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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97화 (297/350)

297화

어디부터 알아차린 거지? 하오문에서 정보가 샌 건가? 아니면 우리 계획이 허술했나?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새는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어 신생에게 다가갔다.

우선 이 수갑을 풀어야 했지만 쇠로 된 수갑은 손으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열쇠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자르는 것만이 방법.

깡―!

겨우 검을 뽑아 구속을 내리쳤지만 검은 튕겨져 나왔다. 수갑에는 흠집만 남았다. 내공을 싣지 못한 상태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젠장! 큭―.”

실수로 호흡을 들이켰다. 연기는 극독이었다. 내공이 모이지 않은 탓인지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폐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침착하자. 이보다 더한 상황도 충분히 겪어봤다. 분명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단전의 내공은 바싹 마른 모래처럼 뭉치지 않고 흩어졌다. 이대로는 제대로 검기를 뽑아낼 수 없다.

원인은 아마도 산공독.

하지만 검기가 없다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없―

“!”

생각났다. 단전의 내공이 없어도 검기를 뽑아낼 수 있는 방법!

나는 다시 검을 단단히 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단전의 내공은 흐트러져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단 하나, 기존의 방식과 달리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기가 있다.

두 팔의 경혈에 고여 있는 내공!

단전을 중심으로 흐르는 기는 흩어졌지만 경혈의 내공은 내 의지대로 팔을 타고 검으로 흘렀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기에 산공독의 효과도 단전을 흐트러트리는 데 초점을 두었던 걸까?

경혈의 기가 내 뜻을 따라 검 끝에 맺혔다. 푸르스름한 검기가 지금보다 반가운 적이 없다.

챙강―!

마침내 단단한 수갑이 잘려나갔다.

“……스, 스승님?”

“숨 참아. 독에 당한다, 쿨럭!”

산공독이 효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경혈의 기를 끌어올려 혈류가 역류한 건지, 들이마신 독기가 스며든 것인지, 갑자기 속에서 피가 울컥 올라와 바닥을 적셨다.

신생은 내가 갑자기 피를 토하자 놀란 기색이었지만 그 이상 반응할 기운도 없어 보였다. 나는 신생을 등에 업고 끈으로 내 몸에 단단히 고정했다.

이곳을 나가야 한다.

조금 더 지나면 호흡이 한계에 달할 것이다.

신생을 업은 후 다시 몸을 돌려 석벽에 검을 휘둘렀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돌인지 검기를 쥐어짜 베어도 쉽게 잘려 나가지가 않았다.

남은 경혈의 기를 다 쥐어짜도 반 이상 부수지 못할 거 같았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는 눈을 돌렸다.

문으로 쓰인 석벽의 바로 옆.

믿기지 않을 강도의 석벽에 튕겨나간 검이 그 옆의 벽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이쪽이 더 무르다―

검의 타깃이 바뀌었다.

석벽은 지나치게 강도가 높았지만 그 옆에 있는 돌은 그렇게까지 단단하지 않았다.

두께는 분명 두꺼웠지만 이 정도라면!

한 번의 공격에 한 뼘 두께의 돌이 부서져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그냥 부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는 정도의 구멍을 내야 했다.

직선으로 뚫는 게 아니라 사선으로 뚫어야 하니 들어가는 공력도 그 배.

조금만, 조금만 더……!

슬슬 호흡이 부족했다. 더 이상 숨을 참는 건 무리였다. 생명의 위기를 느낀 몸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동시에, 검이 반대편으로 쑥 빠져나갔다.

마침내.

“쿨럭, 컥!”

구멍을 뚫기 무섭게 피 섞인 기침이 부서진 잔해를 뒤덮었다. 기침만 나오면 괜찮은데 몸도 같이 무너졌다. 부서진 잔해가 무릎에 박혀 생살을 찢는 고통을 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눈앞이 흐렸다.

