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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59화 (59/138)

59화

생각에 잠겨 있던 사마유운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남찬우를 바라보았다.

“안 됩니다.”

사마유운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남찬우의 입에서 부정의 말이 흘러 나왔다.

“어째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도 묻지 않았다.

다만 왜 반대하는지 이유를 묻고 있었다.

“잠영대가 침투하지 못한 곳입니다. 그런 곳에 일을 도모 하려면 최소한 마검대는 보내야 하는데, 자칫 그 일로 인해 정체라도 들통이 나는 날에는 분열되었던 정파가 다시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철진이란 놈을 죽인다고 하여도 패진무관이라든가 고가형제 놈들에게 어떠한 타격을 준다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사실 마교로서는 정파가 이렇게까지 분열할 줄은 몰랐다.

완전히 손만 대면 터질 것 같은 물거품과도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가만히 물러서서 구경만 하면 정파가 스스로의 몸에 흠집을 낼 것이고, 기회를 노려 그 흠집을 후벼 파기만 하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는데, 애써 조성된 긴장감을 해소시켜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소림이나 다른 쪽에서 손을 쓴 것처럼 보일 수는 없을까?”

“말씀드렸다시피 워낙 감시가 심한 터라 공작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빠르게 치고 빠져야 가능한데, 분명 교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 주위에 많은 시선이 있기에 그들 모두를 속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예.”

“그럼, 그놈을 포섭할 수도 없나?”

패진무관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마교는 한철진이 꼭두각시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구음신마라는 존재를 알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곁에 가는 것조차도 힘듭니다.”

“젠장! 어디서 그런 놈들이 나왔지?”

“일전에 말씀을 드렸다시피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물론 지금은 왕일이라는 놈의 말을 들었으니, 신흥사패보다는 구음신마의 수하들이라는 쪽으로 더 기울어집니다만.”

“후우~ 좋아. 그럼 어떻게 해야겠나?”

“화 장로가 그곳에 간다고 해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그럼 우리는 역으로 그곳으로 고수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설마?”

“예. 놈들의 정보를 사실로 만들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백독문을?”

“만일 혈마교에서 진짜 백독문을 친다면 정파는 우리가 관여한 것을 알 것이니, 놈들의 주의가 우리에게서 멀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끼리 어떻게든 결판을 보기 위해서 서두르겠지요. 우리가 백독문과 전쟁을 하는 동안 결론을 내려고 말입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마교가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화영영의 안위를 걱정함이었다.

“오히려 그 편이 화 장로를 지키기에는 더 좋습니다. 전황이 기울어지면 미련 없이 화 장로만 데리고 탈출하도록 하면 되니 말입니다. 딱히 우리가 진짜 백독문을 노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버러지 놈들이 있으니 상당한 인원을 보여주는 격이 됩니다. 정파 놈들이 의심하더라도 그 인원이라면 우리가 연막을 피운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겠나?”

“대외용으로는 철저하게 혈마교와 우리를 분리하면 됩니다.”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하겠다는 뜻이었다.

일단 그렇게 하면 화영영이 패진무관이나 하만성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니 교주로서도 그 계획에 솔깃했다.

“누굴 보내야 할까?”

“따로 정할 필요 있습니까?”

어차피 혈마교는 부교주인 악불군이 세운 곳이었다.

거기다 호남에 대한 계획도 무산되었기에 딱히 할 일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라면 화영영의 안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고,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고 하여도 그녀를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이었다.

“안 그래도 고가형제 놈들의 소식을 듣고 몸이 근질근질하실 것이니 가서 마음껏 화를 쏟아내시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좋아. 그나저나 그 휘명이라는 놈은 아직도 비룡장 주위에서 맴돌고 있나?”

“예.”

“그놈은 자신이 버린 왕일이란 놈 때문에 목숨을 유지하는지 모르겠지?”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사마유운은 분명 두 달을 주었지만, 두 달이 되어도 특별한 정보를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마유운이 가만히 두는 것은 석휘명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화영영이 부탁하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왕일의 부탁을 대신 전한 것이지만.

“언제 가시라고 할까요?”

