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왜 때린 데 또 때리고 그래요!”
“아, 그것 말이냐? 음… 그러니까… 맞다! 네 녀석의 그 요상한 치유가 가슴에서 먼저 일어나서 혹시나 지금도 그럴까 하고 그런 것이다. 맞아, 그런 이유였어.”
이유 따위는 때리면서 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럴 거면 한두 대 때리면 그만이지. 설마 때리다 잊어버린 거예요?”
“무슨! 천만의 말씀을. 다 이 몸이 계획한 그대로다.”
“쳇!”
증거가 없기에 반박을 할 수도 없었다.
“어디 보자.”
서둘러 왕일에게 다가간 마호성이 그의 가슴을 살펴보았다.
“으음…….”
뜨거웠지만 마호성이 처음 느꼈을 때에 비하면 용암과 모닥불 수준의 차이였다.
그때, 멀리서 동이 터오고 세상에 가득한 음기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자 그 모닥불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역시.”
“뭐라도 알아내셨어요?”
“그래. 네 녀석의 이해할 수 없는 신체는 아마도 시기와 관계된 것 같다. 그리고 음기와도.”
“음기요?”
“그래. 일단 그것은 다시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시기가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떻게 확인을 하실 건데요?”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왕일이 물었다.
“나중에 음공을 익힌 놈을 하나 데리고 오마. 내가 아는 놈들 중에 그런 놈이 있거든. 마침 여기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으니, 애들에게 말하면 늦어도 오 일 후에는 올 것이다.”
“어르신은 음공을 못하세요?”
“할 수는 있지만,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기에 불순한 기운을 쓸 수밖에 없단다. 자칫 네 몸에 무리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나저나 어찌해서 음기에 반응하는 것일까?”
아무리 살펴봐도 왕일의 몸에서 과도한 양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분명 그 정도의 반응을 일으키려면 양기가 있어야 할 것인데…….”
문제는 또 있었다.
아무리 해가 떴다고 하여도 그렇게 순식간에 반응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저기…….”
“말해봐라.”
“혹시 독심 어르신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독심? 황가 말이냐?”
“네.”
“네가 그 녀석은 어찌 아느냐?”
“예전에 제가 다쳤을 때 고쳐주신 적이 있으셨거든요.”
“그래?”
말을 하면서 마호성은 무언가 자신이 놓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다. 뭔가를 빼먹은 것 같은데…….’
하늘 한번 보고 왕일을 보고, 하늘을 보고 왕일을 보고.
서너 번을 그렇게 한 마호성이 자신의 이마를 쳤다.
“이런!”
이제야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너 혹시 어린 시절에도 이랬었냐?”
“아니요?”
“그럼?”
“음… 그러니까… 변한 것은 독심 어르신의 치료를 받고 난 다음이에요.”
“그때 뭐 특별하게 먹은 것 있냐?”
“어르신이 주셔서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럼 그놈도 찾아봐야겠군. 그나저나 그놈이 너를 치료하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때 생긴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너, 여기 와서 뭔가 이상한 것 주워 먹은 적 없냐?”
“네.”
그럼 ‘뭘까?’를 연발하면서 고민하는 마호성에게 왕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독심 어르신을 찾으시면 제가 꼭 만나 뵙고 싶다고 말씀해주실래요?”
“네가? 무슨 볼일 있냐?”
“그냥… 고맙다는 인사도 드리고요. 또 제 몸에 대해서도 여쭈어 보고 싶어서요.”
“알았다. 그나저나 이놈이 이번에는 어디 처박혀 있으려나?”
꼬르륵.
어느새 아침을 먹을 시간이었다.
“수… 어?”
수련을 계속할 것이냐고 물어보려던 왕일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도 자신의 앞에 서 있던 마호성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왕일의 뱃속에서 소리가 난 직후였다.
***
점심을 먹은 마호성과 수련을 계속한 왕일이 퉁퉁 부은 몸으로 해질녘에 돌아오자 이불 밑에 한철진이 보낸 전서가 놓여 있었다.
