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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119화 (119/138)

119화

‘서둘러 돌아가야겠구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테니까. 그놈들의 약효가…….’

생각을 이어가던 왕일이 고개를 갸웃했다.

“광마단!”

허장천이 월등히 우위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살려둔 것은 광마단을 복용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왕일의 고개가 빠르게 뒤로 돌았다.

그리고 발을 구르려는 자세까지 취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허장천이 광마단을 복용했다면 아직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이런 멍청한 놈!”

어쩌면 다시 만나기 힘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렸단 진한 아쉬움과 함께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차라리 그놈이 허장천이란 것을 안 순간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맞이했을 수도 있었다.

이성적으로 대응한 것이 오히려 보다 못한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휴우~”

어떠했더라면이란 것은 가장 미련한 후회였다.

이미 저지르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리고 그런 후회를 또 하지 않기 위해서는 서둘러 전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미 싸움이 끝났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마교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어우러지며 어두운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소마대는 전력 외로 치부한다고 해도 마교의 사대가 모두 출동한 전투에서 고작 하나의 문파를 상대로 지금까지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비록 사대문파에서 숨겨두었던 고수를 지원했다고는 하나 끝나도 벌써 끝나야 할 싸움이었다.

‘변한 게 없잖아?’

왕일이 떠나던 때보다 사람이 줄긴 했지만, 고수들의 수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마유운은 네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악불군은 고학규와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었다.

“응?”

갑자기 전장에 변화가 일었다. 왕일이 모습을 보인 순간 갑자기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순식간에 장내에 시체가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 왕 대주, 볼일은 잘 봤나?”

사마유운이 왕일을 발견하고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고, 그와 함께 그를 공격하던 이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왕일이라는 존재 자체가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에게 압박을 준 것이다.

스르릉.

왕일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도를 꺼냄으로서 싸움에 개입할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거든. 자네가 도와준다면 바랄 게 없지.”

말을 하는 와중에도 사마유운은 검을 휘둘렀고, 다른 네 명의 검과 부딪치면서 날카로운 경기를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허장천과 싸우며 너덜너덜해진 왕일의 옷이 경기에 잘려나가며 완전히 누더기가 되었다.

이제는 가려진 부분보다 보이는 부분이 더 많은 지경이었다.

부욱!

왕일의 손길에 상의가 뜯어지며 우람한 상체가 드러났다.

“타앗!”

먼저 공격을 개시한 것은 사마유운과 싸우던 이들이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이 싸움에서 빠지며 왕일을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두 사람은 거칠게 사마유운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두 명이 왕일을 처리하고 올 때까지 사마유운을 붙들어 둘 심산인 모양이었다.

캉!

“컥!”

처음 왕일의 도와 부딪친 사람이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는데, 물러서는 그의 손에서 비도가 빠르게 날았다.

마치 한 마리 제비처럼 낮게 땅을 스치듯 날아오른 비도는 왕일의 면전에 가서야 부리를 앞세우고 위로 치솟았다.

***

“흥! 제갈가의 놈이었군.”

그것을 보고 말을 한 것은 사마유운이었다.

그에게는 비도를 쓴 적이 없었다.

아니 쓸 기회를 주지 않았었다.

사마유운도 자신을 상대하던 네 명이 사대문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차렸었다.

그리고 각 문파의 독문무공을 쓰지 않는 것으로 그들이 모용중걸과 같이 숨겨서 키우던 놈들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이놈들 중에 당가에서 나온 놈이 있다는 말인데…….”

왕일을 상대하는 다른 한 사람은 무척이나 실전적인 검법을 구사했고, 그것으로 종남파의 무인이라는 것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놈일까?”

사마유운은 당가의 독을 경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잔뜩 긴장을 하며 상대하느라 지금까지 시간을 끈 것뿐이었다.

거기다 세 명이나 적이 더 있었기에 한층 더 조심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네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세는 더 흉포해졌지만, 그래봤자 두 사람이었다.

‘동귀어진의 각오로 독을 쓴다면 나도 위험하지.’

이제는 진짜 방비를 해야 할 때였다.

왕일이 나타난 것을 기점으로 패진무관의 무인들이 빠르게 죽음을 맞고 있었다.

사마유운이 지시를 내린 것이다.

당가의 무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느라 지공을 지시했었는데, 왕일로 인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이쯤에서 끝내도 되겠지? 한 번에 처리한다!’

