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어차피 속성을 택한 것은 저 아이입니다.
속성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보다 더 수련하고, 남보다 더 한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윗사람의 도움은 필수였다.
그리고 사실 지금 한 것은 수련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아보는 자리인 것이다.
왕일의 실력에 맞추어 그 수련 과정과 강도를 정하려는.
현재로 봐서는 최상으로 맞추어 진행해야 할 정도였다.
“끄~응! 썅, 너 죽었어!”
장사우와 철사명의 눈이 부딪쳤고, 그런 두 사람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봐준 거였냐?
-아닙니다. 최소한 내일까지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공격했습니다. 심하면 며칠은 앓아누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고고고.”
얼굴은 잘 방어한 것인지, 아니면 장사우가 봐준 것인지는 몰라도 멍 자국 하나 없었다.
“오냐, 오늘 죽어보자!”
비실비실 일어나 한동안 팔을 주물럭거리던 왕일이 갑작스레 장사우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조금 더 만져줘도 되겠지.’
맷집이 강하면 강할수록 때리는 맛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왕일은 대가 너무 세서 조금은 꺾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소수의 인원이라도 숙소에는 규율이 필요했고, 그것을 책임지는 것은 장사우였다.
‘내일부터는 달라지게 만들어주마.’
단체 생활에 있어서 복종이 뭔지를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확실하게 손을……!’
이런 생각을 하며 공격하려던 장사우의 얼굴이 굳었는데, 달려오는 왕일의 신형이 자신이 했던 것처럼 좌우로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
“흥!”
어설프나마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한 왕일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장사우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크게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불쌍하게 쪼그려 앉아 있는 왕일의 모습이 보였다.
제 딴에는 회심의 일격이라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비장하다던가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구겨지고 흙먼지가 잔뜩 묻은 지저분한 옷과 쪼그리느라 더욱 작아진 몸, 그리고 위를 노려본다고 노려보지만 워낙 컸기에 조금은 처량해 보이는 눈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거기다 그 앞에 서 있는 장사우가 컸기에 왕일의 몸이 상대적으로 더욱 작아 보였다.
그것이 불쌍하게 보이는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빡!
“큭!”
장사우가 내지른 발이 왕일의 얼굴을 노렸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왕일이 팔을 교차해서 막았던 것이다.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맞은 충격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거의 삼 장여를 구른 왕일이 발딱 일어섰다.
그런 왕일은 보며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장사우가 자신의 발을 몇 번 까딱였다.
‘아까도 이런 느낌이었던가? 아니야. 분명 처음에는 아니었어. 하지만…….’
틈을 노리는 것인지 충격을 해소하고 있는 것인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왕일을 보던 장사우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확인해 본다.’
땅을 박차고 움직이는 장사우의 뒤로 흙먼지가 일었는데, 보법을 펼침과 동시에 단단한 연무장이 패일 정도의 보법이라면 적요신의 독문보법 중의 하나인 승천보였다.
“저 아이가?”
승천보의 성취가 놀랍기도 했지만, 지금 펼친다는 것에 더욱 놀라운 철사명이었다.
일단 승천보를 펼친 이상 자신이 막기에는 늦었다는 것은 안 그였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말릴 생각은 없었다.
철사명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움직임은…….”
장사우가 내지른 발에 당하거나 막은 것이 아니라 피한 것이었다.
철사명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장사우의 발이 막 교차된 손에 닿는 순간 왕일은 이미 몸을 뒤로 구르고 있었다.
고수는 아니더라도 일반 사람이 쉽게 막을 수 있는 그런 속도가 아니었음에도 순간적인 반응으로 피했다.
비록 소리도 요란하고 뒤로 구르는 움직임도 컸지만, 그에 비해서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은 것이다.
저릿하다는 듯이 팔을 주무르던 것은 일종의 속임수임이 분명했다.
아무리 직접 붙지 않고 구경을 하는 입장이라지만, 철사명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픈 척 울상을 짓고 있던 왕일이 장사우의 움직임에 재빠르게 반응하며 자세를 바로잡고 있었다.
