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79화 (279/350)

279화

정회원이 되려면 기존 정회원 셋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소림은 반드시 표를 줄 거고, 개방도 있지. 둘은 확실하게 확보됐어. 하오문은 아쉽지만 의맹 회원이 아니니 빼고.”

“무당이 추천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추천은 해주겠다고 했지. 하지만 그걸로는 안건에 올리는 게 다야. 안건에 올라간 후엔 참석자의 과반수를 얻어야 해.”

그러니까 과거 청운진인이 추천을 해주겠노라고 한 거다. 문제는 그 다음이고.

“본 투표에서 무당이 표를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소림과 개방, 두 표만 확실하다고 봐야 해. 의맹 회의는 무림맹 회의에 비하면 참석률이 높은 편은 아니라지만, 둘로는 어림도 없지.”

그러니까, 추가로 내 편을 들어줄 문파를 포섭해야 한다.

“일단 아미파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세 비구니를 보낸 것을 보면 그리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확정은 아니어도 설득이 원활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미파는 소림에게 부탁하자. 소림이 설득하면 확실히 우리 편을 들어줄 거야. 그 외에 무림문파들하고는 크게 접점이 없고…….”

청성파, 공동파, 점창파 등 많은 문파들이 있지만, 나와는 인연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저 문파들도 의맹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지금껏 참석한 적이 손에 꼽는다는 것일까?

“사천당가는 어떻습니까, 삼촌. 당 소협이 힘써준다면 표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당가라…… 그러고 보니 당당 녀석 소식을 못 들은 지 오래됐네.”

당당은 소림 이후 제 형제들과 함께 사천으로 떠났다. 가서 이곳에 심을 만한 약재 씨앗도 찾아보고 마비산에 대해 알아본다는 이유였다. 겸사겸사 자존감을 회복했으니 가족들 앞에 당당히 나서고 싶어서 간 것도 있을 거고.

그 이후로 태양의원에 온 소식은 별다를 거 없는 안부 편지 한 장이 전부였다. 이쪽에서도 뻔한 답장을 보냈다. 삼생화의 씨앗에 대한 얘기를 편지로 덜렁 보낼 수는 없으니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 큰일은 없겠지. 조만간 의맹회의 관련해서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연락해보고…… 또 한 사람.”

나는 기억 한구석에 박아놨던 녀석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별로 얽히고 싶지는 않은데.

“모용을은 아직도 무림맹에 있나?”

소림에서 만났던 전생의 악연. 녀석은 아직 내가 전생의 악연인지 모르지만. 기억을 갖고 다시 태어난 두 사람이 동시대에 존재하는 것도 신기한데, 이번 생에도 꽤나 더럽게 얽힌 것도 놀랍다.

전생과 다른 점이라면, 지금 현 상황에서는 내가 갑의 위치에 있다는 점일까?

항주로 떠난 후 워낙 긴박한 일들이 많아서 녀석에 대한 생각은 한구석으로 치워놨었고, 최근이 되어서야 금리에게 녀석과 관련된 소식이 들어오면 알려달라고 한 참이었다. 전생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안 했고, 요주의 대상이라고만 해뒀지.

“안 그래도 좀 전에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모용 공자는 소림에서의 일로 무림맹에 구류되어 있긴 합니다만, 말이 구류지 나쁘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모용세가에 갔던 무림맹의 전령이 큰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모용 공자가 주장한 대로 첫째 공자의 단독 소행으로 넘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소문이 잠잠해질 즈음이면 형식상의 억류도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모용세가도 의맹의 일원 중 하나다.

여태까지 의맹은커녕 무림맹 회의에도 참석한 적 없다고 하지만, 그거야 지금부터 참석하면 될 일 아니겠나?

“모용을에게 연락을 취해야겠어. 녀석이 모용가의 한 표를 우리에게 줄 거야.”

“모용공자가 말입니까.”

금리의 말은 의아함을 담고 있었다. 녀석과의 관계에 대해 깊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썩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건 눈치챘을 거다. 그런데도 한 표를 확신하니 이해하기 어렵겠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게 있어. 모용가의 표는 받았다고 쳐도 좋아.”

모용갑이 죽었으니 녀석이 모용가주의 유일한 아들이다. 서자라는 건 적자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거지, 후계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데 어머니의 출신을 따지고 들겠어?

모용가가 막대한 선물을 무림맹에 보냈다는 것만 봐도 녀석이 모용가의 차기가주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가주가 일부러 중원까지 나오지 않는 이상 차기가주가 모용가를 대표한다. 녀석이 의맹회의에 출석해 모용가의 표를 던진다 해도 무당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거다.

“제갈가는 어떠십니까. 제갈 소저와는 나름 친분을 쌓으셨는데.”

“그쪽은 무리.”

제갈세가가 도와줄 거라는 기대는 단박에 접었다.

내가 마의를 포용한 일로 제갈다영이 화가 많이 났거든. 길길이 날뛰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의협심은 가식이었냐고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대던지.

좀 엉뚱하긴 해도 이성적인 판단이 항상 기반에 깔려 있던 제갈다영이 그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왜 그러는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긴 하지만…….

마의가 홍령과 좌수검의 절친한 친우였던 제갈천우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도 마의의 처분을 결정하는 데 제갈다영의 편을 들었을지 모른다.

수많은 사람을 자신의 흥미를 채우는 데 이용하며 걸어가는 길마다 피를 뿌린 마두. 그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들통난다면 실리 그 이상으로 타격을 받을 게 뻔하니까.

