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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26화 (26/138)

26화

채채채채챙!

사자의 검은 줄기차게 적요신의 목을 노렸고, 그것을 삼영과 홍동곽이 간신히 막고 있을 뿐이었다.

몇 수만 더 겨룬다면 필시 사단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둘째야!”

홍동곽이 장수련과 왕일의 옆에 서있는 한철진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의 말을 듣자마자 한철진이 도를 휘둘러 사자의 등을 공격해 들어갔다.

홍동곽이 그 모습을 보면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것은 너무도 이른 판단이었다.

사자를 공격하는 듯 하던 한철진의 도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어 삼영의 하나를 베었다.

“크억!”

“무슨 짓이냐, 둘째!”

노여움이 가득 깃든 도가 곧장 한철진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졌지만, 그것은 사자의 검에 막히고 말았다.

쾅!

내려친 홍동곽 도가 오히려 튕겨 나갔고, 그 서슬에 홍동곽의 가슴이 열렸다.

“큭!”

일자로 갈라진 홍동곽의 가슴이 서서히 피로 물들었고, 손에 든 도를 힘없이 놓치고 말았다.

쨍그랑!

바닥을 울리는 소리에 이제까지 멍하니 있던 장수련이 갑자기 왕일을 붙잡고 속삭였다.

“왕일아, 도망가.”

“응?”

“도망가, 빨리!”

아무리 속삭인다고 해도 그것을 못 들을 한철진이 아니었다.

“이년이!”

한철진이 막 그들을 향해 쇄도하려는 그때, 삼영 중의 하나가 검을 찔러왔기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방어해야만 했다.

그래도 한철진은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장수련과 왕일을 향해 장력을 방출했던 것이다.

펑!

“아악!”

장력이 다가오자 장수련이 왕일을 감쌌고, 장력은 그녀의 등에 적중했다.

“와, 왕일아… 나, 나를 요…….”

“누나?”

멍하니 입에서 피를 흘리며 무너지는 장수련을 바라보는 왕일을 향해 이번에는 사자의 장력이 날아왔다.

그로서도 모든 상황을 본 왕일을 살려두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쾅!

아까보다 더 큰 소리가 들렸고, 왕일의 몸은 벽을 뚫고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반탄?’

공격을 한 사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황망중에 날린 장력이라고는 해도 꼬마 놈 정도는 충분히 죽이고도 남을 힘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손에 반탄력이 느껴진 것이다.

‘내공이 있었던가?’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왕일의 마지막을 확인하는 것도 급했지만, 일단 남은 삼영 중의 두 명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한철진, 공격해라!

넷으로도 한 사람을 막기 힘들었는데, 한철진까지 가세하자 장내는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나는 밖의 상황을 정리하겠다. 너는 이곳을 마무리하도록!

사자가 뚫린 벽을 향해 몸을 움직이자 한철진이 쓰러진 적요신에게 다가갔다.

“사부.”

적요신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잠자고 있었다.

“그러게 내가 미정을 달라고 할 때 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은 사부 때문입니다.”

품에서 꺼낸 단검을 적요신의 가슴에 대더니 서서히 찔러 넣었다.

“크크큭.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정이는 내가 잘 돌봐줄 테니까. 물론 이곳 패진무관도. 저들은 저를 산서성의 주인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저승에서나마 저에게 고마워하십시오. 제가 산서성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패진무관이 주인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어른 손바닥만 한 단검의 날이 적요신의 가슴으로 사라졌다.

“이런!”

서둘러 왕일을 쫓아 나간 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쓰러져 있을 것이라 생각한 왕일이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던 사자의 눈에 경공을 펼치는 거지가 들어왔고, 그의 양팔에 안겨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놈!’

땅을 박찬 사자가 주저 없이 신형을 날렸다.

그의 뒤에서는 부하들이 생사투를 벌였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뒤로 전각이 무너져 내렸다.

***

“무슨 놈들이!”

십육 호는 팔다리가 잘리는 것쯤 우습게 여기는 복면인들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구 호, 꼬마 놈은?

-개방의 인물로 보이는 놈이 채갔어!

-추격한다!

막 십육 호 등이 신형을 날리려는 그때, 그들보다 먼저 마호성과 그를 쫓는 사자의 뒤를 따르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바로 십칠 호와 팔 호였다.

