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95화 (295/350)

295화

“당가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공간이 있다.”

“그렇군.”

“그렇게 덤덤하게 반응할 내용이 아닐 텐데?”

“독이나 약을 실험하는 거 아냐? 그 정도는 우리 태양의원도 해.”

물론 참가자에게 충분한 설명과 동의를 얻은 후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치른다. 고지한 것보다 심각한,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했을 경우엔 여생까지 책임진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솔직히 당가는 독이 주류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선 더 심도 있는 연구도 하겠지.”

“그, 그렇지. 너도 의원을 하니까 이해하겠군.”

내가 의도한 대로 당랑은 내 말을 다소 오해하고 얼굴을 풀었다.

“네 녀석 말대로 우리는 당가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에게나 열려 있지 않아.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지.”

“허락만 받으면 들어갈 수 있는 건가?”

“네 녀석이 생각하는 그런 허락이 아냐. 그곳에 가려면 아버지를 먼저 뵈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손에 몸을 맡겨야 하지.”

당장이라도 녀석의 멱살을 잡고 거기가 어디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서, 나는 조금 흥미가 돋는 척 녀석의 말을 경청했다.

“아버지는 그곳에 가려는 이들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시각과 청각, 후각은 물론이고 거리와 방향, 시간에 대한 감각도 흐려지지. 그 때문에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는 몰라. 그곳의 위치는 아버지께서만 아신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순간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도착해 있지.”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 지하일 가능성이 높겠군.

“그 정도로 철저하다니. 놀라운데.”

“그곳엔 당가 비전의 총체가 있다. 그걸 생각하면 절대 과하지 않아.”

“그래서, 그곳엔 뭐가 있는데? 뭐가 있기에 저 녀석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다시 당철의 트라우마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자 당랑이 입술을 씹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당가에 대한 자부심으로 넘치던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우리 세 형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곳에 갔다. 아니, 거의 살다시피 했지.”

“세 형제? 당당도?”

아니, 당당이 알았다면 내게 얘기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 말을 대변하듯 당랑의 얼굴이 구겨지다 못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그 녀석은 구경도 못 했을 거다. 아버지는 규격 외를 실험대상으로 쓰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거가 그렇게 된 게 아버지에게도 충격이었겠지.”

“두 쌍둥이가 아니라 원래 세 쌍둥이였군.”

당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당거. 몸에 주입된 독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안타까운 녀석. 조금만 더 버텼으면 철이에 못지않은 독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텐데.”

“……너희 형제도 실험 대상이었던 거냐?”

“아닐 이유가 있나? 그 어렸던 우리가 직접 연구를 하려고 거기 죽치고 있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미친. 그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할 일이야?

당가가 당가 핏줄도 연구 대상으로 쓸지 모른다고, 하오문 지부장에게 당가타 중심으로 실종자를 찾아보라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그 당가 핏줄에 직계까지 포함될 줄이야.

“물론 우리가 다른 녀석들처럼 대해진 건 아냐. 우리는 다른 녀석들에게 한 실험을 기반으로 강화되었다. 네 녀석도 소림에서 우리 형제의 위력을 보지 않았나?”

머리카락, 손톱 등 보통이라면 무기로 쓸 수 없는 신체 부위를 암기로 사용하는 당랑.

몸에서 극독을 방출하는 독인(毒人)인 당철.

당가의 직계니까 그런 식으로 수련을 했나 보다 했지, 그게 인체실험의 결과일 줄이야.

“우리는 본래 평범한 존재였다. 정직하게 무공만 익혔다면 결코 중원의 다른 후기지수들에게 비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기에 우리가 더 위대해질 수 있다 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

“강해졌지만 뭔가 문제가 생겼겠지?”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있잖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곤히 잠든 당철을 가리켰다. 잠이 들었음에도 표정에는 그가 느낀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우리는 강해졌다.”

당랑의 눈은 자부심으로 빛났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일그러진 채여서 무척 기괴한 표정이 되었다. 보고 있기만 해도 속이 불편해질 거 같았다.

“……나는 극복했다. 당가를 지키려면 강해져야 하니까. 차기 가주라면 그래야 하니까. 하지만 철이는 좀 이상해졌지. 강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 같고, 아니, 그 얘기는 관두지. 철이는 강해. 체내에서 새로운 독을 끊임없이 합성해내지. 당가 직계가 아니라면 그 독을 견디긴 쉽지 않다. 철이는 당가 비전의 집약체다. 사천당가의 당철, 그 이상 가는 독인은 나오지 않을 거고, 녀석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거다!”

당가주다.

당랑의 얼굴에 당가주가 겹쳐 보였다.

저 말은 당랑이 직접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라, 당가주가 당랑에게 끊임없이 주입한 말일 거다.

“그래, 네 녀석 말이 맞아. 당철의 이름은 역사에 남겠지.”

나는 일단 녀석을 긍정해주었다. 이럴 때 괜히 너는 틀렸다느니 해봤자 역효과만 난다.

녀석은 당철을 위해 나를 데리러 왔다.

태도와 진심 어린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타인이 지적한다고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당랑 너와 달리, 당철에겐 강해지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거 같아. 역사에 남으려면 안 좋은 부분은 빨리 없애야 해. 티끌만큼의 흠도 남길 순 없잖아. 그렇지?”

“네 말이 맞다. 허나 전에는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 그냥 좀 겁에 질렸을 뿐, 나와서 한두 시진 지나면 괜찮아졌는데.”

“뭔가 다른 요소가 있는 거지. 거기 전에는 없던 게 있는 거야. 그렇지? 내가 한번 맞춰볼까?”

“…….”

