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상들의 무림 생존기-112화 (112/138)

112화

정작 밖에서 보는 이들은 먼지로 인해 시야가 가렸지만, 안에서 싸우는 두 사람은 그다지 별다른 장애를 느끼지 못했다.

‘역시…….’

사마유운은 자신의 공격이 튕겨나가는 것을 느끼며 이대로 시간을 끌면 교의 피해가 클 것이란 것을 직감했다.

그의 귀로 악다구니를 써대는 악불군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생각 외로 이곳에 전력이 집중되어 있었어. 다행히 우리도 왕 대주와 세 명만을 제외하고 모든 전력을 이끌고 와서 얼추 모양새가 잡혔지만 이대로 가다간 의외의 피해를 입게 된다.’

사실 사마유운은 모용중걸을 크게 평가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그를 빨리 처리하고 자신이 싸움에 가담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왕일과 하만성의 평가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곧 왕 대주가 올 터이니, 이제 끝내야겠구나.’

돌아가는 팽이를 세우려면 강한 힘으로 때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었다.

쾅! 쾅! 쾅!

폭음이 터질 때마다 먼지가 물러나며 시야가 트였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다시 모용중걸이 일으키는 바람이 먼지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는데, 사마유운의 공격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용중걸의 기에 휘말려 무기가 제멋대로 튕겨나갔기에 사마유운은 다음 공격을 바로 이어가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모용중걸이 사마유운의 공격으로 인해 튕겨나가는 자신의 검을 제어하기 바빴다.

***

“이익!”

모용중걸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검을 힘주어 잡으며 사마유운을 노려보았다.

초식이고 뭐고 없었다.

오로지 무식한 내공으로 후려칠 뿐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내 승리다!’

사마유운이 무리를 한다는 것은 눈에 보였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결국에는 내공이 부족할 것이고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활짝 열린 사마유운의 몸통이 그를 유혹했다.

‘오로지 힘으로 찍어 누르려다보니 허점이 생겼구나.’

가끔 공격 후에 사마유운의 왼쪽 옆구리나 오른쪽 가슴이 무방비로 노출 되었다.

그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검을 제어하기 위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 같았다.

하지만 그 틈을 노리고 공격을 하기에는 사마유운의 검이 너무 매서웠다.

‘할까?’

일부러 틈을 만든 것이라고 보기엔 사마유운은 필사적이었다.

‘일단 한 번 떠볼 필요가 있겠군.’

한 번의 공방 후에 틈을 향해 슬쩍 검봉을 움직였다.

그러자 사마유운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기에 두 사람이 맞붙은 이후 처음으로 소강상태가 되었다.

“역시 나이는 속이지 못하나 봅니다. 벌써 숨이 차시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모용중걸의 말처럼 사마유운은 조금이지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자네나 나나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그러나? 어차피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말이네.”

“그래도 저보다…….”

말을 하던 모용중걸의 고개가 빠르게 옆으로 돌아갔는데, 갑자기 바뀐 전황 때문이었다.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상황은 정파에 좋지 않았다.

왕일 일행이 싸움에 뛰어든 것이다.

“또 나를 무시하는 군!”

어느새 다가온 사마유운이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짐짓 화난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는데, 왕일과 같은 고수의 참전은 전황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악불군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반면에 모용중걸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어렸다.

연신 불호소리와 도호소리가 들리며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어쩔 수 없군. 빨리 끝낸다!’

사마유운이 지치기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어깨를 좀 들썩인 것으로 그가 완전히 지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모용중걸은 계속되는 사마유운의 공세를 막아내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모용중걸은 검을 내밀지 않았다.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안 돼.’

검을 부딪치거나 막아야 했다.

아까처럼 피해버렸다간 애꿎은 시간만 흐르게 될 것이었다.

모용중걸의 눈이 사마유운의 검을 지나 그의 발로 향했다.

사마유운의 오른쪽 발뒤꿈치에 힘이 들어가면서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그 순간 모용중걸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사마유운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르며 왼발을 앞으로 디뎠고, 몸의 중심이 앞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지금!’