-십칠 호, 어디 갔다가 온 것이냐!

그들을 발견한 십육 호가 질책했지만, 십칠 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경공을 펼쳐 마호성을 따르는 것에만 주력했다.

-십칠 호!

불러도 대답 없는 십칠 호의 뒤를 십육 호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한편 당경과 왕일을 매달고 달리는 마호성은 죽을 맛이었다.

‘황가 놈을 만나러 가다가 연락을 받고 오기는 했지만, 이런 난리가 났을 줄이야.’

현재 패진무관은 개방과 패진무관의 인물들이 복면인들에 맞서서 싸우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게 또 묘한 것이 복면인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왕일의 안위가 걱정되어 숙소로 간 마호성이었지만, 기다리는 것은 이른 시각부터 침상에 처박혀 있는 당경이 전부였다.

그냥 나올 수도 있었지만, 당정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버려둘 수 없던 마호성은 당경을 안고 그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그곳을 벗어난 마호성이 왕일을 찾던 중, 마침 벽을 뚫고 나오는 왕일을 붙잡아 튈 수 있었다.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아무리 어린아이 둘을 안고 있다 해도 자신을 따라잡는 복면인들의 경공에 마호성이 침음을 흘렸다.

게다가 그런 놈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으니, 마호성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어렵다.’

그 순간 하늘로 두 가닥 불꽃이 쏘아졌고, 이제는 사방에서 마호성을 향해 복면인들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젠장! 태풍에 날아간 찢어진 속바지보다 못한 놈들이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달려들어!’

순간 걱정이 태산이던 마호성을 구해주는 일이 발생했으니, 몰려들던 복면인들이 저희들끼리 싸움을 벌인 것이다.

내막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마호성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잘한다! 그래, 죽여라! 아직 하늘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구나.’

기회를 얻었음에도 갈 곳이 없었다.

이대로 개방의 분파로 달려 갈 수도 있었지만, 가봤자 텅 빈 공터와 어린 거지들뿐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좀 한다는 놈들은 모조리 이곳으로 달려 왔고, 복면인들과 드잡이질을 벌이는 중이었으니까.

‘어디로 간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던 마호성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놈들이 아직 있으려나?’

확신은 없었지만, 이제 믿을 데는 그곳뿐이었다.

***

마호성이 패진무관의 담을 넘어 빠른 속도로 달려 향하는 곳은 바로 당정이 머물고 있는 대장간이었다.

‘옳지. 아직 가지는 않았구나.’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있었다.

“당만호! 이 녀석아, 봤으면 빨리 기어 나올 것이지 뭘 망설이는 것이냐!”

대장간을 삼십여 장 남겨둔 시점에서 마호성의 고함이 터져 나왔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공터에서 이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굽니까?”

“헥, 헥. 나도 모르겠다. 아이구, 삭신이야.”

녹의를 입고 녹색 장갑을 끼고 선 이들의 뒤에서 마호성이 숨을 골랐고,

그때 대장간 문이 열리면서 당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이곳의 상황을 살피는 것 같던 그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마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어찌된 일입니까?”

당정의 물음에 마호성이 쌍심지를 켰다.

“보면 모르겠나!”

곧 그들 앞에 두 무리의 복면인들이 나타났기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한 무리는 이십여 명이었고, 다른 무리는 삼십여 명이었다.

‘젠장. 하필이면 당가라니.’

지금 이 순간 사자는 답답함을 느꼈다.

앞을 막아선 인물들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당가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사안을 생각하면 왕일을 죽여야겠지만, 기회는 지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칫 다른 복면인들과 싸움을 벌이다가는 마호성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도 있었으니까.

다행이라면 놈들도 왕일 등을 살려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구나.’

-철수한다!

생각을 굳힌 사자가 철수명령을 내렸다.

‘어째서 포기하는 것이지? 설마 당가 때문에?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당가쯤은 우습게 여길 터인데…….’

후퇴하는 복면인들을 본 십육 호가 잠시 갈등했지만, 먼저 급한 불부터 끄기고 했다.

일단 이곳에 있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야 하는 것이다.

특히 왕일은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리고 십칠 호와 팔 호도 절대 살려둘 수 없었다.

