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상들의 무림 생존기-82화 (82/138)

82화

“괜찮은 거냐?”

적우의 물음에 왕일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힘이 넘칩니다.”

“그래? 그럼 가서 죽여.”

적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호위대가 강시들을 붙들고 있는 곳이 아니라 바로 백독문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었다.

“가긴 어딜…….”

문재호가 왕일을 붙잡으려다 말았는데, 어째서 적우가 그리 말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달려오는 세 개의 인영이 보였는데 바로 악불군과 화영영, 사마유운이 그들이었고, 그 뒤를 붉은 물결이 뒤따르고 있었다.

“결국 오시는군.”

수라대만으로도 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데, 거기에 마교의 교주와 부교주, 그리고 화영영이라면 백독문의 멸망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우다.”

복면을 벗으며 말하는 적우의 얼굴은 평범한 이십대 청년의 얼굴이었다.

그런 적우를 일견한 왕일이 백독문을 향해 땅을 박찼다.

***

‘어찌된 일이지?’

백독문으로 향하는 왕일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어째서 교주가?’

화영영이 쫓아 온 것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교주인 사마유운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교주를 호위하기 위해서 온 것인가?’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왕일은 악불군과 화영영이 사마유운을 호위하기 위해 같이 왔다 생각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화영영이 혈마교를 뛰쳐나오자 사마유운과 악불군이 허겁지겁 그녀의 뒤를 쫓은 것이 정답이었다.

‘하긴 상관 없…….’

순간 달리던 왕일이 놀라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바라보았다.

우우~

거친 기의 폭풍이 몰아쳐 머리카락을 휘날렸고, 사자후는 고막을 터뜨릴 듯 왕일의 귀를 파고들었으며, 한줄기 섬광이 밀려와 어둠을 밀어냈다.

콰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는 사마유운이 검을 들고 오연히 서있었으며 그의 눈과 왕일의 눈이 허공을 격하고 부딪쳤다.

‘칫!’

사마유운의 모습은 절대자의 그것이었고, 깨달음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한 왕일을 절망에 빠트릴 정도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눈은 외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나라고.

사파의 정점에 올라선 자의 무위라고.

이제 너를 보여 달라고.

‘보여주마.’

입술을 깨문 왕일이 신형을 돌릴 때, 그의 좌우로 붉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 넘실거렸다.

“늦으면 하나 남은 놈은 내거다!”

왕일의 머리를 뛰어넘으며 악불군이 외쳤다.

“흥! 그렇겐 안 될 겁니다!”

신형을 날리는 왕일은 백독문에 있는 마지막 강시를 결코 악불군에게 뺏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천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려면 반드시 그놈은 내가 죽여야 해. 그리고…….’

사마유운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왕일 자신을.

***

“오셨습니까.”

문재호가 사마유운에게 허리를 숙였다.

“단단한 놈들이구나.”

사마유운의 말처럼 강시들은 진짜 단단했다.

화영영이 미리 소수마공을 펼쳐 강시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육체를 얼리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사마유운이라고 해도 단 한 수로 강시들을 처리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이것들이 실패작이라고?”

사마유운이 강시들의 조각난 사체를 발로 건드리며 묻자 문재호가 바로 대답했다.

“예.”

사실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것이 아니란 것을 문재호도 알고 있었다.

사마유운은 모든 정보의 종착지였으니까.

“그런데도 이렇단 말이지? 흠… 소림으로 향한 백독문도가 몇이라고 했느냐?”

“오십여 명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백독문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소림에 있는 태상문주였고, 그가 대동한 강시들이야말로 백독문의 정화가 녹아있는 완성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중에 완성된 강시가 몇 구나 될 것 같으냐?”

“최소 다섯 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패작이 다섯 구인 것으로 볼 때, 백독문의 기술을 생각하면 오 할의 성공은 거두었을 것입니다.”

“놈들이 바로 복수를 하려들지는 않을까?”

