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그 후로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회복되었냐 하면……
“승자는 창천검! 결승에 창천검이 올라갑니다!”
가장 먼저, 화산지회가 개회되었다.
모용가주가 벌인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이내 모용가주를 물리친 후 그가 모아두었던 생기가 섬서로 다시 돌아가면서 피해를 본 사람들도 빠르게 몸을 회복했다. 덕분에 화산지회를 개회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대로 흐지부지 해산하기에는 준비에 들어간 돈도 만만치 않았고, 뭣보다 우리에겐 대회와 함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바쁜 일이 많았다.
몇몇 사람들의 경우, 사건이 있기 이전보다 내공이 급격하게 증가한 케이스가 있어서, 태양의원의 의원들은 그들을 상대로 연구를 해봐야 한다고 난리였다.
듣도 보도 못한 상황에 가장 눈을 빛낸 것은 사대신의였다. 민초신의와 무당신의는 이 방법을 응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며 화색을 띠었다.
마의? 말할 것도 없이 연구 참여자를 딱 세 명만 해부해보면 안 되냐고 나를 졸라댔다. 그래도 홍령과 시간을 보낸 이후로 그리 막무가내는 아니어서, ‘만에 하나 연구 참여자가 칼을 대야 하는 수술을 해야 할 경우’에 수술 참가만 하게 해달라고 제안했고, 나는 ‘연구 참여자가 칼을 대야 하는 수술 상황을 일부러 만들지 않을 경우’만 허락해주기로 했다.
막대한 보상을 내걸자 몇 명이 연구에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어딜 가나 돈 필요한 사람은 있는 법이다.
아, 그 막대한 보상은 내가 지불하지 않았다. 그 돈은 황금신의가 냈다.
사대신의 중 세 사람이 연구에 참여하는데 황금신의가 빠지면 명성이나 실력 면에서 한참 뒤떨어질 거라고 일부러 소문을 냈더니 냉큼 걸려들었다. 사실 알면서도 내 낚시에 걸릴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나는 참여 조건으로 황금신의의 재산 사분의 일을 요구했다.
“이건 폭리야!”
“싫으면 마시고요.”
“젠장, 누가 금왕 놈 아들내미 아니랄까 봐. 그때 뒤질 뻔했다고 내게 복수하는 것이더냐?”
생각해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죽으러 갔던 곳에서 나는 홍령을 만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냥 장사를 하는 거뿐입니다.”
의맹회의 때 황금신의 때문에 큰 코 다칠 뻔했으니, 그걸 돌려받는 셈이다. 내가 꽤 뒤끝이 세거든.
그 외에도 태양의원은 미칠 듯이 바빴다. 같이 공식 의원을 하기로 했던 모용약방이 애초에 준비부터 안 해왔으니 우리 일감이 예상의 두 배를 웃돈 셈이 됐다. 본원과 분원에서 최대한 사람을 뽑아 왔고, 텅 비어버린 모용약방까지 우리가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뭐,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화산지회도 어느덧 결승이니.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결승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결승에 올라간 사람은 두 사람. 하나는 창천이고, 또 하나는 좌수검이다.
“어떤 것이 괜찮냐 묻는 것이지.”
“뭐, 여러 가지로요.”
원래 좌수검은 섬서사변과 관련된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화산지회에 지원했다. 사실 그가 여기 참석할 연배는 아니었다. 암묵적으로 화산지회는 후기지수들의 판으로 여겨져 왔으니까.
전이야 목적이 있었으니 그런 비난과 야유도 감수했겠지만, 모용가주의 음모를 와해한 지금 굳이 참가할 이유는 없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제법 있었다. 우리 쪽에서도 뭘 애들 노는데 나가냐며 도 방주 등이 한 소리를 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이제 홍령의 일은 괜찮느냐 묻는 것이기도 했다. 장례를 치른 이후 좌수검은 삼 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화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흰 상복 차림. 좌수검이 미래로 나아가길 바랐던 홍령을 생각하면 지금의 그가 좀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내 검에 그런 고민과 불안이 보이던가.”
허나 좌수검은 덤덤히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 실제로 그의 검은 전혀 떨림이 없었다.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준결승을 치를 때 그의 검은 거침없이, 그가 가고자 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원숙해 보이던 이전의 검에 비해 보다 도전적이고, 다소 서툰 모습도 보였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가 잃어버렸던 청년 시절로 돌아온 것처럼.
“……뭐, 당신이 하고 싶은 거라면 됐습니다. 더는 참견 안 할게요.”
후기지수의 마음으로 도전한 거라면 주변의 비판도 개의치 않는 이유는 알겠다. 거기에 하고 싶은 거라면 내가 말릴 자격이나 있나.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좌수검의 말이 나를 붙들었다.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다.”
“부탁이요? 어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좌수검이 개인적인 부탁이라니?
“내가 만약 우승을 하게 된다면, 아니, 아니지. 우승해서 남궁가주와 검을 겨뤄 거기서도 이긴다면―.
“잠깐만요. 무슨 부탁이기에 조건이 남궁가주를 이기는 거예요? 너무 힘들 거 같은데. 당장 저기 투지에 불타고 있는 창천 저 녀석도 있다고요. 그런 조건을 거는 건 녀석을 너무 무시하는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승만 해도 들어드릴게요.”
