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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64화 (264/350)

264화

수액을 투여하는 동안 이상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혈액이 굳거나 심한 발열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코피가 터지는 등의 일도 없었다.

이런 현상들은 과거 수혈을 시도한 선구자들의 연구 기록에 남아 있는, 수혈이 실패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이다.

“아직까진 더 두고 봐야겠지만 당장은 괜찮을 거 같아요.”

보름 후에도 이상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피살이초와 함께 배합한 나머지 살살이초, 뼈살이초 덕분인지 수술 자리가 보통에 비해 빠르게 아물기도 했다.

장기 이식이라면 몇 년을 지켜봐야 하지만 이건 수혈이다.

이 정도면 안정성 면에서는 합격이라고 봐도 좋았다.

“아아, 세상에. 이거라면 이제 출산 중 과다출혈로 사망하는 산모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겠어요!”

“……그래. 적어도 죽어가던 이들의 사분지 삼은 살릴 수 있겠구나. 대단하군.”

특히 아미파의 비구니들이 감탄을 토했다. 나에게 항상 차갑고 냉랭하던 공은마저 인정할 정도였다. 하긴,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만만찮은 출혈을 감수해야 하니까.

출혈은 전생에서도 산모의 삼대 사망원인 중 하나였다. 지혈과 수혈이 가능한 전생에서도 그랬는데, 여기서는 어땠겠는가?

효능이 뛰어나지 않은 지혈제에 맡기거나 운이 좋으면 점혈을 하고, 그도 아니면 하늘에 운명을 맡기는 거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혈을 보충할 수단이 생겼다. 아마 이번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교통사고도 없는 이곳 중원 무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출산 상황이 될 거다.

“본원에서만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건 어떻게든 개선하면 되겠죠.”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바로 보존성이다.

생초에서 즙으로 짜낸 후, 실온에서 하루 이상 두면 내용물이 변질됐다.

나를 비롯해 장 의원과 기타 의약에 재주가 좀 있다 하는 의원들이 매달렸지만 이 부분만큼은 개선이 불가능했다.

말린 풀을 우리거나 기존에 한방에서 쓰던 방부 처리를 해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전자는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고, 후자는 방부처리용 약재가 혈관으로 그대로 주입된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그나마 미리 즙을 짜서 배합한 후, 서늘한 지하 창고에 보관하면 며칠씩 가긴 해서, 서늘한 지하창고에 보관해 비축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장만한 수액을 이번에 활용한 것이다.

“분원마다 삼생초를 나누어주고 키워서 배합하라고 할 수도 없고.”

최대한 입단속을 했지만 진귀한 풀이 태양의원 앞마당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다. 이미 한두 번 절도 시도가 있었다. 다행히 상대가 무공이 없는 일반인이었고, 좌수검들이 도착하기 전 임시로 북촌객잔의 개방 방도들에게 감시를 부탁한 덕에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분원들은 밭까지 경비할 여력이 없다. 어찌저찌 뒤뜰에서 소량만 재배한다고 해도 추출과 배합 또한 까다로운 일이었다. 장 의원이라는 제약의 실력자에, 때마침 와 있던 금간양이 전용 추출기구를 만들어 준 덕분에 나온 성과였으니. 분원마다 추출기구를 둔다면 그 비용도 무시 못 할뿐더러,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일이었다.

“아쉽습니다. 이런 효과라면 충분한 이득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태양의원의 전체 살림을 책임지는 리가 눈에 띄게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분원에 약간의 수고비만 덧붙여 공급해도 충분한 이득을 본다. 그만큼 많이 쓰이고 자주 쓰이게 될 테니까. 그래야 재배면적도 늘리고 농부들에게 충분한 일거리도 제안할 수 있다.

거기에 현재 태양의원은 지출이 상당했다. 벌어들이는 수익도 만만치 않지만, 이번에 교육사업을 시작하며 투자가 많이 들어갔다.

