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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91화 (291/350)

291화

솔직히 당가주를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딱히 당가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나?

역사적으로도, 나라가 약하지만 특별한 자원이 있다면 당가주가 말한 것처럼 수탈을 당하는 경우는 흔하다. 대상이 개인이든, 가문이든, 아니면 지역이든. 인간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일.

하지만 그게 나를 적대시하는 이유라면 조금 곤란하긴 하지.

“……금태양은, 그런 녀석 아님. 한 번만 믿어 보셈. 이번에 다들 많이 다쳤잖음? 그 녀석 중원에서 수술 잘하기로 아주 유명한 의원임. 솔직히 우리 당가가 독이나 약에는 조예가 깊어도 그쪽으로는 약하잖음.”

당당의 항변에 당가주는 계속 해보라는 듯 흐음, 소리를 내뱉었다. 그 반응에 당당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도 좌수검 얘기는 들어봤을 거임. 좌수검 잘린 팔을 걔가 붙였다니까? 걔뿐 아니라 태양의원에 수술 실력자가 엄청 많음! 근데 걔가 그걸 다 가르쳤―.”

그런데 그 분위기가 한순간에 반전됐다.

“……지금 뭐라 했느냐.”

“아, 아버지.”

“뭐라 했냐느니까!”

한번 들어나 보겠다던 어조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며 노기를 가득 담았다.

“태양의원에 수, 수술 실력자가 많다고―.”

갑작스러운 태도 변환에 당당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허어, 하! 당가주의 한숨 소리가 밖까지 새어 나왔다. 그리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네 녀석, 설마 마비산의 제조법을 가르쳐주었느냐?”

“……아, 아님.”

“거짓말하지 말거라. 그게 아니고서야 수술의를 그리 많이 확보할 수 없어.”

부채 따위를 책상에 탁 내려놓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찔렀다.

“태양의원이라는 곳에 수술의가 많다라. 그 의원들이 전부 점혈을 할 수 있거나 그만한 무인들을 항시 배치해야 가능한 일이지. 중원의 문파들은 점혈이 가능하지 않을 경우 수술을 금한 지 오래 되었으니까. 헌데. 그곳엔 무당이 있지 않느냐.”

“네에…….”

“무당이 제 밑에 둔 의원도 아닌, 감히 제 손을 벗어난 의원에 그런 인재들이 가는 걸 막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지.”

보이지 않는데도 안의 분위기가 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서늘한 눈을 한 당가주와 뱀 앞에 선 쥐처럼 옴짝달싹못하는 당당. 녀석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당가주의 질책은 녀석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 녀석이 네게 마비산의 제조법을 달라고 했느냐?”

“아, 아님. 같이 연구하다가―.”

“그래, 그런 식으로 유도를 했겠지. 교묘하기 짝이 없는 중원 놈들 같으니라고. 그런데도 너는 그 녀석에게 우리 가문의 일원을 맡기자고 하는 것이냐?”

“그거랑 그거가 무슨 상관임!”

찰싹―!

강하게 살을 후려친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 사이를 갈랐다.

“어딜 무인의 몸을 함부로 타인에게 맡기라 하는 것이냐. 무인의 몸은 그가 익힌 무공의 총체다! 너는 그것이 우리 모두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게야! 이 철딱서니 없는 것!”

“나, 나는…… 나는 그저…….”

“특히 우리 당가는, 독에 저항하는 타고난 체질이야말로 당가의 시작이자 끝이다! 세가 무인들은 대부분 방계의 일원, 당가의 피를 이었다. 너는 지금 그 몸을 파헤쳐 달라고, 그놈에게 갖다 바치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는 거다! 당가의 직계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중원에 금기시 된 마비산을 갖다 바치기나 하고!”

당가주의 질책 사이로 당당이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혼나는 것도 아니고, 당가주는 지금 당당에게 당가의 일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칭찬이 큰 의미를 가졌던 만큼 질책이 주는 의미도 클 것이다.

두 부자는 잠시 침묵했다. 당당의 흐느낌이 잦아들었고, 당가주도 분노를 다스리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당가주가 입을 열었다.

“당아. 마비산이 금지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섬서사변 때였지. 우리 당가는 거리가 멀어 그 일을 겪었던 이들에게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

당당을 타이르려고 할 거 같긴 했는데, 이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나는 조금 더 귀를 바짝 붙였다.

“주변 문파가 이상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 그들은 곧장 화산으로 가 마두를 징치하려 했다. 허나 그러지 못했지. 왜 그런지 아느냐?”

“……마비산임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마비산이 금지된 이유, 그건 그로 인해서 정파가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마비산 정도로 구파의 무인들을 막을 수는 없다. 허나, 그건 지금 통용되는 마비산의 경우지.”

“그게 무슨 말씀임?”

“섬사사변 이전, 마비산에는 산공독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가주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았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산공독이라면, 내공을 흩어버린다는 말임?”

“그래. 그 당시 사용되던 마비산, 특히 무림인에게 사용하던 것은 의료용이라 할지라도 소량의 산공독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다. 무림인의 신체는 아무리 스스로 신장을 풀고 힘을 빼도, 수술을 위해 칼을 대면 몸이 자동적으로 반탄력을 만들기 때문이지. 때문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의원들은 수술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더군. 고수들의 경우, 산공독을 넣지 않으면 바늘조차 찔러 넣기 어려웠을 테니.”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것이 무림에서 허용되었던 건,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공독이라고는 해도 무의식적으로 발휘되는 내공을 가라앉히는 효과 정도를 줄 뿐이었어. 하지만 섬서에서 쓰인 것은 그 정도를 한참이나 넘어섰다고 했지. 섬서에 들어선 고수는 힘을 잃고 범인보다 못한 존재가 될 정도였으니.”

