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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72화 (72/138)

72화

대치를 한 두 사람 가운데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은 왕일뿐이었다.

“자, 일단은…….”

빠박!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왕일의 두 정강이를 목검으로 때린 악불군이 다시 말을 이었다.

“보법이 문제다.”

“끄으으윽…….”

왕일이 신음을 지르거나 말거나 악불군의 교육은 계속 되었다.

“네놈이 익힌 그 뭣이냐, 표류보? 아무튼 그것의 움직임이 바로 지금의 내 움직임과 같을 것이다. 몸을 순간적으로 좌우로 흔들면서 상대를 교란시키고 공격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실상 그것을 행하고자 한다면 적요신의 운용구결이 함께해야 하는데, 네 움직임은 그저 지금의 나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전부다.”

자신과 같다고 말하지만, 왕일은 솔직히 악불군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만일 그때 상대한 것이 강시가 아니라 일반 무사였다면 네놈은 그날로 비명횡사를 했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줄 알거라.”

칭찬인지 빈정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한 악불군이 다시 목검을 들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지. 네놈은 단전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진 어떠한 보법이나 초식도 익히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고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이 말을 지난 열흘 동안 쉬지도 않고 계속 지껄여 댔기에 이제는 외우기까지 하는 왕일이었다.

‘어찌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지껄이는지…….’

아픔을 참으며 일어난 왕일은 앞에서 거만한 모습으로 주절대는 악불군의 모습을 보면서 진저리를 쳤다.

‘감각도!’

“감각도!”

말이 좋아 감각도지, 보통 낭인들이 주로 쓰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름만 거창한 감각도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감에 의지해서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하는 무공이었다.

마땅히 내세울 것 없는 낭인들이 무작정 검이나 도를 휘두르고, 짐승들을 상대로 연마한다고 하여 야수도나 야수검이라고도 하였다.

***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꿀꺽!

절로 침을 삼킨 왕일이 기감을 최대한 끌어 올려 악불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악불군과의 비무는 비무라기 보다 생사를 건 투쟁이었으니까.

악불군의 목검이 왕일의 미간을 겨누었고, 그의 온 몸에서는 바늘 같은 기들이 튀어나왔다.

딱!

어느새 목을 노리고 찔러온 목검을, 자신의 목검으로 간신히 튕겨낸 왕일의 이마에는 벌써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살기!

당장이라도 왕일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만 같은 살기였다.

그 살기가 한 점이 되어 몸의 한 곳을 노리면 그것을 파악하고 서둘러 막는 것이다.

처음에는 살기가 쏘아지는 곳도 알 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살기가 뻗어 나와 왕일의 몸 전체를 감쌌기 때문이었다.

“호오~”

악불군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놈은 진짜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놈이군.

악불군의 전음에 잠영일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호랑이 새끼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좀 물리면 어때? 요즘 놈들은 이빨이 영 시원찮아서 지루하던 참인데.

그들이 한가하게 전음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왕일은 악불군이 노리는 곳을 찾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피윳! 팡!

공기가 갈라지고 왕일이 막기보다 피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목검에 그의 머리카락이 잘려 흩날렸다.

관자놀이가 따끔따끔 한 것이 온전히 피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왕일의 콧속으로 매캐한 냄새가 맡아졌다.

“젠장! 날 죽일 셈이오!”

악불군이 들고 있는 목검의 검봉이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타들어 간 것이다.

그만큼 빨랐고, 자칫했다가는 골로 갈 뻔 했던 상황이었다.

“난 진도를 빨리 나가는 편이라서.”

다시 과거 철사명과 장사우, 그리고 마호성의 교육 방식을 떠올린 왕일은 그들이 얼마나 친절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때가 그립구나.’

다시 악불군의 목검이 미간을 겨누자 왕일도 즉시 자세를 잡았다.

“미련한 놈.”

말과 동시에 목검이 왕일의 복부를 찔렀고, 왕일은 황급히 목검을 쳐냄과 동시에 반대방향으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헉, 헉, 무엇이 말이오?”

