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상들의 무림 생존기-66화 (66/138)

66화

달릴 때, 발바닥으로 기가 나가는 것처럼 손으로 기를 쏘아보내기도 했었지만, 아직도 혈도를 어떻게 돌린다거나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때와는 다르지.’

훌륭한 스승도 있으니 궁금한 것은 물어보면 되었다.

“나는 내공이라는 것이 그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소?”

왕일의 말을 들은 잠영일호가 기가 차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무림인이 바라는 궁극적인 목표였으니까.

“필요한 만큼 기를 바로 쓸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지. 하지만, 모든 무공은 단전에서 내공을 끄집어내어 혈도를 돌리며 그 크기와 양, 성질을 결정한다. 고수라는 것은 단전도 크지만 혈도도 질기며 넓어야 하지. 왜냐하면 그래야 더욱 빨리 자기가 필요한 내공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고수들의 싸움을 볼 때면, 어째서 처음부터 가장 강한 무공으로 끝내지 않는지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진짜 무지의 소치이지. 그것을 이끌어내려면 일단 준비해야 하고, 이전의 무공을 통해 혈도와 단전을 긴장시켜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운기를 통해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하지만, 그런 무공을 펼칠 정도의 상대하면 그 시간에 목을 따도 열 번은 더 딸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래도 무시하고 펼치면 어떻게 되오?”

“운이 좋으면 상대를 죽이고 혈도가 손상되는 정도로 끝낼 수 있지. 아니라면 같이 죽던가.”

잠영일호의 말을 듣고 이해는 갔지만, 왕일은 자신의 경우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일단 왕일은 단전이 없었다.

아니, 단전 역할을 하는 것은 있었다.

“그 운용법은 어디에 있는 것이오?”

자신이 얻은 내공심법에는 그 운용에 관한 것이 적혀 있지 않았다.

다른 여타의 운용방법도 알지 못했다.

문득 왕일은 그 말을 하다 드는 의문이 있었다.

‘휘명이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 책에 적혀 있었을까?’

좋아하던 얼굴을 떠올리자 적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사부에서 제자에게 구전으로 전해지지. 그것이야말로 진짜 무공의 핵심 중의 핵심이니까.”

“가르쳐줄 만한 것이 있소?”

왕일의 물음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잠영일호가 전음으로 말하였다.

-좋은 것이 있지. 청하도법의 운용구결이다. 그놈이 책에 자세하게 적어 놨더구나.

청하도법은 바로 석휘명이 얻은 하만성의 독문도법이었기에 도를 사용하는 왕일에게 어울릴법한 것이었다.

이미 잠영일호는 그 내용을 필사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다른 내공심법을 사용해도 괜찮은 것이오?”

-보통은 혈도에 무리가 가지. 각 심법의 운용법은 그 심법의 성질에 맞춘 것이 보통이니까. 네 내공을 보자면 강맹함을 위주로 하는 것 같으니 폭뢰심법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뇌정지기를 운용하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현재까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마친 잠영일호가 운용구결을 불렀는데, 혈도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던 왕일이었고, 머리가 트인 것인지 외우는 데도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모든 구결이 단전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소.”

“뭔가?”

“난 단전이 없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하오?”

“일단 너의 기, 그 뇌정지기가 머물고 있는 곳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잠영일호의 말에 왕일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왜 웃지?”

“뇌정지기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는 있으리라 생각한 잠영일호였으니까.

“여기요.”

왕일이 가리킨 곳은 자신의 심장이었다.

“심장? 그럼 중단전을 이용한다는 말이야?”

중단전의 위치는 심장, 정확히 말하자면 명치에 존재했다.

중단전을 쓰는 문파도 있었기에 잠영일호는 그에 맞는 내공심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 피가 흐르는 모든 곳, 바로 내 몸이란 말이오. 그리고 뇌정지기는 혈도를 통과하지 않소. 그저 내가 내보내고 싶은 곳으로 나가지. 손이면 손, 발이면 발.”

왕일의 말에 잠영일호가 눈을 껌벅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혈도를 통과하지 않아?”

