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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62화 (262/350)

262화

금손양의 전음은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금리에게 진실을 전하는 걸 망설였던 이유는 진양 누님이나 금간양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금손양이 부러 전음으로 전했다는 건 이들 중 진실을 아는 사람이 더 없다는 말과 같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의원으로 가서 얘기하죠.”

한동안은 태양의원의 의원들이 기숙사처럼 사용했고, 장차 VIP를 위한 특실로 개조할 방에 이번에는 누님들이 자리를 잡았다. 금간양은 짐을 풀기도 전에 벌써 견적부터 내기 시작했다.

“이런 경치면 넓게 장원을 만들 게 아니라 삼 층 정도 높여서 주위를 내려다볼 수 있게 짓는 게 좋겠는데? 딱 그 정도면 저 산을 봤을 때 풍경이 좋을걸? 오 층? 그건 너무 높아, 무한에서도 삼 층 정도가 대세야.”

원래 금리는 두 개의 별채와 기숙사로 쓰이던 건물을 합쳐 장원을 만들 계획이었단다. 하지만 금간양이 별채 하나만 써도 괜찮을 거 같다는 의견을 냈고, 거기에 내가 또 다른 구상을 얹었다.

“그러면 두 개의 필지가 남겠군. 거기에 교육시설을 짓는 건 어때?”

“교육시설이라 하심은.”

“아까 간단히 얘기하긴 했지만, 지금 하오문 문도와 회수의 수적들이 오고 있어. 의술을 배우러 말이지. 그 외에도 의술을 배우고 싶다고 태양의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제법 되지?”

“예. 지금까지는 태양의원의 의원들 중 제자를 받고자 하는 분들께 보냈습니다만, 최근엔 그 숫자가 상당히 늘어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실정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삼촌께 수학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초조차 배운 적 없는 이들부터 다른 곳에서 제자 생활을 했거나 어느 정도 의원으로서 실력이 있는 이들 등 다양합니다.”

기존에 금리가 보내왔던 보고로도, 신생에게도 이미 들은 얘기다.

태양의원이 더욱 커지고 유명세를 뻗칠수록 이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꾸준히 늘어날 거다.

하오문도와 수적들도 단발성으로 가르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제자를 받는 수준을 넘어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비롯해 태양의원 의원들이 선생으로서 각 분야의 의술을 가르치고, 임상 체험을 하고, 실무를 실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거기에 의원들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더욱 좋고.”

나는 전생에 있던 대학병원을 염두에 두며 말했다.

현재 중원무림에서 의원을 키워내는 방식은 전형적인 도제 방식. 무당처럼 무당의라는 이름하에 시험을 치고 정기적인 보수교육을 하는 곳도 처음 의원을 키워낼 때는 각 무당의가 제자를 키워 시험을 보게 하는 도제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의 방식은 소수 인원을 깊이 있게 교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뚜렷해. 스승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하고, 틀린 걸 익힐 수도 있지. 그게 대를 이어 교육되면서 편향도 심해져.”

“거기에 스승이랑 안 맞으면 진짜 난리 나지. 공방에서도 그런 경우 많이 봤다. 재능 있는 제자를 시기해서 스승이란 놈이 애 재능을 박살 내는 일도 적지 않게 있다고.”

금간양이 슬쩍 끼어들어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전생과 같은 교육방식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완벽한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생의 대학병원도 매일같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군과 사법체제만큼이나 비리의 온상이라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유해한 것은 한 가지 방식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체계가 부족할 수도 있어. 하지만 기존의 도제식 교육이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채울 수 있다면, 분명 훌륭한 인재들이 태양의원을 통해 의원이 될 수 있을 거야.”

다양성이 세상을 진일보시킨다는 건 그런 뜻이다.

사람은 다양하니까. 획일화된 곳에 전부 밀어 넣으면 분명 문제가 생기니까.

다양한 장점과 단점을 가진 체제들이 공존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아질 수 있다.

