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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23화 (23/138)

23화

“그런 생각을 한 놈들도 여럿 있었지. 굳이 몸속에 내공을 쌓을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려 있는 기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그놈들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으냐?”

묻는 투나 불쌍한 듯이 바라보는 얼굴을 보건데 결코 좋은 결말은 아니리라.

“어떻게 되었는데요?”

“늙어 죽었다.”

“네?”

‘좋은 것 아닌가?’

세상에 태어나 천수를 누리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뜬 구름 잡다가 허송세월만 보낸 채 아무런 결과도 못보고 죽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공수련을 했다면 최소한 이름이라도 날렸을 것인데 말이다. 아참, 늙어죽지 않은 놈도 있었구나. 화병으로 죽은 놈도 있었지.”

“…….”

“그런 생각을 한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룬 이들은 없었지. 생각해 보거라. 세상의 기운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고, 그런 방법이 있다면 굳이 힘들게 무공을 수련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해보고 안 되니까 포기한 것이고, 무공이 발전한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왕일은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 같았다.

“그럼 이 책은 배울 것이 없네요?”

“왜 없어? 그 뒤에 적혀 있는 불사지존의 성장과정을 보지 않았느냐?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갈고 닦아 절대자의 위치에 오른 것을 보면서 뭔가 느끼는 것 없냐? 그리고 그런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제대로 처신을 못해서 마지막에 험한 꼴을 당한 것을 읽으며 느낀 것이 없냐는 말이다!”

열변을 토하는 마호성.

“그럼, 겨우 그런 것 보라고 이 책을 주신 겁니까?”

“겨우 라니! 쯧쯧. 우매한지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그런 심오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아무튼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예? 중요하지 않다면서 왜 그렇게 열변을 토하신 건데요?”

“응? 그냥. 멋있어 보이지 않았냐?”

혼자 만족하는 마호성을 바라보던 왕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왜?”

“아니요. 그저… 음…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응?”

“어르신은 좋겠어요.”

“무슨 말이냐?”

왕일은 아무 말 않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마호성은 그런 왕일의 눈길에 왠지 모르게 슬슬 열이 받고 있었다.

왕일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단순해서 좋겠어요. 단순해서 좋겠어요. 단순해서 좋겠어요.]

퍽!

“왜 때려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나보다.

“응? 이런!”

필사적으로 궁리를 한 결과 빠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무인이란 항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방심을 하고 있다가는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니 말이다. 험, 험.”

지금은 뒤통수가 아니라 면상에 정통으로 맞았다.

퉷!

왕일이 침을 뱉자 피가 섞인 침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모습을 본 마호성이 조금 미안해지려 했다가 씩씩거리고 있는 왕일을 보자 그 마음이 사라졌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똑같은 결과가 있었을 것인데, 뭘 저리 열 받은 거야?’

“자, 그럼 아까 하던 말을 마무리 지어야지? 물론 그놈들이 그렇게 허공에 뜬 구름 잡는 식으로 일생을 마쳤지만,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 남들이다 못한다고 해서 너까지 못하리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시도해본다고 누가 뭐라 그러지도 않을 것이고, 나는 네가 꼭 그 일을 이룰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정말이요?”

“물론이지.”

대답을 하는 마호성은 아까 맞은 것을 잊은 것 같은 왕일의 태도에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놈. 흐흐흐흐.’

“지금 제가 단순한 놈이라고 생각하셨죠?”

너무도 예리한 왕일의 질문에 순간 마호성이 당황했지만, 그는 노련한 강호노고수였다.

“응? 아, 아니다. 네가 어찌 단순하단 말이냐? 총명은 과하다 못해 넘치고, 무공을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나고, 동체시력과 자체치유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말이다. 너처럼 복잡한 놈도 없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지만, 그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바로 마호성이 주먹을 날려 왔던 것이다.

“이크!”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피한 왕일.

“이 녀석아, 피하면 어떻게 해!”

퍽!

“젠장!”

복부에 한 대 맞으니 왕일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요.”

“왜?”

“나는 공격하면 안 돼요?”

“해도 된다.”

마호성이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단 말이지요?”

왕일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마음껏 공격을 하려무나.”

“좋아요. 갑니다!”

“와라!”

그날 왕일은 점심을 굶었다.

‘제길! 내일 두고 보자!’

찢어지고, 부어오른 얼굴과 시퍼렇다 못해 완전히 시커멓게 멍든 몸으로 복수를 다짐하는 왕일의 눈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근데 내가 자는 모습은 왜 본다는 거지?’

수련을 끝낼 때, 마호성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자신이 잘 때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다.

***

‘흠… 자, 그럼 구경을 해볼까?’

마호성은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당경과 왕일밖에 없는 숙소에 불청객이 찾아왔으니 바로 그였다.

좀 더 잘 보기 위해서 왕일이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입고 있던 옷도 순식간에 벗겨버렸다.

어찌나 옷을 잘 벗기는지, 마호성을 모르는 이가 봤다면 그의 직업을 의심했으리라.

아니, 아는 사람도 한 번쯤 의심을 했을지도…….

‘응?’

마호성이 고개를 갸웃했는데, 벗겨낸 왕일의 몸은 심한 멍투성이였지만 어떤 것은 벌써 아물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가장 먼저 아물고 있군.’

가슴에 자리한 멍 자국은 이미 그 형태가 사라지는 중이었고, 마치 물결이 퍼지는 것처럼 원을 그리며 상처가 낫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을 깰 것이 분명했다.

