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상들의 무림 생존기-21화 (21/138)

21화

장수련을 만나고 온 왕일은 당경이 뭐라고 말을 해도 답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해도 그는 아직 열세 살의 아이일 뿐이었다.

저녁마저 굶고는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잡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마 어르신에게 말을 해볼까?’

마호성은 친절하게 대해준 다음부터 거지할아버지에서 어르신으로 신분이 격상한 상태였다.

‘아니야. 그래서 될 일 같았으면 한 교두님이 먼저 말씀을 하셨겠지. 그렇다면 마 어르신도 홍가 편?’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르겠다. 차라리 황 어르신께 말씀을 드려볼까?’

황만복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불가능했다.

그때, 황만복도 얼마 안 있어 그곳을 떠난다고 했었으니까.

‘그래! 마 어르신에게 황 어르신을 찾아달라고 하는 거야. 개방이라는 곳은 많은 사람이 있고, 정보를 얻기도 쉽다고 했잖아.’

거지들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였다가 장사우와 다른 아이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놀랐었다.

‘왜 아직도 안 오시지?’

뜬눈으로 밤을 샌 왕일은 자신들을 깨우러 오지 않는 마호성을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했던가?

기다리니 모습을 보이지 않는 마호성이었다.

‘어디 가셨지?’

왕일은 입 안이 터진 당경을 위해 죽을 타다 주고는 마호성을 찾아 나섰다.

‘여기도 안 계시네?’

늘 자리하고 있던 양지바른 곳에는 거적도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 내린 비로 축축하기는 하였지만, 얼지는 않았다.

더구나 지금은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기에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혹시?”

연무장으로 향하자 그곳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는 마호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르신.”

“왔냐? 이거 한번 봐봐라.”

“불사지존?”

마호성이 건넨 책을 받은 왕일이 제목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이 근처 고서점이란 고서점은 다 뒤져서 찾아낸 책이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마침 이것이 있더구나.”

“무슨 책인데요?”

“말 그대로 불사지존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익혔던 심법이 적혀 있다는 것이고.”

불사지존은 자신의 심법을 몇 천 부를 필사하여 무림에 뿌렸다.

어차피 자신은 제자도 없었고, 얻으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갔기에 아낌없이 뿌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얻은 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익혔지만, 돌아온 것은 주화입마뿐이었다.

혹자는 정, 사파가 연합하여 불사지존을 친 것은 그들의 친족이나 수하가 그것을 익히다 죽거나 병신이 되어서였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아무튼 그 비급 때문에 무림이 휘청거릴 정도의 충격이 온 것은 사실이었다.

돈이 없고, 재능이 모자라 거대 문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들과 힘이 없어 복수하지 못했던 이들, 그리고 더 높은 곳은 바라보던 이들이 그 비급을 익혔고 주화입마에 빠졌다.

그런 이들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그 수가 물경 수만에 달했다고 했다.

“하아~”

저간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왕일이었지만, 한숨이 나왔다.

심법이 있어봤자 내공을 익히지 못하는 자신이었기에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녀석, 한숨은. 내 얘기를 듣고 나면 나에게 큰 절을 할 걸?”

“왜요?”

“바로 이 불사지존이란 인물이 너와 비슷한 경우였기 때문이지.”

“예?”

갑자기 왕일의 눈에 빛이 돌았다.

“천형인지 아니면 사고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그 인물도 혈도가 기형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만 가진다면 비슷한 이들이 수백은 되겠지만, 한 가지를 더하면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지.”

“어떤 것인데요?”

“바로 자체치유능력이다.”

“자체치유능력이요?”

“그래. 그 불사지존이라는 인물은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어도 다음날이면 멀쩡하게 돌아다녔다고 하더구나. 바로 너처럼.”

비약이 심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 늘씬하게 얻어맞고도 아침밥을 먹을 때쯤이면 이미 팔팔해서 돌아다녔던 왕일이었다.

거기다 기형인 혈도를 더하자 불사지존이 생각났고, 그것이 마호성으로 하여금 고서점을 뒤지게 만들었다.

“일단 그것을 읽어는 보되 익히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을 익히겠다고 덤볐다가 뒈진 놈들만 수천이라니 말이다.”

“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다면 뭣 하러 이것을 가지고 왔다는 말인가?

