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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31화 (331/350)

331화

놀랍게도 금태양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모용가가 남궁세가에서 화산지회를 열자고 주장할 거라고까지는 맞추진 못했지만, 다른 유력한 후보를 들고 올 거라고 말했다.

기를 흡수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더 큰 명산과 명문대파를 노리는 것도 좋겠지만 무당은 어느 정도 일의 전말을 알아서 피할 가능성이 높고, 무당신의가 섬서사변과 관련된 일 때문에 자숙해야 하는 입장이다. 소림은 과거에 비해 성세가 기운 데다 얼마 전의 화재로 인해 일대의 건물들이 소실됐다. 여러모로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자신들과 친한 하북팽가나 진주언가, 황보세가 같은 곳이나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기 어려운, 여러 면에서 무난한 청성파 정도가 금태양이 예상한 후보.

남궁세가가 튀어나올 거라곤 금태양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금태양은 반드시 개회지는 ‘그곳’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섬서는 어떻소이까?”

나이가 지긋한 도사가 입을 열었다.

‘저자가 삼촌의 안배라고?’

금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발언한 도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가 믿을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섬서를 입에 올린 이는 바로 무당의 대표였으니까.

금태양은 안배를 해놨다고 말했지만 그게 어떻게 발휘될지에 대해서까진 금리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원래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야 한다지. 그것에 관해 섭섭하진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금태양보다 철두철미한 것이 바로 금건양의 피를 이은 금가장의 적통, 금리였다.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봤으니 그 누구도 그 뒤에 금태양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섬서라니. 그곳은 폐허가 되어 그 어떤 행사도 치를 수 없음이 자명한데, 어찌하여 그곳을 입에 올리는 것이오?”

다른 이들의 소란 속에서도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맹주가 물었다.

“별로 복잡한 계산 같은 건 없습니다. 화산지회의 의의를 생각하자면 그곳만큼 적격인 곳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애초에 첫 화산지회 때도 섬서를 고려했으나 사람이 발을 들일 수 없는 땅이라 무림맹에서 대회를 진행했소이다.”

“그건 이십여 년 전 얘기입니다. 요새 듣자 하니 중심부가 아닌 가장자리까지는 그럭저럭 오고 갈 수 있다더군요. 그곳에도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이 있어 뜻 있는 무인들이 이들을 돕는다 합니다. 어떻습니까, 소림이 그 일을 하고 있다지요?”

갑자기 초점이 소림에게로 모였다. 소림의 대표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답했다.

“아미타불. 진인께서 말씀하셨듯, 가장자리까지는 그럭저럭 실력이 있는 자들이라면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죽음의 땅이라 불릴 정도였던 곳이 그만큼 회복했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왕래가 가능한 수준이라면 그보다 명분에 적합한 땅이 없다.

“그렇다면야 나쁘지 않군. 섬서가 중원의 최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모두들 아실 터이고.”

“하지만 거긴 정말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점창의 대표가 불만 어린 목소리로 반문을 표했다.

그렇다. 섬서에는 아무것도 없다.

점창이나 곤륜은 그래도 나름 대문파가 있는 곳이라, 무한 같은 곳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나름 사람 사는 구색은 맞춰져 있다.

하지만 섬서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이제야 겨우 왕래가 가능한 땅이 되었으니 그간 사람이 살던 곳들은 폐허가 됐을 거고, 거기에 이 행사를 책임질 문파도 없습니다. 택도 없는 소립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도 되지 않겠소이까?”

“반대로?”

“어차피 어느 문파가 하든 화산지회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내로라할 고수들의 비무대회를 위한 연무장을 정비하고 몰려들 수많은 객들을 위한 숙소를 마련해야 할 게지요. 그걸 섬서에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진인의 말씀은, 이참에 섬서에 다시 기반을 만들어보자 이 뜻입니까?”

맹주가 무당 대표의 말을 요약했다.

“과거를 기억하고 무림에 경각심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시 그곳을 되살리는 것이 진정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 일을 누가 한단 말입니까? 무당이 하실 게요?”

“조력을 아끼진 않을 겁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무당에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 말에 곤륜의 대표가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돈이다.

조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건, 섬서에 무당이 돈을 풀겠다는 뜻이다.

‘무당 장문인을 설득하신 건 아닐 테고. 그래도 대표가 저렇게 돈을 쓰겠다 말하려면 그만한 뒷배가 있어야겠지. 무당의 재정담당이 삼촌과 뜻을 함께하기로 한 건가?’

금리는 그 배후를 정확히 짚어냈다. 장로회를 이끄는 무당의 재정 장로가 현건과 뜻을 같이해 금태양과 손을 잡은 주력인물이었다.

“우리 무당도 그렇지만, 다른 분들께서도 과거의 일을 외면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무량수불.”

무당을 주축으로 하긴 하지만 다른 문파들도 각출을 해야 할 거다. 명분이라는 게 그렇다. 특히 정파무림에서 명분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사실상 현 무림의 장이라 할 수 있는 무당이 이렇게 나오는데 주머니를 열지 않을 수 있는 문파는 없다.

“돈은 어떻게든 모일 테니, 이걸 가지고 화산지회를 주최할 문파만 있으면 되겠구료.”

