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310화 (310/350)

310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당신의의 발언에 그 누구보다 놀란 건 무당의 청운진인이었다. 태청의원의 장이자 무당에서 의장로를 맡고 있는 그는 거의 자리에서 발사되듯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무당신의는 그런 청운진인의 반응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화산의 마비산 속 산공독이 섬서를 황폐화시킨 주 원인이라 알려져 있지만, 산공독은 사람, 그것도 내공을 쌓은 무림인에게나 효력이 있소이다. 아무리 독하게 만들어도 보통 사람들의 생기, 더불어 자연지기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지. 그 부분에 대해서 여기 태양의원과 연구한 바가 있으니 한번 읽어보셨으면 하오.”

그 말과 함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편에 쌓아두었던 책자를 참석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시킬 사람이 있으면 남에게 시키겠는데, 잔심부름 시키자고 누굴 들일 수 있는 회의장도 아니니, 쩝.

“한 가지 덧붙이자면, 태양의원에서 써온 마비산에는 산공독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아 그 부분에선 안전합니다. 이 연구는 산공독을 따로 제조해 진행한 거고, 겸사겸사 태양의원 마비산에 산공독 성분이 있는지 검사도 진행했으니 확인하시면 됩니다.”

뭐, 그 참에 말도 거드는 거지.

사람들은 책자를 받아들기 무섭게 내용을 훑었다.

당가에 다녀온 직후 연구에 착수한 거라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꽤 빠듯했지만, 목적이 확실했기에 다행히 제때 끝마칠 수 있었다.

산공독의 농도별로 무림인과 일반인, 자연지물의 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세세하게 기록했는데, 장 의원의 약학기술로도 생기를 없앨 정도의 산공독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화산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 이건 말도 안 되네. 가짜 연구야!”

당연히 무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청운진인은 연구 보고서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참고로 이 연구에는 아미파의 제자분들도 함께하셨습니다. 양진, 양원, 그리고 공은 스님께서 실험을 진행하셨으며, 연구 결과에 대해 한 치의 거짓이 없음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앞에 맹세하였습니다.”

이러려고 아미파와 교환 연수를 진행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도움이 됐다.

“크흠, 진인께서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불도를 어겼다 말씀하시는 게요?”

“아니, 본도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라―”

“우리 아미가 명성 등에선 무당에 뒤처질지 모르나, 불자로서의 마음가짐까지 뒤지진 않습니다. 이 결과에 더 이상 의심을 가지신다면 이 일을 장문인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미타불.”

“크흠, 그런 것이 아니외다. 무량수불.”

청운진인이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말을 흐렸다. 안 그래도 난감한 상황에 처한 무당인데 여기서 적을 더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당이 아니라도 한 명쯤은 더 뭐라도 걸고 넘어질 줄 알았는데. 예를 들자면, 금지된 산공독으로 연구를 한 것도 잘못이 아니냐라든가. 근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조용했다.

아까 내 자격을 걸고 넘어진 팽가 소가주는 연구 보고서에 코를 박다시피 하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내역을 읽고 있었다. 그러지 말라고 앞부분에 요약발췌까지 해줬는데. 아니면 이 이상 끼어들면 안 되겠다 싶어 일부러 심취한 척 하고 있는 건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청성의 대제자여, 말하시게나.”

“산공독이 아니라면 대체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고요한 분위기 속 청성의 대제자가 돌을 던졌다. 파문이 일었다. 그에게 이런 역할을 맡긴 건 아니었는데 참 시의적절한 질문이었다.

“약이나 독이 아니라 술법이었다네.”

“안 됩니다!”

“진인, 침착하시고 들어나 봅시다.”

“신의께서 하시는 말을 무당이 이처럼 막는 연유가 무엇이오? 밝혀지면 안 될 비사라도 있는 겝니까?”

“그, 그건―.”

청운진인이 악을 썼지만 다른 이들에 의해 말문이 막혔다. 청운진인의 무공이 조금만 더 고강했으면 아예 이 자리를 쓸어버리고 홀로 무림공적이 되는 길을 선택했을지도. 무림인들이란 대체로 그런 성격이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도, 비록 각 문파의 의원을 대표해 온 것이지만 그 실력 또한 뒤처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청운진인은 허망한 얼굴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무당신의의 말을 막을 수 없다.

“……만물의 기를 흩어버리는 술법. 그런 것을 연구하던 자들이 있었소이다. 그들은 내게 자신들을 혈교라 했지.”

“혈교……!”

회의장 중 몇 명, 특히 소림의 대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혈교에 포섭된 모용갑으로 인해 대웅전을 제외한 소림의 전각들이 화마에 소각된 것이 몇 달 지나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는 아니 되었으나, 나는 실로 개인적인 호기심에 그들의 연구에 동참하였소이다. 그게 섬서사변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지.”

“……!”

말라비틀어진 버섯처럼 쭈그러들었던 청운진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혹스러움 가득한 눈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무당신의는 이 일에 대해서 모든 혐의를 자신이 뒤집어쓰겠다 요구했다.

제대로 사실을 밝혀야 오히려 죗값을 치르고 바른 길로 갈 거라고 설득했지만 노인은 완고했다.

무당의 이름을 짊어진 자신이 죄상을 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에게 경고가 될 거라 했다.

무당신의는 단순히 무당이 욕을 먹지 않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속죄하고, 끝까지 용서받지 못하기를 바랐다.

설령 용서를 받게 되더라도 그들 스스로 그 사실을 잊지 못하도록.

