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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85화 (285/350)

285화

하오문에서 볼 일은 마쳤지만 나는 바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지부장인 늙은 기녀가 대접하는 차를 마시며 그녀가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가 사천에서 기녀로 늙어가면서 겪었던 일들, 최근에 그를 골치 아프게 하는 일들, 떠도는 소문들 등.

대수롭지 않은 술안주, 아니, 차를 마시니 다과에 준하는 가십 정도였지만 나는 지부장의 의도를 알았기에 차를 음미하며 늙은 기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의 일생은 사천 성도의 역사였다.

그리고 동시에, 당가의 내력이기도 했다.

“차 잘 마셨어요.”

당가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없다던 지부장은 둘러 말하는 방식으로 대략적인 정보를 건네주었다.

사실 그 정도는 내가 오기 전 파악한 정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최근 당가의 행보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당가주가 부재중이라…….”

나는 객잔으로 발을 옮기며 지부장이 말한 정보를 곱씹었다.

최근 성도의 분위기가 수상쩍었다고 한다. 당가의 무인들은 잔뜩 날이 섰고, 두문불출하며 무언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고.

지부장은 그 이상을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그 이유를 말하는 대신 당가주가 부재중이라는 말로 건너뛰었다. 주기적으로 지부장을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는데, 그 약속을 취소했다는 말로 에둘러 전한 것이다.

당가의 무인 일부를 데리고 몰래 성도를 나섰다고.

가주쯤 되는 인사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드물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가주는 보고를 받고 명령을 내린다. 컨트롤 타워다.

가주가 움직인다는 건 그만한 일이 성도 밖에서 벌어졌다는 뜻.

이게 내게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틈도 없는 것보단 뭐라도 틈이 있어야 비집고 들어가기가 수월하겠지.”

나는 호재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으니까.

물론 그 말은 반대로 기회는 반드시 위기를 동반한다는 뜻이 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객잔으로 돌아왔는데―

“스, 스승님!”

객잔 앞에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십여 명쯤 되는 무인들이 검을 뽑아든 채, 신생, 그리고 금왕표국의 표사들과 대치 중이었다.

무인들 중 몇 명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걸 보니 신생을 잡으려다가 몇 놈이 쓰러지고 나서 대치 상황을 만든 모양이었다.

객잔 안에선 표사 몇 명이 무를 지키고 있었다.

“한 패인가! 저자부터 잡아라!”

신생의 외침에 내 존재를 알아차린 무인 몇 명이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검면이 검게 물든 검을 위협적으로 펼치며 달려들었다.

독검?

무인 세 명이 합격을 펼치며 나를 압박하려 들었지만 나는 손쉽게 피했다.

그들의 실력이 별로여서가 아니었다.

합격의 완성도는 높았고 검의 위력은 강맹했다.

그들의 검은 합격인 만큼 빈틈이 없었다. 한 명은 빠르고 화려하며, 한 명은 예리하게 빈틈을 찔렀고, 한 명은 묵직하게 치고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실력이라면 초반에는 꽤 고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검을 안다.

“이럴 수가, 전부 피했어?!”

“으윽!”

“젠장, 검이!”

화려한 쾌검은 생채기조차 허락하지 않고 전부 피했다.

‘쾌검을 쓸 때는 살짝만 스쳐도 극도의 통증을 자극하는 독을 바름! 치명적이진 않지만 통증은 강함!’

빈틈을 찔러 들어오는 예리한 검, 마치 자객의 검 같은 그것은 아예 뒤로 돌아가 무인을 멀리 걷어찼다.

‘찔러 들어가는 검은 공격이 주 목적이 아님! 그런 검에 바르는 독은 기화됨! 자꾸 가까이 붙거나 계속 향을 맡으면 중독되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함!’

마지막, 보기 드문 중검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공격의 맥을 끊고, 한 방을 노리는 검.

그 검은 아예 검을 베었다.

