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326화 (326/350)

326화

우리는 빠르게 달려 남궁은하가 말한 그 장소에 도착했다.

열대우림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빽빽한 숲과 그 가운데 맑은 물이 고인 연못은 내 기억 속 그곳과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었지만-

맞다, 여기다.

나는 표정을 굳히고 일대를 둘러보았다. 남궁은하의 말처럼 이곳의 식생은 기이했다. 새싹이 푸릇푸릇 돋아나고 있는 것 정도야, 철모르는 식물들은 그럴 수 있다 치겠지만, 사계절의 꽃이 피어 있고 모든 것이 절정기의 생동감을 뽐내고 있는 것은 이상했다.

“이십 년 넘게 소림에서 지냈지만 이런 식물을 본 적이 없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표정을 굳혔던 현금이 당황한 기색이 되어 낯선 꽃에 다가갔다. 형광색이라 할 만큼 색이 선명한 그 꽃은 꽃이라 부르기엔 다소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걸 본 적이 있다.

“남해태양궁 쪽에나 피어 있던 건데. 어쩌다 이런 곳에?”

전생이었다면 이상기후가 심각하네 해외 야생종 반입 문제를 철저히 감독해야 하네 소리가 나올 상황이었지만 여기는 그런 거 없는 무림이고, 이건 전혀 다른 걸 의미하는 상황이었다.

그 우거진 수풀 사이로 무언가 부시럭대더니 주먹만큼 작은 다람쥐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귀엽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땅한 작은 짐승이었지만 그 눈빛에 서린 기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영물?”

우리가 당황한 사이 그 영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그렇다고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다람쥐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현금이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일대에 다람쥐 영물이 나타난 건 처음이다. 그런 기미조차 없었는데.”

영물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영물이 될 정도의 존재는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 영리해 그냥 짐승일 적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정상이다.

사람의 말을 이해할 줄 알고, 곤경에 처한 인간을 도와주기도 하며, 그 높은 지능으로 오히려 인간을 골리거나 잡아먹기도 하는 존재. 그런 남다른 짐승들이 오래도록 살아 공력을 쌓다가 되는 것이 바로 영물인 거다.

그러니까 형님의 말은 저 다람쥐 영물이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솟아났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이 주변에 가득 찬 기 때문이겠죠.”

나는 불편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남궁은하가 소림의 성지가 아닐까 어림짐작한 게 이해가 될 정도다.

내공수련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호흡만 해도 기가 몸에 쌓일 거 같은 짙은 기.

보통 사람도 여기서 며칠 지내면 아픈 것이 낫고 단전까진 아니어도 제법 생기 넘치는 사람이 될걸?

보통 사람도 그런데 무림인들은 어떻겠는가. 이런 공간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 명당 하나 잘 찾으면 그 사람은 무인으로서의 인생이 바뀌기도 하니까.

소림이나 무당 같은 대문파가 숭산, 무당산 같은 명산에 있는 것도 절대 우연이 아니고.

“어찌하여 그런 얼굴이지. 무림인이라면 응당 이런 곳을 만났을 때 삼을 본 것보다 기뻐해야 하거늘. 그대도, 무승께서도 표정이 좋지 않군.”

“이게 그냥 자연지기면 당연히 놀라고 기뻐할 텐데요. 그런 게 아니거든요.”

이곳은 폭주한 모용갑이 터져나갔던 곳이다.

몸 안에 벽력탄이라도 품고 있었던 듯 제 안의 내공이 폭주해 큰 폭발을 일으켰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 형님이 내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면, 제 온 공력을 바쳐 보호하지 않았다면, 나도 팔 하나쯤은 걸레짝이 됐을 게 분명하다.

“숲이 되어서 처음에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자세히 보니 폭발했을 때의 지형 그대로네요.”

