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35)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아

쌍각사는 본래 남만의 전설적인 무인이 키우던 애완동물이다.

영물인 것은 맞으나 처음부터 대단했던 건 아니다.

시작은 쌍각사의 주인이 천마에게 죽으면서부터.

명성을 쫓던 무인이 천마에게 도전하여 열흘 밤낮의 대결 끝에 고혼이 되니, 남은 쌍각사는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천만대산의 지하 깊숙한 곳.

위에서 아래로 고이는 영기는 쌍각사를 대단한 영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곳은 본래 이야기 후반부에나 오는 곳이지."

절정 수준에 달한 주인공 소백이 천마궁의 지하로 몸을 숨긴 뒤 쌍각사와 얽히는 것이 골자.

지금의 능력으로는 아예 대결 성립이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기를 택한 건······’

몇 가지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쉬익.

쉬이이익.

"잔뜩 모여드네."

어느새 명한 주변으로 뱀들이 모여들었다.

그 숫자가 물경 수십.

쌍각사의 영기에 이끌려 모인 놈들이었다.

말하자면 동네에서 힘 좀 쓰다가 대빵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경우.

하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한 놈들인 절대 아니다.

그 하나하나가 40등급을 넘는 준 영물.

당연하게도 명한의 능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붙으면 말이지.’

명한이 배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마 이 쓰레기 같은 놈아!"

소리가 지하 공동을 메아리치며 쩌렁쩌렁 울렸다.

쉭쉭 거리던 뱀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쯤 영물이라 영성이 트였기에 가능한 일.

‘이 새끼 왜 이래?’란 반응이었다.

명한은 멈추지 않고 계속 소리쳤다.

"버러지 같은 천마 놈! 언젠가 네놈의 피부를 벗겨서 튀김으로 만들어 먹겠다! 끓는 물에 삶아도 시원치 않을 놈!"

표면상으로는 패륜이지만, 알 게 뭔가.

어차피 명한은 진짜로 소백이 아니다.

게다가 천마라는 작자는 소백의 어머니를 납치해서 강제혼을 한 쓰레기 아닌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명한은 자리에 서서 끝없이 천마를 욕했다.

쉬이이익.

그러기를 10여 분.

욕할 단어가 다 떨어질 즈음이 되자 뱀 무리가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을 다스리는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쌍각사. 직접 보니 기분이 묘하네."

이마에 뿔 두 개를 달고 있는 작은 뱀.

체구는 실뱀보다 조금 큰 수준이지만, 이 뱀은 엄연히 60등급 이상의 영물이다.

독기 한 번에 명한은 녹아서 핏물이 되고도 남는다.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 인간. 천마. 욕. 증오.

순간, 쌍각사의 생각이 머리를 통해 전해졌다.

영물만이 할 수 있는 전심통(傳心通)의 일종이었다.

완벽한 문장 구사는 아니지만, 맥락은 이해했다.

명한이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도 천마를 증오한다."

속임수 없는 진심이어야 했다.

쌍각사의 영성은 참과 거짓을 가릴 정도로 뛰어났다.

놈은 긴 혀를 날름거리다 바닥을 미끄러져 명한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녹니 한 번이며 목숨이 사라질 판.

하지만 명한은 두려움보다 묘한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스릴.

― 천마. 원한. 복수

단순하지만 충직한 반응이 돌아왔다.

쌍각사는 자신의 주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안다.

그 원한을 품고 이 지하에서 수십 년을 숨어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천마에 대한 증오는 입장권.

쌍각사라는 거물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네 새끼들을 살릴 방법을 알아."

쉭. 순식간에 쌍각사가 명한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체구는 작지만, 그 힘은 무시무시했다.

단번에 숨통이 막혔다.

"크윽. 거짓말이 아니야. 네 새끼들 구할 수 있어."

쌍각사는 본래 영물로 천산의 영기를 받았다.

자체가 강했기에 감당이 가능했던 경우.

