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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38화 (338/350)

338화

머리를 얻어맞은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한참이야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뭐 사실 뒤통수 맞은 거나 다름없긴 하지만.

“창천이 떠났다고요? 진짜요? 아니, 갑자기 왜 그런대요?”

열심히 서로 투닥거리다가 무승부로 승부를 마무리 짓고 호법을 서겠다며 달려온 홍령이 자초지종을 듣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내가 너무 안이했어.”

나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고민이 있었던 것처럼 창천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왜 같이 가고 있다는 착각을 했을까?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본 적도 없는데.

복수의 시작도 하지 못했다는 말.

복수의 대상이 누군지는 빤하다. 그를 실험대상으로 쓰고, 주화입마에 빠지자 그를 처분하려 했고, 겨우 살아남기는 했지만 모든 가족을 참살한 후 그 이후의 삶까지도 감시하고 조종한 존재, 무당이다.

“화산지회 예선, 거기서 녀석들을 한 번 물 먹인 건 창천에게 성이 안 찼나 봐.”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한 한 방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무당신의를 보살피기로 하면서 또 한 방 먹였고, 의맹회의에선 무당의 자존심을 뭉개버렸다. 내 입장에서도 무당에게 당한 게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이었다.

무당과 내가 은원이 있긴 했지만 그게 평생을, 삶을 짓밟힌 거나 마찬가지였던 창천의 한과 비할까.

거기에 무당에 한 방 먹였던 일들은 대부분 내 주도 하에서, 태양의원이 무당을 무릎 꿇린 일들이었다.

창천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해낸 것은 화산지회 예선에서 무당의 막내제자를 꺾었을 때뿐.

“그 이후 나는 반쯤은 무당과 손을 잡은 상태가 됐으니, 나한테 불만이 쌓일 만도 하지.”

무당신의는 자초지종을 알게 된 이후 창천에게 사과했다. 현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본문이 하는 일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눈 감았던 자신의 죄, 창천이 용서한다고 해도 평생 짊어지겠다며 무릎을 꿇었다. 나와 손잡기로 한 태율진인 쪽도 비슷한 얘길 했으니, 진정성이라는 걸 체크할 수 있는 스카우터 같은 게 있었다면 세 개 모아서 뿌요뿌요처럼 터졌을걸.

결국 중요한 건 본인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지만.

내 편에 서기로 한 무당파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과를 했지만 사실 그들은 창천의 과거와 깊이 관련된 이들도 아니었다. 무당신의는 그 일이 있기도 전에 면벽에 들어갔고, 현건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무당의 제자도 아니었으며, 태율진인들은 그런 중대사에는 배제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짜는 따로 있다.

현 장문인을 비롯한 무당파의 주류.

그자들하곤 나도 아직 제대로 얘기를 마무리 지은 게 아니긴 하지만.

반쪽이나마 괜찮은 사람들하고 손을 잡고 일을 도모해나가는 것으로 무당과의 일은 거의 다 처리됐다고 생각했으니…….

“어휴, 창천도 똑같네요. 하여간 사람들이 배부르고 등 따시면 딴생각을 한다니까.”

“내가 잘못한 게 맞아. 너무 그러지 마.”

“칼빵 맞아놓고 뭘 잘했다고 말대꾸예요! 입 다물어욧!”

“왜 그래. 내가 다쳐서 속상해? 그러는 너야말로 마의랑 박 터지게 싸워서 잔 생채기 잔뜩 달고 왔잖아.”

“난 좀 긁힌 거고요. 그리고 누가 다쳤다고 그런대요?! 스승님이 당신보고 그런 친선대련에서 막 져줘도 된다고 그랬어요?”

“나도 한 방 먹였어. 난 허벅지 좀 쑤셔지고 끝났지만 그 녀석은 경동맥을 내줬다고.”

“진짜요?”

“응, 검이 완전 달라졌더라고.”

창천이 떠나고 넋이 나간 상태에서도 나는 창천의 검을 계속 복기했다. 녀석은 달라졌다. 단순히 배부르고 등 따시니까 미뤄놨던 고민이 수면 위에 떠오른 게 아니었다.

