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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들의 무림 생존기-3화 (3/138)

3화

무작정 서쪽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던 왕일이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차가운 날씨에 비까지 내리기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추위도 추위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산사태였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했던 땅이 봄에 내린 비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재작년에도 산으로 사냥을 나갔던 마을 사람 하나가 산사태에 휘말려 죽은 일이 있었고, 그것을 직접 목격한 왕일은 아직도 그때의 공포를 잊지 못했다.

“으… 빨리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동굴을 찾는 것도 아니었다.

겨울이 끝나는 시기의 동굴은 어떤 굶주린 짐승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무척 위험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위험한 상황을 맞을 것이다.

비를 맞으며 산중을 헤매는 왕일의 몸은 떨리고 있었고, 이빨은 서로 부딪쳐 딱딱 소리를 냈으며, 김이 솟던 몸은 어느새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응?”

멀리서 물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그곳과 반대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중에서 폭우를 만났을 때 물가에 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그의 아버지가 누누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그로서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저곳에서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이른 곳이 하필이면 막다른 곳이었다.

콰우우우!

거친 소용돌이를 만들면서 흐르는 물은 밤이 아니라 낮에 봐도 무서울 것만 같았다.

‘길을 잘못 들었네. 분명히 물을 피하려고 했는데…….’

발길을 돌려 움직이려던 왕일이 정면을 막아서고 있는 두 사람으로 인해 몸이 굳었다.

-맞는 것 같으냐?

-예, 대사형. 살이 좀 빠지고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용모파기와 일치합니다. 그리고 이 시각에 이 산중을 헤매고 다닐 아이가 흔하겠습니까?

-그래도 확실히 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일단 잡아라.

두 복면인이 전음을 나누는 사이, 왕일은 알 수 없는 공포심에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투두둑.

뒷발에 힘을 주자 이내 무너져 내리는 흙.

한걸음만 잘못 디뎌도 그대로 거친 급류에 빠질 것 같았다.

흠칫하며 뒤를 한번 돌아보고 앞을 보자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복면인이 왕일의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크윽!”

목을 틀어쥐고서 들어 올린 복면인을 향해서 발버둥을 치지만 그것이 왕일의 한계였다.

발로 차려는 시도는 복면인이 왕일의 마혈을 찍으면서 그저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왕일은 순간적으로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사람을 애먹이다니, 귀찮은 놈이… 응?”

왕일을 잡은 복면인이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가 딛고 있던 지반이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면인은 당황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이 정도의 돌발 상황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번쩍!

“끄아아아악!”

지반의 붕괴를 피해 공중으로 뛰어오른 것이 문제였고, 급작스런 상황이었기에 조금 높이 떠오른 것이 문제였다.

주변의 나무보다도 높게 올랐던 것이다.

떨어진 낙뢰를 직격으로 맞았다.

방심도 방심이지만, 이제 막 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있는 복면인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복면인의 손을 통해서 그 충격은 왕일에게도 전해졌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그의 몸도 부들부들 떨리다 축 늘어졌다.

낙뢰를 맞은 충격으로 복면인은 왕일을 잡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왕일의 목을 놓친 그도 왕일과 마찬가지로 세찬 격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남아 있던 대사형이라 불린 복면인이 황급히 신형을 날렸다.

사제를 안아들고 왕일의 옷깃을 잡았지만, 옷이 워낙 낡은데다가 번개를 맞아 옷이 삭아버려 왕일의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했다.

찌이익!

옷이 찢어지면서 자신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왕일을 본 복면인의 눈에 악독한 빛이 흘렀다.

펑!

막 떨어지려던 왕일의 몸을 향해서 발에 경력을 모아 내리찍고는 그 힘을 이용해 격류를 건너뛰었다.

풍덩!

땅에 내려선 복면인이 서둘러 격류로 시선을 돌렸지만 어느새 왕일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흐음…….”

격류를 따라가면서 왕일의 시체를 찾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혈이 찍힌 상황에서 번개를 맞았고, 나의 천근추에 의한 충격까지 입었다. 그리고…….’

콰직!

흘러내려가던 어른 몸통만 한 나무가 바위에 부딪쳐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봄비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폭우였고, 오랜만에 내린 것이었기에 물길이 잡혀 있지도 않았다.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휩쓸고 지나갔고, 지나간 자리엔 파괴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만일을 위해서 확인해야 했거늘.’

