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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28화 (28/138)

28화

“흥!”

코웃음을 친 복면인이 들고 있던 검을 마호성을 향해 던졌다.

웅웅웅웅!

밤의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의 시뻘건 독아를 드러낸 채 울음을 토하는 검이, 막 포위망을 벗어나려는 마호성의 등을 향해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크윽!”

간신히 옆으로 굴러서 피하기는 했지만, 마호성의 등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음기?”

등에 난 상처를 통해 파고드는 음기를 느낀 마호성의 눈이 커졌다.

무공에서도 음기와 양기는 그 색깔이 명확했는데, 음기는 흰색, 양기는 붉은색이었고 다소 변화는 있더라도 색깔의 짙음과 옅음일 뿐,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서… 설마?”

이렇듯 기운이 서로 다른 것은 마호성이 알기에 하나밖에 없었다.

“호오, 벌써 삼십여 년이 흘렀건만 나를 알아보는 것인가?”

크게 허공을 돌아 날아온 검을 받아 들며, 의문의 남자가 복면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구음신마?”

“이거, 이거. 감회가 새롭구먼.”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난 것에 대해서 그다지 염려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마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미 부정하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러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마호성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뿐이었다.

“그, 그럴 리가? 구음신마는 마교의 내전에서 죽었는데…….”

“역시 개방이군. 그런 사실까지 알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것이 한계겠지.”

멍청한 표정의 마호성이 걸어오는 구음신마를 바라봤다.

만약 저 인물이 구음신마라면 오늘 자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한가하게 걸어오던 구음신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한곳을 바라보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고, 순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한 인영이 구음신마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하앗!”

쾅!

공격을 막은 구음신마가 뒤로 주르륵 밀려나며 땅에 작은 고랑을 만들었다.

‘제길!’

구음신마를 공격한 이는 십칠 호였고, 그의 뒤로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빠르게 접근하는 중이었다.

‘사방이 막혔어.’

부하들과 도착한 십육 호가 십칠 호의 퇴로를 막으며 서둘러 광마단을 하나 복용했다.

그 모습을 본 십칠 호도 광마단을 먹고 싶었지만, 남은 것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십육 호가 준 것 뿐인데, 그것을 먹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약효가 사라지고 있는데…….’

-어떻게 빠져나갈 길이 없겠습니까?

이미 자신을 도와주었던 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마호성도 십칠 호의 전음을 들으며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없네.

-제게 두 개의 벽력탄과 독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분은 저놈에게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칠 호가 십육 호가 서 있는 곳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벽력탄은 저들에게, 독분은 이쪽의 적들에게 던지겠습니다. 그 사이에 탈출하십시오.

이미 등에 큰 부상을 입은 마호성으로서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당신이 아이들을 맡으시오.

마호성의 전음에 십칠 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능력이 안 됩니다.

광마단의 효과가 사라지는 지금, 이제 곧 엄청난 대가가 뒤따를 것이었다.

최소한 일각은 고통과 무력감에 땅바닥에서 발발 기어야 했는데, 지금 이곳은 그러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절벽은 어떻소?

절벽을 바라보던 마호성이 눈을 빛냈다.

-살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저들을 뚫고 도망치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을 것 같소이다. 아래에 계류가 흐르고 있으니, 하늘에 맡겨야겠지요.

-그럼 제가 그 아이를 맡겠습니다!

십칠 호가 당경을 안아 들고는 막 십육 호와 구음신마가 무어라 대화하려고 할 때 행동을 개시했다.

십육 호를 향해 벽력탄을 집어 던지고는 절벽을 향해 몸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마호성도 독분을 살포하고는 그의 뒤를 따랐다.

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사위를 뒤덮었고, 그것과 동시에 발생한 바람을 타고 독분이 구음신마 등을 향해서 빠르게 몰아쳤다.

“놈!”

“가랏!”

두 개의 검이 각기 주인을 떠나서 목표를 향해 날았다.

