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당철이 아프다고?
솔직히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물론 녀석도 사람이니 아플 수 있겠지만, 몸에서 독을 뿜어내는 독인이 아프다니까 뭔가 사리에 맞지 않는 기분이 들었달까.
거기에 녀석이 아픈데 하필 나를 콕 집어 봐달라고 한 것도 당황에 일조했다.
“어디가 아픈데? 남해에 정찰 갔다가 팔이라도 잘렸어?”
외상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독인도 팔이 잘리면 아플 거고, 당가는 외상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니까. 그 경우 제일 좋은 선택지는 나겠지.
하지만 당랑은 가타부타 말없이 중문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서 직접 봐라.”
녀석이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얼굴을 콱 찌푸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당랑을 노려보았다.
“직접 보라고? 그 독기 속으로 들어가서?”
“당당 녀석하고 각종 실험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럼 독에 대한 방비는 준비되어 있는 거 아니냐?”
녀석의 말이 맞긴 했다. 나에겐 당당의 피로 만든 해독약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무한정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재료가 당당의 피일 뿐, 다양한 재료와 복잡한 공정을 통해 가공해야 하기 때문에 태양의원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 하물며 나도 혼자서는 힘들고 장 의원이 함께해야 했다.
피를 그냥 마시는 것도 효과는 있지만 효율이 나쁜 데다 아직까지 그만한 양을 복용했을 때 부작용은 시험하지 못한 상태.
“어려우면 관둬. 쳇, 네 녀석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관둔다고는 안 했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해독약을 입에 털어 넣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디로 가면 되지?”
“저 방이다.”
나는 당랑이 가리킨 방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가까이 접근할수록 독기가 짙어졌다. 해독약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긴 했지만, 눈이 따끔거리거나 코가 매운 것까진 어쩔 수 없었기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정도면 당가 직계가 아닌 이상 버티기 힘들 거 같은데? 싶어 돌아보니, 이곳을 지키는 무인이며 하인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 누구 하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 독기를 버틸 수 없어서 사람들을 물린 걸까, 아니면 당철의 상태를 비밀에 감춰야 해서 치운 걸까.
아니, 내가 녀석을 치료하러 방문하는 걸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었던 걸지도.
그렇게 누구의 시선도 없이 당철이 있다는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발을 멈추고 당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왕진비는 제대로 받아낼 거다.”
“흥, 네 녀석은 내가 그 정도도 못 낼 거 같나? 사천당가다!”
“너야말로 내가 누군지 잊었나 본데. 내가 네 녀석이 지불할 수준의 돈이 아쉬운 걸로 보여?”
“그, 그럼 뭘 받겠단 거지?”
“일단 상태를 좀 보고 생각해보지. 병증의 경중에 따라서 비용도 달라질 테니까.”
녀석들이 뭔가를 아는 눈치라면 치료비 대신 신생의 행방을 캐물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 해도, 이곳 당가에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참에 녀석들에게 빚을 지워두는 것도 좋겠지.
상황을 주도하는 키는 내가 쥐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어젖히자 지독한 독기가 온몸을 덮쳤다. 해독약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데도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당철은 그 지독한 독기 속, 방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철아, 너 괜찮냐? 의원을 데려왔어. 여기 좀 봐봐.”
이거 심한데.
독기도 심하지만 당철의 상태가 심각했다.
일단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외상은 아니었다. 쭈그려 앉아 있는 당철에게선 그 어떤 외상의 흔적도, 피 냄새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론 어떤 흔적도 없다는 것이 불길한 징조가 되기도 한다.
타인이 방 안에 들어왔음에도 당철에게선 그 어떤 변화가 없었다. 당랑의 목소리를 듣는 거 같지도 않았다. 애초에 우리를 보지도 않은 게, 녀석은 쭈그려 앉은 채로 벽 모서리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일단 진맥을 해볼 테니 넌 물러나.”
“……부탁한다.”
당랑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나는 조심스럽게 당철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당철이 이빨을 거세게 부딪치며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뭐지? 추워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 그, 그, 그만 하세요. 사, 사, 사, 살려주세요. 제발. 싫어. 무서워…….”
“야, 물러나! 철아! 괜찮아, 여기 우리 거처야! 괜찮아!”
당랑이 나를 뒤로 잡아당기고 당철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거리를 벌리자 당철의 떨림이 가라앉았다. 순간 그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극도의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일단 나가지.”
“그래. 역시 당가의 의원이 아니어도 다가갈 수조차 없군. 젠장.”
무슨 연유로 나를 불렀나 했더니, 당가의 의원들을 불렀다가 안 돼서 그런 거였군.
우리는 일단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당랑은 상당히 당혹스러워 보였다.
“됐어. 그만 가봐.”
“뭘 가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방금 못 봤어? 다가갈 수조차 없어. 아까보다 더 가까이 가면 직계조차 감당하기 힘든 독을 뿜어낸다고!”
“아까도 말했지만, 날 초빙해놓고 내가 누군지 까먹었나 본데. 나 의원이야.”
“그래, 그게 뭐? 의원이라 해도 환자를 못 보면 말짱 황이지. 아니면 그 거리에서 벌써 진맥이라도 마친 거냐?”
“태양의원에서 의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건 진맥도 치료도 아냐.”
“무슨 소릴 하려고―.”
“환자가 의원 앞에 앉아 진맥이든 치료든 받게 만드는 기술이지.”
환자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고, 진료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병이 다른 병이라 우기는 자도 있고, 꼭 병원까지 갈 필요 없는데 주변에서 하도 뭐라 해서 와보긴 했다, 적당히 몸에 좋은 영양제나 지어달라고 하는 자도 있다.
