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그즈음 북촌 인근의 산 속.
그곳엔 금태양이 기다리는 손님, 무당의 무인들이 바삐 태양의원이 있는 북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무당이 무당신의의 실종을 알아차린 건 한나절 전.
혹시 어디 마실이라도 간 것은 아닌가, 아니면 입적한 건가 확인하느라 시간이 다소 늦어졌지만, 부근에서 싸움의 흔적을 확인하고 이를 뒤쫓는 것은 무당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무당신의가 도주, 혹은 납치되었다는 판단을 내린 후 이곳에 오기까지 두 시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잠시 멈춰서 대열을 재정비한다.”
“예, 장문인.”
평소라면 무당 본산에서 잘 나오지 않는 장문인과 그 직속부대가 이렇게 멀리 나오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없었다.
“하면서 듣거라. 우리는 지금 신의를 구하러 가는 길이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
사태의 엄중함 때문인지 무당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물이 도둑을 맞아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엄숙하진 않을 것이다.
무당신의는 지금의 무당을 만들어 낸 근간이다. 그를 잃어버린다면 이때까지 무당이 만들어왔던 명성에 금이 갈 터다.
대문파로서의 권력, 무당 도사들의 강대한 무공, 거기에 무당신의로부터 이어지는 의술까지.
그러니 이 일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말로 해결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거였다면 저쪽에서도 신의를 납치하지 않았을 터. 반드시 싸움이 일어날 것을 염두에 두거라. 그리고 그 경우,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말지어다.”
“……장문인.”
“왜 그러나? 싸움이 걱정되는 건가?”
“아닙니다. 고작 그런 일이 걱정될 리가 있겠습니까. 빈도는 그저…….”
“현건 그 아이에 대한 것이 걱정인가 보군.”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장문인의 표정이 잠시 심각해졌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백운 사숙께서 개인적으로 받은 어린 제자가 아주 영특하다는 말을 들었네. 몇 년만 가르치면 현건 그 아이 정도는 훌쩍 뛰어넘겠다더군.”
“장문인! 그 아이는 삼대제자의 맏이입니다!”
“처음에는 대화를 해볼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허나 그럼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장문인이 한숨 같은 것을 짧게 내쉬었다.
“무당의 제자라 하여 예외를 두지는 않을 것이야.”
몇몇 도인들이 장문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무당 내에서 현건의 입지는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였다.
대제자로서 문파의 기치를 따르지는 못할망정 이를 거부하고 본산을 뛰쳐나간 망나니. 유약한 패배자. 별종.
본디 그를 따르던 삼대제자나 현건을 아끼던 이들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현건의 이름을 제대로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그 상황에서 사실 무당신의를 빼돌린 장본인이 현건이라는 사실이 일반 제자들에게 알려지면, 현건이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어도 무당 내 발 붙일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그가 아직 젊고, 충분히 그런 방황을 겪을 수 있으며, 또한 삼대제자 중 실력이 제일이라는 점 때문에 장문인은 아직 현건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공표하지 않은 상태였다.
금태양과 접점이 생겨 나쁜 꾐에 넘어갔다 판단했을 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아직 젊어 판단이 흐려졌을 뿐 어리석은 아이는 아니니. 잘 설득하면 될 것이네.”
반대로 얘기하자면, 현건만 아니었어도 대화를 위한 시늉 따위 없이 태양의원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이건 그럴 만한 일이었다. 누가 너무 잔혹한 처사가 아니냐 따져도 충분히 댈 명분도 있었다.
그 참에 겸사겸사 눈엣가시처럼 세력을 키워나가던 태양의원도 처리하는 것이다.
“그만 가자.”
아까보다 한결 긴장된 기색으로, 무당은 북촌의 입구에 도달했다.
태양의원으로 바로 가로질러 갈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문인의 행차다. 암행처럼 조용히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렇게 해야 만약 혈전이 벌어졌을 경우 명분을 더할 수 있다. 우리는 평화적인 대화로 풀려고 왔다, 봐라, 마을을 경유해 오지 않았냐. 우리가 먼저 칼을 뽑을 생각이었다면 야밤에 지름길로 와서 쳤을 것이다.
무림에서의 싸움, 특히 집단과 집단의 싸움은 명분이 다다.
전처럼 태양의원이 금태양 하나, 금가장의 아슬아슬한 연결고리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더욱 명분을 신중하게 다뤄야 했다.
“……이게 뭐지.”
그런 그들의 앞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싸요, 싸요! 항주에서 바로 가져온 싱싱한 바닷물고기! 반만 말려서 아주 쫀득하고 꼬들합니다!”
“새로 나온 햅쌀 사가세요! 한 가마니 사시면 한 되를 더 드려요!”
“설렁탕은 이쪽입니다, 이쪽! 국물은 여기서 받고, 옆에서 면을 받으세요! 부족하면 더 드립니다! 야, 뭐 해! 빨리 물 더 부어!”
무당은 북촌의 상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발아래에서 티눈이 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 지속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잦은 주기일까? 무당 장문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아무리 거슬리는 상대라지만 그래 봤자 거슬릴 정도지 눈앞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장문인은 북촌을 객잔이 두어 개 생기고 조금 사람이 늘어나 이제 겨우 촌구석에서 마을이라고 부를 만한 동네가 된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북촌은 고작 시골에서 조금 큰 마을 정도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최소 중소도시의 규모가 아닌가?
상인이 좌판을 세운 곳마다 없는 것이 없고 사람은 미어터졌다. 척 봐도 고수로 보이는 무당의 무인들이 지나가는 데도 자리가 없어서 차마 사람들이 비키지 못할 정도였다.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장문인.”
“크흠. 그렇군.”