하지만 그러한 혈행에도 불구하고 의맹이 사대신의로 인정한 실력과 명성이 아까웠기에 둘 사이에서 고민을 했는데, 거기에 내 부모의 유일한 친우라는 점이 한쪽으로 마음을 기울게 한 거지.

“남궁세가는 봉문이니 당연히 의맹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을 거고. 나머지는 공동, 청성만큼이나 접점도 없고 참석률도 저조하지.”

“아주 참석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니 유의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평소만큼만 참석하면 확실히 과반인데. 무당이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무당신의의 일로 뒤통수를 맞았으니 더더욱 우리를 방해하려고 들 거다. 공동이나 청성 등 참여율이 저조하고 우리와 접점이 적은 문파들의 회의 참가를 독려하겠지.”

“오대세가 중에서는 황보세가가 무당과 긴밀한 사이라고 합니다. 황보가의 표는 확실히 반대라고 봐야겠지요.”

“황보세가라…….”

통성명이나 한 정도지만 황보가의 자제를 만난 적이 있다. 당당과 함께 있을 때. 모용갑과 당씨 형제와 한 패였던 황보겸이라는 녀석이었다.

그때 엿듣기론, 모용갑을 주축으로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뭉쳐 보려던 거 같았는데.

황보겸은 본가에서 쫓겨나 모용갑에게 빌붙어 살던 기생충 같은 녀석이었으니 황보세가가 모용가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표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씨 형제는 세가끼리 뭉쳐야 한다는 웃어른의 말을 듣고 소림에 온 게 확실했으니까. 모용세가가 우리를 지지한다면 당가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황보세가가 무당과 긴밀하다면 당가를 확실히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좋겠어.”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방법이 문제입니다.”

당당이 있긴 하지만, 녀석은 그런 일엔 잼병이다. 나도 당가 내부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모용세가만큼이나 거리가 먼 데다 당가 직계가 거주하는 당가타는 폐쇄적이기 짝이 없는 곳이라 했으니…….

“스승님! 스승니임―!!!!”

나와 금리가 머리를 싸매고 당가의 표를 손에 넣을 방법을 짜내고 있는데 밖에서 신생이 목청이 터져라 나를 불렀다. 그 소리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생? 무슨 일이야?”

“스승님! 큰일이에요!”

문을 박차고 들어온 신생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무를 아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 말에 나와 금리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생이 잔뜩 흥분해 달려왔기에 그럴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신생이 달려온 길 뒤로, 작은 소년이 이국적인 외모의 남자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무(武)는 저 아이의 이름이다.

무한의 흑시에서 구해왔던 남매.

큰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어버린 건지, 원래 중원 말을 못 하는 건지. 자신의 이름도 무엇도 말하질 못해서 집으로 돌려보내 주지도 못하고, 그 와중에 나를 잘 따라서 태양의원으로 데려와 돌보고 있었다.

이름이 없으면 부르기도 불편한 탓에 무한의 이름을 따서 남자애는 무, 여자애는 한(汉)이라고 임시 이름을 붙여줬다.

처음에는 목숨을 구해준 나에게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청화문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웃음을 되찾고 중원 말도 조금씩 배워 간단한 의사 표현은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처음 신생은 남매를 별로 탐탁잖게 여겼지만, 청화문이 가르치는 애들의 대장 격인 신생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남매를 챙기더니 이제는 두 아이가 가장 잘 따르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무를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저렇게 흥분할 수밖에.

나 또한 놀랍고 신기했다.

거기에 무를 안다고 한 사람의 정체가 정체였으니…….

“그래, 남해태양궁에서 오셨다고요?”

“아, 아뇨. 저 같은 게 어찌 남해태양궁의 사람이겠습니까. 그저 그 근처에서 나고 자라 궁주님과 그 가족분들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어눌한 중원 말을 하는 그는 무한 성주의 코끼리를 돌보는 조련사였다. 더 큰 돈을 벌고 싶어 중원으로 나와 귀족들이 황제에게 하사받은 코끼리를 돌보는 일을 구하다 최근 무한 성주를 위해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번에 코끼리를 인솔하고 태양의원에 왔는데, 아무리 봐도 남해태양궁 궁주의 손자 같은 아이가 눈에 보이더라는 거다.

“제가 궁을 떠나기 전, 궁주의 손자가 실종되어서 큰 난리가 났었거든요. 온갖 동물들이 이분의 용모파기를 등짐처럼 메고 다니고, 나무마다 얼굴이 새겨져 있을 정도였죠. 그래서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저도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고요. 그때보다 자라기도 하셨고, 뭣보다 여긴 남해태양궁에서 이역만리나 떨어진 곳이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 동향을 만나는 일도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데. 실종됐던 궁주의 손자님을 뵙다니.”

거참. 일이 이렇게 이어지기도 하나?

무당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불렀던 코끼리가 무의 가족을 찾는 일로 이어지다니.

무를 생각한다면 참 다행인 일이긴 한데…….

“그래서 말인데, 제가 손자님을 모시고 남해태양궁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가는 길이 꽤 고될 텐데요. 먼 길입니다. 차라리 남해태양궁에 연락을 넣어 이쪽으로 무를 데리러 오라고 하는 쪽이? 연락은 저희가 취하겠습니다.”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죠. 궁주께서는 고령이십니다. 빨리 손자님을 보여드려야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방금 전 말만 들으면 충성심 강한 남해태양궁의 일원 같았다.

하지만 돈을 벌려고 중원에 나왔다며. 더 큰 돈이 되는 사건을 만나서 신이 난 거 같은데.

로또가 된 거 같은 기분은 이해하지만…….

이자를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지.

“……남해태양궁으로 가는 길, 나도 동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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