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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28화 (328/350)

328화

“자, 무거운 얘기는 그만하고! 다시 찾아볼까요?”

홍령은 회복이 빨랐다. 그녀가 활짝 웃는데 내가 계속 울상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도 어깨를 펴고 앞으로 나갔다.

“어?”

“잠깐, 홍령. 저기―”

거의 동시였다.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고 그 이상의 말 없이 곧바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절벽 아래 바닥에 착지하자 그곳에는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절벽에 붙어 있는 문이라, 누가 봐도 사람의 손이 닿은 곳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상당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디 보자, 아얏!”

“물러나!”

홍령이 철문에 손을 대자 손끝과 철문 사이에서 전기 스파크 같은 것이 터졌다. 순간 그 주변으로 아지랑이 같은 진언문이 나타났다 흐려진 것도 같았다.

“괜찮아?”

“조금 따끔한 거뿐이에요. 하지만 열고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이게 무당이 쳐놓은 결계인가 본데…….”

이대로 소가주도 부르고 현건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거기에 아무리 무당 본산이랑 거리가 있다고 해도 무당의 영역 내에서 오래 머무는 건 좀 찝찝하단 말이지. 녀석들이랑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나는 시험 삼아 손에 강기를 두르고 문을 건드려봤다.

파직―!

하지만 아까 홍령이 그러했던 것처럼 스파크가 튀고 나는 그 반탄력으로 뒤로 물러나야 했다.

조금 놀랐다. 손에 결코 적은 기를 불어넣은 게 아닌데.

“그 정도면 당신이 전력을 다해야 깨든 말든 할 거 같은데요?”

그건 곤란하다. 말이 전력을 다한다지, 그러고 나서 바로 회복되는 게 아니라고.

게다가 힘 대 힘으로 부딪치면 지나치게 요란할 게 빤하다. 그 정도 기의 충돌에 무당의 도사들이 달려오지 않을 리 없다.

당장 문 앞을 지키고 있지 않을 뿐이지(이런 결계를 쳐놨는데 문지기를 두는 건 낭비다. 안에 사람도 없는데.) 분명 좀 떨어진 곳에는 무당의 무인이 순찰을 돌고 있을 터.

“한 번만 더 시도해보고 안 되면 현건이 오길 기다리자.”

“박살 내게요?”

“음…… ‘힘이 세면 머리가 고생할 일 없다’는 식의 발언, 정말 오랜만인데.”

“왜요, 틀린 말은 아니라고요. 화산도 도가문파라 술법의 역사가 제법 길었고, 강력한 술사에게 무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했지만, 아예 막대한 내공으로 깨부술 수 있게 되면서 누구도 술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요.”

그렇게 말하니 홍령의 말대로 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당장 이런저런 문제가 걸리니까.

나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홍령이 “히이익!”하는 이상한 소릴 내며 후다닥 뒷걸음질로 도망쳤다.

“이제 귀신도 아닌데 이게 무서워?”

“반쯤은 귀신이라고요! 그냥 이 몸에 붙어 있는 거뿐이지. 게다가 그건 보통 검이 아니잖아요!”

그래, 이건 소림 방장으로부터 받은 소림의 신물, 팔부신검이다.

파마와 파사의 기운을 갖고 있어 내가 가는 길에 도움이 될 거라고 대여 받은 검.

“검 자체는 좋은 검 같긴 한데. 으으, 내가 귀신만 아니었어도 한번 쥐어볼 텐데요. 얼마나 손에 짝짝 감길지, 어휴, 부러워. 하여튼 그거라면 전력을 쓰지 않아도 전력에 준하는 힘을 낼 수 있긴 하겠네요.”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나는 팔부신검에 강기를 불어넣는 대신, 그냥 그 검을 철문에 갖다 댔다.

지직―!

이번에도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진언문이 흐리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스파크가 튀는 위치가 달랐고, 진언문도 아까와는 다른 글자였다.

파직, 파직―. 스파크는 곧 문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마치 팔부신검에서 문으로 번개가 내리치는 거 같았다. 팔부신검을 둘러싼 푸른 진언문이 더욱 선명해졌다. 홍령은 그 자체로 견디기 힘들다는 듯 뒤로 더 물러났다.

좋아, 먹힌다.

나는 아예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는 약간의 강기를 불어넣어 사선으로 그었다.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하지만 눈앞에 변화는 없었다. 문은 그대로였다. 당연하다. 내가 벤 것은 문이 아니니까.

나는 팔부신검을 갈무리하고 문에 손을 갖다 댔다.

더 이상 스파크는 없었다. 손에 힘을 주고 밀자, 문이 열렸다.

“좋아, 됐다.”

“우와. 와아! 뭐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그렇게 기를 많이 불어넣은 거 같지 않았는데? 과연 소림의 신물! 아, 이럴 때 짱이라는 말을 쓴댔죠? 이것도 너무 옛말이라고 했던가요?”

나는 그냥 씩 웃었다. 한번 찍어본 거다.

파마와 파사의 기운이 담긴 검. 팔부신검은 그 자체로 불가의 도력이 담긴 검이다.

그리고 이 술법이라는 것도 결국 도력에 기반해 펼쳐질 터.

홍령이 말한 게 내공 대 술법이라면 나는 도력 대 도력으로 붙은 거다.

무당이 아무리 공들여 결계를 쳤어도 소림의 신물에 비할 바겠는가?

나중에 술법과 대결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으니 그 능력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였달까.

그래도 나름 무당 본산의 도사들이 친 결계일 텐데 이렇게 종잇장처럼 잘라버릴 줄이야…….

검을 꺼내자마자 홍령이 기겁을 하며 뒤로 도망친 이유를 알겠군.

“좋아, 들어가 보자.”

