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부교주가 있다는 것과 백독문의 전멸이 주는 부담감 때문이오?”
“물론 그런 것도 있지.”
“수라대?”
“그건 당연한 거고. 부교주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항상 수라대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그 말을 들은 왕일이 잠시 침묵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나 때문이오?”
“그렇지. 이제 좀 감이 오는 모양이군.”
“내가 그렇게 신경을 쓸 가치가 있소?”
“엄청난 가치가 있지.”
왕일이 잠영일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나에 대한 정보를 저들이 어떻게 얻을 수 있단 말이오? 백독문은 전멸한 것이 아니었소?”
“아니. 강시는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야만 움직이는 놈들이지. 그런데, 그놈들을 찾을 수 없었어.”
그제야 왕일은 자신이 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백독문의 생존자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은 제외한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왕일은 자신의 정확한 실력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을 학살하던 강시를 죽였지만, 아직 자신은 화영영은 물론이고 잠영일호에게도 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이오?”
“무림에서의 위치를 묻는 것이냐?”
“그렇소.”
왕일의 질문에 잠영일호가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너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존재다. 신체부터 시작해서 내공과 그것을 운용하는 것까지. 그리고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했지. 뭐, 이런 것들을 감안해 평가를 내리자면, 순수한 무공만으로는 아마 이백 위 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수가 있으니, 너의 그 이해 못할 치유력과 준비 없는 내공의 발출, 그리고 독에 대한 내성. 모든 것을 종합해 결론을 내리면 백대고수에 들 수 있다.”
왕일은 백대고수라고 하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알 지 못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소?”
“나? 나는 한 오십 위 안에는 들지 않을까? 참고로 적요신도 백대고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왕일은 참으로 우스운 것이 무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대고수에 속했던 적요신은 자신의 문파를 만들어 수장의 위치에서 편안한 삶을 살았었는데, 오십 위 안에 든다는 잠영일호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 신세였다.
어쨌든 자신이 현재 과거 적요신 정도의 무공을 소유했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
“그럼 마호성대협은 어느 곳에 속해 있었소?”
왕일의 말을 들은 잠영일호가 미간을 찡그렸지만, 복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 개방의 마호성 말이냐?”
왕일은 잠영일호가 마호성을 함부로 말하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정파와 마교는 물과 기름이었으니, 잠영일호로서는 놈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신경을 써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맞소.”
“아마 오십 위 이쪽저쪽일걸?”
잠영일호의 말에 왕일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들었던 것을 종합해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참에 가르쳐 주는 것도 좋겠군.”
잠영일호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하자 왕일이 갑자기 신음소리를 냈다.
“끄응~ 갑자기 움직이지 마시오!”
“쯧쯧, 겨우 이정도의 중심이동에 그런 신음을 내서야 쓰나.”
“한번 해보시겠소?”
현재 왕일은 잠영일호를 배에 태운 채 허리를 활처럼 휜 상태로 발과 손을 이용해 지탱하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라고 하지만, 무인도 마찬가지다. 이정도의 무게도 감당 못하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그 말은 손에 든 쇳덩이나 내려놓고 말하시오!”
잠영일호의 한 손에는 무려 오십 근이나 나가는 쇳덩이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을 든 채로 움직이니 중심잡기가 더 힘들었다.
그것도 한쪽 손에만 들고 있었기에 추가 움직일 때마다 무게 중심은 춤을 추었다.
“좀 가만히 있어라. 네가 자꾸 움직이니 나도 움직이게 되지 않느냐?”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잠영일호가 움직이면 왕일이 중심을 잡기 위해 꿈틀거리게 되고, 왕일의 꿈틀거림에 잠영일호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다시 잠영일호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보통 무림에서 잘나간다고 하는 문파를 손에 꼽으라면 정파에서는 한 삼십 개 정도고 사파에서는 그보다 훨씬 적은 대여섯 개 정도지. 그들 문파의 이인자까지가 기본 적으로 백대 고수에 들고 어떤 곳은 삼인자도 그 안에 든다. 물론 낭인들이나 수행자 가운데도 백대고수가 아니라 훨씬 강한 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무림에 끼치는 영향도가 미미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강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대고수라는 것은 순수하게 무공만으로 정해지지 않으니까.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발생하는데, 정파에서는 너에 대해서 상당히 오판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판?”