‘어디보자. 사라지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군.’

의문이었다.

‘분명 이 상처를 얻은 것은 어제 오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시각까지 아무 일이 없다가 낫고 있는 것일까?’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시기였다.

‘가만… 지금이 축시 말쯤 되었나? 그럼 혹시 음기로?’

자시 정각에 음기가 충만해 졌다가 인시 말에 약해져 떠오르는 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겨울에는 음기가 머무는 시간이 그만큼 길었다.

손을 살며시 왕일의 명치 부근에 있는 거궐혈에 가져다대었는데, 내공을 살짝 흘려 넣어서 현재 왕일의 상태를 알아보고자 함이었다.

‘왜 이리 뜨거워?’

왕일의 몸은 불덩이였다.

‘허~’

마호성이 흘려보낸 기는 순식간에 튕겨 나왔다.

그저 조사 좀 해볼 요량으로 조금 흘린 것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것들이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마호성은 자리에 좌정하고 앉아 주변 기의 흐름을 알아보려 했다.

‘뭐야?’

없었다.

그는 내심 주변의 기들이 요동칠 것이라 생각하였고, 그것에 혹시나 자신의 내공이 휘말릴까봐 걱정하고 있었건만 정작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기사도 이런 기사가 없었다.

‘그럼 저놈의 몸속에서 발광하고 있는 것들은 어디서 온 것들이야?’

숨기고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얼마나 꼼꼼하게 살펴봤던가?

‘젠장,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네. 무슨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더 이상 살피는 것을 포기하려는 그때, 관물함에 놓여 있는 책이 보였다.

[불사지존]

‘이 녀석이! 내가 이것을 얼마나 어렵게 구했는데, 함부로 굴리다니!’

문득 그곳에 적혀 있는 내용이 떠올랐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불사지존은 내공을 익혔다고 분명히 적혀 있었고, 그 방법까지도 기술되어 있었다.

진정으로 무림의 일에 무지한 인간이라면 혹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무림의 맛을 본 사람이라면 코웃음도 치지 않을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도 모르니까 확인해 볼까?’

왕일의 백회를 살폈지만, 굳게 닫혀 있었다.

‘역시 아니구나. 그나저나 이 현상은 언제 끝나려나?’

결국 마호성이 왕일의 머리맡에 쭈그려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왕일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자는 중이었다.

“흐흐흐흐. 죽어!”

잠꼬대에 실려 있는 살기를 느낀 마호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꿈을 꾸는 거야? 웃으면서 살기라니?’

***

퍽!

“악! 무슨 짓이냐, 이놈아!”

잠에서 깬 왕일이 눈을 뜨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호성의 얼굴을 머리로 들이받은 일이었다.

“아고고고! 진짜네?”

아픈 것인지 왕일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호성을 바라보았다.

“어?”

정통으로 맞았는지 마호성의 코에서 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놈!”

홱 고개를 돌린 마호성이 왕일을 째려봤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쳐다보시래요?”

“이 녀석아, 그렇다고 다짜고짜 들이받아?”

“전 꿈인 줄 알았다고요. 안 그래도 한참 신나게 패고 있었는데…….”

“뭐?”

“아, 아니요.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내가 어제 지켜보겠다고 했지 않느냐.”

그때 시끄러운 소리에 당경이 몸을 일으켰다.

“우웅… 뭐… 뭐야?”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가 살벌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더니 이내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런 분위기의 두 사람과는 엮이기 싫은 것이다.

“나가서 얘기하자.”

“네. 응?”

그제야 자신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안 왕일이 묘한 눈으로 마호성을 바라봤다.

“눈깔 안 치워?”

역시나 눈길에 담겨있는 뜻을 귀신같이 알아차린 마호성이었다.

“어르신도 모르세요?”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작용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말이다. 내가 온갖 잡서들을 다 읽어보기는 했지만, 너 같은 놈이 있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래요?”

왕일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넌 궁금하지도 않으냐?”

“어차피 어르신도 모르는데 저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게다가 나쁜 일도 아니잖아요.”

“넌 좋겠다.”

“네?”

“아니다. 그나저나 어차피 나왔으니 좀 일찍 시작할까?”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본 왕일이 할 만한지 자세를 잡았다.

“좋아요.”

“춥지 않으냐?”

“별로요. 오히려 조금 덥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래? 그럼 웃옷을 벗어라.”

“네?”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

단추 하나 풀고 마호성을 바라보고, 하나 풀고 마호성을 바라보고…….

“그따위로 쳐다볼래?”

“흑심이 있는 것…….”

“닥쳐!”

왕일이 옷을 벗은 것과 동시에 마호성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윽! 억! 쿠엑!

연속해서 들리는 왕일의 비명.

“흠, 이것도 새로운 맛이 있는 걸?”

첫 일격은 왕일의 가슴에 명중했다.

두 번째로 날아간 발도 가슴에, 세 번째로 날아간 주먹도 가슴에, 그리고 네 번째로 휘둘러진 팔꿈치도 가슴에 적중했다.

때린 데 또 때리는 취미가 없던 마호성이 지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만요!”

몇 번을 맞았던가? 참을 수 없게 된 왕일이 훌쩍 뒤로 물러나며 마호성을 제지했다.

퍽!

“캑!”

붕 날아서 옆차기로 왕일의 가슴을 내지른 마호성이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멋들어지게 착지했다.

“이런, 좀 빨리 말하지 그랬냐?”

미안한 말투지만 얼굴에 흐르는 미소는 전혀 미안해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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