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88화 (288/350)

288화

“삼 공자라면…… 나 말임?!”

“너겠냐.”

심각한 상황에 나온 당당의 엉뚱한 물음에 한숨이 푹 나왔다.

“무가 남해태양궁의 막내라고 했잖아. 셋째니까 삼 공자겠지.”

“미친, 그럼 그놈들이 감히 당가타를 염탐하고 있었던 거임? 우린 아버지가 직접 화해를 청하러 갔는데, 이 자식들이 우릴 못 믿어?!”

진실을 이해한 당당이 분노를 토했다. 녀석의 입장에서야 그럴 수밖에 없지만…….

“진정해.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 그래 봤자 그거 한 명이었잖아. 저쪽에 소식이 닿지만 않으면 됐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위험했다.

원래 내 계획은 당가의 손님으로 안전하게 무를 데리고 있다가 남해태양궁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당가와 남해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무를 데려다주는 걸로 남해의 신뢰를 얻고 그걸 기반으로 당가와 화해를 시켜서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도 있겠다 싶었고.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무가 당가타에 있다는 사실이 맥락 없이 남해로 들어가 버린다면……

남해는 당가가 무를 납치해놓고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끝까지 비밀로 한 채 화해 신청까지 하다니. 기만도 그런 기만이 없다.

그렇게 된다면, 사천당가와 남해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건 그럼. 최악은 면했음. 아버지께서 나를 믿고 당가타를 맡기셨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난 얼굴을 들 수 없을―”

그때 다소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가 창공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불길한 소리가 우리의 귓전을 때렸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한 점을 향했다.

그리고 이내 그 한 점은―

퍼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터졌다.

화창한 대낮임에도 확실히 식별할 수 있는 신호탄이었다.

아마 당가타보다 먼 곳에서도 눈에 확 들어올 것이다.

“당가의 것이 아님, 성도 성주가 쓰는 것도 아님! 대체 누가?!”

“……젠장, 쥐였지.”

나는 별채를 가득 메웠던 쥐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많았으니 한두 마리 정도 자리를 빠져나갔어도 이상하지 않다. 당당이 독을 쓸 때도 퍼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쥐를 통해서 밖에 대기하고 있던 자와 연락을 취한 거야. 신호탄이 올라간 장소의 거리와 시간을 생각하면 딱 맞아.”

남해태양궁의 무인만 쓰러트리면 별일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별거 아닌 것같이 보이던 쥐가 이런 역할을 할 줄이야. 동물을 부릴 수 있다는 걸 만만히 생각해서는 안 되겠군.

“일단 안채로 가. 내 방을 비워줄 테니 거기 있으셈. 별채는 외부에 가까워서 위험함.”

상황을 파악한 당당은 진지한 얼굴이 되어선 우리를 서둘러 안채로 데려갔다. 안채는 본채 뒤에 위치해 있어 별채가 있던 곳보다 경비가 삼엄했다. 그곳의 건물들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당당! 무슨 일이냐!”

“일이냐!”

“형님들?! 나오면 안 됨!”

건물 입구 앞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대고 있는 놈들은 당가의 직계, 당당의 쌍둥이 형들인 당랑과 당철이었다. 근신 중이라고 들었는데, 자택에 근신하다가 신호탄이 올라가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 신호탄이 아닌 거 같던데, 그렇다면 근신이 문제가 아니잖아!”

“아니잖아!”

“성도에 남해의 인물들이 숨어들었음. 그자들이 쏘아올린 거 같음.”

“거봐! 안 되겠다. 아버님이 데려가신 세가원은 얼마 안 돼. 독혈대를 데리고 가야겠어. 가자, 당철!”

“간다, 당철!”

당랑과 당철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당랑의 외침에 어디선가 대기하고 있던 독혈대가 달려 나왔다. 당당도 그 뒤를 뒤따르며 외쳤다.

“형님! 나도 데려감!”

“너까지 가면 누가 당가타를 지키라고? 넌 집이나 보고 있어!”

“보고 있어!”