한 번만 더 검을 휘두르면, 아니 주먹질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몸으로 갖다 부딪치면 될 텐데.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등에 업힌 신생은 어느 순간 미동조차 없었다.

이렇게 전부 끝인가.

“금태양, 물러나셈!”

정신이 흐려지려는 찰나, 당당의 외침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살았다.

사람의 몸은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기이할 정도의 힘을 낸다고 하던가.

실낱같은 희망이 눈에 보이자 썩은 나무처럼 무너지던 몸이 겨우 기어갈 힘을 짜냈다.

“피했음? 부순다! 흐럅!”

섬광과도 같은 검이 눈앞에 번쩍하더니, 겨우 구멍을 내놓았던 벽이 완전히 우수수 무너졌다. 그리고 당당과 곽 표두가 안으로 훌쩍 뛰어들어 왔다.

“도련님!”

“금태양, 괜찮음?!”

“호흡, 여기, 극독―.”

“알겠음! 일단 이거 쓰고, 신생은 내가 업겠음!”

“제가 도련님을!”

당당이 나와 신생의 입에 가죽으로 된 마스크 같은 것을 씌웠다. 호흡이 불편해졌지만 들이마신 공기가 한결 나았다. 당당과 곽 표두도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곽 표두가 나를 업었고 당당은 신생을 업었다. 신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파악하려 하려 했다. 다행히 의식이 있어 보였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두 사람은 우리를 업고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곽 표두에 기대 말을 타고 있었다.

“여긴 어디―.”

“정신이 드십니까?! 성도를 막 빠져나온 참입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곧 당가의 추격대가 쫓아올 거라 하셨습니다.”

“당당은, 신생은 괜찮고요?”

“신생은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서 약을 먹여 잠들게 했습니다. 미리 제게 당부하신 삼생환도 먹였고요. 아까 금 의원님도 복용하셨습니다. 당 소협은 뒤에서 추격 상황을 확인하고 뒤따라오신다 합니다.”

그래. 빠져나오긴 했나. 이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삼생환은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영단에 삼생초를 더해 만든 영단이다. 딱 두 알 있는 것을 만약을 대비해 곽 표두에게 맡겼는데, 잘한 선택이었군.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어떻게 된 거지. 당가주는 이렇다 할 신호를 받지 않았어요. 위에서 일이 잘 안 풀린 건가?”

“예, 그쪽이 잘 안 풀렸습니다.”

곽 표두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몰며 아까 지상에서 있었던 얘기를 풀어놓았다.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당당과 나는 그동안 김진과의 추격전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성도에 살고 있는 남해태양궁 출신이나 관련자들을 찾으러 다녔다.

곧 남해와 전쟁이 벌어질 건데,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죄인으로 몰리든가 생업을 포기해야 할 거라는 내용의 서찰을 뿌리고 다닌 것이다.

내가 당가주를 만나러 간 시각, 당당은 그들을 만나 오늘 움직이지 않으면 당가주가 생포한 남해의 막내가 죽을 거라고 설득했다.

그 결과 남해 사람들이 일어나고 그 소요로 인해 당가주가 서둘러 자리를 뜨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는데―

“계획한 곳에 이미 당가 무인들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누군가 계획을 발설했군.”

“저희 생각도 그렇습니다. 원래 그들은 잠시 시위를 하다가 해산할 예정이었는데, 당가가 처음부터 무력진압을 시작해 저항이 거세어졌습니다. 하지만 인원도 너무 적고 상대는 무장을 완비한 터라 처절한 살육전이 되어가고 있었지요.”

곽 표두는 말을 흐렸다. 표행을 오래 해온 그의 눈에도 처참했다면, 대체 얼마나 잔혹했던 것인가.

“그래서 저희는 당가타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을?”

“예. 당 소협의 거처와 안채 전반에 기름을 두르고 횃불을 던졌지요.”

현명한 판단이었다. 아무리 명령이 있어도 발등에 떨어진 불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일부도 아니고 당가의 안채.