‘앞의 두 개는 사실 연막임! 중검이 진짜! 치명적인 공격과 동시에 독극이 스며듦! 부수는 게 상책!’

머릿속에서 당당 녀석의 요란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심상 속 화산에서의 시간을 제외하고, 이승에서 내가 가장 많이 검을 겨룬 상대는 당당이다.

창천 녀석은 자기가 내킬 때만 검을 봐주었고, 변덕스러운 데다, 승부욕에 불이 붙으면 도저히 놔주려 하지 않아서 좋은 대련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당당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들이 쓰는 독검을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꿰고 있었다.

당당 녀석쯤 되는 것도 아니고, 일반 무인들의 실력 정도라면 더 볼 것도 없다.

그 세 명을 무력화시키고, 객잔을 둘러싸고 있는 무인들 사이를 파고들어 신생의 앞에 섰다.

“당가인가? 여긴 무슨 일이지?”

나는 검을 늘어트린 채 물었다. 먼저 오지 않으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뜻. 당가의 무인들은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혼란스럽게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유를 쉽사리 밝히진 않았다.

“신생?”

“……스승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다가, 마침 객잔 앞에 개방의 거지들이 구걸을 하러 왔거든요.”

신생은 자신이 잘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았다.

신생은 적당한 돈과 개방도만이 아는 암호로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다. 우리가 갈 남해태양궁에 대한 정보 말이다.

당가에 대한 정보는 출발 전에도 꽤 입수할 수 있었다. 사천도 외지긴 하지만 그래도 중원에 속해 있고, 당가는 오대세가의 일원이었으니까.

하지만 새외라 불리는 남해태양궁은 아니었다.

남해태양궁 부근에서 나고 자랐다는 조련사도 본궁에서는 제법 떨어진 곳에 산, 그쪽 기준으로 보자면 촌뜨기인지라 자세한 것은 몰랐다. 거기에 그도 제 발로 중원으로 걸어 나온 게 아니라, 노예상에게 납치를 당했다가 도주한 거라 남해태양궁으로 오고 가는 길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사천은 남해와 교류가 있다고 들었다.

당가와 남해태양궁이 적잖게 거래를 지속해 왔다는 정보가 있어서, 남해로 가는 길은 사천에 가서 찾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신생도 그 때문에 거지들을 만난 김에, 내가 없는 동안 쓸모 있는 일을 해두려고 했을 것이다.

“근데 남해태양궁에 대해 묻자마자, 거지들이 사색이 되더니 어디론가 달려갔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왔고요.”

하오문에 이어서 개방까지.

하오문 사천지부장도 당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개방도는 한 술 더 떠서 정보를 얻으려 하자 당가의 무인들을 불러왔다.

여기는 중원이 아니다.

당가가 왕이나 다름없는 세상이다.

“내 제자의 말을 듣자 하니, 남해태양궁에 대한 정보만 물어봤을 뿐인데. 우리를 겁박하는 이유가 뭐지?”

“시, 시끄럽다! 네놈들, 조금 있으면 도련님이 오실 거다! 그러면 네놈들은 다 죽은 목숨이야!”

“도련님? 당가주의 아들?”

“그래! 당가의 직계 앞에서 네놈들은 한 줌 핏물이 될 것이다!”

신생도 몇 명을 쓰러트린 데다 나도 손쉽게 세 명을 제압했으니 자신들이 상대가 안 될 것이란 건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가의 직계가 온다라. 당랑이 오려나, 당철이 오려나?”

“근데 스승님, 스승님은 그 둘 다 이기실 수 있잖아요?”

“뭐, 둘이 동시에 오지만 않으면 하나씩은 어렵지 않겠지.”

당랑과 당철은 당당의 쌍둥이 형.

한 놈은 타고나길 독인(毒人)이고, 한 놈은 당가의 독문무기, 암기술의 달인이다.