“으음…….”

“정신이 드느냐?”

“노… 놈은?”

“격류에 휩쓸렸다.”

“쪼… 쫓아야…….”

“견딜 수 있겠느냐?”

“쿨럭! 우웩!”

기침과 함께 피를 한사발이나 토했다.

“서둘러 기를 돌려라!”

사제를 앉히고 그 뒤에서 내공을 불어 넣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간신히 뒤틀린 기혈을 바로 잡은 후에 다시 격류를 바라보는 복면인.

아쉬웠지만 이쯤에서 포기해야 했다.

그들의 사부는 자신들을 가르치면서 단 한 가지만을 주지시켰다.

[서로의 경쟁은 용납한다. 내 뒤를 잇는 이는 가장 강한 자가 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의 목숨을 뺏는 일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 만일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너희 모두의 목숨을 거두겠다. 알았느냐? 하나의 목숨에 나머지 셋의 목숨도 같이 걸려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사부의 얼굴에는 진심이 가득했고, 쏘아내는 눈빛에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이들 사형제들은 넷이었지만 하나였다.

[언제까지입니까?]

[너희가 일정 경지에 오르고, 내가 결정하는 순간까지다. 그때까지는 다른 이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과 같이 아껴야 할 것이다.]

사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사형제들 간의 무리한 경쟁을 막으려는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그때 사부가 보인 태도가 문제였다.

지금까지도 그 말을 계속해서 강조했고, 주입시킨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사제가 위험한 것은 자신이 위험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제가 죽는다면 그도 죽는 것이다.

‘사부는 그렇게 하고도 남을 분이다.’

세간에는 정파의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제자들인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냉혹한 인물인지도.

서둘러 사제를 치료해야 했다.

복면인이 다시 혼절한 사제를 안고서 아쉬운 듯 격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는 신형을 날렸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왕일의 용모파기가 그려진 종이만이 덩그러니 남겨졌지만, 이내 강하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점점 그 형체를 잃어갔고 그곳에 그려진 왕일의 얼굴도 조금씩 일그러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

급류에 휩쓸린 채 떠내려가는 왕일은,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면서 용케 다른 나무나 바위를 피하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운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는 없었다.

퍽!

나무가 왕일의 발을 치고 지나갔고, 부러졌는지 물살에 덜렁거렸음에도, 왕일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복면인의 공격은 왕일의 내부 장기를 거의 훼손하였고, 갈비뼈도 가닥가닥 끊어놓은 실정이었기에 이대로 조금만 더 물살에 시달린다면 부러진 뼈들이 장기를 찔러서 목숨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 젠장. 무슨 놈의 봄비가 이따위로 쏟아지는지… 응?”

경공을 사용하여 달려가던 중년인이 왕일을 발견했다.

“이 산중에 어찌 어린아이가? 혹시?”

중년인이 황급히 몸을 날려서 가볍게 왕일을 잡고는 옆에 떠내려가던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가볍게 물살을 벗어났다.

왕일의 한쪽 다리는 부러진 채 덜렁거리고 있었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중년인도 진맥을 하고서야 아직 살아 있음을 알고는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허어… 악독한 지고.”

치료를 하다 가슴의 뼈가 부러진 것과 마혈이 찍힌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슴뼈는 떠내려 오다 다른 것에 부딪쳐 생길 수도 있는 상처라고 볼 수 있지만 마혈을 찍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이런 어린아이을 마혈을 찍어 급류에 던져버리다니. 자세히 살펴봐야겠지만, 가슴의 상처도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 같구나.”

무공을 사용하는 무림인 중에서도 악독한 이들은 많았다.

특히 사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어린아이를 자신의 무공에 이용하기 위해 희생시키기도 했다.

“죽일 것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무슨 심보란 말인가?”

일단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서둘러야겠구나.”

아까 달려오던 속도도 빨랐지만, 지금 발휘하는 경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치 대낮의 평평한 대로를 달리듯이 비오는 어두운 산길을 질주하는 중년인.

누덕누덕 기운 옷과 허리춤의 매듭 그리고 범상치 않은 무공.

이것이 나타내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개방.

이곳에서 발생한 세 마을의 학살이 무림인이 자행한 것이란 소문을 듣고 개방에서 조사차 온 것이었다.