사마유운이 화영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화영영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은 왕일이 행한 것으로 소문이 날 것이니 말입니다. 강시와 상극이라는 왕일이 있는 한, 그들로서도 쉽게 혈마교를 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문재호는 사마유운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분명 화장로님을 교로 모시고 싶으신 것이겠지만, 어차피 되지 않을 일이다. 그리고 교에 돌아가신다고 해도 혹시나 화장로님이 그 상황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신다면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화영영의 상태로 봐서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는 만큼, 만일 교에 돌아가서 혹시라도 아기가 잘못된다면 크나큰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교주님을 죽일 수 있는 사람 중에 가장 가능성이 큰 분이 바로 화장로님이시니까.’

이런 사정으로 인해 사마유운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문재호는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그 눈길을 피했다.

“전 교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화영영이 아예 선을 그어버렸다.

“어허, 무슨 말을 그리 하시는가? 교는 그대의 고향과 같거늘.”

“그 점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같이 키워야 하지 않겠나? 설마 아버지 없는 자식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겠지?”

사마유운의 말에 화영영의 눈썹이 꿈틀했는데, 왕일을 죽일 수도 있다는 협박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말씀은?”

“녀석에게 교를 맡길 생각이네.”

“예?”

일순 화영영은 사마유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다고 바락바락 대드는 놈을 두들겨 패서 쫓아냈더니 한다는 놈이 없잖은가. 그래서 마침 적당한 놈이 나타났기에 그놈에게 주려고 하네.”

“무슨 생각이시죠? 그리고 과연 교도들이 납득을 할까요?”

“말했다시피 한다는 놈이 없기에 그런 것이고, 교도들이 납득을 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요?”

“일단 양자로 들일 생각이네. 그런 연후에 무공을 좀 올리고 공적을 쌓게 하면 교도들도 받아들이지 않겠나?”

화영영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시나요?”

“불가능하리라고 보나?”

되묻는 사마유운의 말에 화영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그리 되겠지.’

사마유운이 한다고 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니 교에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겠나? 최소한 아기를 낳을 때까지 만이라도.”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치료를 하지도 않지 않는가? 아니, 못한다는 것이 맞겠군.”

사마유운의 말을 들은 화영영이 갑자기 사방을 살폈다.

치료를 하는 와중에 아기가 잘못될 것을 염려한 화영영이 왕일에게 조심해달란 말을 하고나서는 교합을 가지지 않았었다.

왕일이 방정하는 것을 조절하지 못했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그 내용을 사마유운이 알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들었다는 것이었고, 그럴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 바로 적우의 아버지이자 문재호의 사부인 잠영대주뿐이었다.

“이곳에는 없네.”

“언제부터였죠?”

“그것이 중요한가?”

“하긴, 그렇군요.”

“왕일도 언젠간 교로 돌아올 것이네. 그때를 대비해서 자네가 교에서 기반을 닦아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네만. 자네의 아이를 생각한다면 더욱 더.”

교주의 위를 세습할 수도 있단 말이었는데, 마교 역사상 그런 경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는 하지만 백독문을 친 이상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네. 또한 백독문의 힘을 필요로 하는 소림 등이 정파를 부추길 수도 있고.”

“그래서 백독문을 청소하기로 결정하신건가요?”

화영영의 질문에 사마유운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위험을 일부러 끌어오기 위해 백독문을 멸문시키는 것이냐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겸사겸사 하는 일이네. 소림에 붙었다는 것은 언제고 우리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것과 같으니까. 당가놈들만으로도 뒤가 간질간질한데 거기에 백독문까지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주력이 빠져나간 상태였기에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아마도 백독문의 새로운 강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그것을 확인하고자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기존의 강시 따위는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했기에 지금껏 백독문을 내버려 둔 것이었는데, 새롭게 제조 된 강시는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어 이참에 백독문을 정리하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라고 화영영은 생각했다.

