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풀어서 설명하긴 했지만, 결국 지부장이 말하는 건 명약관화하다.
당가가 인체실험을 한다는 뜻이다.
물론 독과 약을 다루는 입장에서 인체를 대상으로 그 효과를 시험해보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지부장이 얘기하는 건 그런 종류의 실험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당가는 정파의 일원인데, 설마 그런 짓까지…….”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으면 무에 문제겠습니까. 여기가 중원 한복판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곳 사천 일대에 당가가 눈치를 볼 상대 따위는 없지요.”
“다른 실마리는 없었습니까? 그 실험을 하는 장소라든가.”
“저희도 몇 번 캐보려 했지만 그 이상은 입을 다물더군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입도 벙끗하지 않았습디다. 한 아이의 말로는, 그 얘기를 돌려 묻자 거시기가 쪼그라들 정도로 겁에 질렸다나요. 그 자리에서 술값도 안 내고 도망치듯 빠져나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더군요.”
당가 식솔이 그 정도로 반응한다면 이 얘기는 사실인 게 분명하다.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깊은 정보로 접근할 수 없다. 개방을 쑤셔 봐도 이 이상 깊은 얘기는 나오지 않을 터.
하지만 나는 정보가 필요하다.
“실험을 한다면 사람이 필요할 텐데. 실종자를 좀 알아봐 줄 수 있습니까?”
“실종자라면, 실력 있는 무인의 행적을 찾으면 되겠습니까? 오대세가나 그 방계가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만한 실력자들은 실종이 되었다 해도 사실 자의로 감시망을 벗어난 경우가 많아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노력해보지요.”
“아니. 그쪽 말고.”
나는 다과상을 톡톡 두드리며 머리를 굴렸다.
하오문 지부장의 말마따나, 실력자들의 실종은 진짜 실종이 아닐 수도 있다. 훌쩍 나타났다가 훌쩍 사라지는 그들의 행방을 어찌 일일이 추적한단 말인가?
하오문이나 개방 같은 곳이라면 각 지부의 목격담을 종합해 이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는 시간이 걸린다. 짧으면 보름, 길면 한 달. 어쩌면 석 달도 더 넘게 걸릴 수 있는 작업이다.
벌써 며칠이나 신생을 찾지 못했다.
더 기다릴 수는 없다.
“허면 어디를 찾아야 할지요. 이 늙은이에게 지혜를 주시지요.”
“……여기.”
“여기라 하심은?”
“사천 성도, 아니, 당가타를 뒤져봅시다.”
“예? 당가타라니, 아니, 지금 당가가 인체실험 대상으로 쓰려고 납치한 자를 찾는 것이 아니었습니까요?”
“그러니까 당가타입니다.”
인체실험은 보통 적을 상대로 하는 게 보편적이다.
자신들의 혈통이 우수함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적들의 혈통을 분석하거나, 적을 대상으로 화학전에 쓰일 무기 등을 실험하는 등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화살은, 언제든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열등한 내 편’을 향하기도 한다.
당가는 이미, 왼손잡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계혈통인 당당을 철저히 따돌린 전적이 있다.
어쩌면 그마저도 직계이기에 그 정도에 그쳤을지 모른다.
“특이한 체질 하면 사천당가도 예외는 아니잖아요. 거기에 특수한 체질을 가진 타 혈통을 얻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혈통을 가진 방계와 사천당가의 방계를 혼인시키는 거죠.”
창천도 그런 식으로 태어난 남궁세가의 혈통이다.
무당이 했던 일을 당가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무어 있겠는가?
“그 외에도 수상한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내가 당가 무인들을 수술하는 일을 ‘무인의 전부를 파헤치는 일’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렇고, 당가타 내부의 경비가 허술한 것도 그렇다.
오직 혈족만을 당가타 내부로 들이는데, 실험 때문에 그 숫자가 늘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면 그 넓은 곳을 방비하는 데 무리가 있을 수밖에.
