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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15화 (315/350)

315화

정작 대화를 나눈 남궁은하와 나는 덤덤했는데, 정작 제갈다영이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세상에, 세상에!! 저는 중간에 연결만 해드려서 이렇게까지 자세한 건 몰랐는데요, 과거의 나, 너무 잘했네요! 이런 일을 당사자들 아니면 어떻게 알겠어요? 하, 남궁세가 봉문의 비밀을 이렇게 알게 되다니, 거기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다니! 제갈세가의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네요!”

……진짜 제갈세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반쯤은 관련자라 알려준 거긴 하지만, 이걸 가지고 자기들 이익을 취할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당장 호기심이 해결됐다고 저렇게 뛸 듯이 기뻐하다니.

“그러면 이제 남궁세가는 체질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건가요? 부러워라, 제갈세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뇨, 아직 거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음? 끝나지 않았다니요? 남궁세가가 태양의원의 일을 거들어주기로 한 걸로 거래는 끝난 게 아닌가요?”

“그게 거래 조건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내 말에 남궁은하의 표정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서찰로는 그 이상의 조건을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갑자기 말을 바꾼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런 사내는 아닌 거 같았는데. 좋다. 아쉬운 것은 우리 쪽이니. 무엇을 더 원하지?”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받을 보상은 그거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남궁세가의 등장으로 의맹회의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태양의원의 준비에 사대신의로 화제 몰이를 했고, 남궁세가로 방점을 찍었으니까.

남궁세가의 병을 태양의원이 고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정회원 자격도 땄으니, 이제 태양의원의 앞길을 막을 존재는 없다.

더더욱 거물 환자들이 우리를 찾을 거고 가맹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의생 지원도 넘쳐날 거다.

아까 본회의가 끝나고서 태양의원과 교류를 할 수 없겠냐고 말을 흘린 문파만 다섯이 넘으니, 당분간 그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거다.

그게 곧 태양의원의 질적, 양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이상 얻어낼 수 있다면 얻어내는 것도 좋지만, 뭐든 쉬엄쉬엄, 소화를 할 시간이 있어야 할 거 아닌가.

남궁세가와 손을 잡는 건 당장의 이익만 볼 일이 아니다.

더 먼 미래를 봤을 때, 지금 정도로 관계를 다져나간다면 아마 평생 먹거리가 될걸?

그러니 지금 요구하는 건 그런 쪽의 이득이 아니다.

“남궁세가의 혈족병을 치료할 방법은 나 혼자 알아낸 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며 ‘무슨 쌩뚱 맞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창천에게로 말이다.

“이 녀석의 고생 어린 과거가 없었다면, 내가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도, 치료 방법은커녕 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녀석에게도 그만한 보상을 해주시죠.”

처음 제갈다영을 통해 남궁세가의 제안이 왔을 때부터, 나는 창천 녀석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뭐, 녀석은 태양의원과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 녀석의 이득이 곧 내 이득이라고 봐도 이상하진 않지만.

“그대의 말이 맞다. 하지만 창천룡은 우리에게 원하는 게 없어 보이는군.”

음…… 그래 보이긴 한다.

아마 속으론 ‘보상이고 뭐고. 그 과거는 이미 지난 거고. 그 고생의 원인인 남궁세가와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다.’ 따위의 말을 지껄이고 있을 것이다.

굳이 원하는 게 있다면 빨리 이 자리에서 꺼지는 거 정도가 아닐까?

쯧쯧, 저 녀석 저렇게 자존심 세울 줄 알았지.

“뭐, 겉으로 보기엔 그렇죠. 하지만 제가 저 녀석을 좀 알거든요. 창천도 바라 마지않는 게 분명 있습니다.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금태양, 무슨 헛소릴 하는 거냐.”

“창천이 원하는 것은 강함입니다.”

녀석이 눈을 빛내는 것은 오로지 강자와의 대결뿐.

그 상황에서 차오르는 아드레날린에 미쳐 있는 걸까?

아니, 녀석은 강자를 선망한다.

그런 일 따윈 겪지 않을 강함을 눈앞에서 보고 싶어 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녀석은 강해지고 싶어한다.

“제가 대신 보상을 정해드리죠. 녀석에게 남궁세가의 비전을 전수해주세요.”

“?!”

“남궁세가에서 가장 강하다는 두 개의 검법. 창궁무애검, 그리고 제왕검법. 그 정도면 녀석의 과거에 충분한 보답이 될 겁니다.”

“금 의원님, 미쳤나요?!”

내 제안에 기겁한 건 남궁은하가 아니라 제갈다영이었다.

“그건 대대로 소수의 정예에게만 허락된 무공이에요! 가주와 소가주, 그리고 직계 중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입증한 세가원만이 그 검을 사용할 수 있다고요! 창천 소협의 실력이 뛰어난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방계인데!”

거참. 남궁세가의 검을 내놓으라 했는데 왜 제갈세가가 난리람.

뭐, 같은 세가라 세가의 암묵적 규율 같은 데는 비슷하게 반응하기야 하겠지만.

정작 당사자는 침착하잖아.

“다영, 그만하면 됐다.”

“언니!! 뭘 그만해요? 너무 말 같지도 않은 말이잖아요! 금 의원님이 세가 출신이 아니라 잘 모르시나본데―.”

“그만.”

남궁은하가 나직이 입술을 달싹였다. 작은 목소리임에도 제왕의 풍모가 깃들어 있었다. 제갈다영은 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을 꾹 닫았다.

