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어? 이상하다. 지금쯤이면 한창 작업을 하실 시간인데.”
당경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고, 한 이백여 장의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오래지 않아 거의 도착한 두 사람이었다.
“쉬고 계시나 보지.”
“아니야. 아버지는 한번 잡은 일을 손에서 놓는 법이 없으시거든. 특히나 오전에는 절대 쉬시지 않아.”
대장간과 붙어 있는 당경의 집을 겨우 이십여 장 남겨놨건만,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아프신 건 아니…….”
십여 장을 더 갔을까?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 대신에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진짜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예요!”
“매형, 다시 생각해 보시지요. 누님도 매형을 걱정해서 이러는 것이잖습니까. 종휘 형님의 성격을 아시면서도 생각을 돌리지 않겠다는 것입니까?”
“나는 약속한 이십 년의 기한을 모두 채웠다. 그 이후의 선택은 분명 나에게 맡긴다고 약조하였고. 설마 당가가 약조도 지키지 않는 무뢰배 집단이라고 내게 말하는 것이냐?”
“저도 찾았습니다. 종휘형님이 아직까지 찾지 못했겠습니까? 기회를 드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형이 스스로 다시 돌아오실 기회를 말입니다.”
“난 돌아갈 생각이 없다.”
“흥! 잘났네요, 잘났어요. 당신 마음대로 해요!”
“누님!”
쾅!
대장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녹색 경장을 입은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걸어 나오자, 그녀의 옷소매를 잡으며 이십대 중반의 청년이 만류하고 있었다.
여인은 통통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을 지녔고 청년은 약간 마른 몸에 큰 눈을 지녔는데, 둘의 닮은 점이라면 얇은 입술뿐이었다.
“당신! 이제 진짜 끝인 줄 알아요! 남남이라고요!”
“내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은 당신이요.”
당정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아직 모습을 보이진 않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여인을 만류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왜? 왜 당가를 나가려고 하는데요? 그리고 기껏 호기롭게 나가더니 이따위 작은 대장간이나 하고 있어요? 그것도 패진무관 따위에 도나 납품하면서? 난 죽어도 이따위로는 못살아요!”
“나도 더 이상 당가의 노예로는 살 수 없소.”
“매형,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예라니요?”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누님…….”
대장간의 문턱에 발을 걸친 청년은 안과 밖을 바라보며 당정과 여인을 달래려 노력하고 있었다.
“관둬! 저런 벽창호와 이십 년을 사느라 나도 속이 탈 만큼 탔어. 더 이상은 나도 몰라!”
그때, 대장간에 대고 큰 소리를 지르며 청년의 손을 뿌리친 여인과 당경의 시선이 부딪혔다.
‘혹시?’
여인을 바라보는 당경의 가슴은 두근거렸는데, 지금의 대화로 봐서 여인이 자신의 엄마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뭘 봐!”
자신의 길을 막아선 당경을 바라보던 여인이 찢어진 눈을 더욱 날카롭게 하면서 손을 올렸다.
“당화미!”
열린 문으로 그 광경을 본 당정이 소리를 질렀다.
약간 어두운 실내에서 풍겨오는 기백.
그것은 무공을 익힌 사람이 내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 분야에서 절정을 이룬 달인이 내뿜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기백이 전해진 것일까?
올라갔던 당화미가 순순히 손을 내렸다.
“흥! 혹시 이 아이인가요? 심하게 다친 것을 당신이 주웠다던…….”
“닥쳐!”
“왜요! 왜 말도 못하는데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성우와 현아가 뭐가 못해서 이따위 비루먹은 놈을 아들이랍시고 감싸고 있는데요! 왜! 왜! 왜!”
입에 거품을 물고 눈에서는 독기를 뿌리며 발광하는 당화미를 보던 당정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유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소?”
나직한 당정의 말이 가져온 여파는 무척이나 컸다.
발광을 하던 당화미를 조용히 시켰던 것이다.
“뭐, 뭐라구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꼭 내 입으로 얘기를 해야겠소?”
