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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46화 (346/350)

346화

모용가주는 칼끝으로 남궁가주의 턱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실로 모욕적인 행위였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 우천.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근맥을 찢고 목숨만 붙여 그 좌절의 시간을 천천히 맛보는 것이 좋겠는가?”

“갈!”

남궁가주가 잠력을 전부 터트리듯 기를 폭발시키며 모용가주를 들이받았다. 다시 한번 난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난전은 남궁가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모용가주는 그런 필사적인 검을 어린아이를 갖고 놀듯 가벼이 상대했다. 지금은 자신이 우위에 서 있는 사실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면 곧이라도 남궁가주의 목이 바닥에 떨어질 것이 자명한 상황.

유성과 같은 날랜 검격이 두 사람의 싸움 아닌 싸움 사이로 끼어들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이었다. 남궁은하와 창천이 각각 창궁무애검과 제왕검형을 펼치며 남궁가주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하늘을 가르는 힘이 더해지자 모용가주가 약간 밀리는 듯도 했다.

“그래, 그 아이의 딸이구나. 갓난아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리 자랐나? 헌데 이 아이는 누구지? 아아, 무당이 남궁의 힘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만들어낸 그 창천이라는 아이인가?”

“그 애들은 건들지 마라!”

“아아, 그렇구나. 이들이 우천 그대의 역린이었군. 바로 죽일지, 천천히 죽일지 고민이었는데 어느 쪽이 더 만족스러울지 가벼이 시도해 보아도 되겠구나. 어느 쪽을 먼저 죽여 볼까.”

모용가주의 검이 창천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손녀보다는 검을 이은 방계를 죽이는 쪽이 남궁가주에게 타격이 덜할 테니까. 가장 맛있는 것을 나중에 먹는 아이처럼 모용가주의 검이 거세어졌다.

창천도 저항하긴 했지만 워낙에 힘의 차이가 지나치게 컸다. 창천의 제왕검형은 강인함을 잃고 점점 밀려났다. 압도적인 기가 창천을 짓눌렀다.

“창천!”

“!”

절체절명의 순간, 수십 자루의 비도가 모용가주를 향해 세차게 쏟아졌다. 당당이었다. 그의 비도는 모용가주를 물러서게 할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아주 살짝 그 궤도를 바꿀 수는 있었다.

창천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릴 뻔한 검은 녀석의 경동맥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고 중상이 아닌 건 아니었다. 찢겨진 경동맥에서 붉은 피가 꿀럭 터져 나왔다.

당장 치료한다면 목숨을 건지겠지만 그렇다고 그를 노리는 모용가주의 검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모용가주의 2타가 다시 창천에게 향하려는 찰나 다시 당당이 모용가주의 머리 위로 날며 수천 개의 바늘을 쏟아냈다. 만천화우였다.

“잔챙이들이 참으로 거추장스럽게 구는구나!”

노여움이 섞인 외침과 함께 기의 폭풍이 모용가주의 주변으로 몰아쳤다. 이에 휩쓸린 바늘들이 궤도를 수정했다.

“무기의 종류가 무엇이 중요한가! 힘이 있다면 모든 날붙이는 나의 수족이니라!”

기의 폭풍을 따라 다시 날아간 만천화우가 바닥에 착지하려던 당당에게 쏟아졌다. 겨우 검을 뽑아들었지만 막아낸 것은 절반. 당가의 자랑인 만천화우가 당가 직계의 몸을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바람같이 달려와 기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좌수검이었다. 그는 여전히 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빈사 상태의 창천을 붙들어 내게 던졌다.

“창천을 보살피게!”

또 다른 한 명이 당당 쪽으로 달려갔다. 홍령이었다. 붉은 깃털을 가진 매가 애처롭게 울면서 아직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만천화우의 바늘을 제 날개로 튕겨냈다.

좌수검이 모용가주를 상대하는 동안 나는 창천을 응급처치했고, 홍령이 당당을 어깨에 들쳐 업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 이후 몇 분은 차륜진 같았다. 좌수검도 모용가주의 상대가 되진 못했고, 그가 일격을 입어 무릎을 꿇으면 은 파파와 하오문의 그림자들이 모용가주의 검을 막아섰다. 또 그림자가 짓뭉개지면 도 방주와 신생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타구봉과 검을 휘둘렀다. 정반합의 다른 무인들도 모용가의 무인들을 상대했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용가주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장난치듯 누구 하나 제대로 숨을 끊어놓진 않는다는 점이 우리에겐 다행일까? 나는 정신없이 내팽개쳐진 이들의 맥을 짚고 응급처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나의 손을 홍령이 콱 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뭐 하긴, 치료를―.”

“준비한 게 있잖아요! 지금이에요! 조금이나마 저자를 흔들었을 때, 지금이 아니면 그게 먹힐 거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고요!”

“그건 최후의 수단이야!”

“지금이 바로 그 최후에요!”

홍령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내게 요구했다. 마지막 수단을 쓰라고. 하지만 그녀 또한 내가 왜 모두가 죽을 거 같은 이 상황 속에서 망설이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너도, 너도 위험할 거야. 그래도 괜찮다는 거야?”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뭔지 잊지 마요. 가요.”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젠장. 당사자가 이렇게 나오는데 더 이상 내가 물러날 수는 없다.

