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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84화 (284/350)

284화

「세상에 비호감 딱 두 명 있대― 두비두밥― 어떻게 두 명이나? 두비두밥 누군지 정말 궁금하구나― 움빠둠빠두비두밤―」

행운의 편지 대신 적혀 있는 건 노래가사였다.

“이건…….”

이 노래는 전생에서 유행했던 거다. 게임 캐릭터들로 영상을 만들어 붙인 노래가 유명해져 일종의 밈이 된 노래.

태양의원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근처 관원으로 끌려가 갇혔고 그곳에서 풀려나기 위해 이 노래를 써먹은 적 있다.

나를 칭찬하는 가사로 바꿔 동네 아이들에게 부르고 다니게 한 거다.

이 노래는 내 명성이 올라간 지금은 더더욱 업그레이드되어서, 멀리서 들리기만 해도 민망할 정도의 내용이 되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버전으로 개사가 되어서 좌수검의 명성이나 금리의 미모 등을 노래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엔 정왕이 자기의 치세를 칭송하는 데 써먹어야겠다고 가사를 베껴가기도 했지.

그러나 이 오리지널 버전으로 다시 개사된 걸 들어본 적은 없다.

아니, 그거야 내가 온 동네 노래하는 사람을 다 쫓아다닌 것도 아니니 모르지.

하지만 맨 처음 개사해서 퍼트렸던 게 나를 칭송하는 내용이었던 탓에 대부분의 개사는 누군가를 우러르는 쪽으로 퍼졌다.

원문처럼 장난기 어린 내용이 아니다.

이건 오리지널을 아는 사람이 보낸 거다.

누가?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모용을이 후보다.

녀석은 서자지만, 적자였던 모용갑이 죽은 이후 유일한 모용세가의 후계자가 됐다.

그러니까 붉은 매 같은 신수를 부릴 수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나와 같은 전생을 갖고 있는 놈이고, 내 정체를 정확하게는 몰라도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것을 알고 있으니.

하지만, 왜?

녀석은 그럴 이유가 없다.

조만간 있을 의맹회의 때 녀석을 끌어들여 모용세가의 표를 받을 계획이지만, 그 건은 금리에게 사전공작을 부탁하고 온 상황.

……그렇다면, 설마?

“너, 설마 그 사람이 보냈어?”

물으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홍령이 보낸 거야?”

항상 내 곁을 지켜주던 귀신, 홍령은 그날 그 동굴에서 사라졌다. 같은 이름과 죽기 전의 외모를 한 인형 같던 사람을 만나 그 안으로 스며든 것처럼.

우웅― 웅―

지금 이렇게 검명을 울리는 이 검에도 홍령이 깃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의 감은 이 검보다는 그 ‘홍령’이라는 존재를 향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홍령이라면, 그때 내게 검을 뿌린 후 령주를 데리고 도망치진 않았을 텐데.

“홍령이 보낸 게 맞다면 뭐라도 답을 줘! 넌 그냥 매가 아니잖아?”

붉은 매는 한참 동안 내 머리 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이내 이렇다 할 신호 없이 휙 어느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다.

전에는 금동이와 걸왕에게 쫓으라 한 정도였지만, 홍령의 흔적을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녀석은 바람과 같은 속도로 날았고, 나도 최대한의 신법으로 놈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지난번의 추적을 통해 나는 놈이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 위로 빠르게 올라타 하늘을 향해 몸을 날렸다. 녀석은 내 기습을 눈치채고 그대로 방향을 틀어 위로 향했다.

위로, 더 위로.

때마침 지나가던 새를 밟고 한 번 더 도약했지만 놈은 닿지 않았다.

너무 높아서 공기가 희박했다. 숨이 가빴다. 허공을 허우적대며 더 올라가려고 해봤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놈은 구름 위로,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마침내 점이 되어 사라졌다.

“젠장!”

나는 착지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숨을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추락은 속도가 붙었다.

그 와중에 나와 같은 눈높이로 떨어진 한 개의 깃털이 눈에 들어왔다.

피처럼 붉은 깃털.

봄날에 떨어지는 꽃잎을 잡듯 나는 손을 뻗어 그 깃털을 낚아챘다.

그리고 지면으로 떨어져 착지했다.

콰앙―!!!

지축이 울리고 내가 디딘 자리를 중심으로 반구형의 구멍이 파였다. 저 멀리서 놀란 소림승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아니, 이 무슨!”

“금 의원님입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괜찮으십니까?”

나는 그들에게 괜찮다 손을 내저어 보이곤, 미안하지만 빨리 가봐야겠다고 했다.

마음이 급했다. 사천으로 가는 게 급한 게 아니었다. 쪽지와 깃털을 힘주어 쥐었다.

그 ‘홍령’ 안에 홍령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비상식적인, 소설이나 만화에나 나올 거 같은 얘기였지만, 나는 내 직감을 믿었다.

나는 이미 과학이 부정할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

홍령은 내 어머니다.

이 직감은 분명 그녀에게 이어져 있다.

그녀가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신은 여기 있다고, 나를 찾으러 오라고.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누군가 홍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어서?

아니면 완벽하게 그 몸을 제어할 수 없어서?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홍령의 노력은 내게 닿았다.

안강을 떠나 일행에게 합류한 이후 우리는 빠르게 사천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먼저 사천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썩 안전하지 않아 내가 함께해야만 했다. 대신 할 수 있는 한 빨리 달렸다. 체력이 가장 약한 무에게 미안했지만 마음이 급했다.

“쉬고 있어요. 난 먼저 다녀올 데가 있어.”

사천 성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앞에 보이는 객잔에 들어가 세를 놓은 후, 나는 곧바로 객잔을 나왔다. 그리고 유흥가 뒤쪽, 다소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 낡은 주루로 들어갔다.