‘이놈이 왜 이래?’
갑자기 변한 기도는 누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것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모르려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구른 후에도 몸을 주무르는 척하며 거리를 더 벌렸었기에 거의 오 장여를 물러선 왕일이었지만, 장사우가 내 뻗은 세 번의 발걸음에 그 거리가 사라졌다.
한 번 걸을 때마다 장사우의 뒤로 흙먼지가 날렸고, 순간적인 잔상을 남기며 왕일에게로 쇄도했다.
이렇게 직선으로 빠르게 적을 공격하는 것이 승천보였고, 적요신의 보법에서 정점을 이루는 것은 승천보와 표류보를 함께 펼쳤을 때였다.
직선과 좌우를 넘나드는 보법은, 패도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몰아치는 패력도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적요신 특유의 내공심법이 있어야 했고, 운기의 경로를 배워야 했다.
그것이 없다면 배워도 써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강한 내력의 움직임과 다리가 받는 충격에 무릎이 박살날 테니까.
물론 아직 장사우는 그것까지 배우지는 못했고, 단지 두 가지를 따로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왕일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젠장!’
직선으로 돌진했기에 단순한 공격같지만,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서 왕일이 옆으로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펑!
마지막 네 번째 발걸음이 왕일의 바로 코앞에서 디뎌졌고, 그 힘을 추진력으로 순간적인 가속을 이룬 장사우의 몸이 왕일을 강타했다.
“켁! 커… 꺼흑.”
이번에는 제대로 충격을 먹었는지 심한 기침을 하면서 엎드려 있는 왕일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장사우는 자신이 원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정신을 놓은 것도 아니고,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야. 그럴 의도였음에도…….’
그렇다고 놀라지는 않았다. 이러한 결과도 막연하게나마 예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만.”
어느 정도 몸을 추슬렀는지, 아니면 장사우가 다시 공격해올 것을 예상했는지는 몰라도 어느새 자세를 잡는 왕일을 향해 철사명이 다가가며 대련이 끝났음을 알렸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예? 아고고고고. 왜 아픈 곳이 없겠어요?”
자리에 주저앉으며 가슴을 문지르고, 팔다리를 주무르는 왕일이 장사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따로 배운 것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 있구나.”
제자의 뛰어남은 스승의 기쁨이건만 말을 하는 철사명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만큼 나중에 네가 느끼게 될 실망의 깊이 또한 깊어지겠지.’
“휴~우.”
오늘 하루만 벌써 몇 번의 한숨을 쉬는지 모르겠는 철사명이었다.
“정말요?”
재능이 있다는 말에 왕일이 언제 아팠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며 함박웃음을 지었고, 그를 보는 철사명의 마음은 더욱 가라앉았다.
“그러나, 재능은 노력으로 인해서 꽃이 피는 법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노력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남보다 뒤처질 수 있단다.”
“알겠습니다!”
“좋다! 그렇게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앞으로의 수련에도 임하길 바란다. 더욱 고된 수련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네!”
왕일에게서 고개를 돌린 철사명이 장사우를 불렀고, 다가오는 장사우의 손에는 언제 가져왔는지 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도가 들려 있었다.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네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계를 살짝 맛보여주마.”
장사우가 건넨 도를 받아든 철사명이 왕일 앞에 섰다.
“느껴라. 그리고 마음을 다잡도록 해라. 이것이 네가 살아가야 할 세계다.”
철사명이 자세를 취하자 왕일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이 사라졌다.
꿀꺽!
처음에는 거대한 도와 거대한 덩치의 철사명이 더욱 커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왕일이었다.
그러다 이내 철사명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도만 남았다.
그리고 그 도는 계속해서 몸집을 불리더니 삼 장여의 거리가 있던 것이 어느새 사라지고 도신이 왕일의 머리 위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절로 머리가 들려지는 왕일.
날카로운 도신에서 실오라기 같은 기운이 뻗어 나와서 그를 옥죄었고, 손대면 베일 것 같은 기세가 그를 감싸버렸다.
살기.