“불사지존은 천오백여 년 전에 실존했던 인물이고, 그 또한 어려운 역경 속에서 지존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툴렀고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신 이외의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인물이었지. 결국 그는 세인들의 질시와 분노에 의해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내가 너에게 이 책을 주는 것은 그것을 읽고 경계하라는 의미란다.”

이 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었다.

철사명이 그를 가르치면서 마지막에 항상 강조했던 것이었으니까.

[너의 지금 상태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능력이지만 네가 몸담은 곳이 무림이기에 장애가 될 뿐이다. 그러니 내공을 익히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다른 이를 부러워하지 마라. 만일 네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필시 질시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네 속에 미움이 싹트게 되고 그것은 너를 고립되게 만들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네 속에서 약점을 찾지 말고 강점을 찾도록 노력하도록 해라.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여라.]

하는 말은 달랐지만,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뜻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의 만족과 타인을 질시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라.]

이것이 요점이었다.

“그 책에는 불사지존이 처음 책을 만들면서 쓴 이야기와 내공심법, 그리고 그 당시의 인물이 서술한 불사지존의 성장과정이 적혀 있는데, 천오백여 년이나 지났으니 그게 정확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책도 누군가 새로 필사한 것 같고 말이다.”

사실 정확하다고 해도 왕일로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토납법을 운기하는 혈도가 멀쩡했기에 기를 느끼고 그 혈도를 이용해 기를 돌릴 수는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바퀴 돈 기는 내공으로 화하지 못하고 그냥 빠져나가버렸다.

쌓아둘 단전이 없기에 붙잡아둘 수도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우면 처음에는 찬 것 같다가도 나중에는 텅 비어버리는 이치와 같았다.

빠져나가는 기를 느끼며 얼마나 좌절했었던가.

그날의 기억이 새삼 떠오르자 불사지존이 자신과 비슷했다는 말에 들떴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었다.

“익히지는 못한다고 하여도 네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을 거다. 그리고 세상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내공을 수련하는 이들이 적지 않단다. 네가 기회가 된다면 그런 것들을 찾아서 읽어 보도록 해라. 나도 틈이 나는 대로 찾아볼 것인즉, 찾게 된다면 너에게 갖다 주마.”

마호성은 왕일에게서 뛰어난 무도가의 자질을 엿보았지만 그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돕고 싶어도 그로서는 이 정도밖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마호성이 이 책을 주면서 왕일이 익히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왕일이 익히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 무공도 다른 여타의 무공과 같이 최소한의 혈도가 뚫려 있어야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왕일을 보면서 마호성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했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

“자, 그럼 다시 해보자꾸나.”

마호성의 말에 책을 거적 위에 놓은 왕일이 자세를 잡았다.

“어제 내가 너에게 가한 힘은 내가 가진 것의 일 푼에 달하는 힘이었다.”

그 말에 멍한 얼굴이 된 왕일.

사실 왕일은 마호성이 최소한 삼 할은 사용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만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는데.

일 푼?

그것을 막으면서도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진탕되는 내부를 진정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오죽하면 죽을 지도 모른단 생각까지 했을까.

그런데 일 푼?

“왜 그러느냐?”

“예? 아, 아닙니다.”

실망감 가득한 얼굴의 왕일을 보는 마호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녀석. 실망한 모양이구나. 그러나 벌써부터 그런 얼굴을 할 필요는 없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혈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얼마나 배웠다고 실망을 한단 말이냐? 실망보다는 길을 발견했다는 희망을 품어도 부족한 판국에.”

“예!”

‘철 교두님의 말씀을 잊다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좌절이나 절망이 아니었다.

가진 것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었다. 그것들을 키워나가야 했다.

미미한 결과였지만, 그것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힘을 줄 것이다. 혹시라도 이상이 있다면 바로 얘기하도록 해라.”

“네.”

왕일은 굳은 얼굴로 마호성을 바라봤다.

‘내보낸다. 들어온 곳으로 다시 나간다. 내 안에 머물 곳은 없다.’

마호성의 첫 공격은 튕겨낼 수 있었으나, 두 번째의 공격은 반절 정도밖에 내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옆구리를 찔러온 공격은 왕일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커흑!”

비릿한 신물이 올라왔다.

“이런!”

황급히 다가온 마호성이 자신의 기를 흡수하려 했는데, 이미 남아 있는 기는 없었다.

그새 다 빠져나간 것이다.

‘이것이 화인가 복인가?’

일반인이 무림인의 내공으로 공격당하면 십 중 팔구는 오장육부가 상처를 입었다.

