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73화 (273/350)

273화

그날 밤.

무당신의가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가 잠시 상황을 파악하게 뒀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대야말로 어찌 한 건가. 내 몸이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인데.”

과연 신의라 부를 만하군. 내가 자신의 몸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가 과거 경혈에 기를 모아 몸의 기능을 일부 회복했던 것을 응용한 것뿐이다.

거기에 무당신의는 오랜 세월 정통에 속하는 무당의 내가기공을 익힌 탓인지 내가 딱히 기를 인도하지 않아도 잠든 그의 몸이 알아서 경혈에 기를 모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오늘내일 할 뻔했는데, 순식간에 명줄이 늘어난 셈이지.

“제가 그러한 절대적 기허 상태에 일가견이 있거든요. 아니, 저보다 잘 아는 의원은 아마 이 중원 땅에 없을 겁니다. 저는 그곳에서 태어난 일종의 생존자거든요.”

“……!”

“어찌 저찌 연명하며 스물을 넘겼고 그 이후에는 운 좋게 회복했죠. 신의께 처방한 것은 제가 살기 위해서 행했던 치료입니다. 완벽하진 않아요.”

“그렇구만…….”

“답을 드렸으니 이제 신의께서도 제 질문에 답을 주시죠. 어떻게, 아니지. 어떻게라는 말은 필요 없겠죠? 섬서에서 있었던 일에 깊게 관여하셨으니까.”

내 말에 무당신의의 얼굴이 흙색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그 진법을 자신의 몸에 적용하신 겁니까?”

이 추측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기겁을 했다. 제갈다영은 그 자리에서 놀라 벌떡 일어났고, 현건은 신의가 자신의 몸을 해하는 일을 할 리가 있냐며 내게 화를 냈다. 무당신의의 죄업을 알고 있는 좌수검마저 놀랄 정도였다.

나 또한 놀랐다. 나는 이 상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 그런데 그걸 스스로 자초했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라니까.

하지만 그의 몸 상태는 그것이 정답이라 말하고 있었다.

대체 왜?

“속죄입니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네.”

“그럼 처음부터 하지 마셨어야죠. 모르고 하신 일입니까?”

그 질문에 답이 돌아오는 건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무당신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렴풋이 눈치챘고, 고민을 했지만. 그때는 그것이 무당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네.”

나는 혀를 찼다. 이 사람은 정말 무당신의라는 이름을 받을 만하군.

옳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문파를 위해 행했다. 그 이후 자신이 죄책감에 시달려도 문파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은거하고 자신을 해쳤다.

어린 나를 치료하지 않은 것도, 무당이 중간에서 끊었을 수도 있지만, 무당이 원치 않는다면 내가 섬서사변의 피해자든 아니든 구하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화산의 멸문으로 무당은 큰 이득을 봤죠. 모르긴 몰라도 이십여 년 전에 비해 성세도 커지고, 구파일방 중에선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뿐더러, 의술에 관해서는 가장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허나―.”

“허나, 그 모습이 신의가 원했던 무당의 모습은 아닐 거 같군요. 그렇죠?”

“내 속을 훤히 들여 보고 있는 것 같구만. 금 의원이라고 했던가. 젊은이여,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진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젊은이, 그것은!”

“오해는 마세요. 저는 아픈 건 싫거든요. 그럴 이유도 없고.”

“적을 알고자 함인가?”

“비슷합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게.”

무당신의는 고심 끝에 시간을 달라 부탁했지만 나는 그가 끝내 내게 진법을 넘겨주리란 것을 알았다. 명분은 나에게 있고 무당신의에겐 내세에도 갚아야 할 만큼의 원죄가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하세요. 어차피 그 내용이 적지도 않을 테니까 한동안 이곳에 계시면서 치료도 받으시고요.”

나는 그에게 나와서 환자를 봐달라느니, 하다못해 의원들에게 얼굴이나마 비쳐달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무당신의는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방을 나서 옆방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선뜩할 정도로 날이 선 미인. 과거에는 제갈천우라 불렸고 지금은 그 이름도 버린 채 마의라는 별호로만 널리 알려진 이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진짜 미인이긴 하군.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중성적인 외모다. 이 때문에 금리가 마의를 남자라고 착각하기도 했다지.