당랑과 당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독혈대를 이끌고 빠르게 당가타를 빠져나갔다.

“녀석들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나는 당당을 위로해줄 겸 어깨를 두드리며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당당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형님들 말투가 원래 저럼. 그래도 형님이 날 인정한 거임!”

“……인정? 저게?”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하잖음! 전이었으면 방에나 처박혀 있으라고 했을 거임! 형님들이 방심하긴 했어도 소림에서 내 실력을 보여준 게 제대로였던 거임!”

그렇게 말하는 당당은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됐다, 네가 뿌듯하면 그걸로 된 거지.

“난 주변을 좀 돌아보고 올게. 신생, 무를 지키고 있으렴.”

“네!”

“주변을? 왜 네가?”

“이상한 신호탄이 올라갔잖아. 내가 성도 사람이면, 안 그래도 불길한데 당가 직계나 무인들이 와서 순찰을 돌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싶어 불안할걸?”

“어어, 그건 그럼! 아버지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말라고 했음!”

“그럼 차라리 낯선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낫지. 다녀올게.”

“그렇게까지 생각해줘서 고마움! 역시 넌 최고의 친구임!”

“별말을.”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당가타를 나섰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골목을 찾아 들어가 가면을 벗고 가벼운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처음부터 당당 대신에 성도를 순찰해줄 생각은 없었다. 문제가 생긴다면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어날 테니까.

내가 갈 곳은 바로 그 문제의 중심이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곧바로 위로 뛰어올라 지붕을 박찼다. 무한 못지않게 복잡한 이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선 이쪽이 빠르다.

한참 동안 최고 속도로 달리자 먼저 달려나갔던 당랑과 당철, 그리고 당가의 독혈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곳, 당가와 남해태양궁이 화해 협정을 맺기로 한 산.

산어귀에 들어섰을 뿐인데 벌써부터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산 전체를 요란하게 울렸다.

거기에 다른 싸움에서는 듣지 못한 낯선 소리도 귀에 꽂혔다.

거친 맹수의 포효 말이다.

“윽―.”

“깜짝이야!”

나와 비슷한 속도로, 그러나 나를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산을 달려 올라가던 당가의 독혈대 몇 명이 움찔하며 발을 멈췄다. 나도 움찔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간담이 서늘했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당가의 정예들을 움찔하게 할 정도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듣기만 해도 실신하는 게 아닐까?

포효만으로도 사람의 심장을 덜컹 내려앉게 하는 그 맹수들은 싸움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막아라! 독을 뿌려!”

“이놈들, 독이 안 듣습니다!”

“젠장, 암기를 뿌려! 있는 대로 던져라!”

“털 때문에 암기가 박히질 않, 으악―!”

산 정상, 그곳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던 중 신호탄이 터진 것을 본 건지, 보통의 싸움이라면 아직 서로를 견제할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이미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과 맹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피해가 큰 쪽은 당가였다.

당가의 무인들이 극독을 던져댔지만 맹수들에게는 도통 듣질 않았다. 잘 보니 맹수들은 입마개 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이빨로 물어뜯는 등의 공격은 불가능했지만, 그 덕에 독에 대한 저항을 갖춘 모양이었다.

대신 거대한 몸집으로 몸통박치기를 하거나 날카로운 발톱 등으로 당가의 무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반면 당가는 그런 대형 맹수에게 대적할 만한 무기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들을 상대하려면 길이가 긴 무기로 대항해야 하는데, 이에 유리한 창은커녕 검을 쥔 이들도 드물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의 암기는 족족 맹금류들에 의해 낚아채이거나 두툼하고 단단한 털가죽에 제대로 박히지 않거나 튕겨나가기 일쑤였다.

하물며 숫자마저 적었다.

이건 당가주의 실책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성도에서 가까운 곳이라도, 화해를 위한 회의라 해도 넉넉한 인원을 데려왔어야 했다. 분위기상 어쩔 수 없었다면 최소한 산 아래에 무인들을 대기시켜야 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이오! 일 공자, 그 이유라도 말을 해주시오!”