진료를 보러 와서 의원의 소견을 듣긴커녕 진료에 전혀 쓸모없는 신변잡기만 주구장창 얘기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그 사람들에게 제대로 앉아 진료를 받을 자세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시작도 할 수 없다.
성인에게는 주로 눈에 보이는 증상만으로도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겁을 주는 등의 방식을 취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겠지.
나는 잔뜩 겁에 질렸던 당철의 표정을 떠올리며 물었다.
“당철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음식이나 장소, 옷, 사람. 뭐 그런 거.”
“그건 뜬금없이 왜?”
“진료의 일환이니까 토 달지 말고 대답이나 해.”
“어, 좋아하는 거라면 탕후루? 어린애처럼 단 걸 좋아한다. 단 거라면 사족을 못 쓰지.”
단 거라. 잘됐다. 쉽게 해결할 수 있겠어.
나는 당랑에게 하인들을 부려 말린 과일을 넣은 달달한 엿을 끓이게 시켰다. 그것도 한 솥이 아니라 여러 솥을.
당가의 무인들도 마당까지 들어오긴 힘들었기에 담벼락 너머에 솥을 늘어놓고 엿을 끓이자 단내가 진동을 했다. 한 시진이 지나자 단내가 독기를 이길 정도였다.
“녀석이 단 거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
효과가 있었다.
솥에서 엿을 고는 무인들이 단내에 질식하겠다고 하소연할 즈음, 당철이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철아!”
“……나, 단 거. 먹을래.”
“그래. 많이 있으니까 들어가서 먹자.”
당랑이 당철을 양손에 탕후루를 한가득 쥐여 달래며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나도 뒤따라 들어가며 물었다.
“밖에서 하는 게 편한데. 무인들에게 이 상태를 보여 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흥. 장차 나와 함께 공동 가주가 될 텐데, 이런 모습을 세가원들에게 보여서 좋을 리가 없잖아?”
그게 전부가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우선 당철의 맥을 짚었다. 탕후루를 단단히 쥐고 있어서 쉽지 않았지만 이 정도쯤이야.
“심기가 많이 흐트러졌어. 지금도 이 정도인데, 아까는 기가 폭주하는 수준이었겠군. 그러니까 그런 상태가 되지.”
“더 방법이 없는 거냐? 계속 단 걸 물려주면 되나?”
“일단 심기를 안정시켜야지.”
나는 세 자루의 장침을 꺼냈다. 그리고 탕후루를 먹느라 정신이 팔린 당철의 혈에 빠르게 침을 박아넣고 그대로 기를 불어넣었다.
“맛있다, 다아아…….”
그러자 당철은 탕후루를 든 상태로 스르륵 눈을 감고 쓰러졌다.
“어?! 야, 철아!”
당황한 당랑이 녀석을 받아 안전하게 눕혔고, 곧바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돌팔이가!”
“심기를 안정시킨다고 했잖아. 극도의 불안상태의 반대는 극도의 안정, 즉 잠이니까. 내가 손쓰지 않았으면 보름 넘게 잠도 못 자다가 쓰러졌을걸.”
“큭…….”
“당장은 이걸로 됐어.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심기가 상해서 나중엔 폐인이 될지도 몰라.”
“폐인이라니, 무슨―.”
“주화입마가 괜히 와? 내공수련 하다가 심마가 끼면 오는 거잖아. 네 녀석이 보기에, 이 녀석이 아까 상태로 수련을 하면 심마가 안 낄 거 같아?”
내 말에 당랑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심마(心魔). 전생의 말로 하자면 극도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불안, 즉 트라우마일 것이다.
“심마는 하루아침에 덜컥 생기는 게 아냐. 견디지 못할 정도의 압박과 불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혹은 과거 겪었던 심마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재발하지.”
녀석은 날 보며 그만하라고, 살려달라고 했다.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제발, 싫어, 무서워 라고 중얼거렸다.
당철이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 추측은 어렵지 않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그 원인을 알아야 해. 그게 아니더라도 좀 호기심이 생기는데. 사천당가잖아. 그 직계이자 차기가주가 될 자를 이렇게 불안에 떨게 만든 게 누구야?”
알면서도 나는 물었다.
“그건…….”
녀석의 입으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해주면 당철을 치료해준 대가는 그걸로 받지.”
“……그걸 꼭 알아야 하는 거냐? 지금처럼 발병할 때만 침을 놓으면 안 되는 건가?”
“심기가 상한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한번 다치면 치료를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러다 어느 순간 미치든지 죽든지 할 거다.”
“뭐―.”
“심마라고 해서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리나 본데. 그건 감정적 죽음이야. 죽음의 간접체험이라고. 실제 죽음은 아니어도 몸이 죽음과 같은 상태에 빠졌다 나오는 거다.”
실제로 전생에선 극도의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의 몸이 그 순간 죽을 때와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내용이 신문에도 났었다. 실제로 죽는 건 아니지만, 뇌가 몸이 죽는 상태와 같다 인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피하려 하는 거라고.
“당철 이 녀석도 보통 아닌 수련을 해온 무인이잖아. 그 무인이 이렇게 심기가 흐트러질 정도의 경험을 반복하는데 제정신을 유지한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않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녀석에게 잠시 시간을 주었다.
들어야 할 답은 정해져 있다.
“……남에게 절대 얘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네 녀석 똘마니나, 당당한테도.”
“좋아, 약속하지.”
나는 말하지 않을 거다. 녀석이 직접 들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