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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10화 (10/138)

10화

“헥, 헥!”

기진맥진한 왕일의 눈에 누군가의 등이 보였다.

‘응?’

너무도 단단하여 마치 철판을 보는 것 같은 근육. 바로 장사우였다.

“그저 뛴다고 다가 아니다. 뛰는 것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팔 동작과 호흡을 배우는 것이 지금 하는 수련의 목적이다. 나를 잘 보도록 해라.”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대신 눈은 확실하게 장사우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동작을 배우려 노력했다.

처음 한 바퀴는 그저 보는 것에 열중했고, 두 번째 바퀴는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드디어 세 번째 바퀴가 되어서야 비슷하게나마 흉내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흉내는 한계가 있었고 여전히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왕일은 그때부터 열심히 장사우의 호흡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제, 제길……. 어떻게 저따위로 숨을 쉬면서 뛸 수가 있단 말이야?’

속으로 불평을 하면서도 장사우의 호흡을 훔치려 했고, 비록 헥헥거릴 망정 조금이나마 따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됐다. 오너라.”

철사명의 말에 장사우가 휴식을 취하는 소년들 곁으로 다가와 토납법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몇 아이들은 토납법을 끝내고 유연성을 기르는 동작들을 하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반시진의 시간은 그리 긴 것이 아니었으니까.

‘허어…….’

다시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쳐서 쓰러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왕일을 바라본 철사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왕일이 아직도 빠른 속도로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처음과는 많이 다른 자세로.

‘팔에서 군더더기가 사라졌다.’

달리기를 잘 하려면 다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팔의 움직임이었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에 힘을 더해야 했다.

이런 움직임은 나중에 적요신의 패력도를 배우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달리기는 그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방편이자 수련이었다.

또한 호흡도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였는데, 이 호흡도 달리기를 하면서 수련을 병행하였다.

적요신의 패력도는 폭풍 같은 기세로 적을 몰아치는 것이 핵심이었고, 그것은 지금 말한 하체의 강함과 효율적인 손의 음직임, 그리고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호흡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어설프기는 하지만 왕일이 조금씩 장사우의 동작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 염병……. 헉, 헉…….”

장사우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달리던 왕일은 곧 한계에 부딪쳤다.

팔은 덜렁거렸고, 숨은 턱밑에 차올라서 침을 삼키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거기다 이제는 다리마저 꼬이려 하고 있었다.

‘이… 이게 수련인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괜히 속성으로 한다고 했나봐.’

이제와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

‘아니야. 또 다른 수련법이 있다고 했잖아?’

하지만 남들과 같이 해서 언제 강해지겠는가?

더구나 늦게 시작하는 입장에서 말이다.

‘강해져야 해!’

원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관에서도 찾지 못한 것을 어찌 그가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황 어르신이 좌씨 아저씨는 믿을 만하다고 했으니… 아!'

황만복과 좌영호를 생각하며 각오를 새롭게 다지던 왕일이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이 얼굴에 근심이 자리했다.

‘황 어르신이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못했네. 누나를 만나기 전이나 후에도 같은 마을에서 살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보초를 서고 있던 이들에게 무슨 말인가를 해야겠는데, ‘뭐라고 해야 만나줄 것인가’하고 고민하다가 얼결에 그만 같은 마을에 살았다고 한 것이다.

그 이후에라도 장수련을 만나서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해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한다?’

이건 진짜로 후회해도 너무 늦었다.

‘나중에 누나를 만나면 말해야겠다.’

상념에서 깨어나자 자신의 현재 상태가 느껴졌다.

‘어라?’

이미 그 고민은 멀리 날아갔다.

‘이렇게 편하다니.’

팔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몸을 바로 세워주었고, 다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일정한 보폭을 밟으며 앞으로 전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흡이 편해졌다.

‘어, 어. 이… 이렇게 했었나?’

의식하자 흐트러지려는 몸을 다잡으려 했고, 이내 방금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다.