“마음 내킬 때 가라고 해.”

다음날, 은밀하게 악불군과 그의 수하들이 귀주로 이동하였다.

***

왕일과 화영영 등은 특별한 마찰 없이 혈마교가 있는 흥의현 부근까지 왔고, 잠영일호가 계획을 잘 짠 덕분에 노숙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마차와 말에 나눠 타고 왔기에 눈에 띄는 일도 거의 없었는데,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왜냐하면 천 등이 전혀 말을 탄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공 고수들답게 곧 적응하여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억지로 균형을 잡는 것이기에 말과 마차 안에 있던 이들이 좀 괴로웠을 뿐이었다.

귀주 남서부에 위치한 흥의현은 그들이 지금껏 지내온 동쪽과는 달리 우기가 지나치게 짧은 지역이었다.

다만 서쪽에 높이 솟아 있는 역암산(域巖山)을 지나면 운남과의 경계인데, 그곳은 습하고 비가 많이 내렸다.

역암이란 말 그대로 경계를 나누는 바위란 뜻으로 지나치게 바위가 많고, 그 지형이 상당히 가팔랐다.

일반인은 넘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 바로 그 역암산이었고, 혈마교가 둥지를 튼 곳이기도 했다.

흥의현은 그 역암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였고, 오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다만 아이들 몇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낙네 몇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작은 마을이라면 지나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였기에 오히려 반겨야 정상이거늘 이들의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어린아이들은 놀던 것을 멈추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으며, 여인들은 마치 엉덩이에 불이라도 난 것 마냥 후다닥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심지어는 냇가에 빨래를 남겨 놓을 정도로 서둘렀다.

천 등은 아예 관심이 없었고, 화영영 또한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오직 왕일만이 무슨 일인가 하여 그들을 바라보았다.

“왜?”

“아니, 저들이 우리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오지랖도 넓다. 내려서 제발 무서워하지 말라고 설득이라도 하고 싶으냐?”

“…….”

화영영의 말에 왕일이 입을 다물었다.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끝으로 대화가 단절되었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멈춰라!”

큰 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췄기에 무슨 일인가 하여 왕일이 목을 빼고 앞을 바라보자, 구환도를 든 장한 둘이 마차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뒤로 다섯 명의 장한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행색이 어디 산적 소굴에서 튀어나온 놈들 같았다.

“마을에 들어왔으니 일단 검문을 해야겠다. 마차에 타고 있는 것들은 속히 내리도록 해라!”

-어떻게 할까요?

천이 전음으로 물어보자 화영영이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차피 조심해야 할 구간은 모두 지나왔다. 쓸어버려.”

정파가 아무리 혈마교에 대한 공격을 멈췄다고 해도 완전히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물론 오는 도중에 정파인들의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화영영과 왕일이 연인사이처럼 여행하는 것으로 속여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왕일이 장님 행세를 한 것은 여흥이었다.

그것이 동정심을 일으켰을까, 오히려 이곳에 혈마교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까지 들었다.

정파인들도 이곳 흥인현까지는 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곳을 혈마교의 영역으로 인정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워낙 작은 마을이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흥인현에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들이 목에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퍽!

“크윽! 이것들이 혈마교를 업신여기다니! 정파 놈들이냐!”

한 대 맞았는지 비명소리와 칼을 뽑는 소리, 그리고 협박하는 소리가 어우러져 들려왔다.

혈마교 소리에 천이 멈칫했고, 그 모습을 오해라도 한 것인지 협박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놈들! 감히 우리를 건드리다니, 각오는 되었겠지? 그러나 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니, 무릎을 꿇고 빈다면 살려주도록 하겠다.”

아직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설치는 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결국 왕일이 마차에서 내렸고, 고개를 저은 화영영도 그 뒤를 따라 내렸다.

그런 화영영의 미모를 보고 군침을 삼키던 장한이 미처 못 보았던 시뻘건 눈알의 왕일을 모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일단 사람이 먹고 들어가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외모가 첫째요 말투가 둘째였다.

지위나 실력은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것으로 앞의 두 가지가 먹혀들어가지 않을 때나 쓰는 것이었다.