외부의 찢어지는 상처보다도 훨씬 위험한 부상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일의 경우는 내공이 뒤흔들고 갔음에도 그다지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았다.

약간 진탕된 정도뿐이었다.

물론 가한 힘이 약한 것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힘든 것도 있었다.

‘이 녀석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였기에 내가중수법의 효능을 섞어서 공격하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보다는 더 심한 상처를 입어야 하건만…….’

왕일의 경우 몸의 외부에서 받는 타격은 순간적인 반사 신경과 모든 충격을 내부에서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거의 소용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내가중수법이었다.

“왕일아.”

“네.”

왕일은 언제 충격을 받았냐는 듯이 멀쩡해진 상태였다.

“수련 방법을 좀 바꾸어 보자.”

“어떻게요?”

“내공을 이용한 공격을 튕겨내는 연습보다 그냥 일반적인 공격을 튕겨내는 연습을 하자는 말이다.”

“그걸 어떻게 튕겨요?”

여태까지 때리면 맞고, 맞으면 흡수하는 방식을 고수하던 왕일이었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내공은 어떻게 튕겨냈냐?”

“그거야 저를 공격한 기운이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서 튕겨냈지요.”

“바로 그거다.”

마호성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네?”

“모든 공격에는 기운이 있는 법이다. 그것이 일반인의 주먹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하여도 가지고 있는 것이 기, 즉 내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너무도 미미하여 느끼지 못할 뿐이지. 하다못해 내공을 쌓을 수 없는 너조차도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저도요?”

“그래. 세상을 둘러싼 것이 기운이고, 그것을 매일 호흡하며 들이마시는 인간일진데 어찌 한줌의 내공도 없겠느냐? 다만 그것을 활용할 방법을 모르고, 또한 그 양이 적어 없다고 여길 뿐이지. 일례로, 내가 직접 목도한 사건을 얘기해주마. 어느 마을에서 객점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곳에 어린아이를 업은 한 여인이 있었다. 나는 다른 이들을 구하는 와중이라 그 여인에게 신경을 쓸 수 없었지. 마침 그때 대들보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 여인이 서 있던 그 자리로 말이다. 어찌 되었을 것 같으냐?”

“죽었나요?”

“그랬으면 너에게 얘기를 하겠느냐? 그 당시 그 여인은 놀라운 힘으로 떨어지는 대들보를 쳐냈다. 무공이라고는 익혀본 적이 없는 여인인데도 말이다.”

“와아!”

“그 뒤에 내가 여인을 안고 객점을 벗어났고, 덕분에 잠깐 살필 수 있었다. 여인의 몸에서는 한줌의 내공도 발견할 수 없었지. 그녀 자신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더구나. 스스로도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납득을 못하더란 말이다. 자, 이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기, 즉 내공이라는 말이다. 살아오면서 쌓아두었던 내공이 위기의 순간에 그녀를 구하고는 다시 숨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래. 너에게도 어딘가에 숨어 있는 내공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만일 그것을 찾아내고 그것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게 된다면 내공을 쌓을 수 있지 않겠느냐?”

마호성의 말을 들은 왕일이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위적으로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세상은 무림인들로 넘쳐났을 것이니까. 그만큼 힘든 여정이 될 것이란 말이다.”

“상관없어요!”

끈을 발견했다. 평생이 걸리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힘을 찾아내려면 그 힘에 익숙해지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여태 그가 해왔던 방법처럼 일단 죽도록 맞자는 얘기였다.

“어쩌면 네가 그것을 찾는 것보다 골병들어 죽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이전처럼 흡수하여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기를 느끼고 그것을 튕길 때까지 맞아야 하니.”

이 말에는 왕일이 조금 주춤했다.

전처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야 하니.

“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일단 가볍게 가마.”

퍽!

“꾸에에에엑!”

장사우의 주먹보다 느린 공격이었다.

당경의 주먹보다 약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경직된 상태에서 맞은 마호성의 주먹은 왕일을 순식간에 도살장의 돼지로 만들어버렸다.

“우웩!”

정통으로 맞았는지 신물까지 게워냈다.

“쯧쯧.”

제대로 맞아본 적이 없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했다.

“일단 맷집부터 키워야겠구나.”

“어… 어떻게요?”

마호성은 소매를 걷으며 대꾸했다.

“뭐 별거 있겠냐? 일단 신나게 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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