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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42화 (342/350)

342화

“제 큰 형님이 가주님과 나이가 비슷하신데, 그 때문에 큰 형님이 진짜 아버지 같았어요. 하지만 사이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더욱 사이가 벌어졌죠.”

“저런, 안타깝구만. 자네 아버지 되는 금왕과는 나도 좀 알고 지냈지.”

“아버지가 모용가와 친분이 있으신 줄은 몰랐는데요.”

“하하,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것이지. 내게도 아버지뻘 되는 분이라 많이 존경했다네. 그래서인지 자네도 남 같지가 않아.”

모용가주는 제 찻잔을 빙글 돌리다 내려놓았다. 보통 이럴 때 본론이 나오지.

“그치들은 그래, 충분히 써먹을 만한가?”

“그치라면?”

“나를 무림공적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자들 말이네. 한 팔이 없는 검수, 거지왕, 다 늙어빠진 기녀들 말이지.”

머리가 쭈뼛 서는 거 같았다. 모용가주는 지금 정반합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 구성원, 그리고 그 목적까지도, 그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

“개방과 하오문의 정보는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하지. 원래 어떤 장사든 입소문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니까. 금 의원의 실력이면 그들과 손을 잡지 않았어도 언젠가 그 위명을 천하에 떨쳤겠지만, 금가장이라는 벽이 있으니 서둘러 제 편을 만들어야 했겠지. 아닌가?”

이 정도로 알고 있는데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 한 발 빼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이럴 땐 차라리 인정하고 가는 게 낫다.

“혼자 살기는 팍팍한 세상이죠. 금가장과 연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고요.”

그리고 모용가주, 이 사람, 뭔가 오해하고 있어.

“그랬겠지. 나라도 금 의원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랬을 거 같네. 하지만 슬슬 골치 아파질 것도 같군. 관계없는 일에 너무 깊이 발을 들여 오히려 손해가 걱정될 것 같단 말이지.”

모용가주는 내가 정반합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건 그것뿐이다. 이 사람은 내가 사업을 키우기 위해 그들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숨겨진 배경에 대해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일가를 이뤘다 자부하지만 아직 나이가 충분하지 않아서인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네요. 가주께 가르침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나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그려진다. 금왕의 막내아들. 나이가 어려 큰 형에게 밀리지만 그를 이기기 위해 칼을 들이댈 수도 있는,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적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과거 홍령을 배신했던 아버지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허허, 내가 뭐라고 자수성가한 젊은이에게 대단한 가르침을 주겠는가. 뻔한 말밖에 해줄 게 없다네.”

“원래 뻔한 말이야말로 오랜 세월 검증된 고언 아닙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 한 마디 거들어 보자면, 강을 건넜다면 배는 두고 가는 것이 맞다 정도겠군.”

“배를 팔아 말을 사면 더 좋겠네요.”

“그렇지. 참으로 영리해, 한 마디를 하니 열을 알아들어. 내 아들들이 자네만 같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모용 공자의 일은 유감입니다.”

“제가 쥔 힘이 오롯이 제 덕인 줄 알았던 어리석은 놈이지. 내가 더 살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모용가주는 진짜 나와 손을 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모용갑과 관련된 불편한 감정도 없어 보였다. 정반합에 대해서는 알아냈지만 내가 김진이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건가?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게. 배를 버리고 말을 산다 해도 그 말을 살펴볼 시간은 필요할 테니. 허나 고민이 길 필요는 없을 거네. 이 말은 독보적이고, 아주 잘 달리거든.”

“제가 말을 타면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지만, 허면 말이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등에 태우는 것이 꼭 태양의원일 필요는 없을 텐데요.”

“음, 너무 매달리면 이쪽의 몸값이 떨어지겠네만, 자네도 그간 함께해온 이들과의 정을 끊어낼 만한 이유는 있어야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태양의원이 제일이라고 보네.”

“다른 의원들과 달리 무림문파에 기반하지 않아서입니까?”

“하핫, 내가 멋쩍군. 어찌 알았나?”

“이미 금가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계시니 단순히 중원으로 진출할 끈이 필요한 건 아닐 거 같고, 저와 손을 잡으면 큰 형님과는 불편해질 텐데, 그걸 감수하고도 태양의원을 잡으려고 할 만한 이유라면 저만이 가진 가치 때문일 테니까요. 모용가의 의술은 제약에 치중되어 있어 일반적인 의술은 깊이가 얕을 테니, 타 문파에 모용가의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을 수 있는 협력자가 필요한 게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이거 어쩌나. 갈수록 자네가 더 탐나는군. 내가 딸이 있으면 당장 사위 삼고 싶을 정도야. 멀리 친척의 딸이라도 수배를 해봐야겠어.”

모용가주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짐짓 심각한 척하며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답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그래,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대의 결정을 알고 싶군.”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지요.”

“정말 가는 건가? 더 들지 않고.”

“이해타산을 꼼꼼히 따져보려면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럼 이만.”

“헌데 잠깐.”

여태 허허 웃는 사람 좋은 교수님 같던 모용가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내 뒤에 가만히 앉아 있던 홍령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이 처자는 누구신가?”

그걸 이제 와 묻는다고?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얼굴을 전혀 다르게 꾸미긴 했지만, 느낌이 그랬다.