“무슨 꿍꿍이지?”

“옆방에서 하는 얘기는 다 들으셨을 거고, 좌수검에게 여태까지의 사정도 들었죠?”

“……네가 그 멍청한 계집의 아들이라는 얘기 말인가?”

“친구에게 그런 멸칭은 좀 심하지 않아요?”

“멍청한 걸 멍청하다고 할 뿐이야. 거기에 그 아들이라는 건 더 멍청하기까지. 내가 그 얘길 들으면 뭐, 너에게 협력이라도 할 거 같았나?”

“기대 정도는 했습니다. 틀렸나요?”

좌수검을 통해서 마의의 지난 행적을 조사했다.

지난 이십여 년, 마의의 행보에는 독특한 점이 몇 개 있었다.

첫째, 특이한 질병을 찾아 헤매는 와중 섬서사변의 피해자를 상대로 한 일이 많았다는 점.

둘째, 정반합이 파악한 그 일의 가해자, 조력자 일부가 마의의 손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셋째, 인신공양을 하거나 잔인한 술수를 위해 진법을 펼치는 등의 행적이 있는 종교에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

그 모든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봤을 때, 마의는 제 나름대로 그날의 진상을 파악하고 복수행을 이어왔던 것이 틀림없었다.

회수에서 끔찍한 참상을 일으켰던 하중도의 수적들도 아주 멀리 보면 사변의 조력자였던 것이 드러났으니…….

정반합은 은 파파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소림 등의 문파와 연합을 맺고, 비밀 조직을 꾸려야 가능했던 일을 마의는 그 혼자서 해낸 것이다.

미쳤다는 것이 그를 위한 수단인지, 아니면 그냥 미쳐버린 채로 그 일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놓아주거나 죽이기에는 아까운 상대다. 홍령이 다시 만나고 싶어했던 친구이기도 하고.

만약 마의의 목줄을 맬 수만 있다면, 협력할 수 있다.

“원한다면 협조 정도는 해주지. 네 녀석의 몸을 해부하게 해준다면. 그 일 이후 태어난 것들을 몇몇 봤지만 너만큼 장성한 놈은 한 번도 못 봤거든.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면―.”

“팔 하나 정도는 내드리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히려 그 말에 마의가 눈을 홉떴다.

“무슨 배짱이지? 나는 진짜로 하는데?”

“하시라니까요. 사지를 아예 절단만 안 하시면 상관없어요. 아니지, 그것도 괜찮을지도.”

마의의 눈이 바쁘게 내 기색을 살폈다. 내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납득을 못 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제 팔을 줄 테니 마음대로 해부하라고 하겠는가?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거 같네요.”

하여간, 꼭 이런 사람들이 멍석을 깔아주면 못 논다니까.

나는 품에서 간만에 태양보도를 꺼냈다. 그리고 왼손의 손등을 베었다. 그리고 근육 층과 피부 층을 얇게 나누었다. 약간의 피가 흐르고, 근육 사이로 작은 혈관이 지나가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 너, 너, 너, 미쳤느냐?”

미친 건 그쪽이고.

이미 들어오기 전에 점혈로 통각을 없애버려서 아프지도 않다. 하지만 나라고 이런 걸 좋아할 리가 없지.

이건 마의를 꼬시기 위한 쇼일 뿐이다.

“미치다뇨. 괜찮다고 했는데 안 믿으시니까 보여드리는 거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태양보도를 내려놓고 품에서 작은 시약병을 꺼냈다. 그리고 그 병 안에 든 붉은 액체와 분홍색 액체를 드러난 살갗 위에 뿌린 후, 충분히 흡수되자 피부 층을 다시 덮었다.

강제로 박피했던 피부가 다시 근육에 잘 달라붙었다. 손에 흐른 피가 아니었다면 피를 흘린 줄도 몰랐을 정도로 혈색이 돌았다. 나는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펴며 상태를 확인했다.

이 약의 효능이야 이미 검증되었다지만 내 몸으로 직접 시험해보는 것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군.

“대체 그건 뭐지?”

“태양의원의 비전입니다.”