이미 앞으로 디딘 상황에서 검과 검이 부딪쳤고, 사마유운은 그 충격을 버티기 위해 왼발에 더욱 많은 힘이 실린 상황이었다.

뒤로 물러날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다.

그리고 그 완벽한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낸 모용중걸이 뒷다리에 힘을 주고는 활짝 열린 사마유운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웃!”

모용중걸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

‘왔구나!’

사마유운은 지금과 같은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면을 둘러싸고 휘도는 기로 인해 공격이 여의치 않았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그가 노린 것은 검봉이었다.

회전의 축이 되는 검봉은 반발력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원하던 기회가 찾아왔다.

결국 모용중걸이 자신이 던진 미끼를 물고 검을 찔러왔던 것이다.

그것을 향해 사마유운도 검을 찔러 넣었다.

검봉과 검봉, 그 작디작은 공간을 감싸고 있던 기운이 서로 부딪쳤다.

쾅!

폭음과 함께 모용중걸의 검을 휘돌던 기운이 폭발했다.

중심축을 얻어맞고는 회전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휘잉~

모용중걸의 몸에서부터 시작된 바람이 사방으로 밀려가며 먼지를 밀어내었다.

그러자 일목요연하게 드러난 두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기에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었다.

“쿨럭!”

모용중걸이 기침을 하며 피를 뿜더니 그대로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네는 자네의 무공이 가진 약점을 몰랐나보군.”

말 그대로였다.

모용중걸은 자신이 펼친 무공의 가장 약한 부분인 검봉을 공격하는데 썼던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약점을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었다.

“평화에 젖은 무인을 기다리는 것은 패배와 죽음뿐이지.”

모용중걸에게 다가가 점혈을 한 사마유운이 적우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모용중걸을 넘기고는 싸움이 벌어지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중원이 떠들썩해졌다.

정파의 완벽한 패배와 더불어 어쩌면 천하제일을 논할지도 모른단 평가를 듣던 모용중걸이 사마유운에게 패하는 것도 모자라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역시 마교라는 말과 함께 정파의 위기론이 대두되었다.

비록 천선부가 현 정파를 주도하는 입장이긴 해도 소림과 무당 등 구주류에 속하던 문파들이 연이어 봉문을 선언했기에 정파가 밀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빌어먹을 놈들이 꼬리를 잘랐군.”

사마유운이 전서를 읽다말고 그것을 팽개쳤다.

전서에는 시중을 떠도는 소문과 함께 소림과 무당 등 이번 싸움에 개입했다가 패한 문파들의 봉문소식이 들어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왕일이 의문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도 전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째서 꼬리자르기인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모용중걸 그놈은 완벽한 희생양이자 우리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네.”

“예?”

“아직도 모르겠나?”

사마유운이 한심하다는 눈길을 보냈는데, 그것은 옆에 있는 악불군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대체 제가 왜 그런 눈길을 받아야 합니까?”

“멍청하니까.”

악불군이 대답했다.

“뭐가요?”

“잘 들어보게. 지금 정파는 천선부가 대표하고 있네. 그런데 소림 등이 뭉쳐서 우리를 치러 왔었지. 우리는 그것을 두고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으로 생각했고 말이네. 안 그런가?”

“맞습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우리가 이겼습니다.”

“이긴 게 아니라 그놈들이 져 준 것이네.”

“일부러 졌단 말입니까?”

“맞네. 천선부가 잔뜩 웅크리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미리 꼬리를 자르고 숨어버린 것이란 말이네. 봉문을 선언하고 그동안 힘을 키울 생각이겠지. 어차피 웅크려 힘을 모은 천선부가 부딪칠 것이라고는 우리 마교밖에 없으니까.”

“우리 둘을 싸우게 만들고, 자신들은 방관자가 된 것이란 말이군요.”

“거기다 덤으로 모용중걸이란 선물도 넘겨줬지.”

더 이상 자신들을 상관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쩐지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이상하다 했네. 마치 이번 기회에 은원을 모조리 정리하라는 것 같았잖은가.”

하만성이나 모용중걸을 품고 봉문을 선언한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마교가 그 봉문을 인정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신들의 문파가 전쟁터로 변할 수 있었으니까.

이참에 그것을 털어버린 것이다.