내가 이곳 북촌에서, 태양의원에서 만들어갈 사회는 바로 그런 곳이다.

“어디 보자, 그만한 규모와 시설을 갖춘 건물이라면…… 이 필지에는 사오 층 정도 올려야겠어. 수많은 장서를 보관할 수 있어야 하니 통기가 좋고 빛은 안 드는 공간이 필요할 거고, 학생들이 숙식할 공간이 필요할 거고, 해부? 해부용 시신 같은 걸 보관하려면 땅 파서 지하실도 만들어야겠네? 좋았어! 의욕이 불타오르는데?”

금간양은 눈을 빛내면서 품에서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 빠르게 구상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금리도 옆에서 간이장부를 꺼내더니 내 기획과 금간양의 구상에 얼마의 예산이 들어갈지 바쁘게 계산했다.

진양 누님은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하다며 우선 방으로 들어갔고, 나와 금손양이 남았다.

“잠깐 구경 좀 시켜주겠니? 진양 언니에게 늘 말로만 들어서 궁금하네.”

금손양이 내 팔에 팔짱을 꼈다. 이미 금리와 금간양은 자기들만의 세계라 딱히 이러지 않아도 따라올 거 같진 않지만…….

“가시죠.”

나는 금손양과 함께 한때 창천이 수련할 때 쓰던 공터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얘기를 하려면 사람이 없는 곳이 좋겠지. 그 녀석,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잘 오고 있으려나 몰라.

“진미당 얘기는 어떻게 된 거예요? 거기도 설마 은 파파가?”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금간양처럼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서로가 나눌 정다운 얘기 같은 건 없었다. 다행히 금손양도 그런 모양이었다.

“은 파파가 하오문에서 손을 떼고 소일거리로 하던 일이었단다. 그게 제법 규모가 커져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지. 처음에는 옛일에 대해 몰랐지만,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어.”

소일거리라니, 참나.

하오문만큼 중원 전역에 손을 뻗치고 있진 않지만 품질에 있어서는 아마 하오문에 속해 있는 최상급 주루와 객잔도 그에 미칠 수는 없을 거다.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상의 술과 천하의 진미는 오직 금가장의 진미당에만 있다.”라는 소리를 듣는 진미당 아닌가.

“하지만 이곳에 문을 여는 것은 진미당이 아니야. 풍월루를 열 거란다.”

“규모로 봐서 그럴 거 같기는 했죠. 여긴 이미 객잔이 둘이나 있으니, 주루가 하나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아요.”

풍월루는 진미당의 서브 브랜드 같은 주루다. 산지의 특산물들을 내세우는 곳으로, 사실 주루라고 부르기에는 좀 작다. 전생의 심X식당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

다른 금가장 사업들이 금가장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 달리, 풍월루는 표면적으로는 금가장과 별 관련 없는 장인들의 가게라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 가게들이 산지의 신선한 재료를 진미당에 공급하는 공급처라는 건 금가장 내부 사람들은 안다.

규격화되고 획일화 된 거대자본의 맛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고수의 손맛을 찾아다니는 수요는 꼭 전생에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 특히나 중원에선 그런 수요의 주인이 돈이 상상을 초월하게 많은 황족이나 귀족들인 경우가 많아서, 규모가 작아도 꽤나 돈이 된다.

“근데 여긴 풍월루가 탐을 낼 만한 산물이 별로 없는, 아니, 잠깐만요. 금가장하고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이유가 설마?”

“이번에 풍월루에 올 숙수는 과거 서안에서 이름난 객잔의 숙수였던 노인이야. 그 외에도 관련 있는 이들이 꽤나 올 예정이지. 좌수검도 풍월루의 호위무사로 올 거란다.”

“좌수검과 그 일파들을 풍월루를 통해 먹여 살리고 있던 겁니까?”