섬서사변 이후 화산이 무림 공적으로 몰린 이유.

이게 바로 그 이유였나.

단순히 한 지역을 초토화시킨 걸 넘어서, 독으로 무림인들의 내공을 흐트러트렸다.

나도 이제는 무림인들의 생리를 어느 정도 안다.

그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목숨을 앗아가라고 울부짖었을 거다. 십수 년에서 수십 년, 평생을 바쳐온 내공이 덧없이 흩어지는 건 그런 영혼이 찢어지는 것과 다름없었을 테니.

화산의 이름이 금기가 된 것.

화산 의술의 핵심인 화씨의문, 그들의 특기였던 수술에 상당한 제약을 가한 것.

그 모든 것이 산공독 하나로 설명이 된다.

“아직도 화산이 그만한 산공독을 어찌 개발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

그건 화산이 주모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뿌득 소리 날 정도로 이를 갈았다.

그 사건의 진상을 모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 모르면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아는 입장에선 아니다.

그 산공독은 혈교의 소행일 것이다.

“산공독을 어찌나 지독하게 뿌렸는지, 그 독은 무인의 내공을 흐트러트리는 수준을 벗어나 자연만물의 생기를 해치는 데까지 갔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함부로 그곳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럴 수가…… 나는 전혀 몰랐음.”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우리야 중원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일 이후 의맹에 가입한 모든 문파와 세가들은 마비산을, 정확히는 산공독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우리는 산공독 성분을 제외한 마비산만을 사용하기로 했지. 네가 배운 것도 그것이다. 그러니 네 친구가 그것을 사용해도 무당에서 확실히 제재할 수 없었던 게지.”

그 부분은 나도 의아하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마비산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금기라고 해놓고 무당은 생각보다 우리를 크게 제재하지 않았다.

거기에 그런 연유가 있을 줄이야.

“네가 금태양이라는 자에게 마비산을 준 것은 더 이상 탓하지 않겠다. 그래,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 중원에 반드시 교활한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맞음. 그 녀석은 그래도 괜찮은 녀석임. 내 검이 보증함.”

“너의 보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금태양이라는 자가 직접 증명해야 할 일이지.”

“그렇다면―.”

“수술을 한 번 맡겨보도록 하마. 가서 잘 얘기해 보거라.”

“아버지!”

“단, 지금 있는 사당 밖으로 나가게 할 수는 없다. 허나 수술을 한다면 공간이 필요할 터. 임시 천막 정도는 세워주고, 함께 있으면서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거라. 당가도 수술과 같은 외과적 처치에 대한 방도를 세울 때가 되었다.”

당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당가주가 이만 가보라며 축객령을 내렸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여기서 끝인가?

“그런데 아버지. 무는 어쩌실 거임?”

전음을 보낸 것도 아닌데, 당당이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재차 무에 대해 물었다. 정확히는 무를 가장하고 끌려간 신생에 대해 물었다.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면, 너에게도 만천화우와 사천혈독의 제조법을 가르쳐주마.”

“에?! 예?! 그, 그건―.”

“그래. 차기가주 후보에게만 전수하는 암기술과 독이다.”

“아, 아버지…….”

“그러니 네 친구들을 잘 돌보고 있거라. 이참에 우리도 중원에 든든한 끈을 만들어두면 좋지 싶구나.”

당당은 그 자리에서 방방 뛰더니 이내 가보겠다며 본채를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본채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군.

처음에는 당당을 윽박지르다가, 이내 당당과 나의 친분이 보통이 아닌 거 같으니 우회해서 나를 감시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대놓고 내 수술 실력을 카피하라고까지.

마지막으로 무의 행방에 대해 물으니 차기가주 후보로 인정해주겠다는 말로 은근슬쩍 당당의 관심사를 돌렸다.

태도는 달라졌지만 당가주가 당당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강하게 나갈 때나 부드럽게 나갈 때나 똑같았다.

나는 좀 더 대기하면서 당가주의 이동을 살폈지만, 그는 곧 잠이 든 듯 본채의 불을 끄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이상 있다간 당당이 사당으로 돌아와 내 부재를 알아차릴 테니, 어쩔 수 없이 나도 자리를 떴다.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을 알아내지 못해 속이 답답했다.

대체 신생을 데리고 뭘 할 생각인 거지? 대체 어디에 둔 거야?

홍령이 그리웠다.

이럴 때 홍령이 있었더라면, 자유로운 귀신의 몸으로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신생이 어디 있는지 찾아줬을 텐데.

허나 홍령은 없고, 이럴 때 검명으로 나를 위로하던 검마저 반쯤 고철이 되어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그래야 다시 홍령 앞에 설 수 있을 거 같다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빠르게 사당으로 돌아온 나는 지붕 위에 올라가 툭툭 두드리며 작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안에서 곽 표두가 “거 문 좀 열어도 됩니까? 매운 걸 먹어서 그런가, 너무 더운데.” 하며 약속한 대로 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를 보고 경악하는 당당과 마주했다.

“대체 어딜 다녀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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