안에도 무슨 결계가 겹겹이 쳐져 있진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결계는 그거 하나뿐이었다.

동굴은 깊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고 나서야 조금씩 생활의 흔적이 보였다.

아무리 고행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생활은 해야 하니까.

“자, 잠깐만요. 멈, 멈춰요.”

홍령이 나를 붙잡았다. 안 그래도 멈추려고 하긴 했는데.

“이빨 딱딱거리는 거나 멈춰.”

“내, 내가요? 무슨 이빨을 딱, 딱 거린다고?”

동굴의 가장 깊은 곳, 아마도 무당신의가 수련에 임했을 자리에 다가설수록 홍령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세워두고 다시 팔부신검을 꺼냈다.

이번엔 무당의 결계가 아니다.

“무당신의가 급하게 자리를 뜨면서 혈교의 술법이 그대로 자리에 남아 있었나 본데.”

사람의 생기까지 빨아들이는 혈교의 술법.

무당신의는 그것을 함께 연구했기에 잘 알고 있었고 속죄의 의미로 자신에게 적용하며 이십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홍령이 갑자기 이빨을 딱딱거릴 정도로 떨고 있는 건 그 술법의 기운을 느껴서일 거다.

그녀는 섬서에서 그 술법을 직접 몸으로 겪었으니까.

말하자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증상 같은 것이겠지.

“이래서 무당이 결계만 쳐놓고 저 안에 있는 걸 건들지 않았나 봐.”

저 너머, 동굴의 끝.

그 자리에는 영물의 내단만 한 붉은 구슬이 있었다.

아까 무당의 결계를 벨 때는 별 반응이 없던 팔부신검이 기이한 검명을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산속 사찰의 고요한 경내에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 그 운율을 따라 흐르는 독경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맑고 신선한 공기와 은은한 향냄새를 맡은 듯 머리가 개운해졌다.

찰나, 허공에 가느다랗고 붉은 선들이 뒤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거미줄을 흩어버리듯이, 알렉산더가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베어버렸듯.

―어디선가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린 것도 같다.

“끄, 끄, 끄, 끝났어요?”

아차.

나는 서둘러 팔부신검을 집어넣었다. 혈교의 술법을 마주한 팔부신검이 발휘한 힘은 홍령에게 치명적일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홍령은 눈을 부릅뜬 채로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홍령이 곁에 있을 땐 웬만해선 꺼내면 안 되겠군.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눈앞의 저 구슬이다.

나는 술법이 있던 자리로 저벅저벅 걸어가 구슬을 집어 들었다. 한 도인의 평생 공력이 담긴 그것의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마음을 생각하자니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닌 건가?

“술법이 펼쳐져 있던 자리는 딱 옛날 섬서 같네요. 당신은 괜찮아요?”

홍령은 그 안에 발을 들였다가 다시 불편한 얼굴로 물러섰다.

맞다. 이 술법은 단순히 인간의 기만 빨아들이는 게 아니다. 자연지기 또한 그 영향을 받는다.

그 영향이 아직도 섬서 일대에 남아 있어서 무림인들도 쉬이 그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지 않나.

“좀 불편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내 기가 빨리는 거 같진 않은데?”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섬서에서 태어나 기허 상태의 몸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가? 이건 깊이 파고들어 볼 만한 일이었다. 어쩌면 큰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제 존재감을 전혀 숨기지 않은 고수였다.

“소가주?”

기세를 감추지 않은 그녀는 검을 뽑아든 채 경계하는 기색으로 우리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금 의원, 홍령. 둘 다 검을 뽑아라.”

“무슨 일입니까?”

“무당이 오고 있다.”

그 말에 나보다 홍령이 먼저 반응했다. 호신을 위해 챙겨준 검을 뽑아든 그녀는 방진을 짜듯 앞서 섰다. 나는 검을 뽑지 않고 일단 남궁은하에게 물었다. 홍령 옆에서 팔부신검을 뽑는 것은 위험을 동반하니 어쩔 수 없다.

“숫자는? 위협적입니까?”

“열 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감히 우열을 장담할 수 없는 고수들이다. 무당의 일대제자들이지 싶다. 젊은 사람은 단 한 명, 현건 도장이 껴 있더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니 그대들의 발자국이 있어서 서둘러 달렸다.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걸 거다.”

“그 의리도 없는 자식!”

홍령이 잔뜩 날 선 목소리로 현건에게 욕을 내뱉었다.

상황상 현건이 우릴 배신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결계를 부순 건 고작 일 각 전이다.

결계가 깨졌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전생의 최첨단 IOT 기술 비슷한 게 탑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무당의 고수들이 아무리 발이 빨라도 무당 본산에서 여기까지 그 안에 달려오는 건 무리다.

그들은 우리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움직였다.

“애초에 삼 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여유롭다 싶긴 했는데.”

그 시간이 미리 무당 본산에 가서 우리를 잡을 계획을 세우고 움직일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니.

우리가 삼 일에 맞춰서 여기 도착했더라면 무당의 고수들이 펼친 함정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할 뻔하지 않았나.

“현건 도장은 협을 아는 도인이라 생각했거늘. 본인의 오해였나 보군.”

“괜찮습니다. 저도 그렇게 오해했으니까요.”

조카사위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둘째 치더라도 녀석은 정정당당하게 무당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은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녀석에게도 의맹회의에서 무당이 물을 먹은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건가? 사전에 우리의 계획을 다 알고 있었는데도?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일이 진행된 후 가슴이 느낀 건 달랐나?

우리는 동굴 안에 있고, 적들은 다가온다. 당장 빠져나간다 한들 무당의 앞마당에서 추격전을 하는 것은 불리하다. 차라리 이 안에 생긴 기허지대를 이용해 뭔가 함정을 파는 게 나을지도―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찰나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온다.

“금 의원님,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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