“다, 당신… 설마……?”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화미가 신형을 날려 멀었고, 당정과 당화미가 간 곳을 번갈아 쳐다보던 청년, 당종성도 결국은 한숨을 내쉬며 당화미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매형,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종휘 형님은 결코 쉽게 매형을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문도 마찬가지고요.
처음 당정이 당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을 때, 당종성은 겨우 다섯 살이었다.
당정이 작업하는 곳에 놀러온 어린 당종성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었고, 커서는 검과 함께 암기들도 만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당정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
당종성은 당정이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경아.”
당정이 큰 충격을 받은 듯 굳은 얼굴로 서 있는 당경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당경이 흠칫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내 말을 들어 보거라.”
“그 아줌마의 말이 무슨 뜻이지요?”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리라.
충분히 알아들을 만큼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들이었으니.
“경아, 누가 뭐래도 넌 내 아들이다.”
당정이 내뻗던 손을 거두고 침중한 어조로 말을 했다.
“무슨 뜻이냐고요!”
뒷걸음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는 당경을 바라보는 당정의 얼굴은 어두웠다.
“겨, 경아!”
후다닥 도망치듯 달려가는 당경을 부르다 자신도 같이 달려가는 왕일.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던 당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여기 있었나?”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마호성 때문에 흠칫 놀란 당정이 나타난 인물을 확인하고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르신이셨군요.”
“갑자기 당가를 뛰쳐나가더니만. 그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겐가?”
“보시다시피 그냥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적가 놈을 알고 있었나?”
“예전에 부탁을 들어준 적이 있었지요.”
패진무관 같은 무관에 납품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돈벌이가 되었다.
거의 주기적으로 날을 세우거나 새로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물건을 대는 것은 경쟁이 치열했는데, 어디서 흘러온 지도 모르는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신강현에서 가장 큰 문파인 패진무관에 도를 납품하는 일을 맡았으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적요신과 연이 있을 것이란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당정은 신강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랬구먼.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당가를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고. 당분간만이라도 패진무관에 들어가서 지내는 것은 어떤가?”
“경이만으로도 이미 많은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울타리에 갇히고 싶지 않기도 하구요.”
“그런가?”
저간의 사정이야 짐작으로밖에 알 수 없지만, 굳게 다문 당정의 얼굴을 바라보던 마호성은 그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을 풀어 놓겠네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걸세.”
“각오한 일입니다.”
“그래서 경이를 무관에서 생활하게 한 것인가?”
“…….”
“성을 바꾼 것도 아니고, 역용을 하지도 않은 것을 보면 피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모양이군.”
“그렇게 한다고 하여도 당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낼 것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하긴. 그들이 요청한다면 들어주지 않을 정보 상인은 없겠지. 물론 우리 개방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무림에서 가장 큰 세력은 소림과 무당이었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당가, 남궁세가, 제갈세가 그리고 종남파였고, 그중에서 종남파는 십여 년 전, 종남신검이 화산일검을 꺾으며 새롭게 등장한 곳이었다.
그 뒤로 많은 비무대회를 치루면서 그들 네 문파의 문도들이 두각을 나타내었고, 앞으로 십 년만 더 지난다면 소림과 무당까지 넘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실정이었으니, 이들 네 문파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알았네. 그럼 이만.”
바람소리와 함께 마호성이 사라졌고, 남겨진 당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땅! 땅! 땅!
평소의 청아한 음색이 아니라 슬픔이 묻어나는 쇳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내 심신을 맑게 해주는 소리로 변했는데, 장인답게 쇠를 만지면서 평정을 되찾았던 것이다.
***
왕일과 당경이 당정의 집으로 향하던 그 시각, 한철진은 부에서 나온 인물을 만나고 있었는데, 이번엔 예의 그 폐가가 아니라 동쪽에 위치한 버려진 사당이었다.
-미행은?
-없었습니다.
‘부’라 불리는 곳과 한철진의 만남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그 주도권을 쥔 것은 ‘부’였다.