“갑자기 허리를 졸라매게 해서 미안한걸. 정 부족하면 말해. 내 개인적인 자금이 있으니까.”

내겐 장 의원의 비동에서 발견한 금괴가 있다. 초반에만 의원을 운영할 때 자금으로 보탰고, 그 외에는 거의 쓰지도 않았다. 다른 의원들을 받아 본원을 운영하고, 분원을 확장하면서 그 수익만으로도 건물을 올리거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으니까.

“아닙니다. 이제 태양의원이 영세한 규모도 아니고, 개인의 자금을 쓴다는 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만큼 수익금이 쌓이지 않는다 뿐이지, 아직 여유 있습니다.”

“이번에 만든 마비산은? 항주에 쌓여 있는 원재료가 아직 많으니까 그쪽은 우리가 쓸 몫을 빼도 팔 만한 분량이 나올 텐데.”

교육사업을 하면서 기초투자가 많이 들어갈 건 예상하고 있었다.

아직 삽을 뜨진 않았지만 건물도 전용으로 세울 예정이고, 이번에 가르치는 이들은 교육비를 받지 않는다. 우리 쪽에서도 커리큘럼 등을 함께 만들어나갈 예정인 거니까. 대신 교육 종료 후 일정기간 태양의원에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을 뿐이다.

그걸 마비산 판매로 커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리의 표정이 썩 밝지 않은 걸 보니 내 예상대로 돌아가진 않는 모양인데?

“말씀하신 대로 여기저기 판로를 알아보는 중이긴 합니다만, 당장 구매를 희망하는 곳은 소림뿐입니다.”

“그리고 소림은 돈이 별로 없지.”

“예. 주문 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나아지고는 있다며?”

일전에 창천이 내 서찰을 들고 항주로 튀는(?) 바람에, 소림의 사업을 좀 손봐 달라는 얘기는 리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 소림의 땡중들도 절은 불탔지, 예전만큼 명성이 있지 않아 후원금도 넉넉지 않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 연락이 오지 않자 본원으로 사람을 보냈던 모양이다.

해서 리가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데, 아직 대대적으로 성공한 건 아니지만 반응이 좋단다.

“거긴 조금만 괜찮아지면 곧 위세를 회복할 거야. 천년소림의 이름값이 있으니까.”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나머진데, 우리 분원 외에는 정말 연락이 안 왔다고?”

“예. 왕 사장이 기존 거래처에도 시제품을 들고 가 시연도 해봤습니다만, 반응은 좋은데 주문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합니다.”

왕 사장은 태양의원 초창기, 의약방에서 제조한 활명탕을 인근 지역으로 갖다 팔던 상인이다. 원래는 나를 등쳐먹으려던 호사가였는데, 한번 혼쭐이 난 이후로는 내게 찰싹 달라붙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 건지 달리 탈은 없었다.

오히려 그 재주 좋은 입담으로 활명탕을 비롯해 제약방에서 만들어내는 자양강장제와 가정 상비약 등을 잘도 팔아치워서, 이제 태양의원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랄까?

어찌나 재주가 좋은지 무당의인 의원들에게도 우리 약을 팔 정도였다. 그 방면에서 들어오는 수입도 꽤나 쏠쏠했지.

그런 거래처들이 마비산만큼은 선택하지 않았다라…….

“품질 문제는 아닐 거고, 역시 무당의 입김이겠군.”

우리는 의맹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지만 무당의들은 무당, 그리고 태청의원이 세운 규율에 종속되어 있다. 활명탕이나 자양강장제야 규제품목이 아니니, 몰래몰래 우리 거를 받아다 팔 수도 있겠지만 마비산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해보자. 의원이 아니라, 가정상비약으로 판로를 틀어보는 거야.”

“상비약으로 말입니까.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야 지금 상태라면 그렇지.”