“원래도 풍월루와 진미당은 낭인들의 일자리를 알선하고 있어. 거기에 조금 더 손을 뻗칠 뿐이지. 과거의 감춰진 일을 쫓는다는 건 힘든 일이잖니. 현재를 살아갈 밥벌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

“아버지는 알고 있었어요?”

정반합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다. 아버지는 은 파파가 과거를 후회하고, 정반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그가 숨긴 과거를 캐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글쎄. 은 파파가 장부에 손을 대긴 했지만, 다른 곳으로 돈이 흘러간다는 걸 아버지가 모르셨을 거 같진 않은걸.”

“하지만 한 번도 그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은 없는 거군요.”

금손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아버지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는 거군.

죽은 자의 의향이야 이제 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내 친아버지를 곧 만나게 될 예정이라 괜히 마음이 더 싱숭생숭한 듯하다.

“어쨌든 그들이 풍월루를 거점으로 이용한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거기에 진미당까지. 활용할 수단이야 많아서 나쁠 것 없다.

홍령을 되찾기 위해,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모른다.

당장은 그저 도주한 혈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우웅― 우웅―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를 위로하듯 울리는 검명. 이 검 ‘홍령’에 홍령이 깃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착각을 하는 건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기에…… 뭐든 다 해봐야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태양의원과 의원으로서의 일도 놓을 수 없다.

자신을 찾기 위해 이 모든 걸 내팽개친다면 속상해할 테니까.

“진미당과 풍월루가 얻는 정보는 하오문이나 개방이 얻을 수 있는 정보와는 또 달라. 우리는 최고급 손님들을 상대하니까. 그 인맥을 동원해 혈교의 흔적을 찾고 있어.”

“개방과 하오문, 거기에 진미당까지. 이 정도면 못 찾을 정보가 없겠군요.”

“또 모르지. 상대는 이미 수십 년 동안 흔적을 찾을 수 없던 불가사의한 집단이잖아. 하지만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 혼자 힘들어하지 말렴.”

“……예?”

내가 언제 금손양한테 힘든 기색을 내비친 적이 있던가?

“은 파파가 그러더라. 네가 뭔가를 잃어버린 거 같다고.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혈교의 흔적을 쫓는 일에 있어 상당히 필사적인 거 같다고 하셨어.”

젠장. 이 망할 할망구 같으니.

……아니다. 이럴 땐 말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는 걸 감사하다고 해야겠지.

“부탁합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걱정 마. 그보다 대문 쪽이 소란스러운 거 같은데?”

아직 표물이 도착하려면 멀었다. 누님들이야 예고치 않은 손님들이라 치고, 또 누가 올 일이 있었던가?

“아니, 그러니까! 금 의원하고 다 얘기가 되어 있는 사안이라니까요?!”

“저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삼촌을 모셔오겠습니다.”

“여기까지 한 번도 안 쉬고 뛰어왔다고요! 들어가서 쉬게라도 해 줘요! 금 의원! 우리 왔어요! 아미의 양진이요!”

“하아,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태양의원에 온다고 흥분을 해가지고. 아미파의 양원이라 합니다. 금 의원님 계십니까?”

“공은이외다.”

정문에서는 언제 갔는지 금리와 세 아미승들이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다. 그래, 예고된 손님이긴 했지.

“금 의원님! 여기요! 우리 왔어요!”

나를 발견한 양진이 금리의 제지를 뚫고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 뒤로 양원이 한숨을 쉬며 천천히 뒤따랐고 공은 스님은, 저 스님은 대체 왜 왔대?

두 사람이야 태양의원의 의술에 관심이 지대했고 또 나와 인연이 있으니 이해가 간다만, 공은은 굳이 말하자면 악연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의 주치의였지만 삼생아를 배어 위기에 빠진 군주를 내가 수술함으로써 곤경에 빠진 인물이었으니까.

“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 생각은 갑자기 내 품으로 달려든 양진 때문에 녹은 눈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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