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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311화 (311/350)

311화

무당신의가 치매로 의심받으면 지금까지의 발언 또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천하제일 신의도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사실이 무당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순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보다는 나을 테니, 무당에게는 최악보다는 차악인 셈.

황금신의가 무당의 청운진인과 은밀히 눈을 마주치는 걸 보아하니…….

저 인간, 설마 돈을 이중으로 처먹은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금신의라면 그럴 수 있다.

그의 별호처럼 신의라는 것을 황금에 팔아넘기는 존재가 바로 저 인간이니까.

그 신의가 그 신의가 아니긴 한데.

……하아. 이건 내 실수다.

의맹회의에 참석해달라고 했지 내 편을 들어달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물론 그랬다면 돈을 더 불렀겠지.

하지만 나는 그냥 사대신의를 한 자리에 모으는 걸로 화제몰이를 할 생각이었고 황금신의를 더 써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여기 부르는 것만으로도 얼마를 지불했는데, 그 이상은 낭비였다고.

“황금신의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무당신의께서 과정을 소상히 밝히지 못하신다면 우리도 그 이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

몇몇이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청력이 보통이 넘는데 숙덕거린다는 건 대놓고 들으란 거지. 면면들을 보아하니, 아까 태양의원 승격 찬성에 손을 들지 않은 자들이다.

여기서 분위기가 흔들리면 안 되는데.

정회원 승격이야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그 이후 분위기를 밀고 나가려면 여기서 좌초되어선 안 된다.

뭐라도 얘기를 꺼내서 황금신의의 말이 거짓이라고 몰아붙여야―

“야.”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찰나, 누군가 먼저 선수를 쳤다.

“네가 봤냐? 봤어? 왜 걸고 넘어져?”

건방진 태도로 일어나 황금신의를 쿡쿡 찌른 이는 마의였다. 황금신의는 못마땅한 듯했지만 어쨌든 몸을 돌려 그녀에게 대꾸했다.

“그러는 자네는 봤나?”

“응, 난 봤는데?”

마의가 당당하게 말하며 활짝 웃어 보이자 그 아름다움이 만개한 꽃처럼 피어났다.

진짜 저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 걸까? 좀 걱정되긴 했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일어난 건 아닌 거 같았다. 어쨌든 저 사람도 제갈세가의 사람이고, 내 요청에 여기까지 와줬고, 뭐, 내 대모기도 하니까.

한번 믿어보자.

“무슨 헛소린가? 자네가 그걸 어떻게 봤다는 게야?”

“아하하하, 이 아저씨 웃기네. 나 마의잖아!”

마의는 경박하게 웃어재끼더니 이내 품에서 잘 접힌 서찰을 꺼내들었다.

“그간 나한테 접근한 애들이 꽤 있었는데. 수상한 인신공양을 한다는 애들이 많더라고. 그 중에 혈교가 있었게, 없었게?”

“……!”

“이건 내가 어쩌다 보니 손에 넣은 혈교의 보고서인데, 한 이십 년쯤 된 거거든? 여기 뭐라고 적혀 있냐면, 큼큼, 무당의 운자 배 중 운형이라는 자를 포섭―.”

“무당이 책임을 지겠소이다!!!!”

와우. 내공을 싣지 않고도 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라니.

“우리 무당은! 신의께 접근한 그 간악한 자를 찾아내고 그 경로를 탐색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철저한 관리를 진행할 것이외다!”

청운진인이 목에 핏대를 세우다시피 외쳤다. 그러니까, 무당이 신의의 말이 맞다고 인정해버린 거다.

마의가 들고 있다는 혈교의 보고서가 ‘진짜’니까.

저게 공개되면 무당신의 개인이 뒤집어쓰는 것 이상의 파급이 무당에 향할 거다.

무당신의 치매설을 들고 나왔던 황금신의는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마의는 씩 웃으며 보고서를 다시 품에 넣고 내게 윙크했다.