구음신마의 검은 왕일을 안고 있는 마호성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짓쳐들었고, 십육 호의 검은 당경을 안고 있는 십칠 호를 향했다.

‘믿는다!’

왕일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마호성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구음신마의 검을 그대로 몸으로 받았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마호성과 왕일의 몸이 꼬치 꿰듯이 검에 같이 찔렸다.

-일 호. 비룡장을 용서하지 마라! 너를 믿는다!

당경에게 전음을 보내고 마음의 준비를 한 십칠 호가 선택한 방법은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동반되는 것이었다.

“크윽!”

십칠 호는 십육 호의 검이 등을 뚫고 들어오자, 검을 검봉부터 빠르게 몸속에서 절단했다.

내공을 최대한 몸 안으로 모아서 그것을 이용해 순간적인 힘으로 상대의 무기를 부수는 이 방법은 부서진 무기조각들이 시전자의 내부를 완전히 걸레로 만들었기에 십칠 호가 살 확률은 없었다.

그러나 상대를 속이기에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일… 호…….’

마지막 힘을 다해 당경의 얼굴을 쓰다듬은 십칠 호가 결국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는지 모르는 상태의 당경은 혼란스러웠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검 하나가 완전히 파고드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아마 이 얼굴도 모르는 이가 수작을 부린 것이리라.

마지막까지 안타까운 빛을 잃지 않던 눈.

떨어지는 당경의 머릿속이 뱅글뱅글 돌았다.

각기 한 아이를 안고서 떨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구음신마와 십육 호가 서로를 바라봤다.

‘만만치 않은 놈이겠군.’

두 개의 벽력탄이 터졌건만 십육 호는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본 구음신마에게는 당연히 십육 호의 무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마지막에 그들을 덮친 독분으로 인해서 수하들이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검강에 이기어검이라…….’

십육 호도 광마단을 복용하기는 했지만, 구음신마는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 처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약효가 떨어진다면 필패였다.

서로가 서로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

구음신마가 먼저 휴전을 제안했다.

“이름이라도 가르쳐주는 것이 도리 아니겠소?”

십육 호의 물음에 구음신마는 입맛이 썼다.

‘놈! 분명 마가 놈이 떠든 것을 들었을 것인데, 저 따위로 말하다니!’

“굳이 떠들 이름이 아니라서 말이네.”

대답을 하는 구음신마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결코 범상치 않은 무공의 소유자건만 목소리나 말투를 봤을 때, 자신보다 한참 어리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이름인가?’

굳이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은 이름이 난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목소리도 변성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언젠간 알게 되겠지.’

구음신마와 십육 호의 눈이 부딪치고, 이내 그곳을 떠났다.

***

퍽!

“…죄송합니다.”

“죽음은 확인했느냐?”

“제 검이 확실히 놈의 심장을 뚫었습니다.”

퍽! 쿠당탕!

“이번에도 시체를 확인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지난번에도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번이라고 살아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말이다!”

“…….”

“계획을 서두르겠다. 어차피 벌어진 일.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그럼?”

“회주를 친다!”

“명을 받듭니다!”

“석가장으로 가라.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또다시 시체를 들고 오지 않았다가는 네가 시체가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허장천의 명을 받은 십칠 호가 밀실을 벗어나려고 움직일 때, 그의 뒤에서 허장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오면 이름을 주겠다.”

“……!”

길고 긴 암흑의 시간이었다.

이제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에 첫발을 디딜 수가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그그긍.

엎드린 채 감동에 젖어 있는 십칠 호를 뒤로하고 허장천이 먼저 밀실을 나섰다.

‘드디어! 드디어!’

얼마 뒤에 강서성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석가장이 멸문을 당했다.

패진무관의 습격사건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이었기에 무림맹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며 세밀하게 조사했지만, 밝혀진 것은 없었다.