나는 홍령과 함께 싸움의 중앙으로 뛰어 들어갔다. 목숨을 건 혈투 중에도 나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정반합의 인물들이 이를 눈치채고 각자 자리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팔을 베였고, 누군가는 발이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는 제 자리에 도달했다.

毘盧遮那如來。為授母陀羅尼印三昧耶神通法品。而最為第一。若有過去一切十惡五逆四重諸罪。燼然除滅。

爾時﹐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在玉淸天中﹐與十方諸天帝君﹐會于玉虛九光之殿鬱蕭彌羅之館紫極曲密之房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진언이 깊은 울림과 함께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는 불교의 진언이요 하나는 도교의 진언이니, 그 둘을 합치면 괴이한 힘이 작용하기 힘들 정도의 위력이 발휘되었다.

“이, 이건?!”

모용가주가 당황하는 것이 그의 검 끝에 묻어났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좌수검의 검이 하늘을 날았다.

“크윽! 이 버러지 같은 것이!”

“됐다! 먹힌다! 약해지고 있다!”

좌수검은 일부러 악을 써가며 외쳤다. 그러자 중상을 입고 나가떨어졌거나 지친 이들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파사, 파마의 기운을 가진 진언이었다. 그 힘은 이 땅에 가득 찬 원기(元氣)와도 관련이 있다. 이 원기를 몰아내는 것이 바로 파마의 진언.

원기가 자리를 비운 곳에는 사람의 생기가 깃든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진언은 삿된 혼을 약하게 만든다. 자신의 것이 아닌 몸에 깃든 영혼이라면 그 성질이 악하든 아니든 진언의 입장에선 삿된 것이로다.

모용가주는 지금 영혼의 머리채를 붙잡혀 끄집어내지는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윽, 크윽…….”

“홍령!”

애초에 이 방법으로 영육의 연결을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홍령 덕분이었다.

그 말은, 이 방법으로 결착을 짓기 위해서는 홍령 또한 이 육신에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상황이 올까 봐 홍령을 아예 데려오지 않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괜, 찮아요. 이미 각오했어요. 그보다 빨리! 마무리를 지어요!”

그녀 자신이 이 길을 선택했다.

나는 홍령을 단단히 받친 채 다른 한 손으로 검을 뽑았다.

아까부터 검명을 울리고 있던 팔부신검의 기운이 파마와 파사의 진언과 함께 더욱더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모용가주는 진언을 외고 있는 자들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검의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이미 흐름을 탄 기세를 끊을 순 없었다.

“가요!”

홍령이 내 팔을 풀어내고 나를 떠밀었다.

이 순간을 위해 힘을 아끼고 있었다. 나는 모든 힘을 개방하며 결의 검을 펼쳤다. 팔부신검이 펼치는 결의 검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그리운 매화의 향취가 풍겼다.

아스라이 붉은 검격이 모두의 공세에 몰려 너덜거리는 모용가주를 베었다.

그건 살을 베는 감각이 아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던 무언가가 검 끝에 닿는 순간.

모용가주의 몸이 줄이 끊긴 인형처럼 맥없이 쓰러져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팔부신검이 다시 한번 그 몸을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찍어 내릴 때마다 육신은 얼음처럼 녹아내려 바닥에 스며들었다. 육신이 스며든 자리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땅에는 풀이 돋고 죽어 있던 나무에는 생기가 돌았다. 어디선가 작게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항주에서, 그리고 소림에서 겪어봤던 현상.

다른 이들은 패배를 알아차리고 도주하던 모용가 무인들을 쓰러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붉은 약을 찾아내 바닥에 뿌렸다. 그 또한 땅과 나무에 닿자 피처럼 흘러내리더니 이내 흡수되어 사라졌다.

“끝인가, 이렇게……?”

도개걸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수십 년 한 순간만을 생각하고 달려왔으니, 정작 그 순간이 왔을 땐 믿을 수 없겠지.

도 방주 외에도 나이 든 정반합의 일원들은 그런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리에 털썩 주저들 앉았다. 몇몇은 울컥했는지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원래 복수는 허망한 거라고 하던가. 그런 기분들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헐벗었던 산이 삽시간에 푸르게 변하고, 그 푸름이 저 멀리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가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더욱 허탈했겠지.

“홍령, 아아……!”

한 팔로 제 검을 지팡이 삼아 겨우 내게 다가오던 좌수검이 비명 섞인 울음을 터트렸다. 내 뒤에는 나를 등 떠밀었던 홍령이 숨을 거둔 채 쓰러져 있었다. 좌수검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무너지듯 와락 홍령의 몸을 끌어안았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네가 부르는 내 이름을 듣고 싶었는데…… 같이 꽃이 핀 화산을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가버리다니…….”

좌수검은 홍령이 일부러 모른 체를 하는 걸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홍령이라도 좋았던 걸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지금 그에게 해줘야 할 말이 있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들을 보지 않고 어느 허공을 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는 오직 내게만 보일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설마―.”

좌수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는 홍령이 한동안 내 곁에서 귀신의 형태로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몇몇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내가 보고 있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느껴집니다. 어떤 막대한 영기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요!”

“아아, 원시천존이시여!”

영기의 흐름에 민감한 무당의 술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그 허공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래, 그곳에서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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