나와 당당이 만든 개량 마비산은 환자가 극도의 통증을 느낄 때, 아니면 수술 시에만 사용한다. 그만큼 효과가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생의 타x레놀 정도로 효능을 조절하면 가정에서도 충분히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중독성을 제거하면 그 과정에서 자연 효과가 떨어져. 가격도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니 남용은 막을 수 있겠지. 그래도 효과를 보면 누구나 찾게 될걸?”

“기존의 활명탕처럼 말이지요.”

리의 말대로, 활명탕도 처음에는 가정 상비약으로 타겟을 잡았다. 그게 입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다른 의원에 가 비슷한 약을 달라고 했고, 그 과정에서 카피 제품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반드시 태양의원의 활명탕이어야 한다고 고집한 사람들이 있다.

덕분에 무당의들도 우리 제품을 알음알음 취급하게 된 거지.

“이번 거는 원료를 우리가 쥐고 있으니까 비슷한 약도 쉽게 만들지 못할걸? 거기에 한동안 우리만 마비산을 독점하는 상태가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태양의원 전체의 수술 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될 것이다. 나만 해도 기존보다 훨씬 수술 자체에 신경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무당이 자신들의 낡은 규율 때문에 마비산을 쓰지 못하는 동안, 우리의 명성과 실력은 그들을 추월할 거다.

“언젠가는 그쪽도 우리 물건을 쓰거나, 아니면 자체적으로 마비산을 쓰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면 이미 차이가 한참 벌어졌을걸.”

뒤늦게 따라와도 환영이다. 그러면 우리는 물건을 팔 수 있어서 좋고, 무당의들을 찾는 환자들도 더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가정상비약 수준의 마비산 제조를 장 의원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 의원이 이건 노인공격이라고 우기는 장면이 벌써 눈에 선한걸.

수액 제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연구를 하다가 이제 겨우 한숨을 돌렸는데, 또 새 약을 개발해야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좀 미안하다.

하지만 그만큼 수당은 충분히 챙겨주니까…….

“이 망할 놈아! 내 팔이 여덟 개가 되지 않는 이상은 더는 못 한다! 네놈이 팔을 더 달아주기라도 할 게냐? 아니면 사람이라도 충원해주든가!”

그리고 장 의원은 진짜 달려와서 사람을 더 내놓으라고 우겼다. 확실히 의약방의 지금 인원으로는 무리하고 있는 것이 맞아서, 공고를 내고 사람을 추가로 투입했다. 기존에 일하던 이들은 그간 쌓인 노하우와 경력을 인정해 연구와 관리통솔을 책임지게 했고, 일부 제약 지식이 있는 의원들을 여기저기서 모집했다.

“본문에도 마비산 사용을 권유하고 싶습니다만, 그러려면 제가 그 약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혹시 저도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미파의 양원이 연구개발에 자원했다. 사실 개량 마비산도 임산부에게 사용해도 괜찮다고 장담할 수 없었기에, 이에 관련해 풍부한 지식이 있는 그의 합류는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단순 업무의 경우엔 북촌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집했는데, 경쟁률이 30 대 1을 돌파할 정도였다.

“일은 좀 힘들어도 이 마을에서 제일 돈이 되는 일이라 들었습니다!”

“시제품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전부터 제약방에선 여자도 많이 일한다고 들었어요. 꼼꼼함이라면 자신 있어요. 남자들 못지않게 힘도 세다고요.”

돈이든, 떡고물이든, 고른 기회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의가 넘치는 지원자들이 많았다. 아예 제약방 취업을 목표로 이주해 와서 여태까지 자리가 나길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쪽의 선발은 전적으로 리와 장 의원에게 맡겼다. 장 의원은 바빠 죽겠는데 사람 뽑는 일까지 시킨다며 나 죽는다고 곡소리를 해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나도 할 일이 많단 말이지.

“금 의원님, 좌수검이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예를 들자면, 내 친아버지를 만나는 일 같은 거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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