“당거라는 형제가 죽었을 때, 너흰 몇 살이었어?”

“열두 살 때였다.”

“열두 살. 그래, 그 나이 대의 어린애가 거기 있는 거지?”

“……!”

“당철은 그걸 보고, 당거가 죽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 거야. 그 때문에 전보다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거고.”

퍼즐이 맞춰진다.

거기에 신생이 있다.

“……네 녀석, 알면서 물어본 거냐?”

나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당랑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하지만 녀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나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진 않았다.

“나도 하나 묻지.”

“뭔데?”

“거기 있는 거, 남해태양궁 막내 아니지.”

질문이라고 했지만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녀석은 그게 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 소림에서 본 얼굴이었어. 네 녀석의 제자라 들었던 기억도 있었지.”

“……!”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녀석의 정체를 아버지에게 말하진 않았으니까. 대신 네 녀석도 나와 한 약속을 지켜.”

녀석이 신생을 알아봤을 줄이야. 그나마 신생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속았다는 걸 알았을 때 당가주가 어떻게 나올지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어땠어?”

“그 나이치곤 강단이 있던데. 우리 어릴 때보다 더 독한 놈인 거 같더만.”

“그 말은―.”

그 말은, 신생을 상대로 당가 직계들에게 했던 거보다 가혹한 짓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냐고. 나는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녀석을 구하고 싶다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아버지도 슬슬 녀석이 남해의 핏줄이 아니라는 걸, 쓸모없다는 걸 깨달으실 테니까.”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당철에게 침 몇 방을 더 놓고, 이대로 지어 먹이라며 처방을 적어준 후 당씨 형제의 거처를 나섰다.

“괜찮음?”

“괜찮냐는 말은 내가 물어야 할 거 같은데.”

골목을 돌아서자 당당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묻는 녀석의 얼굴이 오히려 더 창백했다.

지붕에 숨어 있던 당당은 끝까지 당랑에게 잠행을 들키지 않았다. 아마 당랑도 당철의 일로 심기가 흐트러져서 그랬을 거다. 아니면 녀석의 실력이 는 걸지도.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나도 잠깐씩 그 기척을 놓쳤으니까.

“신생은 괜찮을 거야.”

당당이 나를 달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다. 내가 당당을 달래기 위해 한 말이었다.

녀석은 두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정말, 정말 괜찮을까? 난 모르겠음. 정말 형님의 말이 진짜인지, 아, 아버지가 그런 일을 정말 그런 일을, 형님들도 모자라서 신생에게까지―.”

평소 같으면 녀석에게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시간이 없었다. 당랑의 말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어. 오늘 한다.”

“오늘? 어딘지도 모르는데?”

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랑은 장소가 어딘지 모른다고 했지만, 그의 말로 미루어 대략적인 장소를 추릴 수 있었다.

“넌 안 가도 상관없어. 해야 될 일만 해줘. 하지만 결심이 선다면,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금태양, 나는―.”

“아니라면 우리 둘 다에게 다행일 거고. 만약 진짜라면―.”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불안하게 떨리는 당당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게 만약 진짜라면, 기억해. 넌 혼자가 아냐. 네 곁에 내가, 우리가 있어.”

“……알았음.”

* * *

그날 밤.

나는 당가타를 빠져나가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어두운 밤, 최근의 사건으로 분위기가 흉흉한 성도를 가로질러 당가타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잔뜩 날이 선 문지기가 다짜고짜 창을 들이대며 정체를 물었다.

“그토록 사람을 귀찮게 불러놓고 문지기 교육도 제대로 안 시켰나?”

서걱―

나를 향해 들이댄 창대가 두 동강이 나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창대를 본 문지기가 기겁을 했고, 나는 임시로 구한 검을 다시 갈무리하며 말했다.

“김진이 왔다. 당가주 나오라고 해.”

“자, 자하신룡!”

얼굴은 몰라도 그 이름은 귀가 따갑게 들었는지 문지기가 반만 남은 창대를 바닥에 버려두고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당가주가 나오길 기다리지 않고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그리고 대로를 따라 쭉 걸어갔다. 당가주가 본채의 중문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맘대로 안에 들어온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더니 이내 표정을 고치고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김 소협, 어서 오시오! 본가의 초청을 받아주어서 고맙소이다!”

“고맙긴. 그쪽 아들내미가 하도 귀찮게 따라다녀서 한번 와본 거야. 무슨 빚을 이자까지 쳐서 갚으래. 하아, 여기 오면 재밌는 일이 있을 거라고 하던데?”

나는 당당을 통해서 꾸준하게 ‘김진은 강자와의 대결을 원한다.’고 전달했다. 그래야 당가주가 더욱 애타게 김진을 원하게 될 테니까. 당장이라도 남해태양궁의 궁주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해의 일 공자에게도 패배했던 당가주에게 김진은 입 안의 혀처럼 단 존재가 될 것이다.

“아무렴. 그대가 원하는 것은 전부 준비할 것이오. 우선 들어가시오, 내 귀빈을 위해 술과 음식을 대접하겠소이다. 어서 손님을 별실로 모셔라!”

“아니, 술과 음식은 됐고.”

나는 손을 내저었다. 대신 다른 것을 요구했다.

“내게 준비해 줄 재밌는 일에 대한 얘길 듣고 싶은데.”

“하하, 역시 중요한 것을 먼저 하는 게 이치에 옳지. 허면 이쪽으로. 본채로 가서 우리 자세한 얘기를 해봅시다.”

나는 당가주를 따라 본채에 발을 들였다.

나와 당당이 제대로 뒤져보지 못한 유일한 곳.

이곳 어딘가에 신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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