[신시 초에 웅혼각으로 가거라. 그곳에서 홍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비밀리에 전서를 받자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이야?”
당경의 물음에 왕일이 화들짝 놀라며 전서를 감췄다.
“응?”
“왜 그렇게 얼굴이 굳었냐고.”
“내가 뭘?”
“그건 뭐야?”
“응?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나저나 어디 갔었어?”
“계속 여기 있었는데?”
‘언제 갖다놓은 거지?’
당경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게으름을 피웠더니 잠만 늘었나봐. 아까도 깜빡 잠이 들었다니까.”
“그래? 그럼 너도 나랑 같이 수련할래?”
“됐네, 이 사람아. 난 너처럼 두들겨 맞고 살 자신이 없어.”
당경은 집에서 돌아온 이후로 수련도 하지 않고, 그저 숙소에서 뒹굴 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또 그 책이야?”
왕일이 자리에 누우며 ‘불사지존’이라 적힌 책을 집어 들자 당경이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별로 배울 것도 없다며?”
“달리 할 일도 없잖아.”
아픈 몸으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내일을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왕일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걸 꼭 봐야할까?’
책에 적혀 있는 내공심법을 마호성에게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 잡기 딱 좋은 거지.]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더 가관이었다.
[이걸 익히느라고 뒈진 놈들은 정말 멍청하거나 사정이 그만큼 절박했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게다. 척 보기에도 뭔가 이상하지 않냐? 모르겠다고? 잘 봐라. 여기 보면 백회에서 받아들인 기를 독맥으로 보내라고 하잖아? 이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뭐가 이상하냐고?
잘 들어봐라. 보통 입으로 기를 받아들이는 내공심법에서는 임맥을 먼저 거친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독창적인 심법을 통해 몸을 순환시키다가 독맥을 통해 백회를 돌아 다시 임맥으로 돌아오는 거지. 한마디로 이놈의 내공심법은 처음부터 순리를 역행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강물은 바다로 가는데 바다에서 강으로 헤엄치는 짓이라고 할 수 있지.
어쨌든 불사지존은 익히지 않았냐고?
그러니 미쳤지. 이따위를 익혔으니 미치지 않고 배기겠냐? 너도 읽어봐서 알겠지만, 불사지존이라는 놈은 평생 남을 의심하면서 살았고, 자신의 친구, 가족, 친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인 놈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예전에 내가 읽은 곳에는 이 무공을 익히게 하려고 각파의 후예들을 납치까지 했다더구나.
어떻게 됐냐고?
모조리 뒈졌지. 그 꼴을 보고도 자신의 절기를 수천 부나 필사하여 돌렸다니 미쳐도 제대로 미친놈이지.
개방에서 알아본 바로는 그의 폐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천오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비급으로 인해 미쳐서 지랄한 놈들이 간간이 나왔거든. 그럼에도 아직 이따위 책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정신 못 차린 놈들이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 것을 너에게 줬냐고?
넌 익힐 수 없잖냐? 문득 생각이 나서 뒤지기는 하였다만 찾을 줄은 몰랐거든. 근데 막상 찾고 나니 들인 노력이 가상해서 태워버릴 수가 있어야지.]
한마디로 버리려다가 자기가 고생한 것이 아까워 가지고 왔다는 말이었다.
그걸 왕일에게 준 것이고.
“쳇! 그러면서 함부로 굴린다고 면박을 주다니. 아고고고.”
말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날아오는 주먹과 발에 감정이 실려 있다는 것을 맞는 그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언제는 몸 안에 쌓이는 충격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더니, 이제는 아예 작심하고 패는구나.”
말과 행동이 마른 마호성이었다.
아니, 어쩌면 왕일을 패는 재미에 했던 말을 벌써 까맣게 잊고 있는지도 몰랐다.
“휴우~”
내심 다른 생각을 해서일까?
처음 전서를 본 그때보다는 많이 진정되었다.
아니, 평상시의 그와 다를 것이 없었다.
순식간에 평정을 찾은 것이다.