“원래 엄청 수비적인 검이었잖아. 맞지?”

“그렇죠. 그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까.”

상처를 입으면 피가 멈추지 않는 체질. 무인에게는 치명적인 그 약점은 창천을 옭아매는 족쇄였다. 그 때문에 창천은 항상 수비적인 검을 펼쳤다. 공격에 임해도 정도 이상을 넘어가지 못했다. 과감한 한 수,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을 취할 수 없으니 제약이 많았다.

그랬던 녀석이 나와 홍령을 만났고, 체질 문제가 다소 개선된 이후 녀석의 검은 전보다 훨씬 과감해졌다. 그 결과가 무당이 주최한 화산지회 예선의 우승.

하지만 내 앞에서 펼친 검은 그 이상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배수진을 친 자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싸운다면 그럴까. 녀석은 당당과의 싸움에서도 그랬다. 어떤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를 비수를 몸으로 맞으며 숨통을 끊을 한 순간을 파고들었다.

“과감한 정도를 벗어났어. 차라리 목을 내놓고 싸운다고 하는 게 맞겠던데.”

“남궁 소가주가 가르친 제왕검법과 창궁무애검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건 아닐 거야. 너도 두 검의 성질이 어떤지 알잖아?”

“잘 알죠. 자신의 압도적인 힘을 기반으로 상대를 요리조리 갖고 노는 검인데 그건.”

무당신의의 거처를 찾아갈 때 함께했던 덕인지 두 사람은 꽤 친했다. 내공을 쓰지 않고 겨룬 것도 내가 아는 것만 한 손을 넘어간다.

나 또한 창천이 두 검을 익힐 때 종종 대련을 했으니 그 검의 성질을 안다.

제왕검법. 괜히 제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검이 아니다. 하수라면 맥없이 휘둘릴 것이요, 비등한 상대라면 무엇이든 꿰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의 싸움이 되는 검.

그러다 허점이 생기는 순간 창궁무애검을 펼쳐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사정없이 뭉개버려 격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남궁세가의 검이다.

“왕의 검이지. 근데 누가, 대체 어떤 왕이 자신의 목을 내놓으면서 싸우냐고. 어떤 왕이 선봉에 서서 다 책임지겠다고 해?”

이전의 방식과도 다르고 새로 익힌 검의 방식과도 다르다. 복수를 마치긴커녕 시작도 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돌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제 목숨을 도외시하는 방식이 그 복수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드물긴 하지만 장기에도 그런 전략이 있긴 하잖아요?”

“아니, 그건 장기가 아니라 체스잖아. 그리고 거기서도 왕이 아니라 여왕을 쓰지.”

“맞아, 장기 비슷한 놀이라고 했죠. 뭐 그러면 여왕이 된 건가 보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창천 녀석이 여왕이라니. 장난 그만 쳐. 난 지금 녀석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고.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단 말야.”

“맥 짚어봤다면서요. 건강상 문제가 아니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목숨을 걸면서까지 싸워서 이겨야 할 이유요. 내버려 둬요. 화산지회엔 오겠지.”

“하지만―.”

“창천은 어린애가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이 신경 쓸 것도 창천 하나가 아니고요.”

그래, 그 말이 맞다. 당장 내 상처도 그리 얕은 게 아니었고, 화산지회 준비를 위해 신경 써야 하는 일도 많았다. 아까 창천과 싸우다가 의원 병동으로 실려 간 당당도 보러 가야 했다.

다행히 당당은 크게 다치진 않았다. 그러니까 무림인들 기준에서는 말이다.

“미친놈, 검이 왜 그렇게까지 바뀐 거임? 하마터면 심장에 칼 박을 뻔해서 식겁해서 물러났음. 뭐 내놓고 사는 놈 같던데. 금태양 너, 그놈에게 화산지회 우승 못 하면 밥 안 준다고 함?”

여기저기 붕대를 칭칭 감고 있긴 했지만 이런 얘길 하는 걸 보면 멀쩡한 거겠지.