녀석이 폭발하면서 이 일대는 반구형의 깊은 크레이터가 생겼었다. 거기에 어디선가 샘솟은 물이 차올랐고 그 주변으로 숲이 형성된 거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항주에 다녀오기 전이었으니까. 물론 그 다음에 태양의원의 밀린 일도 처리했고, 당가에도 다녀왔고, 의맹회의도 개최하러 뛰어다니긴 했지만, 그게 산산이 파괴된 한 생태계를 그 이상으로 회복시킬 수준의 시간은 아니었단 말이다.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느냐?”

나는 잠시 고민했다.

형님이야 소림의 제자니 말해도 되겠지만, 이걸 남궁은하에게까지 얘기해도 괜찮을까?

“내게 말하는 것이 곤란한가 보군. 잠시 자리를 비켜주도록 하지.”

“……아닙니다. 넓게 보면 남궁세가도 결코 좌시할 일은 아니니까요.”

“가문과?”

그래. 이참에 남궁세가도 정반합에 넣어버리자.

모용가주의 음모를 생각하면 남궁세가도 절대 남이 아니다. 진실을 공유한다면 더더욱 우리와 강하게 결집하리라.

“자세한 뒷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설명하겠습니다만. 일단 이 장소는 모용가의 옛 적장자, 모용갑이 죽은 자립니다.”

“모용 소협에게 죽은 형이 있다고 듣긴 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기이한 붉은 약을 써 사람들을 고쳤죠. 그걸 먹기만 하면 증상이 어떻든, 무슨 병이든, 원인이 뭐든 간에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낫는 명약이었습니다. 영단이나 내단과 같아서 무림인이 복용하면 굉장한 공력 상승을 꾀할 수 있겠더군요.”

“그런 것이 있다니, 놀랍군. 모용가의 의술인가?”

“글쎄요. 하지만 이 만병통치약도 명백한 단점이 있습니다. 과하게 복용할 경우 쉽게 주화입마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내단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를 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네, 그렇죠. 근데 이건 복용자의 성품도 바꾸는 것 같더군요. 더 폭압적이고, 거칠게. 마치 사파의 무리나 마두들처럼요.”

“……!”

그제야 남궁은하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주변을 꺼림칙하게 둘러보는 것도 같았다.

“저는 최근 믿을 만한 정보원을 통해 이 약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게 됐습니다.”

내 손이 남궁은하를 가리켰다. 남궁은하는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하다가,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사람?”

“네. 그 약은 사람의 생기를 모아 만드는 것입니다.”

약이라 부르기도 찝찝하다.

화령은 그 장면들 속에서 술법을 통해 사람의 생기를 빼앗아 붉은 돌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단처럼 생긴 것도, 붉은 가루도 다 그걸 가공한 거겠지.

“그렇군. 모용갑은 그걸 과복용 하다가 주화입마에 걸렸고 결국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라. 허면 모용갑이 복용했던 그 생기가 이곳에 남아 자연에 흡수되었다는 뜻인가.”

“아마도요.”

아까까지만 해도 명당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눈을 빛내던 남궁은하가 이제는 나나 형님과 같이 찝찝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연지기로 승화되어 혈기 어린 느낌은 사라진 듯하지만 그 내력을 알고 나자 이곳에서 수련을 할 생각은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었다.

“끔찍하군. 모용갑은 어쩌다 그런 것을 손에 넣게 된 것이지. 그대는 알고 있나?”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드리죠.”

“이걸 그대로 두고 가는 게냐.”

“어쩌겠어요. 파낼 수도 없고. 관리는 소림에서 해주세요. 이제 반야원도 없는데, 약수터처럼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시든가요. 아픈 이들을 위해 쓰인다면 그래도 희생당한 이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지 않겠어요?”

형님은 갑자기 떨어진 찝찝한 명당에 머리가 복잡해진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내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남궁은하에게 이 오래된 얘기를 전하고 남궁세가를 완벽한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도 그 일에 비하면 둘째 문제였다.

나는 지금까지의 일을 간략하게 그녀에게 전달하면서 서둘러 소림으로 달렸다.