당가 직계가 머무는 거처에 불이 났다면 남해 사람들을 탄압하던 열기가 사그라졌을 거다.

“당가주도 그때만큼은 당황하더군요. 당 소협이 워낙 크게 불을 질러서.”

……제 집에 제 손으로 불을 지르다니.

녀석이 사천당가라는 이름에 가지는 자부심을 알고 있다.

그랬기에,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이 더욱 깊었고, 끝내 인정받았을 때 기쁨이 하늘을 날았다.

당가는 녀석에게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 불을 질렀다, 녀석은.

나를 구하기 위해서.

“그 녀석…….”

당당에게 마음이 흔들리면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지만, 정작 내가 위태로울 때 녀석이 내 곁으로 와준 것이다.

이 삶이 끝날 때 이 순간의 기억은 반드시 떠오를 것이다.

두 번의 삶을 살아, 적어도 진정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녀석 하나는 건졌다고.

그렇게 웃으며 죽을 수 있을 거다.

“당가의 깃발입니다! 쫓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이어서는 안 된다.

“어떡할까요, 말을 버릴까요?”

지금 죽으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구한 친구를 볼 면목이 없으니까.

“난 괜찮습니다. 아까보다 한결 나아졌어요. 신법으로 달리면 됩니다. 내가 무를 업고, 곽 표두가 신생을 업으면―.”

하지만 뒤를 돌아본 후 나는 상황이 그리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너무 빠르다.

당가 정예가 우리 쪽으로 향한 건지 저 멀리서 점처럼 보였던 이들은 그 찰나에 주먹만 해졌다. 순식간에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느리다.

곽 표두 정도나 되어야 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표사들은 그만한 속도를 내지 못한다. 분명 잡힐 것이다.

우리만 살고 저들을 버려야 하는가?

그 외에는 대책이 없는 건가?

빨리 선택을 해야 한다.

“Không sao đâu, cậu có thể làm được mà.”

그때, 무의 입에서 흘러나온 낯선 언어가 귀에 꽂혔다.

“Các cậu là con ngựa số một. Hãy giúp chúng tôi bỏ trốn. Các cậu có thể làm được.”

단순히 언어가 낯설어서 귀에 꽂힌 게 아니었다. 무언가 주술과 같은 기이한 느낌, 오묘한 분위기가 우리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말들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도망간다!”

“따라잡아!”

뒤따라오던 당가의 무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말들의 속도도 높아졌다. 경신법의 고수가 전력으로 달리는 수준의 속도였다. 몇몇 표사들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말이 이렇게 달릴 수 있다고?!”

“남해, 남해의 언어입니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도망가게 도와달라고 한 건데, 이건!”

표사의 등 뒤에 탄 조련사가 비명처럼 외쳤다.

“이거야말로 남해태양궁의 힘입니다! 아아, 도련님!”

조련사가 감격에 겨워 울먹이듯 외쳤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마침내 추격대가 따라오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다행이었다. 영물도 아닌 말들이 기적과 같은 속도를 선보인 탓인지 급격하게 지치기 시작했으니까.

“bạn có thể làm nhiều hơn không lấy làm tiếc. Vui lòng thêm một chút. Tôi sẽ cho bạn một cái gì đó ngon khi bạn đến. Hứa.”

그때 무가 한 번 더 나섰다.

“조금만 더 부탁한다 하십니다. 약속한다고.”

그러자 지쳐서 탈진할 듯이 투레질을 하던 말들이 놀라울 정도로 얌전해졌다. 그리고 등에 탄 우리가 버틸 만한 정도로, 그러나 더 이상 느려지지 않은 채 내달렸다.

나는 말을 몰아 무의 옆으로 갔다. 무는 태연하게, 그러나 타고 있는 말에게 집중하며 나를 반겼다.

“무야, 너―.”

“나, 도움이 됐어? 금 의원님이 나랑 한을 구해줬는데, 나도 금 의원님을 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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