호흡이 약간 거칠어졌지만 그것도 금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됐다!’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쉰다. 짧게 들이마시고 길게 뿜는다.

자신의 몸이 가장 편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의식적으로 행하려 했다.

생각해보니 장사우의 움직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

무언가가 발을 통해서 빠져나갔고, 그 힘이 왕일을 앞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마치 들이쉰 숨이 발바닥을 통해서 땅을 밀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 할 수 있겠다.”

왜 그러한 현상이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 연무장을 백 번 도는 것이었으니까.

***

“헥, 헥. 다 도… 돌았습니다.”

숨은 헐떡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금방 쓰러질 정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힘드냐?”

“네? 후~압. 좀 힘든데요.”

이제는 제법 숨이 안정된 왕일이 도를 휘두르고 있는 장사우를 한번 바라보더니 시선을 철사명에게 돌렸다.

“처음 한 것 치고는 아주 잘했다. 뛰면서 뭔가 느끼는 것이라도 있었느냐?”

“네!”

“호오, 그래?”

아주 자신만만한 왕일의 대답에 오히려 철사명이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을 느꼈지?”

“들이마신 숨이 발바닥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요. 그리고 그것이 저를 밀어내는 것 같았어요.”

왕일의 대답을 들은 철사명의 얼굴엔 놀람보다도 황당함이 어렸고, 그 순간 일제히 소년들의 도가 멈췄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도 철사명과 다르지 않았다.

“뭘 느꼈다고?”

“숨이 발바닥을 통해서 저를 앞으로 밀어내는…….”

왕일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철사명이 그의 팔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뭣들 하느냐! 내가 도를 쉬라고 했느냐!”

철사명의 고함소리에 소년들이 다시 도를 휘둘렀지만, 신경이 온통 왕일에게 쏠려 있어서인지 처음과 같은 정밀함이나 패기는 없었다.

“어?”

철사명이 갑자기 맥문을 틀어쥐자 왕일은 그대로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으음…….”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내공을 아는 듯했었는데?’

방금 왕일이 말한 것은 내공을 가진 이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일에게서는 내공은 고사하고 단전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다못해 몸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기운도 없었다.

그런 기운을 잡아두는 곳이 단전이고, 단전에 쌓이는 것이 내공이었으니 아예 기초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혈도는 분명히 막히거나 끊어져서 도저히 기운이 발까지 도달하게 만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혈도를 가지고도 이렇게 건강하다는 것 자체부터가 일단 기사(奇事)였다.

‘그냥 느낌을 말한 것이었나?’

철사명은 내친 김에 왕일의 골격도 자세히 살폈다.

‘그저 그렇군. 일을 많이 해서인지 또래보다 튼튼하기는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야.’

작은 흉터들이 자리 잡은 왕일의 손은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농민이나 화전민들이 저런 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팔과 다리도 짧고.’

짧은 다리와 팔은 무공을 익히는데 약점이 될 수 있었다.

손과 발이 크고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패진무관에서 가르치는 무공을 익히는 것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미안하구나.”

쓰러진 왕일을 일으켜 세우고는 남아 있는 연습용 도 중에서 하나를 들고 온 철사명이 그것을 주면서 한쪽으로 비켜서게 했다.

“네게 지금 초식을 가르칠 시간은 없구나. 그것은 나중에 나와 단 둘이 하게 될 게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가르쳐주는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하도록 해라.”

“네.”

철사명이 보여준 동작은 그야말로 간단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도를 긋더니,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것이었다.

그 도를 다시 위로 날을 세우고 올렸다.

다음에는 비스듬하게 내리찍고 올리는 것을 반복하여 보여주었다.

총 여덟 번의 움직임.

“이것은 팔방풍우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패진무관의 기본동작이자 앞으로 네가 꾸준하게 단련해야 하는 초식이다. 알겠느냐?”

“네.”

“할 수 있겠느냐?”

너무 간단해서 다섯 살 어린아이도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동작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자 조금은 어이없는 왕일이었다.