자신이 가장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가 되기로 했다.

“진작 세상에 고하고 오해를 풀어야 했지만, 나로 인해 무당이 입을 피해가 먼저 생각난 소인배요. 내가 한 것이라곤 그 긴 세월 동안 폐관에 들어가 면벽하고 속죄하는 것뿐이었지. 그 과정에서 가지고 있는 내공 또한 소진하여 범부가 되었으니, 적게라도 죗값을 치른 것이지.”

무당신의의 자조 어린 말에 회의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한때 천하오강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는 고수가 속죄로 인해 내공을 잃었다니. 그 상세한 내막을 말하진 않았어도 그 사실이 무림인들에게 주는 무게는 남달랐던 모양이다.

“허나 이 내 목이 남았소이다. 그들에게 속죄할 수만 있다면 이 목숨을 거둬가도 좋으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한일뿐이구려.”

무당신의가 스스로 무당의 양심을 자처하며 모든 것을 뒤집어썼지만 사실 나는 그리 탐탁지는 않았다.

저들이 무당신의라고 잘라내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을뿐더러, 내가 지금까지 겪은 무당은 그러고도 남을 이들이 아니었던가.

무당신의의 도움 없이는 지금 상황을 전개할 수 없었기에 받아들였을 뿐이지.

그나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서로 미심쩍은 눈을 주고받는 것 하며, 하얗게 질린 청운진인을 힐끔거리는 걸 보면, 다들 무당신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는 거 같았다.

이게 청운진인이 말한 경고겠지.

세상의 눈이 무당을 향할 테니 항상 속죄하고 자중하라―

신의는 여기서 만족하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지.

녀석들에게 당한 게 얼만데.

“저는 이 일에 무당의 잘못도 없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약속한 바와 다른 논조로 끼어들자 무당신의가 놀라 나를 보았다.

걱정 마세요. 신의와의 약속을 깨려는 건 아니니까.

“신의께서 자신의 의지로 술법 연구에 참여했다고는 하나, 무당에서 자파 무인의 동태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크나큰 문제 아닙니까?”

아깝다, 아까워.

여기 청운진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당 장문인이 있어야 했는데.

“혈교가 접근한 것까진 그럴 수 있다 치겠지만, 연구를 위해 지속적으로 접촉한 걸 보면 혈교 인사가 무당 내부에 침입했거나 혹은 혈교에 포섭된 자가 있었단 뜻일 겁니다.”

“금 의원의 말이 타당하군요. 어찌 보면 이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무당의 관리 소홀일지도 모릅니다, 무량수불.”

공동파 대표가 뜻밖의 지원사격을 쏘았다. 하긴, 지금 흘러가는 분위기상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자리의 모두는 각 문파에서 의원에 한 발을 담근 사람들이 아닌가.

다들 눈치가 있다 보니 이게 무당신의 개인의 일이 아닌데 스스로 덤터기를 쓰겠다 나선 것을 알아차렸을 거고, 무당신의가 그렇게 한 배경에 무당을 지키려고 한 의도가 있는 것쯤은 눈치를 챘을 테니, 이렇게 돌려서라도 무당을 타박할 수밖에.

무당신의의 의도와는 달리 무당이 받아야 할 눈총이 더욱 따가워진 셈.

의맹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파로 돌아가면 무당의 비사는 이미 공공연한 안줏거리가 될 테니, 무당의 이미지 추락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그,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장문인과 상의를―.”

청운진인이 진땀을 빼며 수습해보려 했지만 사람들이 청운진인을 보는 눈빛은 이미 싸늘해졌다.

“그러면 마비산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다시 태양의원의 정회원 승격 투표로 넘어가면 되겠―.”

“잠깐!”

잉?

저 인간이 갑자기 왜?

그가 목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몸에 달린 온갖 황금과 보석 장신구가 부딪치며 짤그랑 소리를 냈다.

내가 큰돈을 주고 포섭해온 사대신의 중 한 사람, 황금신의다.

“무당신의, 내 개인적으로 그대를 꽤 존경함은 잘 알 거요. 아니 그렇소?”

“알고 있소이다.”

“헌데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겨서. 물어봐도 되겠소?”

무당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대체 뭘? 다 끝난 마당에 저 인간이 갑자기 왜 끼어드는 거야?!

“그 접근했다는 혈교인의 생김새가 어찌 되오? 인상착의도 좋고, 분명 특징이 있었을 터인데.”

“……그것은.”

“우리 의원이란 작자들은 사람을 만나면 얼굴부터 체형과 걸음걸이까지 한눈에 파악하게 되어 있지. 그 특징 하나하나에서 그 사람이 타고난 체질과 앓고 있는 병증까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분명 신의라면 이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소이다. 하물며 혈교인이라, 나라도 그런 희귀한 존재들을 만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심히 살폈을 것이외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아니면 이건 어떻소이까. 그자가 어찌 신의에게 접근했소? 다른 분들이 무당의 관리 소홀을 원인으로 들었는데, 무당에서도 그걸 알아야 대처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니오?”

“…….”

“훗날 섬서의 일이 충격을 가져다줬으니 그때의 일을 무척이나 후회했을 터.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혹 몸이 안 좋으시오? 옛날 일이 잘 기억이 안 난다든가, 아니면 안 했던 일인데 했다고 여기게 된다든가. 갑자기 내공을 잃은 이들이 그런 증상을 보이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소이다.”

그러니까 황금신의 저 인간, 지금 무당신의를 치매로 몰아가려고 밑밥을 까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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