말로 당가의 무인을 찾는 척한 것은 적을 안심시키기 위한 주절거림일 뿐이었다.

두 명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한 번에 죽일 수 있었다.

그때였다.

막 사마유운이 작심을 하고 공세를 취하려던 그때, 멀리서 경호성이 터졌다.

“독이다!”

그 소리에 사마유운의 신경이 분산되었고, 공격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떤 놈이?’

슬쩍 눈을 돌리자 전장의 일각이 완전히 무너졌고, 거기에 홀로 서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땅을 박찼는데, 바로 왕일이 있는 곳이었다.

‘한 놈이 아니었던가?’

당가에서 보낸 무인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든 것이다.

쩌쩡!

검과 검이 만나며 불꽃과 함께 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뚫고 검은 지풍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네놈이었구나!”

슬쩍 고개를 틀어 지풍을 피한 사마유운이 검을 찌른 것은 당가의 무사가 아니라 다른 한 명, 남궁세가의 무인을 향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사마유운의 등을 향해 빗나갔던 지풍이 방향을 바꿔 쇄도하고 있었다.

‘모르고 당하는 것과 알고 당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

사마유운은 음습한 기운을 풍기며 다가오는 지풍은 무시했다.

남궁세가의 무인을 먼저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허…….”

당가의 무인이 지풍을 쏜 것과 같이 남궁가의 무인도 숨겨둔 한 수를 꺼내들었는데 그것이 사마유운의 눈에 익은 무공이었다.

“광혼살마의 무공을 익히다니!”

일견하기엔 남궁세가의 무공처럼 변화에 중점을 둔 극성의 환검처럼 보였지만, 그 변화를 일으킨 잔상 하나하나가 마치 연꽃처럼 끝이 갈라져 있었다.

그것에 맞는다면 잘리는 것이 아니라 터져나갔는데, 주검의 참혹함도 참혹함이었지만 광혼살마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가 더 중요했다.

이백여 년 전, 살성 하나가 살생을 시작했다.

정사를 가리지 않았고, 무인과 평민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은 시체의 산이 쌓였다.

무림이 나서기 전에 관부와 군부가 먼저 나설 정도로 그의 악행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관부와 군부의 고수들이 나가떨어지고 결국 마무리는 무림이 짓게 되었다.

소림을 위시해 마교까지 나섰는데, 그 이유는 살성이 해친 이들 중에서 마교의 고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정사 양쪽의 협공을 받은 살성이 끝이 보이지 않는 단애로 몸을 던지며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광혼살마라는 이름을 남기고 잊혀졌다.

혹자는 그의 검이 만들어낸 연꽃을 보고 소림에서 뛰쳐나온 승려라는 말을 했고, 다른 사람들은 마교에서 키우던 무인이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소림이나 마교는 그것을 부인했다.

절대 아니라면서.

그리고 그런 소문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관과 군, 거기에 황성까지 나서서 광혼살마의 뒤를 캐는 상황이었기에 배후로 지목이 된다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이었구나!”

남궁세가의 무인은 자신의 무공을 사마유운이 단숨에 알아보자 처음엔 당혹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순식간에 안정을 찾으며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광혼살마의 후인인 내가 어째서 구양신마의 밑에 있는지 모르겠느냐! 너는 정녕 진실을 외면할 셈이냐!”

남궁세가의 무인이 지른 고함은 전장을 타고 넘어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이대로라면 광혼살마를 배출한 곳이 마교가 될 상황이었다.

‘젠장!’

사마유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금 이곳을 주시하는 눈은 많을 테고,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 중에는 관과 군에서 파견된 이들도 있을 터였다.

그들이 황성에 보고를 올리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었다.

‘광대놀음을 하게 생겼군!’

사마유운이 싸움을 길게 끈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관과 군의 눈이었다.

그들의 눈에 마교의 무력이 위험수위로 인식이 되면 알게 모르게 견제와 함께 정파를 선동해 힘을 줄이곤 했었다.

그것은 정파도 마찬가지였다.

무림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문파가 정파에 나타나면 그때도 황실은 정파에 압력을 가해 마교를 비롯한 사파와 소모전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숨겨 두었던 힘을 사파쪽에 숨겨서 전황을 이끌기도 했었다.

그런 것들을 경계해 정사대전의 형식이 아닌 국지전의 방식으로 정파를 상대했으며, 다른 사파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오로지 마교와 정파의 싸움인 것처럼 만들어 왔었다.