“네!”

“좋다. 그럼 해 보아라.”

“끄응!”

아무리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도왔다고 해도, 이십 근이나 나가는 중도는 확실히 그에게 무리였다.

차라리 같은 무게의 바위를 들라고 하면 거뜬히 들겠지만, 이것은 길었고 무게중심이 도첨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드는 것만으로도 팔을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역시, 내공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지? 무언가를 알고서 한 말인가, 아니면 들은 것을 내뱉은 것인가?’

의문투성이였다.

처음에 뛰던 모습과 마지막에 뛰던 모습은 보던 그가 놀랄 정도로 확실하게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이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배움이 빠르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하지만, 만일 이아이가 말한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면 그렇게 지칠 리도 없었을 텐데. 게다가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왕일은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간신히 허리 있는 곳까지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그의 키만큼이나 큰 도를 그 정도까지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지만, 이곳 패진무관에서는 우스갯소리일 뿐이었다.

“끄~응!”

자세도 자세지만 그 신음소리를 듣자니 잘못하면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만.”

철사명의 말에 왕일이 털썩 쓰러지며 도를 놓치고 말았다.

“헥, 헥.”

아까의 달리기를 끝낸 것보다도 더욱 힘들어 보였다.

“이런, 내가 도를 잘못 가지고 왔구나. 잠시만 기다려라.”

왕일이 놓친 도를 주워들고 사라진 철사명이 이내 그와 비슷한 모양의 도를 들고 왔다.

하지만, 그 무게는 반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둥그런 원판도 가지고 왔는데, 그곳에는 아까 보여주었던 동작을 따라서 도의 길이보다 조금 긴 말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이것을 가지고 연습을 하도록 하여라. 단, 아까 내가 보여주었던 속도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네!”

언제 기진맥진했었냐는 듯이 팔팔하게 대답한 왕일이 새로 가져온 도를 가지고 원판 앞에 섰다.

도가 가벼워진 만큼 움직이는 것은 편했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차라리 빨리 움직인다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느릿하게 무거운 쇳덩이를 움직이자니 금세 팔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이까짓 것…….’

오기로 버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털썩!

“쉬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다른 아이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도록 해라. 나중에 네가 배울 것이니.”

어느새 옆에 다가온 철사명이 수련하는 소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왕일에게 말하였다.

“뭐가 보이느냐?”

철사명의 말에 유심히 소년들을 관찰하던 왕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으음…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 그러니까 공격하는 속도가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끊어지는 곳이 없어요. 마치 원을 그리는 듯이.”

그 말에 철사명의 눈이 커졌다.

물론 그것은 다른 소년들도 마찬가지이고.

“그것이 보인단 말이냐?”

“네? 네.”

또 무언가 말을 잘못했나 생각하면서 대답하는 왕일을 철사명이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방금 왕일이 말한 것은 현재 소년들이 배우고 있는 도법의 핵심 요결이었고, 앞으로 배우게 될 패력도의 기본이었다.

무거운 도를 어떻게 자유자재로 움직일까?

그것은 바로 중도가 가진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는 느리게 움직이다가 내리치거나 올려 칠 때 팔꿈치를 당기며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그렇게 공격한 후에는 그 힘을 이용하여 다음 공격을 이어가는 것이 현재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서의 수련이 끝나면 중급반에서는 상대의 타격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말이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이지, 사실 일반인이 볼 때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는 속도였다.

철사명은 왕일을 다시금 자세히 살폈다.

“쩝.”

입맛을 다실만하다.

뛰어난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곳이 패력도 적요신이 운영하는 패진무관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곳은 힘과 기력을 중시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요신의 무공은 그의 신체에 맞게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왕일이 익히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무관으로 가는 것이 이 아이에게는 도움이 되련만.’

검을 다루거나 암기를 사용하는 곳, 그것도 아니라면 보통의 도를 가지고 수련하는 곳에 가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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