“그걸 몰라서 묻느냐! 이 천하의 파렴치한 당가 놈아!”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린 당가주는 싸움의 한복판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상대는 아마도 남해태양궁의 차기궁주인 모양인데…….

현 당가주는 실력파보다는 두뇌파인가? 가주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무공 실력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다른 당가 무인들에 비해 강하긴 했다. 하지만 압도적이진 않았다. 상대가 남해태양궁 궁주도 아니고 차기궁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아니면 저게 강한 건가?”

나는 남해태양궁의 차기궁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궁주와 합을 맞추어 싸우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를 보았다.

그 금호(金虎)는 크기만 거대한 게 아니었다. 존재감도 만만치 않았다. 이 자리에서 날뛰는 맹수 중 유일하게 입마개를 차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독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거 같았다.

저 금호가 상대하고 있는 존재가 가장 강한 독을 가진 당가주라는 걸 고려한다면 더욱 엄청났다.

금호가 한 번 날뛸 때마다 당가주의 암기들이 박살 나고 주변 당가 무인들의 신체가 아그작 소리를 내며 반으로 나뉘었다.

“아버지! 저희가 왔습니다!”

“왔다!”

“원군이다! 독혈대와 두 후계자가 왔다!”

“살았다!”

나보다 뒤처졌던 당씨 형제와 독혈대가 합류해 당가는 겨우 전열을 회복했다. 하지만 확실히 당가 쪽으로 승세가 기울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간만 가다간 둘 다 큰 피해를 볼 게 자명했다.

그건 내게 썩 유리한 전개가 아니었다.

“한쪽에 추를 올려줘야겠군.”

결정을 내리자마자 나는 검을 뽑아들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우선 가까이에 있는 맹수와 당가 무인들이었다.

“웬 놈이냐!”

나에게 앞을 가로막힌 당가 무인이 눈에 살기를 띤 채 외쳤다.

“나? 도와줄 놈?”

그렇게 말하며 나는 뒤에서 그를 노리고 날아드는 맹금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헉!”

검기에 날개를 베인 맹금이 급하게 궤도를 수정하며 날아올랐다. 하지만 허우적대며 나는 꼴을 보니 다시 합류하기는 무리일 게 분명했다.

“계속 그런 눈깔로 꼬나볼 거야?”

“아, 아니! 도와줘서 고맙다!”

“그래, 그래야지.”

나는 당가 무인에게 감사 인사를 받은 후 곧바로 옆으로 이동했다. 당가의 편이라고 인식이 된 덕분인지 내 앞을 가로막는 이는 없었다.

“비켜라! 우리 편이다!”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검수다! 앞으로 보내! 우리는 뒤로 물러난다!”

당가 무인들의 조력 아닌 조력에 힘입어 자리를 확보한 나는 곧바로 검을 내질렀다. 나의 검이 향한 곳은 맹수들의 입이었다.

“이런 거 차고 있으면 안 답답하냐?”

맹수들은 피하려고 했지만 내 검이 더 빨랐다. 촘촘히 짜인 입마개가 찢어지고 뜯겨 날아갔다. 몇몇 개는 아예 제거했고 몇 개는 구멍을 냈다. 그러자 독기를 마신 맹수들의 몸놀림이 눈에 띄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쓰읍, 독을 몇 개나 쓴 거야?”

전장을 누비던 나도 더 이상 독을 들이마시면 위험하겠다 싶은 순간 품에서 해독제를 꺼내 마셨다. 당당 녀석이 떠나기 전 사정사정해서 받아놓은 당가의 피, 그걸 개량해 만든 만능 해독제였다. 적어도 당가에서 다루는 독에는 만능이겠지.

국지전은 내 활약 덕분에 당가가 조금 더 유리해졌다. 맹수들에게 독이 듣기 시작하자 당가의 무인들은 눈에 불을 켰다. 여긴 이대로 놔두면 될 거고.

“좋아, 다음은―.”

입마개 없이도 날뛰고 있는 맹수.

금호와 당가주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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