겨우 세 번의 공격에 숨을 헐떡일 정도로 지친 왕일이 거리를 벌린 후에 물었다.

“어째서 뇌정지기를 쓰지 않는 것이냐?”

그 말을 들은 왕일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악불군을 바라봤다.

“나더러 공격을 하란 말이오?”

피하기도 바쁜 판국에 어찌 공격을 할 여유가 나겠는가?

악불군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잠영일호에게 물었다.

“이놈, 농담하는 것 맞지?”

악불군의 말에 잠영일호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습니다.”

둘의 대화를 들으며 왕일은 이놈들이 왜 이러나 했다.

자신은 뇌정지기를 느낀 후부터 공격할 때 이외에는 그것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것도 많은 경험이 아니라 강시를 상대할 때 말고는 혼자 수련을 한 것이 전부였다.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던 두 사람이 왕일을 바라보며 쑥덕거렸다.

“모자란 놈은 아니지?”

“예. 다만 아직까지 무공과 내공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해력이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공을 공격할 때만 쓴다고 알고 있는 놈이 제정신인가?”

“뭐,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살아오지 않던 놈이 아닙니까?”

“그래도 그렇지. 무림에 발을 딛고 있는 놈이 그런 기본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나?”

“뇌정지기를 느끼고도 여러 방면으로 활용을 해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응용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창의력도 그렇고 부족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아. 아직까지 나한테 이랬소, 저랬소 하고 있잖아.”

“뭐, 그것을 보자면 그런 것도 같습니다.”

악불군과 잠영일호, 그 둘의 대화를 듣는 왕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빌어먹을 것들아! 그런 것은 전음으로 하란 말이다!’

울화통이 터지긴 했지만, 왕일도 궁금하긴 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 말에 악불군이 들고 있던 목검을 들이밀었다.

“보이냐?”

잘 보였다. 검게 그을린 끄트머리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어찌 안보이겠는가.

“넌 단순히 인간의 근력만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냐?”

그 말을 들은 왕일이 목검을 뒤로 빼더니 빠른 속도로 악불군을 향해 찔렀다.

피윳!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왕일의 목검도 끄트머리가 탄 것이다.

“되는데요?”

능청스런 왕일의 말에 악불군과 잠영일호가 동시에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잊은 것처럼 왕일도 속으로 놀라는 중이었다.

사실 이번 찌르기에 악불군이 허둥대는 모습이라도 보일 줄 알았건만,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개만 살짝 움직여 가볍게 피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흠…….”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긴 악불군을 향해 잠영일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직 해부하기에는 이릅니다. 최소한 화 장로님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 다 나은 것이 아니었나?”

“예.”

“쩝, 그럼 어쩔 수 없군.”

‘이것들이 진짜!’

애타는 왕일은 무시한 채 입맛을 다신 악불군이 그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래도 간이 얼마나 큰 지 궁금했었는데 말이야.”

왕일의 말투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악불군이었고, 그것을 두고 말함이었다.

아주 멍청하진 않아서 지적을 당하자 바로 존대로 바꿨지만, 아직 불만이 다 가신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하는 게 좋겠군.”

말을 마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지는 악불군을 보면서 왕일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와라.”

잠영일호가 왕일을 데리고 간 곳은 별관 뒤에 자리하고 있는 절벽이었다.

“앉아라. 아무래도 너는 이론 수업을 더 해야겠다.”

그는 악불군이 떠난 이유를 짐작한 것이다.

***

왕일이 옆에 앉아서 귀를 기울이자 잠영일호가 입을 열었다.

“보통 무공의 고수라 함은 내공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달렸다. 고수들이 천근의 바위를 쉽게 들어 올리는 것도 모두 내공의 힘이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는 것도 모두 내공을 이용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런 경지에 오르게 되면 내공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물론 그런 수준까지 오르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겠지. 그런 노력 중의 하나가 바로 모든 일상생활에 내공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약의 조절과 혈도를 단련하는 것이지. 아까 부교주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셨던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너는 아직 뇌정지기를 완전히 다루지 못하니 무공수련은 물론 모든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을 활용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잠영일호나 악불군이 보기에 왕일은 완전히 상식 밖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무엇이오?”