“그렇다. 바로 네가 강시를 처리했기 때문이지.”
“그게 그리 문제가 되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너는 이제 완전히 정파에 찍힌 상태야.”
“강시 때문에?”
“그래. 사실 백대고수가 아니라 오십대고수가 되어도 강시를 처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백독문의 강시는 독이 발라져 있기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 까다롭지. 그런 강시를 혼자서 열 구나 처리했으니 아마도 정파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잠영일호의 말을 들은 왕일은 어리둥절했다.
사실 그는 강시를 처리함에 있어서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재미있는 게 뭔지 알아? 소림의 항마공처럼 모든 사기와 상극이라는 뇌정지기가 우리 마교에서 나왔다는 거야. 놈들로서도 기가 막힐 노릇일걸? 아무튼 네가 강시를 처리했기 때문에 그들은 너의 정확한 실력을 모르고 있지. 어쩌면 너를 교에서 특별히 키우고 있는 고수로 생각할 수도 있을 걸?”
“설마 그러겠소?”
왕일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러고 있었다.
***
“어떻게 생각하시오?”
청성의 장문인인 낙조운의 말에 장로인 위청수가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분명 뇌정지기라고 하였습니까?”
“그렇소.”
“정말로요?”
역사상 뇌정지기를 익혀 고수가 된 이는 없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림의 역사 자체가 변하는 사태였다.
“그 특징을 들어보니 뇌정지기가 맞소이다. 더군다나 강시가 도에 닿은 것만으로도 펑펑 터진다고 하였으니, 뇌기를 띄고 그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뇌정지기 말고 또 무엇이 있겠소?”
“허어~ 마교가 드디어 뇌정지기를 완성시켰단 말입니까?”
“화영영 그 요녀가 설치고 돌아다니더니 결국은 성공을 한 모양이오이다.”
“그렇지만, 뇌정지기는 익히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지 않았습니까?”
“천지간의 모든 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뇌기라고 하여서 불가능하겠소?”
불, 물, 심지어는 바람까지도 이용하는 것이 무림인이었다.
“이십오 년 전을 생각해 보시오.”
“적가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그들은 화살을 시위에 걸지도 않고 활을 사용하였소이다.”
일명 무형시라 불리는 그것은 무림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었다.
강기를 이용한 무공이 있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검이나 도, 창과 같은 근거리 무기에만 국한 되었었다.
허나 궁을 이용해 형체도 없는 화살을 날리는 원거리 무공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당시 정한검 남찬우를 옹호하다가 정파와 시비가 붙었을 때,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이제껏 한 번도 주목을 받지 않던 적가장이 단숨에 주목의 대상이 된 이유이기도 하였다.
단지 친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남찬우를 쫓던 이들의 퇴로를 막아 다 잡았던 남찬우가 무사히 도망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살생을 하지 않았다.
그저 쫓아오는 정파인들을 막은 것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아직 남찬우가 마교에 투신하기 전이었기에 그냥 친우의 의리를 지켰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것은 적가장이 강서에 있었다는 것이었고, 강서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용세가에서 적극 주장을 하여 정파인들의 합공으로 멸문을 당하였다.
사실 적가장이 갑자기 등장하자 모용세가가 긴장을 한 것은 당연했다.
거기다 이제까지 턱밑에 비수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나중에 남찬우가 마교에 투신하면서 적가장이 마교에서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비밀분타라고 공표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그 안의 내막을 알만 한 사람들은 모용세가가 기회를 틈타 골칫거리를 제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에 나타난 무형시만 하여도 큰 충격이었소이다. 솔직히 모용세가뿐만이 아니라 정파의 모든 이들이 그 무형시에 겁을 먹은 것이 아니었소?”
무형시는 언제 날아올지 모르고,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암기와 같았다.
그것도 치명적인!
거기다 욕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끝내 비급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적가장이 무너진 날, 적가장은 기와 하나, 주춧돌 하나까지 남김없이 파헤쳐졌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비급이 있을 것을 노리고 이 잡듯이 뒤진 결과였다.
“현재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이 누구누구입니까?”
“일단 소림을 비롯해 우방에게는 전갈을 하였소.”
“그럼 기다려야겠군요.”
“조만간 소식이 올 것으로 생각되오이다.”