“그렇군요.”

이제야 자신이 왜 그런 눈길을 받았는지 알게 된 왕일은 단순히 무공만 높아서는 힘 센 바보와 다를 것이 없단 걸 깨달았다.

‘책을 많이 읽어야겠어.’

아는 것이 힘이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왜 보이지 않는 겁니까.”

적후연과 남찬우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이미 모용중걸과 하만성의 목숨을 빼앗은 두 사람이었기에 다른 볼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물어본 것이었다.

“교에 잠깐 심부름을 보냈네.”

사마유운의 말에 왕일이 미간을 모았다.

“교로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까?”

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굳이 심부름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정파의 장단에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네. 슬슬 천선부를 건드려 봐야지.”

말을 하는 사마유운의 눈길은 탁자에 펼쳐진 지도로 향했는데, 그가 보는 곳은 패진무관이라 적힌 곳이었다.

“비룡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직은 그냥 둘 것이네. 먼저 우리의 은원을 해결할 생각이니까.”

마교의 다음 목표물은 패진무관이었다.

아니, 구양신마와 구음신마가 그 목표였다.

***

“적 부대주.”

“예.”

“놈들이 처음부터 모용중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을까?”

“아닐 겁니다. 한 번 부딪쳐보고는 아니다 싶으니 발을 빼려는 것이겠죠. 그 증거로 놈들을 구성했던 이들이 대부분 나이가 제법 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만큼 무력이 뒷받침 되는 놈들이었다는 것이죠. 우리와 제대로 붙어보려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또 발을 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은원이 있는 이들 대부분이 이번에 죽어버렸으니까요.”

옆에서 같이 달려가는 적우의 얼굴은 평소보다 밝았는데, 그의 아버지였던 적후연이 원수를 갚음으로서 마음의 짐을 덜었기 때문이었다.

“백독문 놈들은 어디 있는 것일까? 그곳에는 없었잖아.”

“아직 행방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 소림에 붙었던 백독문이었건만 이번 싸움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다.

“정파 쪽에서도 찾는 것 같다고?”

“예. 갑자기 모습을 감춘 모양입니다. 만약 그놈들이 있었다면 우리가 그렇듯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백독문의 독과 강시가 없는 상황이 마교에 유리하게 작용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승산이 없다 생각하고 남만으로 돌아갔나?”

왕일이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적우가 그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응? 왜?”

“교주님이 고리눈을 하고 노려보시는데요?”

그 말에 앞을 바라보자 사마유운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네가 속도를 늦추니 모두가 늦어지지 않는가.”

생각에 잠겨 잠시 달리는 속도를 늦췄더니 일행 전체가 왕일의 속도에 맞췄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말을 마친 왕일이 땅을 박찼다.

현재 사마유운 등은 패진무관을 향해 전속력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패진무관을 공격하면 다른 천선부에 속해 있는 문파들이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석휘명의 말처럼 패진무관에 구양신마와 구음신마가 있다면 천선부에 있어서 이제 패진무관은 소용이 다한 사냥개이며 처리하기 곤란한 계륵과 같을 테니까.

거기다 그들에게 도와줄 시간이 모자랐다는 핑계거리를 주기 위해 정예만으로 구성된 인원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구양신마와 구음신마가 도주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 잠영대가 패진무관을 감시하고 있었으며, 마검대와 광살대가 그곳을 포위하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수라대가 그곳에 합류한다면 몇 십 년 만에 마교의 사 대가 모두 모여 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

“이놈! 네놈이 정녕 이리 가증스러울 줄은 몰랐다!”

허연 수염을 부르르 떨며 말하는 노인에게서 분노와 함께 오랫동안 아랫사람을 부린 위엄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을 들어야 하는 당사자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느라 아예 대꾸도 하지 않았다.

“흠…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내가 알던 방식하고는 다른 것 같은데.”

낱낱이 해부되어 있음에도 꿈틀거리는 시체를 보며 의문을 떠올리는 이는 비룡장의 장주인 허장천이었다.

과거 그는 허연 수염과 인자한 눈매를 가졌었지만, 지금의 그는 눈 밑이 검게 물들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고약한 인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