맹주의 말에 모두들 눈을 빛냈다. 곤륜과 점창도 다시 기회가 왔다는 듯 앞다투어 저희들이 하겠노라 나섰다. 자파에서 치르는 것만큼 돈이 들어오진 않겠지만, 남의 돈 놓고 돈 먹는 기회를 놓칠 수 있으랴!

“기왕 섬서에 대한 제안을 해주셨으니, 무당이 어디 맡을 문파도 추천을 해보시구려. 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복안이 있으니 말을 꺼내신 게 아니겠소?”

“굳이 문파나 세가가 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호오, 그 말은.”

“점창도 곤륜도, 각기 후기지수들을 화산지회에 내보냈으니 그들의 기량이 잘 펼쳐질 수 있도록 보조하는 데만도 온 신경이 쏠리겠지요. 다른 문파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우리는 이미 화산지회를 치러본 경험자이자 이런 무림의 행사를 주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체가 있지 않습니까?”

무당 대표의 말에 맹주가 흐뭇하게 웃었다.

“무림맹 말이구료.”

“그보다 더 적격이 없겠지요.”

아무리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허허실실 맹주라지만, 그렇다고 제게 권력이 주어지는 일을 고깝게 생각할 이윤 없다. 하물며 이건 누구를 괴롭히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공정을 위해서라도 무림맹이 맡는 것이 타당하다.

“이의 있소이다!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 어찌 무림맹이 그 일을 맡을 수 있겠소이까? 무림맹은 문파가 아니기에 수중에 상단이며 표국을 두고 있지도 않고, 다친 무인들을 치료할 의원을 두고 있지도 않소!”

“어차피 그거야 다른 문파들이 해도 타 상단이나 의원들의 도움을 받지 않소이까. 그것 때문에 저들이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니.”

맹주가 둘째 줄, 셋째 줄에 있는 이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화산지회 규모의 일은 문파 하나가 독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건 무당이어도 마찬가지다.

“태양의원의 금 총관.”

“예, 맹주.”

“이번 대회의 공식 의원을 태양의원이 맡아주겠소이까?”

“그러겠습니다. 태양의원은 신의와 성실로 이번 화산지회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의원의 금 의원이 신 금가장이라는 곳의 주인이라던데. 기타 부가사항도 신 금가장에서 준비해줄 수 있소이까?”

“물론입니다.”

누가 봐도 무림맹이 이번 일을 맡기로 결정 난 분위기였다.

금리는 그제야, 무림맹에 도착하면 맹주를 찾아가 서신을 전하라는 금태양의 지시를 이해했다. 그 내용은 금리도 몰랐다. 맹주의 표정이 기묘하기에 보통 내용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무림맹을 주최로 밀어줄 테니 태양의원과 신 금가장을 공식 후원으로 선정해달라는 얘기였구나. 그때만 해도 무림맹이 주최를 할 가능성은 낮으니 맹주가 묘한 표정을 보였던 거다. 하지만 삼촌은 알고 계셨던 거겠지. 맹주의 마음속에도 야심이 있다는 걸.’

삼촌 금태양의 심계는 대체 얼마나 깊고 어디까지 넓게 퍼져 있는 것인가. 금리는 새삼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든 게 이리 쉽게 끝날 리가 없다.

“아직 섬서로 확정이 된 것도 아닌데. 너무 나가시는 거 같습니다, 맹주.”

“모용 공자.”

“저는 반댑니다. 섬서에서 화산지회를 개최하는 데 반대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금리는 조금 놀랐다. 거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숫자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과반수가 아니긴 했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반대로 이 안에 찬성하시는 분은?”

섬서에서의 개최에 찬성하는 이 또한 삼분지 일쯤이었기 때문이다. 금리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정확히 동수였다.

나머지는 딱히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기권.

그러나 사실상 반대나 다름없었다.

‘그래. 기를 흡수하는 게 목적인 모용세가라면 섬서에서의 개최를 반대할 만하다. 반대로 삼촌이 반드시 그곳에서 개최하고자 하는 이유도 알겠어.’

금리는 초조했다. 마땅한 비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금태양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관인 자신을 여기 보낸 건 이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태양의원에 와서 하루도 못 쉬었잖아. 가볍게 나들이나 다녀온다고 생각해.’

금태양은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둘째 줄 이하는 잠시 퇴정해주시오. 잠시 휴정하고 다시 시작합시다.”

맹주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말이 휴정이지, 첫째 줄에 있는 대표들을 설득해보려는 시도인 게 분명했다.

금리도 그를 도와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림맹주와 손을 잡고 태양의원과 신 금가장이 크게 도약하려는 상황, 각 문파의 대표들은 그녀를 고까워할 것이다.

[걱정 말고 나갔다 오시오. 이 건은 우리 무당이, 금 의원의 지시대로 처리할 터이니.]

무당의 대표가 전음을?

금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다른 이들과 함께 문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의 휴정 후.

“화산지회의 개최지는 섬서로 결정되었습니다.”

정말 금태양의 뜻대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 *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무림맹 회의에 다녀온 금리는 여태 복잡한 얼굴이었다.

내가 무당의 일부와 손을 잡았고, 그들이 섬서라는 패를 꺼내들었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으나, 그 다음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 모용세가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껍데기인 섬서에서 화산지회를 개최하는 데 동의했는가?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섬서 개최를 거부하는 모용을에게 그래야 하는 당위를 던져준 것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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