“나도 걔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오자마자 너도 봉변당했네.”

“차라리 잘됐음. 어차피 대회에도 참가할 거, 목표치를 잡았다 치면 됨.”

씩 웃는 당당을 보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나는 평생 가도 이 녀석들 같은 무림인은 못 되겠다니까.

“안 그래도 그 얘기 좀 하려고 들렀어. 정말 둘 다 하려고?”

“사천당가임! 그리고 당당임!”

이 자신감도 참 오랜만이군.

사천당가는 이번에 화산지회에 참가하면서, 동시에 태양의원과 연합해 공식 의원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다른 문파들이 자파 무인을 지원하기 위해서 공식 의원 자리에는 크게 욕심내지 않은 것과는 정반대였다.

뭐, 말이 연합이지 우리가 사천당가를 고용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형태지만.

“……사실 너니까 말하는 거긴 한데, 좀 무리긴 함. 그래도 우리는 이번에 둘 다 해내야만 함. 그래야 당가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음.”

당가가 두 가지 분야에 다 발을 걸치는 건 이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화산지회에 나가는 것은 당당 혼자긴 하지만, 녀석이라 더 문제지. 녀석은 무인으로서 검도 예리하게 가다듬어야 하고 가주 대행으로서 사천당가도 이끌어야 하니까.

모용세가도 공식 의원에 화산지회 참가를 겸하지만 그쪽은 세가가 망한 게 아니니까 전혀 다른 얘기고.

“그래도 너무 무리다 싶으면 말해. 우리 쪽이야 사람은 얼마든지 더 보충할 수 있으니까.”

“여유가 있음? 태양의원도 총력전 아님?”

“남해랑 빙궁이 와주기로 했어.”

남해태양궁과 북해빙궁, 새외의 두 곳은 원래 무림의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나를 통해서 참석 의사를 밝혔다.

내게 신세를 갚겠다는 뜻도 있었지만 뭣보다 무와 한, 두 아이의 의견이 주요하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그냥 내 아이 친구도 어떤 애인지 궁금한데, 그 둘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더욱 그렇지 않겠나? 둘 다 태양의원에 남은 친구들도 보고 싶어 하고, 마침 강력한 새외의 두 궁이 친목을 다질 기회도 되니 여러 가지 기회가 맞아떨어졌다 할 수 있겠다.

무림맹으로서는 새외의 두 강자가 대회를 빛내주는 데 이견을 말할 이유가 없다. 회원 중 반대가 좀 있었다고 듣긴 했지만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 찬성은 모용세가의 파벌이 주를 이뤘다. 새외의 힘까지 한 번에 흡수하겠다는 야욕을 감추지도 않는 거지.

어쨌든 나야 좋다. 새외는 그들의 방식대로 의술을 발전시켜 왔으니, 그들과 교류해 얻는 이득만 해도 이미 남는 장사다.

“어째 판이 점점 더 커지는 느낌임? 그 궁주들도 대회에 참석하는 거임?”

“그건 좀 자존심 상하잖아. 아마 대회 방식을 좀 수정하게 되지 않을까? 화산지회 상위 몇 명까지만 뽑아서 다시 천하오강하고 붙이는 방식 같은 걸로.”

“와씨, 그럼 운 좋으면 우승 못 해도 남궁가주나 모용가주 같은 강자들하고도 붙어볼 수 있는 거임?! 나 당장 수련하겠음!”

“야! 더 치료해야 한다니까!”

하여간 무림인이란 놈들은 못 말린다니까. 나는 순식간에 자리를 털고 연무장으로 달려간 당당을 보며 혀를 찼다.

내가 얘기한 건 하나의 안이었지만 뒤에서 손을 쓰고 있으니 아마 그런 식으로 결정이 날 거다. 모용가주도 그걸 바랄 테니까.

그래야 그 순간 그들의 계획을 한 순간에 묵사발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수련하고, 누군가는 준비하고.

화산지회의 무대가 될 섬서의 끝자락, 남현에 준비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가 한 장 한 장 쌓이며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화산지회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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