하지만 그 새끼들은 다르다.

태어나서부터 강한 천산의 영기에 휘둘린 쌍각사의 새끼들은 나는 족족 죽어갔다.

그 수가 수백.

명한은 쌍각사의 슬픔을 알고 있었다.

― 인간. 속임수.

"진실이야. 내 몸에는 천폐독이 있어."

명한은 수십 마디의 말 대신 팔을 내밀었다.

천폐독이란 단어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영성이 트인 영물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놈은 명한의 몸을 타고 내려와 팔뚝을 물었다.

― 독. 강한 독.

쌍각사는 곧바로 의미를 깨우치고는 내려왔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어떤 성질의 기운이 필요한지는 영물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명한 몸속의 천폐독은 이를 만족하고도 남았다.

"한빙호를 안내해 줘. 네 새끼들을 도와줄게."

쌍각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이유라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

하지만 이내 명한의 앞으로 미끄러져 꼬리를 흔들었다.

자신의 새끼가 걸린 일.

― 인간. 따라와

선택지는 없었다.

#

명한은 쌍각사의 안내를 받아 깊숙한 곳에 도착했다.

자연 굴과 천마궁의 지하 밀실이 교차하는 곳.

비죽비죽 솟은 종유석 주변으로 야명주가 알처럼 박혀 있었다.

― 이곳. 차가운 물

그리고 그 끝에 존재하는 시리도록 푸른 호수.

지하수가 세월만큼 쌓여서 만들어진 자연호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비롭지만, 이 호수에는 더한 것이 존재했다.

[이름 : 한빙호(寒氷湖)]

[분류 : 영지(靈地)]

[등급 : 지상급]

[설명 : 천마궁 지하미로에 존재하는 천연 호수. 천산의 기운이 응축되어 있다]

[효과 : 한빙호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내공 성장이 극단적으로 증가한다 / 독을 정화하는 성질이 있다]

손끝으로 호수를 건드리자 눈앞에 떠오르는 창.

굉장히 드문 지형 형태의 영물이었다.

습작의 등급 기준 ‘천, 지, 인’중 두 번째인 지급.

그것도 지급에서 가장 높은 지상 급이었다.

무인이라면 꿈에서라도 찾아 헤맬 천혜의 보물이었다.

"이 자체로도 엄청난 보물이지만······"

명한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조각을 주워 팔뚝을 그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한빙호로 떨어졌다.

청명하던 호수의 색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쉬익, 하고 위협적인 혓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해. 피로 전하는 것이 가장 빨라."

한빙호는 극음의 성질을 지닌 영지.

반대로 천폐독은 극양의 기운을 지닌 독이다.

이 둘이 만나면 양과 음이 꼬리를 무는 것처럼 뒤엉키게 된다.

게다가 한빙호의 성질은 독의 중화.

이때 피라는 매개체가 존재한다면······

‘캡슐 알약처럼 결정화되지.’

붉은색 호수 위로 알갱이들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명한이 재빨리 알갱이들을 걷어냈다.

[이름 : 적수(赤水)]

[분류 : 영약(靈藥)]

[등급 : 지중(地中)급]

[설명 : 음양의 기운이 뒤섞인 영약. 피를 매개체로 응고되기 때문에 적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효과 : 내공 + 10 / 기, 체 + 3]

바로, 귀의가 찾고 있던 물건.

한 알로 10년 내공을 증가시킬 수 있는 엄청난 보물임과 동시에······

"네 새끼들을 안내해 줘."

쌍각사의 새끼들을 치료할 약이었다.

적수 한 알이면 무너진 음양의 기운을 맞추기에, 충분했다.

쌍각사는 바람처럼 바닥을 미끄러지더니 새끼들이 숨어있는 둥지를 안내했다.

고작 손가락 몇 마디 정도의 크기.

숨만 겨우 붙어서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섯 마리. 원래 이렇게 많았었네."