“그런 비사가, 남궁이 봉문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어찌 그런 일이!”

“더 해줘야 할 얘기가 있는데, 미안합니다. 지금은 다른 볼 일이 있으니 나중에 더 설명해줄게요. 좌수검!”

소림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좌수검을 찾았다. 아니, 찾았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는 홍령의 옆에 붙어 있을 테니까.

역시나 그는 홍령이 있는 전각 밖에 서 있었고 나는 그를 보자마자 달려가 마구 말을 쏟아냈다.

“찾았어요! 섬서를 회복할 방법, 찾았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 섬서를 회복할 방법이라니?”

“모용갑 녀석이 도움을 줬어요. 아니, 도움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아무튼, 당장 무당으로 갈 겁니다!”

너무 흥분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좌수검은 흥분한 나를 보고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어디서 찬물 한 바가지를 가져왔다. 그걸 꿀꺽꿀꺽 들이켜고 나자 겨우 차분하게 말할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모용갑이 죽고 그 자리에 남은 생기가 자연지기로 환원이 됐다라.”

“하지만 이게 우연일 수도 있으니 한 가지 더 확인을 해볼 겁니다.”

“그걸 확인하는데 어째서 무당인 것이지. 차라리 무림맹에 터를 잡았다는 모용약당을 찾아가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아뇨. 거긴 아직 건드려선 안 돼요.”

거기서도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을 게 분명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목표를 위해서는 모용가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을 필요성이 있다.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어선 안 되는 것이다.

“무당, 정확히는 무당신의가 면벽을 하던 곳을 찾아갈 겁니다. 무당신의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혈교의 술법을 제 스스로 적용했어요. 그 결과 무당신의는 과거의 공력을 잃고 범인보다 못한 몸이 됐죠.”

“그래. 그런데 그게 무슨 연관이―.”

“무당신의가 잃은 공력, 그건 대체 어디 갔을까요?”

“……!”

“그 술법은 생기를 결정화하거나 누군가에게 흡수시킬 수 있죠.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모용가주는 그 술법을 통해서 막대한 공력을 얻었고, 모용갑도 그랬어요. 두 사람에게 어떤 차이가 있어서 모용가주는 그걸 받아들였고 모용갑은 터져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용갑이 터진 자리, 그 생기는 파괴된 자연이 게걸스럽게 받아먹었죠.”

“만약, 모용가주를 섬서에서 죽일 수 있다면―.”

“그 기가 섬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몰라요. 하지만 확인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모용가주가 그 자리에서 죽기만 하면 되는지, 아니면 모용갑처럼 기로 인한 폭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를 죽이지 않고 섬서에 기를 돌려주는 방법이 있을지도.

왜 죽이지 않는 방법을 고려하냐고?

어떤 이들에게는 죽이는 것보다는 살려놓는 게 더 큰 복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

뭐, 그건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의 얘기인 거고.

“당장 무당으로 가겠습니다. 태양의원의 현건에게 연락을 넣어주세요. 그 녀석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거 같으니.”

“알겠다. 그건 그렇고―.”

내 말 뜻을 알아들은 좌수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뭔가 말을 이어가려는데.

갑자기 전각이 벌컥 열리더니, 안에서 홍령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어나왔다.

“홍령? 아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나? 어디 아픈가? 당황하는 사이 홍령은 맨발로 달려와 내 팔을 잡고 내 뒤에 숨었다.

“왜 이제 왔어요! 나 혼자 두고 어딜 다녀온 거예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요!”

혼자……?

아니, 난 홍령을 혼자 둔 적 없는데?

좌수검도 있고, 그 옆에는 과거 화산의 무인들도 두엇은 남겨뒀었는데.

“저 아저씨는 나만 보면 무서운 표정 짓고, 진짜 확 튀어야 하나 고민했다고요. 저 사람 대체 뭐예요?”

어?

좌수검을 다시 못 알아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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