“그쪽으로 찾아보세요. 누가 사라졌는지, 또 사라졌다면, 그 이후 어디선가 시신이 나왔겠죠. 신원미상의 시신들이 어디서 나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그리고 또, 그 얘기를 했더니 기겁을 하며 도망갔다던 당가의 일원. 그 사람도 찾아주시고.”
아무리 기밀이라 해도, 그걸 묻는 것만으로 사람의 아드레날린이 쉬이 죽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그만한 기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취해 더 의기양양해야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충분한 상상력이 있다면.
그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그는 순간적으로 죽음을 체감한 거다.
“내 상상력이 지나치게 과도한 걸 수도 있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사실 인체실험이니 뭐니, 그런 심각한 일은 없었으면. 신생은 남해태양궁의 막내공자를 연기하며 최대한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거였으면.
그러면 좋을 텐데.
“말씀을 들어보니 몇 가지 떠오르는 일들이 있습니다요. 그 안으로 범위를 좁히면 찾기 어렵지 않을 겝니다.”
“……부탁합니다.”
지부장의 말에 심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불길함은 현실이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더욱 정신을 차려야 했다.
신생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지부장과의 대화를 마친 후 나는 빠르게 당가타로 돌아갔다.
당가는 오늘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오늘밤도 당당이 김진을 붙잡는 데 실패한 탓이었다.
우리는 일부러 김진을 쫓는 데 당가의 일원들을 대거 동원하는 등의 전략으로 내가 손쉽게 오고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사람을 많이 써도 애초에 내가 짠 판이니 빠져나가기 어렵지 않았고, 오늘처럼 다른 볼일을 보고 올 수도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건 낮 시간 외에는 금태양으로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금태양’은 하루에 한 번 환자를 본다.
그 환자들은 대부분 수술을 겸하기에 실제로도 낮 시간을 거의 소모하지만, 인원과 설비가 충분하다면 몇 배의 환자들을 커버할 수 있다.
맨 처음 당가주는 내게 환자를 안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당당의 애걸을 통해 수술한 환자들이 하나둘 완쾌되기 시작하자 욕심을 드러냈다.
은근슬쩍 보조로 쓰라며 당가의 의원들을 들여보내고 더 넓은 곳으로 옮겨주겠다며 사람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받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집중력이 깨지고, 이미 있는 인원으로 충분하다며 당가의 의원들을 돌려보냈다.
더 넓은 곳으로 옮겨주겠다며 들이닥친 사람들은 아예 문전박대했다.
수술하는 곳에 왜 자꾸 사람을 보내서 위생을 망치느냐, 환자를 일부러 위험하게 만들어서 나를 망신시킬 작정이냐고 성을 냈다.
수술 후 경과가 워낙 좋았기에 당가주는 더 이상 함부로 나를 대하지 않았다.
대신 식사라든가 소소한 물품 제공에 있어 질이 높아지는 등 나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이크.”
상념에 빠진 채 사당으로 향하다 발을 잘못 디딜 뻔했다.
“이걸 밟으면 큰일 난댔지. 조심해야겠군.”
내가 밟을 뻔한 건 건물 지붕으로, 밖에서 당가타 안으로 들어오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경로였다.
근데 이게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일부러 이쪽으로 향하게 만들어놓은 거다.
당당과 작당모의를 하면서 들었는데, 당가타의 경비가 허술한 건 곳곳에 배치된 기관진식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뭐, 사람이 없어서 기관진식을 이용하게 된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게 외부에서 당가타로 침입하는 이들을 여태껏 효과적으로 막아왔다나.
안채로 갈수록 기관진식은 더욱 빽빽이 자리하고 있고 기관이 발동하면 당가의 독이 침입자를 덮친단다.
실제로 나도 당당에게 듣지 않았다면 큰 실수를 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봤던 전서구도 끔찍한 꼴을 당했지. 으으.”