황실이 자신들의 싸움에 끼어들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소용없게 될 가능성이 컸다.

광혼살마는 훌륭한 핑계거리가 될 터이고 정파를 선동해 대규모의 싸움을 벌이게 만들 것이었다.

‘혹, 소림등은 황실의 사주를 받고 봉문 한 것이 아닐까?’

신흥사패의 세력이 너무 크긴 했다.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뒤엎을 정도로. 그리고 그 배경에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황실은 명확한 것을 좋아했다.

정은 정, 사는 사.

그래야 그들을 관리하기도 편했으니까.

지금의 신흥사패처럼 모호한 세력은 황실에서 보자면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어째서? 가만히 놔둬도 천선부와는 싸우게 될 것인데?’

스스로에게 묻던 사마유운이 나름대로 일리있는 답을 도출해냈다.

‘우리를 강하게 보는 구나. 천선부가 무너질 것이라 판단한 거야.’

마교가 다른 사파를 끌어들이지 않는 것처럼 천선부나 소림등도 다른 정파인들의 참여를 제한해왔었다.

그것이 황실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쩐지, 소림과 무당이 너무 빨리 봉문 했다 싶었다.’

소림과 무당은 황실에 연줄이 많았는데, 그것은 바꿔 말하면 황실의 간섭을 많이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흥! 네놈들이 그런 생각이라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내겠지?’

더 이상 힘을 숨겨둘 필요가 없었다.

“다 죽여 버려!”

사마유운이 난데없이 고함을 질렀는데, 그것으로 전황은 또 다른 변화를 맞았다.

왕일이 왔을 때 일어난 변화와는 천지차이였다.

비명도 없었다.

하지만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땅에 눕는 이들의 숫자는 무시무시하게 늘어났다.

처음 싸울 때 어린아이였고, 왕일이 왔을 때 소년이었다면, 이제는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교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성장한 것이다.

***

왕일이 싸우는 방식은 단순했다.

발로 땅을 굴러 뇌전을 퍼뜨린 후에 다시금 뇌전을 뭉쳐 상대에게 쏘아 보낸 다음에 도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감히 두 무인은 가까이 오지 못했다.

‘이런 놈들을 상대로 어째서 교주님은 시간을 끈 것일까?’

왕일이 의문을 느낄 때, 뒤쪽에서 ‘독이다’란 말과 함께 빠르게 접근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조심해라!”

갑자기 사마유운의 경호성이 터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종남파와 제갈세가의 무인들도 기세가 바뀌더니 왕일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봐준 것은 이놈들이었나?’

마치 처음부터 목표가 왕일이었다는 듯이 다섯 사람이 왕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사마유운과 싸우던 남궁세가의 무인은 왼팔이 팔꿈치 어림에서 잘렸음에도 지혈할 생각도 하지 않고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당가의 무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슴을 길게 베였는데, 역시나 몸을 돌보지 않고 왕일을 노리고 손을 뻗었다.

사마유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한 모양이었다.

쾅!

왕일이 힘껏 발을 굴러 뇌전을 뿌렸지만 전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전혀 아랑곳 않고 검을 찔러왔다.

‘연극이었다고?’

모용중걸보다는 못해도 사대문파에서 키우던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뇌전에 겁을 먹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왕일은 순간 망각했었다.

쾅! 쾅!

두 번의 폭음은 종남파의 무인이 휘두른 검과 부딪친 결과였다.

그 반탄력이 어찌나 강한지 왕일의 도가 허공으로 들렸고, 상반신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제갈가의 무인이 손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왕일을 향해 비도의 폭풍이 몰아쳤다.

때를 같이 해 당가의 무인 두 명이 양쪽에서 한 손에 검은 죽통을 들고 왕일을 겨눴는데, 그곳에서 빠른 속도로 암기가 발사되었다.

당정의 야심작인 폭뢰정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검은 안개가 왕일의 주변을 장악했다.

왕일의 위기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남궁가의 무인이 검을 휘둘러 연꽃을 피워냈다.

합공을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무공을 간섭하지 않으며 교묘하게 모든 방위를 차단해 왕일로서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하압!”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왕일이 택한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장점을 극대화해서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콰르르릉!

지상에 번개가 강림했다.

보호막이라도 되는 듯 왕일의 몸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퍼져나가는 뇌전으로 인해서 당가의 무인들이 뿌린 독은 순식간에 그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폭뢰정은 뇌전을 간단하게 뚫고 여전히 왕일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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