***

절벽에서 떨어지던 마호성은 마지막 힘을 다해 왕일을 검에서 밀어내었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왕일이었지만 마호성은 아직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이 왕일의 몸을 꿰뚫는 순간부터 그의 몸에서 나는 열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내… 도박이… 통했구나.”

믿을 것은 왕일의 자체치유력뿐이었다.

거기다 한 가닥 희망은 구음신마가 쏘아내는 경력이 음기라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당경을 안고서 떨어지는 복면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 자신을 바라보는 당경과 눈이 마주쳤다.

‘최대한 가깝게…….’

삶의 불꽃이 꺼지고 있었기에 힘이 없었지만, 최대한 힘껏 왕일을 그쪽으로 밀었다.

“부… 탁…….”

당경에게 말을 던진 마호성은 결국 숨을 거두었다.

복면인의 품에 안겨서 떨어지는 당경이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왕일을 잡기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아직 서로에게 닿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버둥거리는 사이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졌고, 한 뼘 거리까지 좁힐 수 있었다.

‘됐어!’

막 당경이 왕일의 옷깃을 잡으려는 찰나, 사단이 벌어졌다.

계류에 닿고 만 것이다.

펑! 펑!

“크윽!”

십칠 호가 등을 아래로 하여 떨어졌기에 충격을 최소화하기는 했지만, 너무도 높은 곳이어서 충격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어푸! 어푸!”

당경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물 깊숙이 빠졌다가 발버둥을 쳐서 간신이 물 위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물과 부딪칠 때 충격을 입었는지 감각이 없는 다리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빠르게 흐르는 물살도 당경이 중심을 잡는 것을 방해하였다.

이 순간에는 당정도, 왕일도, 복면인도, 마호성도 당경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숨을 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컥! 푸우! 큭!”

숨을 쉬면서 간신히 목만 내놓고 흘러가던 당경이 계류에 오롯이 솟아 있는 바위와 충돌한 순간, 죽기 살기로 바위를 잡고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의 눈에 멀리서 떠오르는 물체가 하나 보였다. 왕일이었다.

“와, 왕일아!”

당경이 애타게 불렀지만 왕일은 그저 떠내려 올 뿐이었고, 그렇게 옆을 스쳐가는 왕일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당경이 몸을 날렸다.

바위를 놓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자신을 지나치면서 흘러가는 왕일의 모습을 보는 순간 미련 없이 바위를 떠났다.

솔직히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곳에 혼자 남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었다.

“어푸! 어푸!”

차가운 계류가 두 사람을 태우고 쏜살같이 내달리는 상황에서 당경은 깍지를 끼고는 왕일을 꼭 껴안았다.

하지만 화는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그때 계류에 휩쓸려온 나무가 당경의 머리를 강타했다.

“큭!”

강한 충격을 받았음에도 당경은 결코 깍지 낀 손은 풀지 않았다.

***

“죄송합니다, 형님.”

구음신마의 말에 구양신마가 손을 저었다.

“괜찮다. 네가 무사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한철진은?”

“패진무관을 정리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철사명은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당분간은 처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혼란을 틈타 제거를 시도했지만, 개방이 먼저 도착했기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놈들이 누구일 것 같으냐?”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조무래기 집단은 아닐 것입니다. 저와 대치했던 놈은 나이가 어려 보였음에도 저와 비교해 손색없을 정도의 무위였습니다.”

“그래?”

구양신마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어디서 그런 낮도깨비 같은 놈들이 튀어나왔을꼬?”

“정보조직을 총동원하고 있으니 조만간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음지에서 활동한 기간이 벌써 삼십 년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 않았느냐? 요 근래 들어 우리를 추적하는 놈들도 그렇고 말이다.”

“한 가지 단서는 있습니다.”

“단서?”

“예. 놈들의 목표는 왕일이라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마을을 학살하던 놈들에게서 목숨을 구한 아이입니다. 생각하건데, 아무래도 그쪽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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