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341화 (341/350)

341화

모용가주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

나는 적당히 단정하게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약속장소는 모용약방이었다. 연무장을 빙 둘러 태양의원의 정 반대편에 있는 곳이라 그리 멀지 않았기에 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도착하고 며칠이 지난 상황, 다른 이들도 조금씩 남현에 도착했다. 건물만 있던 동네에 조금씩 사람의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화산지회 참가자로 보이는 이들은 미리 연무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고,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뜨내기 상인들이 빈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발 빠른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자리를 펴고 앉아 이번 대회는 누가 우세할 거라느니 누가 승리할 거라느니를 두고 내기 판을 벌였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보아왔던, 어떤 행사나 축제가 있을 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나는 이 정경이 좋았다.

마냥 흥겹지만은 않다. 조금 다툼도 있고 서로 싸우고 심기가 상하는 일도 있지만 고작 그 정도뿐인, 그저 사람 사는 모습.

나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힘을 위한 양분으로 만들어버리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어떤 사람일까요?”

홍령은 저 멀리 보이는 모용약방의 정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물었다.

사실 모용가주가 초대한 건 나뿐이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홍령이 같이 가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다. 화령이 홍령을 보낼 때 내게 당부한 게 있었으니까. 홍령이 모용가주의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위험할 거라고 말한 걸 나는 잊지 않고 있었고 그 이유를 들어 거절했지만 홍령은 끈질겼다.

안 데려가면 몰래 잠입이라도 하겠다는 말에 나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홍령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화산지회가 개회하면 얼마든지 볼 수야 있겠지만, 남궁가주가 말했던 것처럼 민낯을 볼 수 있는 건 지금이 아니면 어렵겠지.

결국 홍령은 약간의 변장을 하고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나의 시녀처럼 꾸미고 인피면구와 화장으로 손을 보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 말을 한다면 어색한 게 티가 나겠지만 최대한 모용가주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기로 몇 번 다짐까지 받았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고,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또 그런 짓을 하려는 걸까요?”

“보면 알겠지. 그게 궁금해서 같이 가자고 한 거 아냐?”

“그야 그렇지만요. 보러 가니까 더 궁금해진달까. 원래 선물도 포장 뜯기 전이 제일 궁금한 법이잖아요. 기대한 게 들어 있을지 아니면 기대를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뭔가가 있을지, 아니면 실망할지, 뜯으면 다 아는 건데 말이죠.”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 질문에 홍령은 발을 멈췄다. 그리고 잠깐 하늘을 보고, 모용약방의 문을 보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을 쥐는 손이었다.

“아주 나쁜 사람이요.”

홍령이 그 손을 꽈악 쥐었다. 너무 힘주어 쥐어서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지나칠 정도로 안 가리는 사람. 공감하거나 연민할 여지가 전혀 없고, 미워하고 죽이고 싶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그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한 마디 한 마디가 뼈를 깎는 듯 아팠다. 나는 바들바들 떠는 그 주먹 위에 내 손을 덮어 감쌌다. 잠깐 그러고 있자 떨림이 천천히 가셨다. 홍령은 살짝 붉어진 눈가를 훔치며 물었다.

“당신은요. 당신 생각엔 어떤 사람일 거 같아요?”

“나는…….”

사실 난 딱히 모용가주를 상상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없었다. 내 안에 있는 그의 그림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사람. 근데 좀 힘이 세서 남의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사람.”

“뭐예요, 그게? 장난치지 말고요.”

“장난 아냐. 딱 그런 사람일 거 같아. 아, 거기에 머리도 조금 좋을 거 같아. 그래서 자기 생각이 다 옳다고 믿는 거지. 동정심이나 연민 같은 게 없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너무 마음이 약한 사람일 수도 있어. 근데 제일 가엽게 여기는 게 자기 자신인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일 거라고요? 뭐 미리 조사한 거 있어요?”

“아니. 거긴 내 정보망이 닿질 않아.”

개방하고 하오문이 애를 썼지만 그곳은 봉문 전 남궁세가만큼이나 조사가 어려웠다. 그곳에도 거지가 있고 주루와 기루가 있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중원인에게 매우 배타적이었고 모용가를 거스르는 걸 죽기보다 두려워했다.

결국 정보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사람을 얻을 수 없다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없다.

하지만 정보를 얻지 못하기에 얻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것도 있지.

“내가 틀렸을 수도 있어. 아주 악독하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남궁가주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인물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게 뭐죠?”

“그래 봤자 사람이라는 거.”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미워하기에는 편하지만, 진정 상대를 극복할 수는 없게 만든다. 아마 쓰러트려도 두려움이 남을 거고 다시 그 두려움을 먹는 자를 낳을 것이다.

반대로 진짜 이해할 수 없는 괴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두려워할 대상조차 안 된다.

“아마 뻔한 사람일 거야. 너무 이해하기 쉽고, 알기 쉽고, 그래서 더 두려운 사람이겠지.”

남궁가주가 말한 정직과도 일견 이어지는 말인 거 같다. 자신의 흠을 알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 더욱 강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당신 말을 들으니까 더 무서워졌어요. 다 이해가 가는데도 납득할 수 없는, 그런데 자신의 힘으로 납득시키는 사람이란 거잖아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그냥 잘못된 신념을 믿는 멍청이일 거라고 생각해버려.”

