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35)

어긋난 이야기에서 핵심을 잡다

사절단 호위로는 ‘백염당’이 배치되었다.

천마궁 무력부대 중 서열 6위에 위치한 이들이었다.

한명 한명이 일류 이상의 고수였다.

"소림사까지 사절의 호위를 맡게 된 연우락이라 하옵니다."

그리고 이자가 백염당의 당주, 연우락.

8척 장신에 언월도를 무기로 사용하는 그야말로 신장과 같은 인물이었다.

"당주가 직접 움직이는 거냐?"

"소림사로 향하는 사절입니다. 얕잡아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한다면 믿어 줘야지."

말은 믿는다 하지만, 명한은 믿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연우락의 어머니는 독곡에서 건너온 인물.

애초에 혈염마녀쪽 라인을 타고 있는 놈이었다.

‘백염당에서 선출한 놈들도 마찬가지겠지.’

죽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손 쓰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여행 경로와 일정은?"

"나머지는 모두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소백 도련님께서는 마차 안에서 쉬고 계시길."

"적어도 길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아랫사람이 할 일입니다. 들어가시지요."

말은 공손하지만, 반쯤은 강요다.

얌전히 처박아 두었다가 처리하겠다는 의미.

‘습작에서는 잘도 이 사지를 빠져나갔네.’

우연과 우연이 엮여서 겨우 목숨만 건진 것이 원작.

하지만 명한은 그렇게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호위가 말하면 따라야지. 근데, 가는 길 편하자는 거니까 마차 정도는 원하는 거로 끌어도 되겠지?"

"이미 마차는 준비해 두었습니다."

"왜 이래. 내각과는 소통이 잘 안 되나 봐?"

명한이 가볍게 손뼉을 두드렸다.

푸르릉, 말 울음소리와 함께 금으로 도배된 팔두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휘황찬란한 모습에 연우락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게 대체 뭡니까?"

"얕잡아 보이지 말자면서. 이 정도 힘을 주고 가야지 소림사 놈들이 함부로 못 하지 않겠어?"

"이건 천마께서 내리신 팔두 금마차 아닙니까?"

"알아보네. 맞아. 내각에 요구해서 받아냈어. 금색이 번쩍이니 너희도 힘이 나지?"

"도련님. 숭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런 마차를 끌고 가면 이목만 집중될 뿐입니다."

"하하. 아버지 명령으로 소림사를 찾아가는 길이야. 설마 누가 우리를 건드리겠어?"

명한이 연우락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직접 천마를 거론한 이상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도련님, 도련님. 짐은 다 실었어요."

"오, 그래. 수고했다, 향아야. 먼저 타서 과자라도 먹고 있어."

"그래도 돼요!?"

"그럼. 여기 계신 연 당주께서 편히 모신다고 했거든. 중원 나들이로 생각하자꾸나."

웃으며 마차에 오르는 명한.

연우락은 그 뒷모습을 눈으로만 좇았다.

‘그래, 웃어라. 웃을 수 있을 때.’

여기서는 아니었다.

"전부 짐 실어! 반각 내로 출발한다!"

칼집을 떠난 칼.

집어넣을 생각은 없었다.

#

사절단은 매우 빠르게 천산을 벗어났다.

천마의 영역 내에서 금빛 팔두 마차를 건드릴 생각 없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막아서는 이 없이 일방통행으로 순식간에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슬슬 신교의 영역을 벗어나는 건가."

명한은 그동안 마차에서 한 걸음도 나서지 않았다.

마차 안에서 챙겨온 간식이나 툭툭 털어먹으며 스쳐 가는 경관만 감상했다.

"계속 그렇게 여유 부릴 거냐? 천산을 벗어나면 네 말대로 목을 노리는 것들이 모여들 거다."

그리고 그 앞에서 툴툴거리는 은소소.

평소와는 다르게 평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목소리에 가시가 있네? 몸종으로 위장하라고 해서 화라도 난 거냐?"

"시끄러워."

"사과했잖아. 네가 은소소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쥐새끼가 아니라 호랑이가 덤벼든다고. 비를 막으라고 있는 게 우산이지, 벼락은 못 막아."

‘변명은······’ 은소소가 입술을 비죽였다.

이해는 하지만 낯선 복장은 영 민망했다.

"그래도 제법 잘 어울리니까 너무 인상 쓰지는 마."

"내가 몸종 같다는 거냐?"

"얼굴이 예쁘다는 거야."

"······"

입을 꾹 다물고 노려보는 은소소.

얼핏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은소소의 성격이라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

단순하고 과격하게 ‘무(武)’만을 추구하는 여자 호걸이나, 의외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중원을 기점으로 서역의 피가 섞인 터라, 특히 그런 면이 두드러진다.

미리미리 호감작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응? 마차의 속도가 느려진다."

그때였다.

잘 달리던 마차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명한이 손끝으로 천을 걷어내며 창밖을 살폈다.

평원이 끝나고 산과 숲의 경계가 겹치는 부분이었다.

"네가 말한 습격이냐?"

"아니, 그건 아니야. 아직 천산 인근인데 무리하게 움직일 이유는 없지."

습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습격이 벌어지는 건 천산을 떠나서 사흘이 지난 시점.

아직은 많이 일렀다.

"밖에 무슨 일이냐?"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해결법.

명한이 마차 벽을 툭툭 치며 밖으로 물었다.

천산에서의 전갈, 마차의 고장.

여러 가지 가정을 머릿속에 품으며.

"비적 무리입니다, 도련님."

"······뭐?"

하지만 돌아온 답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비적 무리라니.

아무리 천산을 벗어났다지만, 인근에서 금색 팔두 마차를 습격하는 비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습작에서도 없던 이야기인데.’

