에서도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은 중도세력.

그 은밀함은 무림맹과 신교 양쪽에서 모두 탐낼 정도로 대단했다.

잡무라 치부될 일은 아니었다.

"내가 잡무라면 잡무인 거야. 이런 장난감은 두고 이야기로 해보자고."

명한이 이월의 목을 감은 은색 실을 손으로 끊었다.

철에 가까울 정도의 강도였지만, 명한에게는 독단이 있었다.

독은 철을 녹일 정도로 강했다.

"은잠사를 손으로 끊다니······"

"또 장난감을 꺼내서 덤비는 건 아니겠지?"

"하. 천마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괴물이라 하더니. 사십 팔궁의 아이조차 이렇게 대단하군요."

"나 보고 놀라면 여기 다섯 번째는 어쩌려고."

"다섯? 설마 광검, 은소소!?"

"흥."

짧게 코웃음 치는 은소소의 모습에 이월이 넋 빠진 얼굴을 했다.

천마의 아이들은 외유를 나오는 일이 적은 터라 외모는 알려진 정보가 적다.

하지만 그 무력에 대해서라면 몇 번의 경험으로 중원인들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다.

표국을 혼자서 박살 낸 이십 궁의 무인.

무당 삼협과 호각을 이룬 칠궁의 검수.

그 강함은 허풍이 아닌 진짜였다.

"대체 천마의 자식들이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나온 겁니까?"

"본래 목적은 됐고, 흑점에 대해서나 얘기해 봐."

"말했을 텐데요? 차라리 죽겠다고."

"고집은. 그럼, 오월상단은 어때?"

"······!"

이월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어, 어떻게 당신이 그걸?"

"흑점에서 굴리는 상단의 이름이잖아. 네 동생 오월이 상단주로 있고. 안 그래?"

"다, 당신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오월상단의 형편이 썩 좋지 않다는 것 정도."

저점에서 매수해야 할 항목.

그건 다름 아닌 오월상단이었다.

"본래 흑점과 오월상단은 압도적인 정보력을 바탕으로 매우 강력한 상권을 자랑하고 있었어. 하지만 정마 전쟁 이후로 세력이 팍 줄었지."

"······"

"가장 큰 이유라면 아무래도 현물과 무력. 두 가지의 부재겠지. 안 그래?"

"불가능해. 어떻게 그걸 다 아는 거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진짜 중요한 건 네 부족함을 내가 채워줄 수 있다는 거지."

명한이 챙겨온 금괴중 하나를 바닥으로 던졌다.

쿵, 소리에 이월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같은 크기의 금괴로 마차 세 대 분량. 파산 직전인 오월상단을 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거다."

"······돈만으로는 안됩니다."

"알아. 돈보다 중요한 건 전쟁 통에 잃어버린 흑점의 비전무학. 흑뇌결(黑雷結)의 부활 아닌가?"

이월은 이젠 놀랄 기운마저 잃어버렸다.

흑뇌결은 흑점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비사.

이것까지 거론한 마당에 따져 묻는 건 의미가 없었다.

"오월상단을 금괴로 구해. 그리고 흑점의 다른 분타에 연락해서 흑동(黑洞)을 연다고 전해."

"흐, 흑동!? 대체 어디까지 아는 겁니까?"

"필요한 만큼."

흑동은 일종의 조상묘.

흑점을 시작한 이들이 묻혀 있는 공간이다.

다만, 그 공간의 음험함이나 난해함이 워낙 아득하여 누구도 침범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지금껏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을 정도.

"대체······아니, 어떻게 알았든 상관없습니다. 흑동은 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흑뇌결이 그 안에 묻혀 있다고 해도."

"방법은 내가 알아서 해. 넌 내가 지시한 내용이나 충실하게 이행해. 그렇게 하면 흑점도 오월 상단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터무니없는 얘기에요."

"어차피 손해 볼 일은 아니잖아? 마차 세 대 분의 금괴야.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격이라고. 내가 흑동에서 죽기라도 하면 그냥 꿀꺽하는 거지."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수만 가지 질문은 뒤로 미뤄두고 이월이 가장 큰 의문을 드러냈다.

천마의 자식이라면 무소불위의 존재.

뭐가 아쉬워서 이런 일을 하는가 싶었다.

"돈이 필요해서."

"천마의 자식이 말입니까?"

"그냥 돈이 아니야. 엄청나게 큰돈이 필요해. 대륙을 통째로 사버릴 정도의 돈."

"······"

"앞으로 너희가 그 돈을 내게 벌어다 줄 거야."

어떻게, 왜.

질문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청년의 눈빛 때문에.

‘이렇게 확신에 찬 눈이라니.’

심장이 쿡 눌릴 만큼.

강렬한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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