“여기 오기 전, 나도 그대에 대해 제법 알아보았다.”

“그랬습니까?”

“어렵진 않았다. 근 몇 년간 중원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 중 하나였으니. 헌데 그대에게는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었지.”

그 정보들을 떠올리는 듯 남궁은하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맑은 호수 같은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그대는 장사치의 아들이다. 항상 놀라운 판을 벌였고, 그 속에서 이득을 취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대와 거래를 한 이들 중 큰 손해를 본 이가 없더군.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얻었다. 단적으로 보기엔 손해인 듯해도 장기적으로는 이득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지. 나는 그대의 이번 제안에도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닌가?”

“복안이 있긴 하죠.”

“허면 나를 설득해라. 최종 결정은 가주께서 하시겠지만, 나조차 설득하지 못할 이유라면 가주께서도 듣지 않으실 테니 이 자리에서 거절하면 그만이다. 허나 나를 설득한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남궁세가가 손해를 보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종이를 한 장 꺼내고 벼루에 색색의 먹을 갈았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단순히 말로 하기보단 그림을 그리며 보여주는 편이 빠르다.

검은 먹으로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별을 그린 후, 각 꼭짓점에는 오행의 이름을 순서대로 쓴다.

“오행도?”

“네, 오행도입니다. 각 오행이 어떤 것을 생(生)하고 어떤 것을 극(剋)하는지 그린 그림이죠. 각 세가의 체질적 약점은 이 오행 중 한 가지 기운의 기허 때문에 벌어집니다.”

붉은 먹으로 토(土)라 쓰인 오행에 십자를 긋는다.

“남궁세가는 토의 기허가 체질의 문제를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기운을 채워야 문제가 사라질 겁니다. 무당은 곧이곧대로 토 기운을 채우는 내공심법을 만들어내 창천에게 가르쳤죠.”

붉은 먹이 십자 위를 둥글게 칠했다. 글자가 완벽하게 지워질 때까지.

“이론상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어야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의 순환이죠. 내공은 순환을 통해 강력한 힘이 됩니다. 무당의 심법으로 쌓인 토 기운은 순환하지 않고 그대로 고여 버렸기에 녀석의 체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남궁세가의 방법은, 화생토 상생순환의 방법을 내공심법에 접목했을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는 흐르는 기이기에 내공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겠죠. 맞습니까?”

“……맞다. 놀랍군.”

“무당은 첫 접근부터 잘못됐어요. 하지만 이미 창천의 몸이 내공심법에 맞춰 구성되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녀석이 목숨을 잃을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간단한 처방으로 녀석의 몸을 바꿨습니다.”

나는 화살표를 그렸다. 토에서 금으로 향하는 화살표. 순환의 방향이다.

“녀석의 몸에는 토 기운이 순환하지 못하고 쌓여 있었죠. 그걸 금으로 순환하게 방향을 틀었습니다.”

“……!”

단순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내공심법으로 열어야 하는 혈도를 침과 뜸으로 여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그나마 홍령이니까 했지, 지금 나 혼자 하라면 절대 불가능하다.

지금 말하는 것도 사실상 홍령이 연구한 내용을 내가 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런 식으로 일하는 거 정말 오랜만인걸.

“그간 남궁세가는 강력한 화의 기운을 흘려 토 기운을 살렸죠. 그 강한 화 기운이 모용세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던 이유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모용세가는 자연스럽게―.”

“금 기운의 내공심법을 쓴다는 거군.”

“맞습니다. 하지만 우열마저 이겨버릴 정도의 강한 힘이 화 기운을 눌러버리면, 토 기운의 공급이 급격하게 끊기고, 남궁세가의 본질적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겠죠.”

피가 멈추지 않는 병.

그 대전에서 숨을 거둔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아마 그 이유 때문에 명을 달리했을 거다.

정답인 모양인지 남궁은하의 표정이 어두웠다.

부단한 노력 끝에 얻어낸 체질 극복의 비기가 깨지고 다시 근본적인 문제로 회귀한 남궁세가.

그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방법을 찾기 위해 봉문을 했지만, 이십 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저 문만 걸어 잠갔을 뿐.

“하지만 이 두 가지 내공심법을 결합한다면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

“말은 쉽군.”

“쉽죠. 저는 다 방법이 있거든요.”

홍령이 이미 연구를 마쳐놨다.

토 기운만을 만들어내는 무당의 내공심법도, 원류는 남궁세가의 심법이다. 그걸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궁세가 심법에 대한 가정을 세운 홍령은 두 개를 결합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심법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창천은 그 심법을 익혔습니다. 이미 있는 거에서 나아간 거니까 부작용도 거의 없었죠. 그 과정에서 창천의 몸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태양의원은 그 내용도 전부 기록해놨습니다.”

“―!”

당가에 녀석을 데려가지 않은 건 사실 이 이유가 제일 컸다.

비급 같은 걸로 만든 건 아니지만, 홍령이 만든 심법의 구결은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창천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 녀석의 내공은 전에 비할 바 없이 성장했다.

아마 남궁세가가 이 결과물을 가진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거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남궁세가의 무공, 그 또한 남궁세가의 기존 내공심법에 기반을 둔다는 거죠.”

“……새로운 내공심법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겠군.”

“네, 흐름을 거의 다 손봐야 할 겁니다. 시행착오도 필요하겠죠.”

“그러니까 그대 말은, 창천 소협으로 그 시행착오를 해보라?”

맞다. 그 말이다.

이것이 내가 남궁세가를 상대로 한 거래에서 계획한 win―wi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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