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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24화 (324/350)

324화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남궁세가와 맞붙었던 그 모용가주는 사실 전대 모용가주라는 말이군.

평생 라이벌이었던 남궁가주를 이기기 위해서 훨씬 뛰어난 자질을 가진 아들을 죽이고 그 몸을 빼앗았다.

남궁가와 모용가가 붙은 게 섬서사변 직후였지?

시기를 따져봤을 때 섬서사변 전에 제안이 들어왔고, 그 이후 대결이 성사되었으니…….

[그래요. 전대 모용가주는 그 대결을 위해 아들의 몸을 빼앗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취해 자신의 힘으로 받아들였죠. 그래서 그 싸움의 명분은, 명목상 죽은 전대가주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오랜 경쟁 관계에 있던 만큼 나름 정도 있었을 테니 남궁세가는 감쪽같이 속았을 거예요.]

남궁세가가 아니라도 그 비사를 모르면 속을 수밖에.

그런 상황이었으니 남궁세가도 섬서사변이라는 일에 어찌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봉문을 해버렸을 것이다.

외부 정보는 계속 확인했으나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고, 남궁은하는 그 일과 관련해 내게 사과했다.

사실 남궁세가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무림의 거두로서 책임이 있다나 뭐라나.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모용가주는 졌다.

남궁세가의 이 인자까지는 그 압도적인 공력으로 꺾을 수 있었으나, 남궁가주만큼은 꺾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기기 위해 자기 아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정도의 인간이 거기서 멈추었을까?

장면은 또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도 수많은 시신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좀 달랐다. 아까는 피로 붉어진 공간이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기이했다.

화령은 그곳에 있었다. 쪼그리고 앉은 채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시신을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작게 중얼거리던 소리가 한층 또렷이 귀에 박혔다.

“미안해요, 사저. 이번에도 실패했어…….”

나는 화령이 쓰다듬던 시신을 보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홍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그때 내 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날카로운 인상의 장년인.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맞아요. 저 사람이 모용가주예요.]

“육체를 구성할 수는 있지만 살아 있게 하는 것까진 무리인가.”

모용가주는 화령의 옆으로 저벅저벅 걸어와 그녀가 쓰다듬던 육체의 팔을 잡아 들어올렸다.

육체는 구성되었지만 심장이 뛰지 않는, 피와 살로 구성된 마네킹이나 다름없는 것을 그는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휙 던졌다.

그리고―

무언가 반짝임과 동시에 홍령의 얼굴을 한 그것이 산산조각 났다.

“가주!”

“어차피 재활용할 때 조각내야 할 것을. 수고를 덜어줬다 생각하시게.”

그는 무심한 눈으로 검을 거두고 부들부들 떠는 화령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대가 큰 진전을 이루긴 했지만 내 인내심이 그리 길진 않네. 서둘렀으면 해. 그자가 죽기 전에 결판을 내야 하니까.”

고요한 호수 같던 눈에 일순간 감정이 일렁였다. 분노인지 열정인지, 집착인지 순정인지 모를 복잡한 불꽃이 타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강한 육신을 창조하게. 타고난 체질이 결코 남궁세가에 지지 않는 그런 몸으로. 살아 숨을 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태산을 가르는 힘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몸, 이 정신과 영혼을 실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게.”

“……일단은 살아 움직이는 몸을 만드는 게 우선이에요. 강한 몸은 그 다음이고요.”

“그래. 강한 몸은 그만큼 강한 기운이 필요할 테니.”

모용가주는 비릿하게 웃고는 돌아 나갔다. 화령은 조각조각 난 시신을 그러모았다.

“내가, 내가 반드시 살릴게요, 사저.”

[그리고 나는 성공했어요. 살아 움직이는 몸을 만들었죠.]

이번엔 장면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홍령’이 들어가기 전 화령 옆에서 움직이던 그 몸이다.

[하지만 그 몸은 다른 혼을 튕겨냈어요. 그 때문에 모용가주에게는 보고하지 않았죠. 결국 혼을 넣어야 완성되는 일인데 그게 불가능하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그 몸에 ‘홍령’이 들어갔다.

그들의 연구가 완성된 거다.

[그날, 우리는 무너지는 동굴에서 벗어나 멀리 도망갔어요. 모용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멀리, 또 멀리.]

모용세가로 도망간 게 아니라?

[그제야 정신이 들었으니까요.]

화령이 쓰게 웃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죠. 처음에는 억울함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모용세가가 그 모든 걸 주도했다는 걸 알고도 나는 사저를 살리는 데 미쳐 있었죠. 그래요, 미쳐 있었어요. 제대로 사고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내 원수를 돕는 연구를 했어요.]

새삼 씁쓸했다.

한 사람의 욕심이 만든 참사가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박살 낸 것인지.

[사저가 돌아왔을 때, 나는 깨달았죠. 그녀를 절대 모용가주에게 들켜선 안 된다는 걸.]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

그 앞에서 ‘홍령’은 연구대상일 뿐.

산산조각 났던 그 육체처럼 파헤쳐질 것이 빤하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어요. 내게도 감시가 붙어 있었거든요. 최선을 다해 도망쳤지만 결국 붙잡혔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용가주가 직접 온 건 아니라 틈을 만들 수는 있었어요.]

홍령이 내게 홍매를 보낸 것이 그때다.

[나는 미친 척하며 감시자들을 내게 집중하게 했어요. 그리고 홍령을 도망치게 했죠. 무사히 당신에게 갈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런데 어째서 혼자 보낸 거지?

[내가 있다면 모용가주가 홍령을 쫓지는 않을 테니까.]

혼이 들어갈 수 있는 육체를 창조하는 건 결국 화령의 술법이다. 홍령은 그 결과물일 뿐.