확인을 위해 마차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크아아악!!"

"꺄악!!"

"으아악!!"

그리고 그 순간.

피가 튀어 명한의 앞까지 쏟아졌다.

한쪽에는 잘린 팔과 몸뚱이.

다른 한쪽에는 눈도 감지 못한 머리통까지.

조금 전, 비적이라 설명한 이들의 시체였다.

"연우락,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길을 막은 비적을 처리 중입니다. 들어가 계시지요. 도련님이 볼법한 광경은 아닙니다."

명한의 추궁에도 연우락은 개의치 않았다.

가벼운 손짓으로 부하를 부려서 남은 비적도 단번에 쓸어갔다.

일개 비적이 신교의 무력부대를 어떻게 막을까.

낡은 낫은 휘두르는 검의 궤적 그대로 쪼개졌다.

삽시간에 시체가 쌓여갔다.

"멈춰라. 당장 멈춰!"

"고작 비적입니다. 도련님께서 신경 쓸 문제가 아닙니다. 험한 것 보지 말고 들어가 계시지요."

"보고 안 보고는 내가 정한다. 저 비적의 생사여탈도 내가 정해. 어디까지나 이 사절의 대표는 나다, 연우락."

"······"

명한이 아예 앞으로 나서서 밀어붙였다.

말마따나 비적의 목숨 따위.

그와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가축처럼 도륙되는 걸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다.

"참 다정하시군요, 도련님은. 그런 마음씨로 살면 험한 세상에서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살고 죽는 걸 정하는 건 네가 아니다, 연우락. 네 부하들을 불러들여. 남은 비적들은 포박해서 이 앞으로 모아놓고."

"알겠습니다. 원하신다면 해드려야죠."

한 걸음 물러나는 연우락.

"이곳에서 숙영한다. 우리 도련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드려."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

비적 스물 중 살아남은 건 고작 셋이었다.

그나마도 둘은 상처가 깊어서 거동조차 힘들었다.

포승줄이 묶인 채 질질 끌려 나온 앳된 얼굴의 소년이 그나마 정상적이었다.

"너흰 누구냐? 왜 우리를 습격했지?"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우린 방법이 없었어. 그러지 않으면······"

"정신 차려. 날 봐."

말이 정상적이지 소년도 엉망이었다.

초점 잡히지 않은 눈동자에 반복되는 혼잣말.

극심한 충격에 이지가 망가진 모습이었다.

"어차피 비적 나부랭이입니다. 금색의 마차를 보고 욕심이 동해서 나온 것이겠죠. 쓸데없는 힘 낭비입니다."

"물러나 있어라, 연우락. 각자 일이나 알아서 하는 게 어때?"

연우락의 비아냥에도 명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년의 뺨을 두드려 정신을 깨우고자 했다.

사고를 읽는 능력도 정신이 맑지 않으면 효과가 없었다.

‘비적이 천산 인근에서 마차를 습격하는 건 이상해.’

양심은 둘째 치고 이건 짚고 넘어가야 했다.

"살짝 아플 거다."

가이신공을 사용해서 소년의 내부를 흔들었다.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감각에 소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어?"

그제야 눈에 초점이 잡혔다.

명한이 재빨리 소년의 손목을 쥐고 물었다.

"정신 차려.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

"왜? 왜 여기에 있지? 아니야. 우린 시키는 대로 했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어."

"시키는 대로? 누가?"

"했어. 다 했다고. 다 했는데······으아아악!!"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소년은 다시 발작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더이상 물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명한이 혀를 차며 소년을 놔 주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시간 낭비라고."

"······"

"피곤하게 사시는군요, 도련님. 숙영준비는 마쳤으니, 이만 마차로 돌아가서 쉬시지요."

웃는 듯한 연우락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명한이 몸을 돌렸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걸음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

"뭐가 알아낸 게 있지?"

마차 안으로 명한이 돌아왔을 때.

은소소가 숨 고를 틈도 없이 물었다.

"방금 내 모습을 못 봤냐?"

"이런 황금 마차 끌고 다니는 놈이 발작 좀 한다고 물러날 리 없잖아. 뭔데? 뭘 알아냈어?"

"사람 파악하는 게 빠르네."

은소소의 말대로였다.

명한은 소년이 발작하기 전에 사고를 읽어냈다.

"이 습격. 계획된 거야."

"계획? 고작 비적 따위로 뭘 하겠다고?"

"비적이 아니야. 이 사람들 전부 인근 산지에서 화전하던 농부들이야."

"농부? 사실이냐?"

"확실해. 누군가 협박을 해서 우리를 습격하게 한 거야."

순간적으로 지나갔지만, 명한은 놓치지 않았다.

애초에 낫 들고 싸우는 이들이 무슨 비적이겠는가.

"하지만 왜? 농부를 시켜서 우리를 습격한다고 뭐가 나오는데?"

"덮으려는 거지."

"덮어?"

"말했잖아. 천마궁 밖에서 날 노리는 놈들이 있다고. 죽이는 건 쉽지만, 그 뒤가 문제. 상황을 덮기 위해서 사전에 작업 치는 거야."

"여러 흔적으로 진짜를 가리겠다?"

명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잡한 습격 속에서 진짜를 섞으려는 의도.

후에 소궁 주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에서도 면죄부로 삼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이런 장면이 습작에 있었나?’

이유는 이해했으나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아! 도련님, 소년을 죽이려고 해요!"

순간, 밖을 보던 향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발작을 멈춘 소년을 백염당의 무인이 죽이려고 한 것이다.

‘소년. 소년? 아, 소년!’

그와 동시에 명한도 무언가를 깨달았다.

"멈춰!!"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되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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