처음 시작도 ‘부’에서 한철진의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욕망을 읽고, 그것을 미끼로 끌어들인 것이었으니까.
그 다음에 한철진에게 준 것은 약간의 선물이었다.
장수련을 찾아준 것이나, 하녀를 준 것도 그들 ‘부’였다.
그리고 한철진을 가볍게 제압하는 무력을 선보이며 나중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유혹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단순한 욕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적미정을 원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기에 한철진은 조급했다.
이대로 가다가 홍동곽에게 그녀를 빼앗길까 두려웠던 것이다.
-조만간 기회가 올 것이다.
-아직 그들을 찾지 못한 것입니까?
-그렇다.
이들이 계획을 미루고 있는 것은 패진무관을 둘러싼 이상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그들도 개방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개방의 인물들이 더욱 늘어난 현 시점에서 기회가 더욱 멀어지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놈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났다. 완전히 흔적을 지운 것이지. 부에서는 그것을 조만간 일을 벌일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부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밝히지 못했습니까?
부에 대한 불신이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다. 아마도 그 왕일이라는 아이와 연관된 것 같다고 말이다. 그 아이가 패진무관에 들어오고 나서 놈들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놈들의 움직임도 그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니까.
말을 하는 괴인도 입맛이 썼는데, 패진무관을 도모하고자 데리고 왔던 이들이 엉뚱한 놈들과 부딪치면서 죽어나갔기 때문이었다.
-왕일 그놈과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계획에 꼭 필요한 녀석이니까요.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말도록. 빠른 시일 내에 그들이 움직일 것 같으니 말이다. 개방도 그것을 느끼고 마가를 불러들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럼, 마호성의 목적이 왕일을 보호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현재로선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그의 행동반경이 왕일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는 것만 봐도 확실한 것 같다.
부와 의문의 인물들이 부딪치는 와중에 그들의 움직임이 개방의 촉수에 걸려들었다.
그 때문에 둘은 어둠속에서 서로에 대한 견제만 하는 수밖에 없었고, 차일피일 미루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차라리 일을 벌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틈이 생길 테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터이니 말입니다. 오히려 그들과 개방이 충돌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그 틈을 이용해 부에서 움직인다고 해도 개방은 부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놈들을 의심할 것입니다.
사실 부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부에서도 그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오래전부터 자신들을 추적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와 그들의 행동양식이 거의 비슷해서였다.
‘어쩌면 이놈들이 우리를 추적하는 놈들과 같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기서 놈들이 몰살이라도 당한다면 끈을 놓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 반대로 개방에 생포되어도 문제다. 혹시라도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놈들이라면,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물론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그동안 틈을 노릴 수 없던 그놈이 이제야 조금씩 여유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마친 상황입니다. 솔직히 이 기회를 놓친다면 적요신, 그놈이 폐관에 들 수도 있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던 괴인이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좋다. 결행 일시는 보름 뒤로 하겠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도록.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도 가만히 있던 한철진이 주위를 둘러봤다.
“벌써 사라졌나?”
‘그나저나 이런 결정을 즉석에서 내릴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라…….’
꼬리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쓰고 버리는 패는 아닌 것 같군.’
한철진이라고 마냥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허나 자신을 상대하는 인물이 어느 정도 결정권을 가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심 안도하는 마음이 생겼다.
만약 이 결정을 상부에 보고해야 할 정도의 위치라면 그 자신도 위험한 것이다.
버리는 놈에게 높으신 나으리가 나설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럼, 그 부라는 것도 진짜일지 모르겠군.’
조금 더 꿈을 꿔도 될 것 같았다.
***
“경아, 일어나. 응?”
집에서 돌아온 후로 계속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당경을, 보다 못한 왕일이 끄집어내려고 했다.
“놔둬!”
“그러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 혼자 먹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저씨 말도 다 안 들어보고. 혹시 네가 숨겨둔 아들일 수도 있잖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이불을 던져버린 당경이 왕일의 눈을 노려보며 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