모용가주에게는 홍령보다 화령이 필요하다.

[나는 모용가주를 도울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가 사저를 찾아낼 테니까.]

새로운 몸을 만든다.

모용가주가 몸을 실을, 체질의 굴레를 벗어난 몸.

그리고 그 강인한 공력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강한 몸.

그걸 만들려면 또다시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섬서사변 때처럼 또 한 지역을 희생시키겠지.

그걸 막아내는 것이 우리,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일 거다.

[부탁할게요. 사저를, 홍령을―.]

그렇게 말하며 화령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 * *

정신을 차린 후, 나는 모두에게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전달했다.

다들 믿을 수 없는 기색이었지만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허면 모용세가가 이번에 노릴 곳을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겠구료.”

“뭐, 그건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개방과 하오문의 정보력이면 못 찾을 게 뭐가 있겠어?”

“여태 모용가 놈들이 원흉인지도 몰랐는데, 여기서 정보력 운운하면 쪽팔리지 않나?”

“아니, 이 할망구가?”

심각한 얘긴데도 이 두 사람은 지치지도 않고 티격태격하는군. 덕분에 무겁게 가라앉던 분위기가 좀 살아나긴 했지만.

“장소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 같다만.”

“제 생각도 그래요.”

나는 좌수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개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그걸 어찌 아냐? 우리한테 말 안 한 뭐가 있어?”

“들은 건 전부 말했어요. 그걸 기반으로 추론해보면 답을 알 수 있죠.”

“잘난 척은. 그래, 그 추론 좀 말해봐라. 난 머리가 나빠서 모르겠으니까.”

“모용가주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죠. 지난번에는 섬서를 제 힘으로 흡수했지만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했어요. 같은 방법을 쓰진 않을 겁니다.”

“더 나은 방법을 쓰겠지.”

“더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방법을요.”

“보통 사람이 아니라 강자들의 기를 흡수한다면 더 효과적일 거다.”

“그런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면요.”

도개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모르면 그건 바보지.

“화산지회!”

“네. 일부러 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궁세가가 봉문을 풀면서 열리게 되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는, 차려진 밥상이 생기는 셈이죠.”

“남궁가주를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남궁가주의 기까지 흡수하려 할지도 모르겠군. 미친 자들의 생각은 어디로 튈지 모르니.”

“큰일이구료. 이 문제를 무림맹에 회부해 모용세가를 무림공적으로 공표해야겠소이다.”

소림방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정석이긴 하다.

모용가주가 저지른 행각은 정도를 지나쳤다. 사파를 넘어서 무림공적으로 공표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흘흘, 고리타분한 정파 놈들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지. 이 노인네는 잘 모르겠구만요.”

그래. 의맹회의 때 그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이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당장 모용세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해도 진실에 대한 근거를 요구할 것이고, 그 다음엔 모용가주를 불러 청문회를 하려고 하겠지.

그렇게 할 경우 모용가주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다.

“일단 내버려두죠.”

“그게 무슨 말이오, 시주. 내버려두다니.”

“섣불리 건드려 도망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간다고 착각하게 해야 해요. 그렇게 화산지회 장소로 불러들인 후, 결정적인 순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범인을 붙잡은 것처럼.

“모든 것이 모용세가의 음모였다는 걸 모두가 알아차린 그 때 붙잡아야 합니다.”

소림이 말한 방식은 말하자면 예방이다.

가장 효과가 좋지만, 동시에 그 효과를 소수만 알아차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효과가 모르는 다수는 왜 그렇게 했느냐며 예방을 실천한 자를 공격한다.

전생에도 그런 일은 흔했다. 서버에 딱히 문제가 없는데 유지보수를 위한 직원이 왜 필요하냐며 서버실 직원들을 전원 해고시켰는데, 한 달 후에 그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미친 듯이 전화가 왔다는 실화가 있을 정도니까.

“……약간의 희생은 감수하겠다는 뜻이오?”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말하진 않겠습니다.”

희생을 당연시하는 건 맞지 않다. 우리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위해 행동하는 거니까.

백신을 통한 예방접종을 하는 거와 비슷할까?

약해진 병원균을 집어넣어 질병 반응을 일으키고, 그걸 통해서 면역체계에 병원균을 학습시킨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나지 않게. 비슷한 일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게.

“경각심을 줄 정도면 충분합니다. 최대한 희생은 피할 겁니다. 은 파파.”

“예, 도련님.”

“술사들을 좀 찾아주겠어? 술법에 조예가 있다면 도사나 스님이라도 좋아. 그 술법을 파훼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방장께서도 찾아주시지요.”

“……알겠소이다. 술법을 파훼할 줄 알아야 희생도 적을 테니.”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던 소림방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도 찾아보지. 그리고 모용가 놈들이 어찌 움직일지 바짝 따라붙어 보마. 놈들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찾은 놈을 쫓아다니는 건 우리 거지들이 잘해!”

도개걸이 크게 호언장담했다. 개방의 힘으로 놈을 찾아내지 못한 게 꽤나 자존심 상한 모양이었다.

“허면 하오문이 할 일이 없으니, 과거 금가장에 접근했던 혈교의 행적을 중심으로 모용가와 관련이 있는 부분을 찾아보지요. 훗날 이를 입증하려면 필요할 터이니.”

“좌수검은 무인들을 준비해주십시오. 분명 무력을 써야 하는 상황이 있을 겁니다.”

“알았다.”

모두의 시선이 한 점에서 모였다. 더 이상 적은 모호하거나 막연하지 않았다.

형체가 뚜렷한 상대가 가는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그 앞에 우리가 준비한 함정이 놓일 거다.

마침내,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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