‘임무가 우선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십육 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십칠 호와 팔 호가 당경을 바라보며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십칠 호, 아무리 봐도 일 호가 우리를 몰라보는 것 같지?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당경은 그들이 알고 있던 일 호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마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십육 호 저놈의 눈길이 일 호에게 있지 않은 것으로 보건데, 아마도 십육 호는 일 호와 같이 있는 아이가 목표인 모양이다. 그러니 공격이 시작되면 우리는 일호를 데리고 탈출한다.

하지만 일은 십칠 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죽…….”

십육 호가 공격을 명하려는 그때, 오 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일 호? 그럴 리가?”

“뭐?”

놀란 표정으로 말을 꺼낸 오 호를 바라보던 십육 호가 그의 눈길을 따라 당경을 바라보았다.

“설마?”

일 호의 어린 시절 모습은 십육 호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선두를 놓치지 않던 일 호를 한 때는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했던 십육 호였다.

“어떻게? 분명히 죽였거늘?”

너무 놀라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 호, 구 호는 십칠 호와 팔 호를 죽여라!

일 호의 모습을 보건대 절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났는지 몰라도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던 그가 아니었다.

그리고 어째서 저런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살아났다면 또 죽이면 그뿐이다!’

“공격!”

오 호와 구 호가 십칠 호, 팔 호에게 신형을 날렸고, 십육 호는 부하들과 함께 일 호에게 짓쳐들었다.

***

“감히!”

당만호는 자신들의 상징인 녹색 옷을 보고도 달려드는 이들이 가소로웠다.

물론 이들의 기세가 강하기는 했지만, 당가는 그런 것을 신경 쓰는 곳이 아니었다.

“당가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늘어선 당가의 무사들이 손을 움직였고, 그들 앞에는 어느새 암기로 만들어진 벽이 세워졌다.

그렇다.

그것은 벽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적의 침입을 막는 벽이 아닌 살아 움직이며 먹이를 노리는 위험한 맹수였다.

단혼사는 바람을 타고 복면인들에게 쇄도했고, 우모침은 바람을 가르며 복면인들의 숨통을 끊으려고 날아갔다.

그런 둘을 헤치며 빠르게 전진하는 것은 당가가 자랑하는 염화정이었다.

염화정의 무서움은 관통력이 아니었다.

무기든 사람이든 부딪치는 모든 목표물을 불태우는 것이었기에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꽃인 염화정에 적중된 이는 삶을 포기해야 했다.

“흥!”

자신을 물어뜯고자 날아오는 암기들을 일견한 십육 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평상시라면 모르지만 광마단을 복용한 지금, 그를 위협할 독은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독을 흡수함으로 인해서 더욱 힘이 강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단혼사에 적중된 옷이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녹았고, 우모침은 그의 전신에 빽빽하게 꽂혔다.

하지만 그런 것을 무시하며 돌진하던 십육 호도 염화정만은 신경이 쓰였는지 독에 녹아서 걸레가 된 웃옷을 벗어서 휘둘렀다.

내공이 주입된 옷이 팔랑개비처럼 휘돌려지자 염화정들은 그것에서 발생한 힘에 의해 그를 향해 더욱 빨리 달려들었다.

그리고 막 염화정들이 옷과 만나려던 순간, 십육 호가 흔들던 옷을 당문인들이 있는 곳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염화정들이 어미 새를 쫓아가는 새끼 새들처럼 옷을 따라 당문인들을 덮쳐갔다.

자신들이 던진 암기가 오히려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도 당만호와 당가의 무사들은 침착했다.

일부는 피했고, 일부는 날아오는 암기를 잡아 다시 던졌다.

그 사이 십육 호와 복면인들이 당가의 무사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흥!”

십육 호가 뛰어난 무위를 선보였지만, 그런 것에 겁먹을 당만호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짓쳐드는 십육 호에게 암기를 던지고는 그 암기의 뒤를 바짝 쫓았다.

당만호가 던진 빠르게 회전하면서 십육 호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암기는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효능이 있었고, 암기의 끝은 약간의 만년한철로 나선을 만들어 놓아 금종조와 같은 외문기공을 익히고 있다 해도 쉽게 막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당가는 독이 전부가 아니었다.

‘당가가 왜 무서운지 가르쳐주마!’

그 암기를 뒤쫓는 당만호가 손에 가시가 촘촘히 박힌 장갑을 끼더니 전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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