마적이라면 관이 나서야겠지만, 무림인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데?”

왕일을 안고 가던 중년인이 무언가가 떠오른 듯 왕일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의 품속에 들어 있는 초상과 비슷한 얼굴.

그도 왕일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정곽을 찾아갔다가 허탕을 친 연후에 혹시나 하는 기대로 왕일이 살았던 마을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

“괜찮겠나?”

“일단 고비는 넘긴 것 같으이. 자네의 응급처치가 이 소년을 살렸네. 그나저나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군.”

“뭐가 말인가?”

“여길 보게.”

중년인의 옆에 있던 인물이 가리키는 곳.

그곳은 터져나간 왕일의 발가락 끝이었다.

“자네도 살펴봤으면 알겠지만, 이 소년은 무언가에 강타 당했네. 그것도 작은 힘이 아닌 강한 경력이었고, 그 경력이 소년의 몸을 돌아다니다 발가락으로 빠져나간 것이지.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정도의 경력이 주입됐음에도 내부 장기가 멀쩡하다는 것일세.”

“그런 경우는 없는가?”

“있기야 하지. 그런 경우가 되려면 완전한 이완. 즉, 소년의 장기가 그 활동을 멈춰야만 가능한데, 경력에 반응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으며 완전히 개방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네.”

“그럼, 이 소년이 죽었었단 말인가? 그 경력은 이 소년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 센 것이 아닌가 말이네.”

“나도 그것이 의문이네. 죽이려고 했다면, 이미 죽어있었을 소년에게 경력을 쏘는 짓을 할 필요가 없었고, 살리려 했다면 그 힘이 너무 강했네.”

“확인?”

“가능성은 있지. 죽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렇다면 그냥 목을 자르는 것이 더 확실하지 않겠나?”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였다.

공격을 한 당사자도, 공격을 당한 왕일도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사실 왕일로서는 천운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복면인이 번개를 맞을 때 왕일도 그 번개의 여파에 의해서 심장이 멈췄었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말이었다.

그대로 놔두었다면 확실하게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복면인이 왕일의 죽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내지른 경력이 그를 살렸다.

죽은 심장을 자극하여 다시 뛰게 만들었던 것이다.

화와 화가 겹쳐서 복이 된 순간이었다.

‘거기 누구세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 들리는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헤매어도 미약하게 들릴 뿐 정확한 내용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똑바로 말하세요.’

아무것도 없는 어둠.

그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

하염없이 뛰고 또 뛰었지만 끝은 없었고, 소리를 내는 정체도 알 길이 없었다.

‘제발 크게 말해요!’

답답한 마음에 바락 외치자 조금 명확한 소리가 들렸는데, 바로 자신의 발쪽이었다.

[형아, 놀아줘.]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동생의 얼굴.

“헉! 크윽!”

꿈에서 깬 왕일이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느냐?”

“누구……?”

왕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검은 수염을 길게 기른, 눈매가 부드러운 인자한 얼굴을 가진 학자풍의 중년인이었다.

“나는 황만복이라는 사람이다.”

“여기는?”

“의원이란다.”

한마디 한마디씩 하고 있지만 부러진 뼈들이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게 하고 있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일단은 안정을 취하는 것이 급선무니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지금은 그럭저럭 아픔을 참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약효 때문이다. 이제 약효가 사라지면 끔찍하리만치 괴로운 고통이 찾아올 것인즉, 내가 다시 약을 쓰기는 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효능은 장담할 수 없구나. 이 약은 처음에 쓸 때는 효능이 뛰어나지만 두 번째는 면역이 생겨서 처음 효능의 반도 채 나타내지 않는 것이 단점이기 때문이다. 너는 견딜 수 있겠느냐?”

왕일은 그저 말없이 눈만 깜빡였는데, 벌써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모, 몸이…….”

“혹시라도 네가 움직일까봐 손을 썼다. 곧 풀어줄 테니 무서워 말거라. 이 고비만 넘기면 되니 마음을 굳게 먹고.”

그리고 그것 외에 달리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 이걸 먹어라.”

황만복이 넘겨준 환단을 먹자 이내 왕일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끄으으으윽!”

마혈을 찍고 약을 먹였음에도 고통을 막을 수가 없었는지, 혼절한 와중에도 왕일의 굳게 다문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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