[어때, 나 한 건 했지. 대자님?]

아, 예.

물론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었지만, 고맙다고 했다간 저 괴팍한 이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보답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삼생초에 대한 연구 결과를 쥐여 줘야겠군.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에 오는 대가로 그걸 주려고 했지만 겸사겸사다.

“그럼 다시 원래의 의제로 돌아가도 될까요?”

“크, 크흠. 그게 좋겠군요.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태양의원의 정회원 승격에 동의하시는 분?”

청운진인이 빨리 화제를 돌리기 위해 투표를 재진행 했다. 한 번 의혹이 있었으니 다시 하는 거야 맞는 거고, 그래 봤자 결과는 똑같을 거니까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만장일치?”

“전부 손을 들다니, 허허.”

아까는 손을 안 들었던 팽가 소가주라든가, 내가 무당의 파벌로 분류한 이들이 전부 손을 들고 있었다. 전부에는 청운진인도 포함이었다.

청운진인이 찬성에 손을 들라고 전음을 보낸 게 분명했다.

하여간 여우 같다니까.

무당신의가 내게 의탁하고 있으니 잘 좀 봐달라고 이러는 거다.

어차피 그들의 찬성이 없어도 정회원이 되는 건 문제가 없어서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만장일치라.

이어서 진행할 일에 탄력을 받긴 하겠군.

“감사합니다. 태양의원은 앞으로도 의술로서 협과 의를 지켜나가며 의맹의 정회원의 자격에 부끄럽지 않게 운영해 나가겠습니다.”

내 소감과 함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청운진인도 복잡한 표정으로, 그러나 위기는 넘겼다라는 얼굴로 박수를 쳤다.

“그러면 다음 의제로―.”

“정회원이 되었으니 의맹회의에 정식 안건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청운진인이 다음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내가 가로채는 게 더 빨랐다. 다들 내게 이목을 집중하고 있기도 했고.

“정식 안건 제기라니. 어떤 의제를 말하시는가, 금 의원?”

내게 호의적인 아미파의 대표가 내 말을 받아주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의맹에서 다루는 사안 중, 무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무림맹의 안건으로 올라간다고 들었습니다.”

“!”

“아까 무당신의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섬서사변에서 화산은 엉뚱한 누명을 썼다는 것이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금 의원의 말이 맞소이다.”

무당신의가 긍정을 표했고, 나는 또다시 한 편에 쌓아놨던 책자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건?”

“섬서사변의 진실을 그 안에 전부 담았습니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이의제기가 아닌 이상, 이십여 년이나 된 세상의 인식을 바꾸긴 어렵다.

그냥 목소리를 내면 분명 외면하고 무시하고 힘으로 짓누를 것이 분명하기에.

이를 위해서, 굳이 의맹 정회원이라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생존자, 목격자, 관련자의 증언이 전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읽어주십시오. 그 안에 알려지지 못한 진짜가 담겨 있습니다.”

모두들 쉽게 책자를 펼치지 못했다. 그만큼 무거웠다. 공동파의 대표가 잠시 고민하더니 책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금 의원. 분명 의맹의 의제 중 무림에 관련된 것은 무림맹에서 다루도록 되어 있네만, 그것은 대부분의 의맹 회원들이 무림맹과 의맹에 동시에 가입한 문파들이기 때문이야. 허나 태양의원은 무림문파가 아니지 않나?”

이거 봐라.

정식으로 제기를 했음에도 외면하고 싶은 얘기가 나오자 우회전법을 쓴다.

이미 시간이 지나버렸으니까.

이십여 년이나.

대부분의 사람에겐 ‘굳이’라는 느낌만 줄 뿐이다.

원인제공은 하지 않았어도 간접적으로 이득을 본 이들이라면 더 그렇다.

거기에.

의맹까지는 허용하겠지만, 그 이상, 무림의 일까지 간섭하는 건 허락지 않겠다는 태도.