“사천 지부장을 만나러 왔는데.”

“……이쪽으로 오시지요.”

중년의 기녀는 나를 곧바로 한 방으로 안내했다. 손님을 대접하기보다는 사무실 용도로 쓸 것 같은 방. 그곳에는 늙은 기녀가 있었다. 아마도 이곳 주루의 루주일 것이다.

“사천지부의 지부장이 주인을 뵙습니다.”

“나를 본 적 있어요?”

“용모파기로나마 자주 뵈었습니다. 이곳은 호북과도, 항주와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나를 대하는 지부장의 태도는 공손했다. 나를 탐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본문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그 영향력이 덜 미친다는 뜻이다.

하물며 여기는 사천, 당가의 땅이다.

하오문의 지부라고는 하나 당가의 입김이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리 오신 것은 의맹 회의에 앞서 당가의 손을 잡기 위함이겠지요. 허나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가는 현재 외부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못 됩니다. 다른 곳을 물색해보심이 어떻습니까?”

지부장이 나를 탐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지부장을 탐색했다. 방금 전의 짧은 말로 지부장의 입장을 유추할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당가의 정보를 주는 것은 어렵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니, 무리하지 않고 떠났으면 좋겠다.

그것뿐이었다면 이곳에서 나갔을 것이다. 드잡이할 시간 같은 건 없으니까.

“진주언가는 오대세가에 들 정도는 아니나 그 땅에서는 충분히 위세가 있습니다. 의맹으로부터 몇 번 정회원 제의를 받았으나 의술에 큰 뜻이 없다며 거절했지요. 허나 현 언가주는 하오문에 큰 빚이 있으니, 이를 갚는 조건으로 정회원 자격을 받아 투표에 참가하게 만드심이 수월하실 겁니다.”

당가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사천지부가 나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입장을 배려해 다른 계책을 내놓는다.

아니, 나를 배려한 게 아니라 은 파파를 비롯한 십이월들을 두려워하는 걸지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기색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 온 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니까 상관없어요. 하지만 조언은 달게 듣도록 하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 파파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줄까요?”

지부장은 답하지 않았지만,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품에서 종이쪽지와 붉은 매의 깃털을 꺼냈다.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받은 건데, 이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도와주겠어요?”

그렇게 한다면 내게 당가의 정보를 주지 않은 점을 은 파파에게 말하지 않겠다. 아니, 내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며 좋게 말해줄 수 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늙은 기녀는 내 뜻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을 하오문에 부탁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달려왔다. 오는 길에도 하오문의 지부는 있었지만 너무 작았으니까.

사천지부쯤 되어야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이 물건들에서 실마리를 찾아 전 지부로 보내겠습니다. 이외에 다른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걸 말했다. 혈교의 령주와 같이 있는 사람이 보낸 것이며, 매번 붉은 매를 보냈고, 그 붉은 매의 크기나 생김이 어땠는지, 항상 어디로 날아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등,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은 빠짐없이 얘기했다.

내 얘기를 전부 들은 지부장이 가만히 증거들을 들여다보았다.

속이 쓰렸다. 홍령이 보낸 구조신호인 줄 알았다면 지난 열 번의 쪽지들도 태우지 말고 간직했어야 했다. 실마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노래 가사를 전달받은 이후, 붉은 매는 더 이상 나에게 쪽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개방의 걸왕은 유명한 영물이지요. 그 영물이 쫓지 못했다면 하오문의 능력 밖입니다. 허나, 하오문은 거지들과 다른 일을 할 수 있지요.”

늙은 기녀는 쪽지를 들어 유심히 보았다. 불빛에 비춰보기도 하고, 냄새를 킁킁 맡고, 심지어 혀로 핥아보기도 했다.

“종이도, 먹도 고급입니다. 붓털이 한 가닥 떨어져 붙어 있는데, 이 또한 고급이군요. 이런 털을 쓰는 장인을 알지요. 금왕공방의 한 장인이 만드는 휴대용 지필묵인 듯합니다. 황족들도 쓰는 아주 귀한 물건이지요. 헌데…… 먹이 많이 흐립니다. 물을 많이 개었거나 먹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그 말에 홍령이 처한 상황이 그려졌다. 아직 본거지로 돌아가지는 못한 거다. 어딘가 몸을 숨기고 있는 건가? 그래서 붉은 매를 내게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먹에서 미미하게나마 석회 맛이 나는군요. 석회동굴에 고여 있는 지하수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과연 하오문.

본문과 멀리 떨어져 사천당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부를 이끌어온 늙은 기녀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이 드넓은 중원에 석회동굴이 한두 개겠냐만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단 낫다.

“이 깃털, 이건 어떻게 활용할 수 없을까요?”

“보통 이런 물건이 있다면, 개를 풀어 냄새를 추적합니다. 하지만 걸왕도 쫓지 못한 것을 하오문의 개가 쫓을 수는 없을 거 같군요.”

“냄새가 아니라, 물건으로서는?”

“물건이라.”

지부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붉은 매의 깃털을 살폈다.

“맞습니다. 물건으로는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색의 깃털이 염색이 아니라면 꽤 귀한 취급을 받겠지요. 희귀품으로 시장에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찾아보지요. 물건이 시장에 나왔다면 그 경로를 추적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겝니다.”

“아니, 그냥 산다고 해요.”

물건을 추적하는 것보다 빠른 것은 그 물건을 싸 짊어지고 달려오게 하는 거다.

“이 깃털을 다 사들여요. 얼마를 부르든 다 값을 치러주고, 대신 그 깃털을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전부 알아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늙은 기녀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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