“혹시 내자이신가? 내가 괜히 친척 아이를 소개시킨다는 둥 괜한 소리를 했군그래. 미안합니다, 하하.”

“아, 아닙니다. 그럼 이만. 가자.”

모용가를 나오는 내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무림맹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갑자기 홍령을 잡겠다고 무인들을 파견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괜히 기분이 그랬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연무장을 반쯤 지나쳤을 때 홍령이 입을 열었다. 그녀 또한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거거나, 아니면 알지만 크게 상관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내가 안 가는 게 나을 뻔했어요. 그렇게 한눈에 알아차릴 줄은…….”

괜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실력자인 게 아니다. 여유로운 척 행동했지만 결코 그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남궁가주와는 다른 의미로 강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남궁가주는 자유로웠다. 마음대로 기세를 발출하고 거두었다. 결코 사람이 잡아둘 수 없는 바람과 같았다. 인간이 자연을 인식할 때의 막막함이 그 앞에서 느껴졌다.

반대로 모용가주는 편안했다. 그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해도 상관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그 평안함은 모용가주가 정한 법이었다. 이를 깨려고 하는 이는 단죄될 것이며 다시금 거부할 수 없는 평안함이 자리할 것이다.

그 평안함을 깨부술 수 있는 건 자유롭고 변덕스러운 남궁가주뿐일 것이다.

“모두 모이세요!”

돌아오자마자 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나, 홍령, 남궁은하와 당당, 곽 표두가 전부였지만. 하필 정반합과 관련된 인물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를 함께 연관 짓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따로따로 오기로 한 거였는데 당장 연락을 취해야 할 일이 생기다니.

“왜 그래요? 아까 모용가주의 제안 때문에요?”

“표정이 좋지 않다, 금 의원.”

“무슨 일 있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기감을 곤두세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얘기를 엿듣는 자는 없는 거 같았다.

“빨리 모두에게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곽 표두.”

“예, 어디에 어떻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곽 표두는 정반합과 그 외의 일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곽 표두가 필요했다.

“남해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표사들 중, 쥐를 다루는 사람도 있죠?”

“아, 예. 같이 왔습니다.”

“그때 그 쥐 부리던 거 말하는 거임? 그건 어따 쓰게?”

“그 쥐를 이용해서 서찰을 보낼 수도 있습니까?”

“작은 거라면 가능하긴 할 겁니다. 멀리는 못 보내겠지만요.”

“충분합니다. 거지소굴에 보낼 거니까 쥐가 좋을 겁니다. 바로 써줄 테니 그 사람을 불러주세요.”

“아, 넵!”

곽 표두가 영문도 모른 채 표사를 부르러 나갔고, 나는 종이를 작게 찢고 지필묵을 꺼냈다.

“홍령,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모용가주가 정반합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요.”

내가 급하게 암호를 적는 동안 홍령이 모용가주가 했던 말을 전달했다. 그가 대부분의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게 손을 잡자는 제의를 했다는 사실에 남궁은하와 당당 둘 다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엄청난 자로군. 중원에 별다른 끈이 없는 걸로 아는데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정반합이라는 곳에 첩자가 있는 거 아님? 그게 가장 유력해 보임.”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나는 완성한 암호문을 작게 접으며 말했다.

“첩자가 있었다면 그쪽을 통해 말을 흘렸겠지. 구태여 나를 불러서 장난을 치진 않았을 거야.”

그때 곽 표두가 표사를 데리고 왔다. 통통한 쥐 몇 마리와 함께였다. 그중 한 마리의 목에 작은 쪽지를 안 보이게 걸어주자 표사가 피리를 불었다. 쥐는 다른 쥐들에 뒤섞여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 남현의 거지소굴, 개방의 분타가 있는 방향이었다.

“금 의원, 혹시 손을 잡자는 제안이 함정이라 생각하는 건가?”

“비슷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진실일 거예요.”

표사와 곽 표두가 가고 우리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일단은 여기 있는 사람들끼리 일을 진행해야 했다.

“함정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기한이죠.”

“결승이 시작하기 전에는 답을 달라 했던 그거 말임? 그게 뭐?”

나도 처음에는 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용약방에서 보았던 한 가지가 내 마음에 걸렸다.

“모용약방은 대회를 치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어. 미리 지어온 약도 없었고, 대회 내내 약을 지을 계획도 없어 보였지. 약 짓는 의원이나 보조는커녕 그곳엔 소수의 무인뿐이었어.”

그럴 거라면 굳이 공식 의원으로 참가할 필요가 없다.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욕만 먹을 테니까. 중원으로의 진출, 중원에서의 입지를 키우고자 한다는 모용가주의 말과는 정반대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모용가주의 진짜 목적이 뭔지 알고 있다.

이 대회에서 고수들의 정기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모용가주의 유일한 목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기를 결승 직후라고 판단했다. 달리 이유는 없었다. 어쩐지 그럴 거 같았다. 시작도 전에 판을 깨버리는 악당 같은 게 어디 있는가. 우리의 생각대로,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를 판단했다.

그래 봤자 사람일 거라는, 홍령에게 했던 말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용가주는 결승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어. 화산지회 개막식, 모용가주가 일을 결행하는 건 바로 그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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