“아직 어린나이라 하니, 이참에 아예 싹을 자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뇌정지기가 맞는다면 어디까지 성장할 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마교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단 말이오.”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소림의 방장인 혜운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시작은 청성이 하였지만, 현재 무리의 수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소림이었는데, 청성이 무리를 대표하면 대외적으로 모양새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직접 처리하시지는 않을 것 같소이다.”
“허면?”
“아마도 당문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겠소?”
뇌정지기는 사기뿐만이 아니라 독과도 상극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뇌정지기를 익힌 이가 발밑에서 하품하고 있는데, 당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백독문은?”
“충격이 심한 것 같소이다. 그들의 하는 요량으로 봐서는 다시 혈마교에 사람을 보내는 것은 힘들 것 같소.”
“도대체 어디서 그런 낮도깨비 같은 놈이 나타났는지…….”
“그러게 말이오. 내 생각인데, 어쩌면 마교에서 이참에 백독문을 치려는 것이 맞는 것 같소이다.”
잘못된 정보는 망상을 불러온다.
하지만 망상이라고 항상 틀리는 법은 없으니 기대 해 볼만 한 일이었다.
***
퍽!
“크윽!”
“허리가 허술하다.”
“그… 그 말은 때리기 전에 해 주면 안 되겠소?”
온 몸이 멍투성이인 왕일이 허리어름을 붙잡으며 일어섰는데, 허리에 맞았건만 옆구리가 통째로 뜯겨나가는 아픔이었다.
차라기 기를 사용했다면 그것을 반탄시켜 되돌릴 수 있었고, 아픔도 덜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검 두 개를 부러뜨리자 귀신같이 타격의 순간에만 기를 회수하는 잠영일호였다.
그렇기에 완전한 물리적 충돌만 일어났고, 더 이상 목검은 부러지지 않았다.
“아무리 영민한 기감과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몸이 그 모양이어서는 비명횡사하기 딱 좋다.”
왕일과 잠영일호는 허리와 다리를 단련하는 수련을 마치고,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왕일만 두들겨 맞고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보검을 준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군. 천하에 다시없을 뇌정지기와 떨어지는 빗방울도 헤아릴 눈을 가지고 있는 놈이 이따위 허초에 속아 넘어가다니.”
잠영일호의 말을 들으며 왕일은 자신이 진정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알았다.
뇌정지기를 이용해 강시를 부술 때만 하여도 고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막상 고수와 대련을 하고 나자 그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왕일은 잠영일호의 말에 동의 할 수 없었다.
‘그게 허초라고?’
지금까지 자신이 맞은 것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지만, 도저히 허초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빠른 공격은 이전에도 상대했었다.
그렇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세계의 잔상이었다.
분명 잔상인 것을 알고 다른 쪽을 방비하려고 하면 어느새 잔상은 실체가 되어 그의 몸을 두들기고 있었던 것이다.
“누누이 얘기를 하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빌어먹을! 뭘 느끼라는 거야?’
잔상이라고 여긴 이유는 그곳에서 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를 따라 목검을 움직여 그 경로를 막으면 어느새 잔상에 실체가 결합하면서 그를 공격했다.
느끼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었다.
“아무리 내공이 많다고 하여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삼류에게도 죽을 수 있다. 금강불괴를 이룬다고 하여도 그것을 펼칠 초식이 없다면 몸뚱이만 단단한 쇳덩어리와 무엇이 다를까? 아무리 단단한 쇠라고 하여도 두들기다보면 그 형체가 변하기 마련이다.”
사실 왕일의 무공은 일정한 초식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보고 느낀 것을 이용하는 감각도와 비슷했다.
그것이 통했기에 아직 살아있었지만, 고수들의 세계에서 놀자니 자신이 가진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했다.
“아직 멀었어?”
옆에서 지켜보기 심심한지 악불군이 목검을 쓰다듬으며 채근하고 있었다.
‘염병할 늙은이!’
자신을 두들겨 패자고 기다리는 이가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여기서 예전 방법을 쓰자고 덤볐다가는 벌써 비명횡사했겠군.’
장사우와 마호성은 이들에 비하면 그야 말로 성인군자였다.
“끝났습니다.”
“오~ 그래?”
잠영일호의 말에 악불군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왕일에게로 다가왔다.
웃을 때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화상자국이 꿈틀거렸는데, 마치 지옥의 야차가 웃는 것 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