“그래도 괜찮겠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한테 해 되는 얘기는 아니겠죠.”
무슨 부탁을 하려나. 청화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 내가 허락하고 말고 할 게 아니긴 하지만, 좌수검은 그게 마음에 걸릴 수도 있긴 하지. 한다고 해도 홍령의 사십구재는 지나고 하지 않겠나. 아니, 애초에 좌수검이 벌써 그만큼 청화한테 푹 빠졌던가?
“내가 이번 화산지회에 우승을 하게 되면…….
“하게 되면?”
“딱 한 번만, 나를…… 아빠라고 불러주지 않겠나.”
아, 이거 한 대 맞은 거 같은데.
아버지라고 부른 적은 한두 번 있긴 하지만, 아빠라, 어린아이나 부를 호칭이다.
……좌수검은 그걸 듣고 싶은 거겠지.
그가 잃어버린 청년시절에는 어렸던 나와 함께 보내는 초보 아빠로서의 시간도 있었을 테니까.
“좋습니다. 날 잡고 한 열흘쯤 불러드리죠. 더 이상 아빠 소리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고맙다. 꼭 이기도록 하지.”
어이구, 무서워라.
투지에 불타는 좌수검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좌수검의 그런 선언을 들은 상대방의 눈빛이 무섭다는 얘기다. 창천 말이다.
좌수검을 뒤로하고 나는 비무대 반대편에 있는 창천에게로 향했다. 거리가 멀긴 하지만 나와 좌수검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대충 들었는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쪽으로는 왜 온 거지. ‘아빠’를 응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삐졌냐?”
“흥.”
설마 진짜 삐진 거냐고.
“그야 좌수검은 생물학적 아버지지만, 너는 뭐, 그렇잖아.”
“그게 뭐냐.”
이거 그냥 순순히 안 넘어가겠는데.
“그래 봤자 좌수검은 종남을 대표해서 나온 거고, 태양의원을 대표하는 건 너잖아. 기억 안 나? 태양의원의 현판이 올라가기도 전에 나는 널 선택했다고.”
무표정하던 창천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이렇게까지 말해줘야 하는 거냐. 사내자식들끼리 이래야겠냐고.
“말로 해주니 좋냐?”
“흥.”
그래도 아까처럼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는 게 아니었다. 좋은 데 괜히 튕기는 느낌.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녀석.
“그래, 대화는 좋은 거야. 너도 말로 하지 그랬냐. 그때 휙 떠나버린 게 큰 결심을 해서 그런 거였다고.”
“……!”
“나는 다 끝나고 나서야 알았잖아. 리가 말 안 해줬으면 지금까지도 몰랐을걸? 한 몸 바쳐 나를 지킬 생각이었다니.”
“잠깐, 그건―.”
“굳이 말로 안 해도 돼. 세상에는 말 안 해도 아는 게 있는 법이지. 그때 네 검이 바뀐 걸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난 멀었나 봐. 그렇게 모든 걸 내던지듯 검을 휘둘렀던 게 그런 뜻인지 왜 그땐 몰랐을까. 네 맘 몰라줘서 미안해.”
“금태양!”
“그래도 참 다행이야. 네 목숨을 던질 일은 생기지 않았으니까. 만약 그랬으면 내 조카는 혼인도 못 해보고 미망인으로 살 뻔했잖아.”
“……?!”
으이그, 아주 떠먹여줘야 알지.
금리도 창천도 이런 쪽으로는 제 의사를 확실히 표현을 안 하니, 나라도 나서줘야지 어쩌겠어.
참고로 내 조카는 현건과 창천 사이에서 조금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창천이 제 목숨을 바칠 생각이라며 나를 잘 부탁한다고 얘기하고 떠난 이후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단다.
“그래도 혼인은 당사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집안끼리의 일인 거 알지? 내 큰형님이 좀 엄하시긴 해서, 사윗감도 깐깐히 고르실 텐데. 그러려면 화산지회 우승 정도는 해야 하려나? 준우승은 아무래도 좀 격이 떨어지잖아. 바로 저기서 보고 있는데.”
나는 상석에 있는 금건양을 가리켰다.
“잘해봐. 뭐, 준우승해도 내가 열심히 변호는 해줄게.”
“……반드시 이기겠다. 똑똑히 지켜봐라.”
어쩌다 보니 결승전에 임하는 두 사람에게 불을 붙여버렸는데.
의욕이 충만한 두 선수를 두고 나는 아까 가리켰던 상석으로 올라갔다. 당연히 내 자리도 거기 있었다.
“여, 두 얼굴의 사나이, 왔음?”
참고로 나는 4강에서 현건을 만나 떨어졌다. 솔직히 좀 자신 있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금리가 현건과의 미묘한 관계를 대놓고 정리해서인지 검이 엄청나게 매서웠다. 첫 여친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군대 가기로 마음먹은 빡빡이를 상대하는 거 같았달까. 그건 못 이기지, 암.
아무튼 그때 현건이 무릎 꿇은 내게 손 내밀면서 “일어나십시오, 금 의원.” 이라고 하는 바람에 내 정체가 만천하에 들통 났다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