한번은 몰래 들어오다가 당당이 그곳만큼은 절대 밟지 말라고 한 위치에 전서구 하나가 실수로 내려선 것을 보았는데, 그 순간 독이 쏟아지면서 전서구가 한 줌 핏물로 화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경계가 삼엄하지, 내부를 돌아다니는 경로는 기관이 빽빽하지 않아서 내가 본채에 갔을 때 별 문제가 없었던 거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당가타 내부 인원, 즉 핏줄을 엄청나게 신뢰한다는 거겠지.
머릿속으로 기관진식의 위치를 떠올리며 사당 안으로 안전히 돌아왔다.
“왔음?”
“와 있었네.”
“응. 네 말대로 오늘 실수한 독혈대원을 쥐 잡듯 잡았음.”
“성과는 있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무슨 다른 임무를 맡았기에 중요한 일에 얼이 빠져 있냐고 한 시진을 꼬박 잡았는데도 그런 거 없다고 함. 하아, 이걸로 내가 닦달할 수 있는 당가의 부대는 다 잡았음. 너는 어떰?”
“밖으로 빼돌린 흔적도 없어. 주방에서도 전혀 모르겠대?”
“찬모부터 설거지하는 애들까지 캐물었는데도 바뀐 게 없다고 함. 오히려 여기 사당 인원들이 먹는 양이 보통이 아니라고만 하던데.”
나와 당당은 다양한 방면에서 신생의 흔적을 뒤졌다. 하지만 어디서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 선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은 거다.
그 이상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선에 존재한다.
“……가주가 아니면 원로 정도나 되어야 알려나.”
“형님들은 알 수도 있음. 후계자로 교육을 받아왔으니 아버지가 인질을 어디 가두는지 들었을 수도?”
그 얘기를 할까 말까.
당당에게 내 모든 비밀을 말했으나(말하는 것과 당당이 믿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이 문제를 털어놓는 건 어딘가 꺼려졌다.
인체실험이라니.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당당이 받을 충격은 내가 아버지 금왕의 비리를 알았을 때 받은 충격에 못지않을 거다.
적어도, 그 사실은 당당 스스로의 손으로 알아내야 한다.
“외부로 나가지 않았다면 남은 건 당가타 내부밖에 없어. 남은 건 원로원이지?”
“응. 하지만 원로들은 형님은 좋아해도 난 별로 안 좋아해서―.”
순간 당당이 말을 멈췄다. 밖에서 낯선 인기척이 들렸다.
“그 녀석 안에 있냐? 당당도 있고?”
하지만 목소리는 제법 귀에 익었다. 문을 열자 아는 얼굴이 마뜩잖은 표정을 하곤 서 있었다. 당당의 쌍둥이 형 중 하나인 당랑이었다.
“나 좀 따라와라.”
“무슨 일이지?”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니까 잔말 말고 좀 따라와.”
“괜찮음. 내가 같이 가겠음!”
“당당 넌 오지 말고. 금태양 너만.”
“무슨 일인지 얘기하지 않으면 따라가지 않겠어.”
따라가는 거야 문제없지만 당랑의 태도가 영 수상쩍었다. 표정도 썩 개운치가 않은 데다 묘하게 내 쪽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젠장, 환자 때문이다. 됐냐?”
“환자? 집에 내가 모르는 환자가 있음? 형님이 직접 와서 금태양을 데려갈 정도로?”
“당당 넌 끼지 말고 가만히 있어. 그래서 갈 거냐 말 거냐?!”
당랑은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갈 거냐고 물을 때는 순간 나를 똑바로 보았는데, 그 눈에는 불안함이 엿보였다.
“좋아. 잠깐 기다려. 환자를 보려면 짐을 챙겨야 하니까.”
당당에게는 괜찮으니까 따라오지 말라고 한 후, 짐을 챙겨 들고 당랑을 따라나섰다. 녀석은 우리가 안내받았던 안채 쪽으로 향하더니 한 곳에서 발을 멈췄다.
“이곳은―.”
신호탄이 터졌을 때, 녀석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던 곳이다.
“우리 형제의 거처다.”
“그렇다면 환자가 설마?”
당랑이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가 아파. 네 녀석이 봐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