“그렇소. 혈도는 그저 기를 받아들이기 위한 통로? 아마, 그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 같소.”

“잠깐, 정리를 해보자. 그러니까 분명 뇌정지기가 있는데, 그것이 몸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할 때는 혈도를 통하지 않고 쓰고자 하는 곳으로 바로 이동한다?”

“그렇소.”

한참을 가만히 있던 잠영일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것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나?”

“사실… 그것을 알 수 없소. 있다는 것을 알고 꺼내 쓰기는 하지만,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하오.”

“그럼 최대한 뿜어내면 어느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지?”

“아직 해보지 못했소.”

“그럼, 해봐.”

잠영일호가 손을 뻗어 텅 빈 연무장을 가리키자, 도를 높이 든 왕일이 최대한의 힘을 도에 실었다.

이내 파지직거리며 하얀 불꽃이 피어나더니 순식간에 도신 전체가 화려한 불꽃에 휩싸였다.

“하압!”

기합을 지르며 왕일이 도를 내리긋자 불꽃이 앞으로 방전되면서 십여 장 떨어진 목표로 한 연무장 한가운데를 강타했다.

퍼퍼퍼퍼펑!

단 한 번 강타했을 뿐인데 폭발음은 연속해서 들렸고, 반 경 오 장여가 초토화되었다.

“으음… 찌릿찌릿한 걸?”

뇌기가 전달된 것인지 잠영일호가 자신의 발바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마치 왕일이 만들어놓은 폭발의 흔적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이게 최대야?”

“그런 것 같소. 더 이상은 아무리 짜내려 해도 실리지 않았으니까.”

“몸에는?”

묻는 말에 왕일이 다시 도에 불꽃을 피웠고, 그 불꽃을 본 대답은 잠영일호의 입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왔다.

“여력이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게 최대가 아니라는 말이지. 진짜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면 불꽃을 만들 수 없었을 테니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군.”

어느새 나타났는지 악불군이 왕일의 불꽃을 보다가 다시 폭발 현장으로 가서 관찰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노력해야겠지만, 지금은 다른 문제가 있어서 보류해야겠는 걸?”

그 말을 남기고 또 신형을 날려 사라지는 악불군.

그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가?

“다른 문제?”

왕일이 잠영일호를 보며 물었다.

“백독문이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이제 싸워야 할 시간이라는 말이었다.

“도움은 있소?”

왕일의 말에 잠영일호가 고개를 저었다.

“버러지들을 달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책임이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했겠지? 자, 마지막 조건이다. 그들만으로 싸워서 이겨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라.”

그 말을 들은 왕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죽지 않을 거요. 맞소?”

“맞다.”

“내가, 아니 우리가 이길 수 있겠소?”

“글쎄… 이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모든 것은 얼마나 절박하고, 얼마나 바라는가에 달렸겠지.”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잠영일호가 왕일에게 물었다.

“왜 그들을 살리려고 하는 거지?”

그 말에 왕일이 피식 미소 짓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별다른 것은 없소. 그저 내가 가졌던 희망이라는 것을 그들에게도 주고 싶었을 뿐이오.”

그 말에 잠영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모습을 보는군. 쑥스러움이라… 그나저나 그건 알고 있어?”

“무얼 말이오?”

“그들에게 희망은 다른 것이 아니야. 바로 네 존재 자체가 희망이지.”

“무슨 뜻이오?”

“이제 알게 될 거다. 제 일 연무장으로 가봐.”

잠영일호의 아리송한 말을 뒤로 하고 제 일 연무장으로 향한 왕일은 그곳에서 그 말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

그곳에는 기쁨, 걱정, 불안, 분노 등이 가득했지만, 왕일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것은 기대였다.

그 기대의 바다에서 왕일은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것을 보여주려 내가 은혜를 베푼 것처럼 만들었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차피 화영영이 이곳을 지키라고 했기에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이번에 이기면 어떻게 되냐고? 물론 계속적인 도전을 받게 되겠지. 그것도 정파의. 그 속에서 살아남아 그들의 신경을 긁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신경은 분산되겠지. 노리는 것이 있냐고? 그건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한 가지만 가르쳐줄까? 원래 이곳은 버리는 패였다. 그것을 화 장로님의 말씀 때문에 바꾼 것이다. 왜 바꿨을까? 이미 해답은 가르쳐 주었으니 잘 생각해봐.]