엄청난 살기를 대면한 왕일의 온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그의 두 눈은 여전히 도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
그 거대한 도신이 떨어져 자신의 몸을 두 동강 내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왕일은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탄식도 희열의 여운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며 안타까운 마음에 나온 것이었다.
복면인들이 발했던 것이나 장사우가 쏘아내던 살기와는 다른,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그 안에 깃들어 있었기에 왕일이 안타까워 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철사명의 왕일에 대한 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로지 죽이기 위한 살기가 아닌, 뭔가를 전해주고자 하는 철사명의 마음이 담긴 살기였기에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철사명은 왕일뿐만이 아니라 제자들 하나하나에게 그러한 마음을 담았었다.
“무엇을 느꼈느냐?”
어느새 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침중한 얼굴의 철사명이 서 있었다.
“네?”
“네가 지금 본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설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게… 저… 그러니까, 굉장히 무서우면서도 아름다운 도가 저를 내리쳤어요. 음… 그리고는 사라졌어요.”
“아름답다?”
“네.”
심각해지는 철사명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이 무언가 대답을 잘못했나 하고 생각한 왕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런 모습의 왕일을 바라보다 철사명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내려준 축복에 비해서 그 짐이 실로 무겁구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장사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자신조차도 처음 저것을 대했을 때 도의 살기에 질려서 자리에 주저앉고 말지 않았던가?
아름답기는커녕 지옥의 야차와 같았다.
그렇기에 그 속에 담긴 철사명의 마음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럼에도 철사명은 기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칭찬을 했었다.
‘짐은 뭐지?’
왕일의 상태에 대해서 알 리 없는 장사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
장사우를 보낸 철사명이 왕일을 담벼락이 만들어 놓은 그늘에 앉히고는 고민에 빠졌다.
사실 내공을 익힐 수 없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내공의 효용을 잘 모르는 지금 알게 되는 것도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무공을 익히고 내공을 절실히 원할 때 드는 절망감보다는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현재가 더 충격을 흡수하기에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 차라리 빨리 알고 그에 대한 대처를 하는 게 더 나은 것일지도.’
“왕일아.”
“네.”
“너는 무림인이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음…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고, 바위도 한주먹에 부수는 사람들이요.”
“물론 그런 사람들을 무림인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실상 중원에 사는 이들 모두가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단다. 중원이 곧 무림이고, 무림이 곧 중원인 셈이지.”
“네?”
못 알아들은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왕일을 바라보던 철사명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본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휴~우. 하긴,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니. 네가 말하는 능력이 아마도 이런 것이겠지?”
철사명은 갑자기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거의 일 장 가까이 뛰었고, 그 모습은 왕일이 보기에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우와!”
땅에 착지하자마자 옆에 떨어져 있는 차돌을 집어든 철사명이 그것을 손아귀 힘만으로 부쉈고, 조각조각 부서지는 돌을 바라보는 왕일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네가 본 것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너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정말요?”
“그래.”
희망에 부푼 것인지 왕일의 눈이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하늘을 날고 돌을 부수는 상상을 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곧 그를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팡!
조금 전과는 다른 기세로 땅을 박찬 철사명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는데, 높이가 아까보다 거의 삼 장이나 높았다.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린 왕일은 그제야 어른들이 얘기하는 붕붕 날아다닌다는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우와~”
철사명은 높은 곳에서 떨어짐에도 아까보다 훨씬 가벼운 몸짓으로 착지했고, 그가 떨어진 자리에는 흙먼지조차 날리지 않았다.
“그, 그것도 제가 할 수 있나요?”
얼마나 흥분했는지 말을 더듬을 지경이었고, 눈은 찢어질 듯 크게 떠진 상태였다.
그리고는 철사명을 경외의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너는 이것을 할 수 없다.”
“네?”
커다랗던 눈이 더욱 커졌다.
“내가 처음 보여준 것은 네 노력여하에 따라서 할 수 있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왜요! 왜요!”
왕일이 철사명의 옷깃을 붙잡고 마구 흔들며 거의 고함을 지르듯 커다란 목소리를 내면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