‘교주님과 부교주님, 거기에 잠영대주까지 교를 나올 수 있는 것은 남 장로 때문이겠지?’

사마유운이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거기에 남찬우가 힘을 보탰기에 현재 마교에서 불온한 움직임이란 있을 수 없었다.

부교주인 악불군과 교주인 사마유운이 대립을 한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모습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단결된 마교라는 인식은 정파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 것이니까.

일전에 화영영이 마교를 떠나기 전 남찬우가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것은 교주인 사마유운을 도우라는 것이었는데, 화영영도 이제는 모든 전말을 알고 있었다.

지금 마교는 사마유운이라는 정점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뭉친 바위와 같은 것이다.

‘왕일은 분명 다음 대 교주가 될 거야. 싫어도 그리 되겠지.’

새삼 사마유운의 말이 가슴에 틀어박혔다.

“아, 남 장로의 제자 알지? 곧 혈마교에 합류할 것이네.”

“예?”

“어차피 다음을 생각할 거라면, 젊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이 좋을 것 같기에 그리 결정했다네.”

“그 외에도 더 있습니까?”

“가능성 있는 젊은 놈들을 몇 보내기로 했네.”

화영영은 사마유운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럼 정파는 혈마교를 제 이의 교로 생각할 것입니다.”

“뭐 어차피 지금도 그리 생각하지 않겠는가?”

맞는 말이었지만, 사마유운의 결정은 과한 감이 있었다.

자칫 정파가 위험한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

“교주님은 혈마교를 이용해 대리전을 치룰 생각이십니까?”

화영영의 물음에 사마유운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파가 분열하는 마당에 어째서 그들에게 목표를 주려 하십니까?”

“분열? 그놈들이 진짜 분열했다고 생각하나?”

“예?”

“고래로 정파놈들은 서로 수장이 되기 위해 싸워왔네. 그 와중에 파벌이 나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지금은 그저 상황이 반전되었다고 보면 되네. 떨거지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지. 그리고 이렇게 명확히 파벌이 나뉜 상황에서는 불리한 쪽이 뭔가 수를 내게 되는데, 그것이 뭔지 아는가?”

“정사대전?”

“맞네. 조만간 소림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첩보도 입수 되었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단지 그 이유입니까?”

“다른 것도 있긴 하네. 고가 형제 놈들의 위치가 발각되었는데, 우리가 마음 놓고 움직이려면 시선을 끌어 줄 누군가가 필요하거든.”

화영영의 시선이 멀리 왕일이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요?”

“스스로 운명을 다스릴 힘을 얻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지. 아무리 자신이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생각하더라도. 아닌가?”

괴변이었지만 화영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왕일의 경우만 놓고 본다면 철저하게 타인의 뜻에 따라 살아 온 생이라 할 수 있겠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해야 했고, 흉수에 의해 그 삶이 무너졌으며, 석휘명과 남찬우, 그리고 화영영 자신으로 인해 현재의 지경에 처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할 수도 있긴 했다.

스스로 가족을 먹여 살리려 노력했고, 흉수의 손에서 살아남았으며, 복수를 위해 무공을 익혔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복수를 위해 좀 더 강한 세력을 얻고자 지금의 싸움을 한다고도.

‘어떻게 생각하던 지금의 현실을 벗어날 순 없지.’

앞으로도 왕일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놀아나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그래서 사람은 위를 바라보는 것일지도.’

스스로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찾기 위해 돈을 벌고 권력을 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화영영이 보기에 교주의 위에 오른 사마유운도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비록 운명을 결정할 타인들은 늘어났을지라도 오히려 삶의 굴레에 갇혀버린 것 같아.’

“왜 그렇게 보는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생각은 바뀌었나?”

화영영은 더 이상 혈마교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주님, 이것이 당신이 내게 건네는 마지막 제의겠죠?’

화영영은 사마유운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은 참고 있어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 같은 존재가 바로 사마유운이었기에 그 분노가 왕일에게로 향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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