내게 찬성표를 던진 이들도 썩 얼굴이 좋진 않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 불쾌한 듯한 당신들의 표정이 잠시 뒤 어떻게 변할까?

“의맹과 무림맹에 소속된 무림문파가 정식으로 제기하면 가능합니까?”

“그렇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공동의 대표가 주변을 둘러보자 대부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청운진인은 그마저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빠르게 내저었지만 주류는 아니었기에 관심을 받지 못했다.

“좌수검! 들어오세요!”

“좌수검? 그가 왜?” “잠깐만, 그는―!”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사람들이 쑥덕거렸고, 이내 문이 열렸다.

어디를 급히 다녀온 듯 상기된 얼굴에 땀까지 흘리고 있는 좌수검이 회의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서오세요, 좌수검. 다녀오신 일은 잘 해결됐나요?”

“……그래.”

“그러면 지금부터는 좌수검이 아니라, 다르게 불러드려야겠군요.”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를 이렇게 불러보는 건 처음이다.

“27대 종남파 장문인 휘소, 무림맹과 의맹의 일원으로서 종남이 안건을 제기하시겠다 들었습니다.”

그가 종남의 제자인 건 알았지만, 종남의 장문인인 건 나도 이 일을 준비하면서 알았다.

섬서사변은 화산에게만 미치지 않았다.

종남 또한 섬서에 위치한 문파.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종남은 피해가 극심해지기 전에 대피하는 데 성공했고, 종남산의 지맥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피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때 흩어진 제자들이 삼분지 일. 새로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종남을 떠난 제자가 삼분지 일.

그리고 남은 삼분지 일의 제자가 남아 좌수검을 따르는 이들이 되었다.

이후 종남은 과거의 성세를 되찾지 못했다. 타 문파와의 도움도 받지 않았으며, 그러니 교류도 없었다.

봉문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이름만 남았다는 평을 받던 그 종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본인은 지난 이십여 년간 섬서사변의 진실을 쫓아 전 중원을 헤매었소. 그 과정에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만났지. 여기 있는 여러분 중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도 있을 거요.”

“……정반합.”

누군가 그 이름을 작게 흘렸다.

알고 있어서 말을 한 게 아니라, 책자를 본 거다.

책자의 이름이 바로 그러했으니까.

“나와 종남의 제자들, 그리고 개방과 섬서에서 살아남은 무인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그 일에 매진했고, 그것이 결과물이요. 그 과정에서 하오문과 소림의 도움도 있었지.”

그제야 몇몇이 책자의 내용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말한 것으로는 무림의 일이 되지 못했지만, 좌수검이 나서자 이것은 비로소 무림의 일이 되었다.

정반합의 존재는 지금까지 비밀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드러내는 것이 훨씬 활동에 유리할 것이기에 이 자리를 만들었다.

“태양의원 또한 정반합의 뜻에 함께합니다.”

나는 좌수검의 옆에 섰다.

내가 먼저 물꼬를 튼 이유가 이거다.

정반합이 먼저 나섰다면 무당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다.

그들의 힘으로 일을 흐지부지 만들었을 거고, 뒤에서 보복을 가했겠지.

이 사안이 불편한 문파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방치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태양의원 정회원 승격을 위해 의맹회의를 열었고 그 과정에서 무당이 한 짓을 무당신의의 일로 축소시켰으며, 뒤이어 정반합을 내세웠다.

“지금 밖에선 이 내용의 요약본을 배포 중입니다.”

“뭐, 뭣?!”

“많이 모였을 때, 많이 알려야죠. 안 그렇습니까?”

정반합의 뒤에 내가 있다.

신 금가장의 힘과 재력이 있다.

당신들은 더 이상 과거를 모른 체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 혈교라는 집단은 정파무림의 거두였던 화산을 멸문시키고 그 일대를 파멸로 몰아갔으며, 지금도 몰래 그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건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정파무림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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