‘음… 차라리 이게 더 낫지 않을까?’
한철진이 준 흰 봉지를 바라보던 왕일이 침상 깊숙이 숨겨두었던 마비단을 꺼냈다.
‘이걸 쓰자.’
어차피 기절시키려면 확실히 효능이 입증된 것을 쓰자고 왕일이 결심하는 그 시각, 그것을 모르는 한철진은 부에서 나온 사자와 만나고 있었다.
***
-마호성은?
-볼 일이 있다면서 무관을 나섰습니다. 확인 결과 산서를 벗어나 섬서로 향하는 중입니다. 그 때문에 일을 서둘렀습니다. 빨리 온다고 하여도 오늘 안에는 힘들 것입니다.
-확실하겠지?
-예. 그리고 마침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적요신이 오일 전에 나타났습니다. 이미 언질을 주었기 때문에 오늘 그 아이가 행동을 개시할 것입니다.
-잊지 마라. 최대한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웅혼각은 관도들이 있는 숙소와 따로 떨어져 있고, 또한 무관 내의 인물들이 함부로 접근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오늘 그곳을 지키는 이들을 모두 제 심복들로 바꾸어 놓았으니, 제가 명령하지 전까지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좋다.
-남은 것은 폐관에 든 철사명인데, 그놈은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놈이라 제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알았다. 적요신과 홍동곽은 우리가 처리할 것인즉, 너는 빠른 시일 내에 패진무관을 손에 넣어야 한다.
-염려 마십시오. 그 둘이 사라진다면 무관에서 저를 거역할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계집은?
-어차피 약에 중독되어 살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것을 좀 앞당기면 될 일입니다.
-이 기회에 꼬마 놈을 제거해버리면 개방도 손을 떼겠지.
-미시 말에 오시면 됩니다.
-그것은 걱정 말고 너는 네가 맡은 일만 충실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크흐흐흐. 드디어 적미정 그년이 내 손에 들어오는구나.’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떠나는 한철진을 바라보던 사자가 손을 들자, 바람소리도 없이 다섯 명의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염마전이 무관을 포위할 것입니다.
-알았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적요신과 홍동곽만 죽이고 빠진다.
-예.
수하들이 사라진 후에도 복면인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녀석의 계획대로라면 그 왕일이라는 아이는 죽은 목숨이다. 우리에 의해서든, 아니면 다른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패진무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복면인은 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패진무관을 이용해 산서성을 장악하면 우리의 계획이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사천, 섬서, 산서, 하남, 안휘를 잇는 거대한 그림이 곧 그려진다. 십 년! 십 년 후에는 누구도 우리를 거역하지 못하리라!]
‘너무 오래 기다렸다. 그리고 명실상부하게 무림의 강자로 자리 잡은 지금, 나래를 펼 시간이 되었다. 십절마군! 우리의 것을 부당하게 가로챈 대가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지하에서나마 네 후인이 찢겨 죽는 것을 보며 괴로워 해라!’
십절마군은 마교의 전대교주였다.
이 복면인은 누구이기에 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가 속한 ‘부’는 과연 어떤 단체인가?
***
“어디 가?”
“응? 그냥 산책.”
“저녁시간도 다 됐는데… 나도 같이 갈까?”
“혼자 생각할 것이 좀 있어.”
“알았어. 갔다 와.”
당경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를 나선 왕일의 가슴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후~우, 후~우.”
두세 번 심호흡을 하자 조금 진정되었다.
‘역시 이상해.’
서서히 변하는 것이라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감정의 변화가 빠른 것 같아.’
그동안은 특별하게 감정의 동요를 느낄 일이 없었기에 자신의 변화를 알지 못했는데, 근래에 들어서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감정의 변화가 적은 것이 아니라 무감정해지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슬프거나 기쁘거나 노여움을 느끼더라도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진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의식적으로 없애려하면 그것은 더욱 빨리 찾아왔다.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지만…….’
아니 오히려 편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벌써 다 왔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웅혼각의 입구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