습작에서는 고작 두 마리를 만났었다.

시간을 앞당긴 덕분에 몇 마리를 더 살린 걸까.

명한이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적수를 한알 한알 새끼의 입으로 옮겼다.

쌍각사는 행동을 경계하면서도 이를 막지 않았다.

이것이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효과가 있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효과가 나왔다.

숨만 겨우 내쉬던 새끼들이 고개를 든 것이다.

파르르 떠는 몸을 쌍각사가 빙빙 동여매고는 마음껏 비볐다.

새끼를 아끼는 어미의 모습, 그 자체였다.

― 인간. 은혜. 보답.

[쌍각사(雙角蛇)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쌍각사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쌍각사의 굴을 통과했습니다]

[완료 보상이 지급됩니다]

"······어?"

그리고 이어진 알림들.

창이 주르륵 이어지더니 선택지에서 멈췄다.

대부분은 예상하던 내용이라 놀랍지 않지만, 한가지는 아니었다.

바로, 두 번째 내용.

― 보답. 따른다.

습작에서는 아니었다.

쌍각사는 보답으로 자신이 모아놓은 보물을 내어주고, 우호를 맺는 것으로 끝났다.

주인으로 여긴다는 내용은 없었다.

‘내가 사건을 앞당겨서 변한 건가?’

명한이 당황으로 멈춰있자, 쌍각사가 그의 발을 타고 올라왔다.

[이름 : 쌍각사]

[등급 : 60급]

[체질 : 음혈지체(陰血之體) / 지상급]

[능력 : 심(30급) / 기(40급) / 체(60급)]

[생명 : 1200 / 1200]

[내공 : 60년 / 60년]

[무공 : 마비독 / 맹독 / 환각독 / 일각뇌(一角雷)]

[상태 : 사역수(使役獸) / 사피(蛇皮) / 비사(飛蛇)]

무언가 찡 한 느낌과 함께 추가되는 상태창.

사역수라는 항목에서 쌍각사가 펫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이건 확실히 습작에서 없던 내용이다.

‘내가 뭔가를 하면 습작이 변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단지, 습작이라는 굴레에 체감하지 못했을 뿐.

[보상을 선택해 주세요]

또 다른 알림창이 나타났다.

임무 완료에 따른 보상의 선택 기회였다.

예전에 고른 것은 지급 무공 ‘천붕도법’과 지급 영약 ‘백 년 산삼’.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천붕도법이 없어."

명한이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핥으며 생각했다.

‘천붕도법의 주인은 하북 팽가의 팽무륵.’

몇 줄의 묘사는 있었으나, 자세하게 적은 적은 없다.

즉, 그의 행적은 명한의 상상 너머.

‘그가 4년 사이에 천마궁 지하 미로에서 죽었다면.’

그렇게 천붕도법이 쌍각사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다시 보상으로 소백에게 주어지는 것.

상상으로 생략 부분을 채운다면 이것만이 답이 된다.

"내가 쓴 부분을 제외하고도 이 세계는 움직인다. 이건가?"

창작자가 모르는 세계.

명한은 더이상 자신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얘기였다.

세계의 모든 부분을 창작하는 작가는 없으니까.

‘이건 좋지 않은 소식이야. 하지만······’

그렇기에 흥분되는 부분도 존재했다.

모든 것이 정해진 그대로 굴러가기만 한다면, 그건 살아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어긋나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세상이며 삶이었다.

"도전이자······경험이라."

조금은 이 세상에 오게 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바람.

그건 바로 경험이었다.

‘신. 이름대로 신이기라도 했던 건가?’

어쩌면.

어쩌면 아닐 수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아."

세상 누구도 얻지 못할 경험.

세상 누구도 얻지 못할 두 번째 기회다.

이것마저 날려버린다면 졸작을 응원하던 몇 사람마저 저버리는 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네 이름은 쌍아라고 하자."

손끝을 타고 오르는 쌍각사를 보며 각오를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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