“멍청이라니, 가장 강력한 적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거예요.”

핀잔을 주면서도 홍령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모용약방의 대문은 열려 있었다. 약속 시간을 정한 만큼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 앞에 서 있던 무인이 내게 절도 있는 포권을 취해 보였다.

“금 의원님이십니까. 가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홍령이 함께 있는 거에 대해선 누구냐 묻지도 않는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솔직히 좀 긴장했는데.

“사람이 적은데.”

“약방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약만 지어서 주면 되잖아요. 대부분의 약을 지어왔을 수도 있고.”

하긴, 전생에도 병원과 약국은 규모 면에서 차이가 컸지. 동네의 소형 병원과 약국을 기준으로 봐도, 병원은 아무리 작아도 약국 면적의 세 배는 되니까.

인원도 병원은 의사에 간호사까지 최소 두세 명은 있는데 약국은 혼자서도 가능한 걸 생각하면 인원이나 짐이 적은 것도 이해가 간다.

이들이 쓰는 약은 사실 진짜 약이 아니기도 하고.

생기를 농축해 만든 붉은 내단, 그게 모용약방이 쓰는 만병통치약의 정체다.

하지만 조사해 본 바로는 무림맹의 모용약방은 그 외에도 일반 약을 조제해 팔았다. 그것만 팔면 분명 수상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을 테니까. 만드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니 사탕 뿌리듯 마구 뿌릴 수도 없겠지.

그걸 생각하면 여기도 어느 정도 물량을 가져오고 화산지회가 지속되는 동안 계속 약을 생산할 기반을 준비하는 게 맞을 텐데.

“저기 봐요. 후원이 있어요.”

모용약방은 우리와 같은 면적을 받았다. 하지만 병동 등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 자리가 많이 남았는지 보통의 장원처럼 멋들어진 후원을 꾸며놓았다. 너른 연못에 서 있는 누각을 보니 여기가 약방인지 모용가의 별장인지 모를 정도였다.

“좀 멋지긴 하네요. 우리도 별장 지을 때 이렇게 지으면 안 돼요?”

이걸 설계, 건설하는 데 금가장이 힘을 썼을 테니, 나중에 큰 형님을 만나면 청사진이라도 보여 달라고 하지 뭐.

“가주께선 저기 정자에 계십니다. 그럼 전 이만.”

길 안내를 맡았던 무인이 가고 나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길을 지나 정자에 발을 들였다.

“오셨는가?”

나긋하고 톤이 낮은 목소리, 소박하지만 깔끔한 차림새에 단정하고 선이 뚜렷한 중년인이 우리를 반겼다. 무인이라기보다는 강직하고 뜻이 있는 학사처럼 보였다.

“태양의원의 금태양이 모용가주를 뵙습니다.”

“가주라니, 그런 딱딱한 호칭은 관두게.”

모용가주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내게 손짓했다. 보니 그의 뒤에 가벼운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다.

여럿이 앉는 상이 아니었기에 홍령은 내 뒤에 시녀처럼 조용히 앉았고 나는 모용가주와 마주 보고 앉았다. 모용가주는 정갈한 태도로 차를 우려 내 잔에 은은한 향이 도는 찻물을 그득 담아주었다.

“술을 딱히 즐기지 않는다 들어서 다과를 차려봤다네. 어서 들게나.”

“……감사합니다.”

뭔가 분위기가 묘한데.

모용가주가 그냥 상상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일 거라고 얘기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 느낌이 나는 분위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상대는 나를 잘 모른다.

그는 내가 금왕의 아들이요, 금가장에서 독립해 현재는 큰 형님과 반목하며 신 금가장을 이끄는 의원이라고만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좌수검과 홍령의 아들이요, 정반합의 회주이고, 모용가주의 음모를 깨부수려고 하는 이들의 전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상황.

그렇다고 해도 내가 모용가주에게 이런 친근한 대접을 받을 입장은 아니다.

모용갑의 일이 있었고, 모용을도 나에 대해서 좋은 쪽으로 얘기하진 않았을 텐데.

“차가 입에 맞지 않나? 다른 걸 우려내도록 하지. 다과도 먹어보게. 중원인의 입에 맞을지 걱정이네만, 나름 우리 집안의 전통 과자라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가주님.”

“가주님은 우리 집안사람들이나 그렇게 부르는 거고. 내 아들 친구한테까지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있나.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게나.”

진짜 이 작자가 왜 이러지?

“저를 만나고자 하신 이유가 뭡니까?”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를 때는 정면 돌파가 답이다. 내 접시에 이것저것 먹어보라며 과자를 올려주던 모용가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할 용건은 없다네.”

“그렇다면?”

“우리 을이가 달리 친구가 없는 아이였는데, 자네 얘기를 그렇게 하기에 궁금해 부른 것이지. 그래, 이유가 있다면 그것뿐이네. 아들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할까나.”

보통이라면 긴장을 풀었겠지만 나는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맨 처음 모용을도 똑같은 방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친근하게, 좋은 녀석처럼.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방식도 똑같군.

“그렇군요. 녀석이 좀 부럽네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버지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났거든요. 많이 아껴주셨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죠.”

그 방식을 아니까 이번에는 당하지 않는다. 아니,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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