둘이 합치면 거의 무적이라고 할 만하지만, 한 놈씩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둘이 함께여도 대처를 못 할 건 아니고. 당철의 독이 거슬리긴 하지만 당가에 오는데 내가 해독약 하나 안 챙겨 왔을까 봐?”

“역시 스승님이에요!”

나와 신생이 당가의 직계가 온다는 말에도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여기서 당가타가 많이 먼가? 그래서 그 직계는 언제 와? 좀 걸릴 거 같으면 들어가서 밥이나 먹으면서 기다릴까? 뭐 좀 먹었어?”

“아뇨, 스승님 오시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럼 좀 먹어야겠네. 점소이, 여기 빨리 되는 거 아무거나 좀 내와요. 애들 먹을 만한 것도!”

나는 그들에게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당가의 무인들이 움찔했지만 자신들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객잔 앞을 지켰다.

점소이는 구석에 숨어 눈치를 보다가 내가 금편을 꺼내 들고 나서야 우물쭈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가가 왕이나 다름없는 곳이니 우리에게 음식을 줬다가 큰일을 치를까 걱정되는 눈치였다.

“이 객잔엔 별일 없게 할 테니까, 맛있는 걸로 상다리 부러질 만큼 차려주세요.”

나도 나지만 신생이나 무 같은 어린 애들은 굶으면 안 되니까. 성장기에 밥을 제때 못 먹어서 쓰나. 그리고 표사들도 있다. 자고로 사람을 부리려면 다른 건 몰라도 먹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점소이는 그 말을 듣고도 뭉그적거렸다. 하는 수 없이 기세를 쏘아 압박하고 나서야 점소이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별로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긴 하지만, 당가의 압박 때문에 눈치를 보는 것이니 눈앞에서 힘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당가의 힘이 강한 곳에서, 남해태양궁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시도하자마자 당가의 무인들이 달려 왔다라.

거기에 당가주가 자리를 비웠다는 정보도 있다.

“둘 사이에 뭔가가 있군.”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원래 꾸준히 교류가 있던 두 집단. 그 둘 사이에 뭐가 있다.

내게는 별로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당장 남해태양궁으로 갈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그 정보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하는 수 없지. 당가 직계라는 녀석들이 오면 그쪽에 물어보는 수밖에.

썩 좋은 인연은 아니긴 하지만 당랑, 당철과는 안면이 있다.

모용갑이 죽으면서 녀석과 어울리던 그 둘도 소림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려워졌지.

사천당가가 중원 진출, 혹은 중원에 대한 정보를 목적으로 쌍둥이를 보내 모용갑과 친하게 지내라고 한 거라면, 내게는 충분히 거래할 만한 패가 있다.

오면 같이 식사라도 하며 물어보면 되겠군. 당철은 좀 그렇지만(아무래도 독인이니까. 독인과 한 자리에서 식사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당랑이라면 나쁘지 않다. 심성이 좀 나쁠 뿐이지 그렇게 똑똑해 보이진 않았거든.

그때 밖에서 당가의 무인들이 떠들썩하게 소란을 일으켰다. 그들이 안심할 수 있게 객잔 문을 활짝 열어놨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잘 들렸다. 거기에 누군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도 났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그놈들은 어디 있음?”

“이 안에 있습니다. 저희가 못 나가게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누가 누굴 지켜? 나는 코웃음을 쳤다. 때마침 요리가 나왔다. 매콤한 사천요리의 향이 코를 찔렀다.

“웬 놈임! 웬―.”

칼을 뽑아들고 당당하게 들어온 당가 직계의 걸음이 멈췄다. 녀석은 우리를 보고 얼빠진 듯 입을 벌렸다.

“에?”

“너? 왜?”

나를 비롯한 신생, 곽 표두, 그리고 표사들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는 왜임? 내가 물을 말임. 너희 왜 여기 있음?”

반갑고도 이상한 말투.

당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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