“도대체 너를 어느 관점에서 가르쳐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내공을 쓰지 못하면서도 내공을 쓰는 것과 같은 육체적 힘을 이끌어낸다. 그렇다고 그것이 월등히 뛰어난 힘을 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문제지. 솔직히 너는 이런 움직임을 할 수 없지 않느냐?”

말을 하면서 앉아있던 잠영일호의 모습이 흐려졌다.

잔상.

그가 오 장 뒤에 모습을 나타내며 왕일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아직 왕일에게는 무리한 동작이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남들보다 월등한 기감과 신체능력, 그리고 뇌정지기뿐이었다.

물론 경신법을 쓸 수는 있었지만, 저런 순간이동에 가까운 능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팔을 움직이는 것과 몸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확실히 다르니까.

천천히 걸어 온 잠영일호가 왕일을 바라보았다.

“일단 노력부터 해보자.”

그때부터 왕일은 몸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살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 하냐?”

악불군의 물음에 독고평이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적이 없는 경우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니지, 알려진 적은 있었지.”

독고평의 말에 악불군이 고개를 저었다.

“예? 저놈과 같은 경우가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단정적인 악불군의 말에 독고평은 자신의 머리를 학대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제 식견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쯧쯧, 네놈도 이제는 머리가 굳어가는 것이냐? 왜 한쪽으로만 생각하느냐?”

“예?”

“살아있는 것으로만 떠올리지 말라는 말이다.”

“그럼 죽어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그러자면 남은 것은 강시… 설마?”

“그렇지?”

“분명 비슷한 존재가 있기는 있었군요. 바로 활강시 말입니다.”

“그래. 바로 그거다.”

일반적으로 강시는 죽은 이를 이용해 만드는 것으로, 과거 중원에서도 널리 퍼지긴 했었다.

그러나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서 효용이 너무 낮기에 이제는 사라지다시피 한 방법이었지만, 백독문의 강시는 점점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의 독강시로 변하였다.

사실 강시에 독을 입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다.

강시란 많은 약물을 이용해 시체를 개조시키는 것인데, 그 약물들과 상충되지 않는 독을 찾아내거나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독에 의해 강시들의 살이 녹는 것도 문제였다.

백독문이 찾아 낸 독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강시의 제조비법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강시들과는 다르게 무림에서 배척받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활강시였다.

활강시란 산 사람을 강시로 만들어 그것을 조종하는 것이었고, 대표적인 것으로 혈천강시가 있었다.

고루문에서 처음 혈천강시를 들고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그렇게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고루문은 대대로 강시를 이용하여 문파를 이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온 강시는 그 위력이 기존의 강시와는 천지차이였다.

혈천강시를 앞세워 주변을 장악할 때도 정파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들 자신의 피해가 없기도 했거니와 정확한 혈천강시의 위력이나 만드는 방법을 몰랐기에 그러했었다.

그러다 그 혈천강시가 산 사람을 이용한 것이고, 그것도 고루문의 제자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형국이 변했다.

그리고 혈천강시의 위력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결국 혈천강시는 정파의 합공에 의해 파괴되었고, 고루문은 어린아이까지 죽음을 겪으며 멸문을 당하였다.

아직까지도 중원에서 강시의 제조방법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그때의 사건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활강시의 장점이 바로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무지막지한 힘과 단단한 몸 그리고 빠른 속도에 있었다.

보통의 강시가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잘려나가면 그 모습 그대로 싸우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었다.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먹고 말하며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 제외하면 활강시의 특징이 많군요.”

“기회가 된다면 연구를 해보고 싶은데…….”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악불군 자신도 알고 있었다.

***

“호오~”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악불군의 옆에서 잠영일호 또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왕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몸으로 연신 불꽃을 튀기고 있는 왕일의 모습이 신기한 것은 당연했고, 몸의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서서 그 자체로도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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