“일단 꿇려봐.”

왕일의 말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천 등이 나서서 그들을 제압한 것이다.

일이 점점 커지려는지 곡소리를 듣자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곳 마을사람들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에 손에는 무기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수가 삼십여 명은 되었는데, 그 앞에 있는 이는 그런대로 뭔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십 대로 보이는 그는 깔끔한 검은 무복에 머리는 영웅건으로 정리했고, 수염도 가지런한 것이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이놈들!”

목청 크다고 자랑이라도 하려는지, 아니면 큰소리를 지르면 모든 이가 겁이라도 먹는다고 생각했는지 왕일 일행을 향해 소리부터 지른 검은 무복의 장한이 멋들어지게 도를 뽑았다.

“시끄럽다.”

역시나 화영영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고, 잠영일호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의 호통에 반응한 것은 왕일이었고, 그런 왕일의 뜻을 따라주는 것은 천 등이었다.

“데려와.”

왕일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천이 그 검은 무복을 입은 이를 향해 몸을 날렸는데, 검을 꺼내지도 않은 것을 보면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이놈이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겁 없이 맨손으로 덤비는 천을 본 그가 분노를 숨기지 않고 도를 휘둘렀다.

패액!

공기를 찢으며 천에게 다가가는 도신이 어느 순간 잔상을 만들며 세 개로 불어났지만, 그것이 가른 것은 천이 만들어 놓은 허상이었다.

빡!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억 소리도 못 내고 신형이 무너진 장한을 발로 밟더니 천이 나머지 인물들을 쓰윽 훑어보았다.

“도망가면 죽는다. 꿇어.”

아무리 분위기가 그래도 꼭 튀는 놈이 한 놈씩은 있는 법이었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놈 하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잘렷다.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뿌린 것은 그들의 막내인 월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이 앞 다투어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들을 천 등이 넓게 포위했다. 일단 제압해 높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심문해야 할 이들은 관심이 없고, 왕일은 혈마교는 둘째 치고 마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어떻게 심문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천 등은 그저 놈들을 잡은 것으로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얌전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왕일이 화영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치 허공이 찢어지듯 갈라지더니 잠영일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잠영일호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왕일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알고 싶으냐?”

이 질문은 왕일을 황당하게 만들었는데, 혈마교라 함은 이제부터 자신들이 기거해야 할 곳이고, 또한 어찌 보면 자신들의 문파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의 이름을 팔고 있는 이들을 잡았는데, 저런 질문이라니?

“너는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많겠구나.”

왕일은 뭘 잘못했는지 몰랐기에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영일호도 대꾸를 기대하지 않았는지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모조리 죽여 버리거나.”

죽여 버린다는 말을 들은 장한들의 몸이 움찔했다.

“어째서 그렇소?”

혈마교라는 이름이 나왔으면 당연히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네가 이들을 제압한 것은 이놈들이 진짜 혈마교의 인물인지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는 짓거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고. 아니냐?”

“맞소이다.”

“그럼 묻겠다. 우리가 이곳에서 저들과 시비를 벌이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 같으냐?”

“…….”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니.

“행적이 노출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혈마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저들을 핍박하거나 심문하게 된다면 우리가 혈마교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떠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후에도 저들을 살려둘 생각이었느냐?”

“혹시라도 저들이 진짜 혈마교라면 어떻게 하오?”

그 말을 들은 잠영일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교에 대해서 모르니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난 다음 말을 계속하도록 하자.”

아마도 화영영이 그를 부른 것은 이런 설명을 하기 귀찮아서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잠영일호가 눈짓하자 천 등의 검이 춤을 추었고, 학살이 시작되었다.

삼십여 명의 목이 떨어지는데, 숨 두어 번 내쉬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런 소란이 벌어졌음에도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누구 하나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왕일도 많은 이들을 죽였고, 죽음을 봐왔다.

새삼 저들의 죽음에 가책을 느낀다거나 후회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어차피 마차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경공으로 이동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잠영일호의 말에 화영영이 고개를 끄덕였고, 말과 마차를 마을에 버려둔 채로 신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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