“목적지가 이곳 마을과는 좀 떨어져 있다지만, 피를 뿌리기에는…….”
아까 현건을 염려했던 도인이 말을 흐리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약방이 있었다.
“태양의원 특제 활명탕! 다른 곳에서는 물량이 없어서 못 파는 탄산활명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의원에서 길게 줄 서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약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의원님이 간단하게 문진하고 약을 처방합니다! 오세요, 오세요!”
태양의원 직영약방이라는 멋들어진 간판을 단 약방은 이곳에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그리고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의원까지 안 가고도, 간단한 약은 여기서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렇지? 게다가 이곳 북촌에서 사면 우리 지역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싸다니까! 중간 상인 놈들이 얼마나 받아 처먹는지 원.”
“그래도 태양의원의 약은 싼 편이지. 덕분에 우리 어머니가 요새 동네 마실을 다니신다고. 게다가 이 동네 객잔에 머물면 약을 더 싸게 주지 않나?”
“이렇게 싸게 주는데 남는 게 있는지 몰라.”
“어허,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게 부자 걱정일세. 여기 태양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을 그렇게 잘 번다잖나.”
“부럽구만, 부러워! 뒷집 원 씨네가 이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미쳤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어.”
“이 마을은 태양의원 덕분에 산 게지. 아무렴, 주변 마을도 혜택을 보는데 북촌은 얼마나 좋겠나? 고작 몇 년 전에 왔을 때랑은 아주 딴판이야.”
약방과는 거리가 꽤 있었지만 무당의 무인들이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은 장문인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이 정도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무당이 확실한 명분을 갖고 있어도 쉽게 칼을 뽑기가 어려워진다. 가재는 게 편이고,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허물은 어느 정도까지는 눈을 감기 마련이다.
무당신의라는 명분이 있다 해도, 자칫하면 손해를 보는 쪽은 무당이다.
쿵―. 쿵―. 쿵―.
장문인의 머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멀리서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났다. 무당의 무인들 몇이 눈빛을 주고받고는 땅을 박차 건물 위로 뛰어 올라갔다. 눈이 좋은 이가 장문인에게 서둘러 전음을 보냈다.
[자, 장문인! 여, 영수(靈獸)가 오고 있습니다!]
[영수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귀가 봉황의 날개와 같이 크고, 몸집은 집채만 하며, 코가 기린처럼 긴 것입니다. 그것도 두 마리나!]
무당 무인의 전음은 혼란에 가득 차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장문인이 직접 높은 곳으로 몸을 박찼다.
평생을 무당파와 호북 외를 거의 벗어난 적 없는 무당의 도사들과 달리, 다른 문파와 회동을 하거나 젊은 날 대도시에 들러 견식을 넓힌 바 있던 장문인은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진정해라, 저건 코끼리다.]
[코, 코끼리라면?]
[사천 너머 독과 벌레의 땅에서 산다는 거대한 영수가 아닙니까?!]
코끼리는 영수가 아니다. 물론 코끼리도 오래도록 살아 도력을 닦으면 그렇게 될 수 있겠지만, 장문인의 눈에 저것은 그냥 짐승이었다.
물론 사천 너머 멀리까지 가지 않으면 극도로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한 것도 맞았으니 영수라 오해해도 이해가 가는 상황.
‘이 일대에서 한 마리도 보기 힘든 코끼리가 무려 두 마리. 거기에 위에 사람이 타고 있다면?’
장문인이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지붕 위에 올라갔던 무인들에게도 서둘러 내려오라 전음을 날렸다. 코끼리를 봐도 침착하던 장문인의 호령에 무인들은 깜짝 놀라 바닥에 내려왔다.
“의관을 정제하라. 귀한 손님을 뵈러 갈 것이다.”
그리고 장문인은 코끼리가 오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아 치이는 바람에 그들은 코끼리가 어귀에 당도할 즈음 비슷한 속도로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깐, 멈춰라! 무당의 도사들이다!”
코끼리는 단독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옷과 깃발은 금왕표국의 것. 장문인은 이를 알아보았지만 표행의 장에게는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코끼리 앞에 있는 마차 쪽으로 향했다.
“무한 성주가 아니시오.”
“아니, 여기서 뵙습니다. 무당 장문인께서는 여기에 어쩐 일로?”
코끼리를 대동한 채 이곳까지 온 이들은 과거 황제로부터 코끼리를 하사받고, 이후 무한에서 일어났던 소동 후 금태양으로부터 코끼리를 구매한 무한의 성주였다.
무당과 무한의 거리가 그리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둘 다 호북 안에 있는 곳이었기에 서로 안면을 익힐 정도의 접점은 존재했다.
그랬기에 장문인은 무한 성주를 여기서 만난 것에 놀랐다.
아니, 금태양이 무한 성주를 만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를 이렇게 먼 시골로 오게 할 만한 힘이 금태양에게 있었단 말인가?
“어서 오질 않고 예서 뭘 하고 있는 겐가?”
그때 장문인의 의문을 풀어줄 존재가 나타났다.
“정왕 전하!”
“……!”
정왕은 태양의원에 방문했던 전날과 달리, 황제에게 한 지역의 전권을 위임받은 왕의 풍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오지 않아 나와 보았네. 옆에는, 아하, 무당의 장문인이시구만. 오랜만에 뵙는구려.”
“무량수불, 전하를 뵙습니다.”
장문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올렸다. 차마 표정관리를 하지 못한 데는, 정왕의 바로 뒤, 생긋 미소 짓고 있는 금태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장문인. 인사드리는 것은 처음인 거 같네요. 태양의원의 금태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그 햇살 같은 미소가 어찌나 얄밉게 느껴지던지, 무당의 장문인은 하마터면 체통도 잃고 금태양의 저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주먹을 날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