아직 그 답을 얻지는 못했다.

화영영은 자신의 전각에 틀어박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잠영일호에게 정파가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이곳을 쓸어버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는 의미모를 웃음만 지었다.

[과연 그럴까?]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왕일이었다.

어째서 정파가 백독문을 막아내느라 만신창이가 될 혈마교를 가만히 놔둘 것인지.

그래서 물었다.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왜 신경을 써야 하지? 어차피 이곳은 버릴 패였는데.]

그렇다.

마교에게 있어서는 이곳이 있건 없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조금 정파의 속을 긁어줄 존재 정도만 되어도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화영영과 왕일 두 사람뿐이었다.

패색이 짙어지거나 정파가 대대적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화영영과 왕일은 마교를 향해 출발하고 있을 것이다.

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과연 내가 원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들이 이끌면 이끄는 대로 안전한 곳으로 향할 것이었다.

***

천천히 연무장에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보던 왕일이 앞줄에 늘어서 있는 백여 명을 눈여겨 바라봤다.

그들의 나이는 각각이었는데, 모두 사십 줄에서 육십 줄까지 있었다.

그런 그들이 나머지 인물들의 대표라도 되는 듯이 왕일의 앞으로 다가왔다.

“뭐지?”

“무기를 주시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거의 육십은 넘어 보이는 이였는데, 그가 이 무리들의 가장 연장자이자 대표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무장을 한 이들이 거의 없었는데, 있더라도 조잡한 괭이나 부엌칼이 전부였다.

“무기라… 줄 수도 있지. 그런데, 내가 재미난 말을 들었는데 말이야.”

말을 하면서 왕일이 그 사람의 앞에 서더니 발로 차버렸다.

퍽!

“큭!”

“부탁을 할 때는 제대로 하라더군.”

왕일의 뒤에 서 있던 천의 몸이 움찔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왕일의 모습을 봐왔었고, 여인과 아이의 죽음에 발광하는 것도 지켜봤었다.

그런 천에게 지금 왕일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일은 다시 서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내가 너희들과 협상이라도 하려고 이 자리에 서 있는 줄 아나? 나에게 요구를 해?”

“크음… 요구가 아니었소이다.”

퍽!

간신히 몸을 일으킨 이의 얼굴을 왕일이 다시 발로 차버렸다.

“내가 무어라 생각하나? 너희들의 말을 교에 전달해주는 전달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왕일이 도를 손에 쥐자 금세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천!”

“예.”

“이들에게 무어라 말했지?”

“그게…….”

“말해라!”

“살 길을 열어주실 분이라 했습니다.”

“틀렸다!”

강하게 말한 왕일이 천을 노려보았다.

“내가 너를 살릴 때 한 말이 무엇이었지?”

“…….”

“내 소유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지금 가르쳐주랴?”

도를 잡은 왕일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 천이 눈을 감았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그는 왕일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사실 무기를 달라고 한 것은 다시 협상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안 되면 협박이라도 할 속셈이었다.

독에 정통한 백독문이라면 자신들이 중독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해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왕일을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전투에 나서기도 전에 악불군 등에게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자신들을 이곳에 데리고 왔으니 필요하기 때문이고, 거기에 왕일이라는 방패가 있다면 어떻게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서 있는 왕일은 그가 알던 왕일이 아니었다.

“저들에게 내가 누군지 다시 알려 주어라.”

왕일의 말에 천이 눈을 뜨더니 앞으로 나섰다.

“이분은… 우리의 새 주인이십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연무장을 울렸고 모든 이의 귀에 전달되었다.

“알아들었으면 그따위 눈깔은 모두 치워!”

이제 모든 이의 눈에서 보이는 감정은 분노와 절망이었다.

희망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을 바라보던 왕일이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이것이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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