“……하, 이런 미친놈을 봤나.”

미쳤어도 제갈가의 사람이라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갔다. 아직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이런 쇼를 먼저 깔고 시작하는지 눈치를 챘다.

“둘 중 고르라 이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손을 후벼 파면서 그렇게 말하는 놈은 살다 살다 처음 봤다. 너 진짜 휘소랑 홍령 아들 맞냐? 아니지, 답답이랑 머저리 조합이 섞이면 이런 놈도 나올 수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의가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미친 짓을 하는 건 찝찝했지만 진짜 미친놈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는 성공했으니.

도박이라면 도박이었지만, 나는 마의의 근본인 제갈세가의 호기심을 믿었다. 그가 미친 방향도 호기심이 극대화 된 방향이고.

“고작 요만큼의 진액으로 피가 생기고 살이 붙다니.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는데.”

이 진액은 삼생초를 압축한 일종의 엑기스다.

들어가는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만드는 데 보통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신경 써주지 않으면 그대로 못 쓸 물건이 되는데 그냥 젓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기술과 노련함이 필요해서, 장 의원과 의약방의 스페셜리스트들이 거의 보름을 꼬박 새워가며 만들었다.

보너스 챙겨줘야지. 세 배, 아니, 이번엔 진짜 열 배쯤 챙겨줘야 할지도.

“나한테 대체 뭘 바라기에 이런 미친 짓, 아니 이런 대단한 것을 거는 거냐?”

“의원에게 바라는 게 뭐 달리 있겠어요?”

“나에게 의술을? 하하하하, 이거 진짜 미친놈 아냐? 야! 휘소! 지붕에서 듣고 있지? 얘 진짜 네 씨 맞아? 걔가 어디서 딴짓 했던 거 아냐? 절대 네 씨앗 아닌 거 같은데? 푸하하하하!”

“당신에게도 별로 나쁜 조건은 아닐 겁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리 준비해온 종이를 마의에게 건넸다. 보통이라면 말로 전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지만, 어디선가 창천 녀석이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호오, 하아? 수적들의 두목이라고?”

“소리 내지 말고 그냥 속으로 읽으세요.”

“그 하중도에다가 의원을 차리겠다?”

속으로 읽으라니까.

번거롭게 종이에 계획을 써서 전한 건, 내가 김진이자 회수 수적들의 두목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창천에게 알리지 않은 것 때문에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처음에는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하니까 비밀로 했는데, 그냥 확 밝혀버려? 오히려 더 귀찮은 일들이 쌓이네.

“수적들처럼 쉽게 정파의 의원을 방문할 수 없는 놈들이 올 수 있는 의원이라……. 네놈 말은, 그걸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겠지? 수적들을 내 따까리로 부리면서?”

“적당한 선은 지키시고요. 똑똑한 분이니까, 잘 아시죠?”

선 넘으면 국물도 없다, 나는 빈 진액 병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마의가 군침을 삼켰다.

그의 무공 실력은 분명 어디 가서 빠지는 편이 아니지만, 좌수검과 창천, 현건, 거기에 나까지 있는 태양의원에서 함부로 굴 수 있는 수준까진 아니다. 진액을 힘으로 손에 넣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니 함부로 행동하진 않을 거다.

“그래. 선을 지키면 된다 이거지?”

마의가 씨익 웃으며 종이를 톡톡 쳤다. 어지간히 선을 넘나드는 행보를 보여주겠구만.

“그 외 태양의원의 일에 협조하시는 건 물론이고요.”

“까다롭기도 하네. 네놈이 나 이상으로 미친놈이 아니었으면, 그 정도로 매력적인 걸 들이밀지 않았으면 절대 안 들어줬을 거다.”

마의는 투덜거리며 종이를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그래도 어찌 저찌 잘 자랐구나. 역시 내 대자답다.”

그리고 마의는 문을 나가버렸다. 회수의 청수채로 가는 것이다.

내가 없다고 긴장을 놓고 있는 놈들이 있었다면 오줌깨나 지리겠는걸?

“그보다 대자라니, 그렇다는 건 설마…….”

저 미친 인간이 내 대모라는 거야?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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