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60화 (260/350)

260화

나는 이 씨앗을 손에 넣게 된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전달했다.

선계에서 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꽃가지를 얻어와 심었더니 황폐한 땅에서 순식간에 꽃이 피고 지어 씨가 맺혔더라…….

전생이었다면 무슨 약을 팔려고 그러냐, 요새 사이비 종교에 다니냐, 다단계냐 등 경멸 어린 소리만 들을 말이지만 여기선 달랐다.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허어, 말로만 들었지 진짜 그런 곳이 존재할 줄이야. 다 늙어서 신기한 얘길 듣는구만.”

“상상하기 어려운 얘깁니다만, 삼촌께서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하실 리 없으니 진실이겠지요. 믿겠습니다.”

장 의원과 금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회장도 얼결에 머리를 끄덕였다. 술은 다 깼겠지만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반년 넘게 밭을 놀리다가 갑자기 돌아와서, 그 밭에 심을 약초가 신선이 준 약초다 하면 나였어도 당황했을 거다.

“헌데 네놈 말을 듣다 보니까, 그 선계의 신선이라는 사람 말이다. 혹시?”

장 의원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화타일 겁니다.”

이 중원에서 별호 같은 건 짧을수록 강하고 실력 있는 존재를 뜻한다고 하지만, 화타에게는 신의, 명의 같은 말도 필요 없다. 달리 별호로 지칭할 필요조차 없는, 그 자체로 대명사가 된 존재.

홍령의 시조, 그러니까 나의 선조이기도 한 화타가 바로 그 신선이었을 것이다.

“거참, 네놈이 부러울 때야 수도 없이 많았지만 지금보다 부러운 적은 없었다. 어떻게 죽다 살아나는 과정에서 선계에 가 화타를 만날 수 있느냐? 안 될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네놈은 앞으로 자빠져도 누가 떡을 주겠구만.”

“장 의원님은 선조이신 장중경 어르신을 제일 존경한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떼끼, 그건 그거고!”

장 의원은 버럭 성질을 냈지만, 내 손에 들린 씨앗에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작은 말다툼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금리가 입을 열었다.

“헌데 삼촌, 분명 삼생화를 얻으셨다고 하셨는데, 저희에게는 삼생초라 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아, 그건―.”

금리가 때마침 잘 지적해줬다.

삼생화가 아니라 삼생초인 데는 이유가 있다.

항주에서 표행 준비를 하며 뛰어다닐 때, 은 파파에게 부탁해 화분과 질 좋은 흙을 부탁해서 씨앗을 몇 개 심어봤거든.

보통의 식물보다 빠르게 싹을 틔워 자라긴 했는데, 그때처럼 빠르게 꽃이 피진 않았다.

대신 잎은 풍성하게 컸단 말이지.

그 잎은 효능이 없을까 시험을 해봤는데 이게 웬걸, 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효능이 있었다.

“―언제 필지 모르는 꽃을 기다리느니 잎을 따서 약으로 쓰면 되겠더라고. 화분은 서둘러 오느라 아직 배에 있는데, 이것도 심으면 칠 주야 내로 잎을 볼 수 있을 거야. 보름이면 쓸 만한 잎을 수확할 수 있을 거고.”

“그렇게나 빠르게 수확이 되다니, 놀랍습니다. 허면 그 약초를 어찌 활용하실지도 계획해두셨겠지요.”

“그러니 이 바쁜 노구를 따라오라고 했겠지. 어서 본론이나 꺼내거라.”

“밭에 가면서 얘기하죠.”

우리는 객잔을 나서 밭으로 향했다.

나는 부러 청년회장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아까의 일 때문인지 움찔하긴 했지만 나를 피하진 않았다.

“회장님. 태양의원이 다른 의원과 차별화되는 강점이 뭔지 아십니까?”

“……수술 아니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수술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일단 수술을 할 환자가 있어야겠지. 거기에 실력 있는 의원이 필요할 거고, 수술을 위한 도구라든가?”

“더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끄응, 뭐, 수술을 도울 보조나, 생살을 찢는 고통을 잊게 할 마취약이나…… 듣자하니 피가 제법 난다는데, 지혈을 위한 도구와 피를 닦을 천이 필요하겠지.”

청년회장이 미간을 구긴 채로 중얼중얼 몇 가지 답을 내놓았다.

이 땅에서 태어나 농사만 짓고 산, 어찌 보면 무지렁이에 가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친화력이 높아 동네 사정에 훤하고, 자연 태양의원의 일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다.

제대로 배운 의원들 정도는 아니어도 대략적인 개요를 떠올릴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이런 것도 다 머리가 되어야 하는 거다. 그냥 글을 잘 읽고 시구를 외우는 것만 머리가 좋은 게 아니다.

“그렇습니다. 피가 많이 납니다. 보통의 지혈법으로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고, 점혈도 곯은 살에서 피가 배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기술은 만능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뛰어난 지혈제는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죠.”

“혹시라도 금 의원이 가져온 게 평범한 지혈제용 약초라면 나는 꽤 실망할 겁니다.”

“기대를 잔뜩 해주셨군요.”

그랬으니 실망했겠지.

이 사람은 단순히 농사를 못 지어서, 돈을 못 벌어서 매일같이 술을 마신 게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그런 일로 쉽게 낙담하지 않는다.

“……글줄 아는 놈들은 뭐라도 의원에서 일을 하고 있죠. 전이었다면 몸에 맥아리가 없어서 농사일이라곤 반나절 하다 뻗던 놈들인데. 이제 그놈들이 제 날개를 펴고 마을에 큰 보탬이 되고 있어요.”

청년회장의 말투에선 약간의 질투가 묻어났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적의의 형태는 아니었다.

“아까는 내가 술에 취해 삿대질을 했지만, 이 마을 토박이들 누구나 금 의원 공로를 압니다. 흉년이 들면 먹고 살 길이 없어 돈을 벌려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던 곳입디다. 나도 그래서 조부모의 손에 컸고요. 근데 이젠 흉년이 들어도 그럴 일이 없게 됐어. 마을은 커지고, 사람도 많아지고, 그런 곳에서 내가 청년회장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술로써 탓했다.

“내가 이 마을에 제대로 도움 된 게 하나 없고, 앞으로 뭐 어떻게 더 잘할 방법도 모르겠고! 할 줄 아는 거라곤 농사짓는 거뿐 아뇨! 내 밭에 저 의원이 필요로 하는 좋은 약초라도 심으면 가슴을 떳떳하게 펼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그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횡설수설이지만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런 심지를 가진 사람이라 일부러 이 사람을 청년회장으로 뽑았다.

원산지가 아닌 곳에서 키우는 약초다. 시행착오를 여러 번 해야 할 것이다. 그건 성장세가 보장되어 있는 삼생초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돈이 아닌 다른 걸 보는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이 삼생초를 재배함으로써 무언가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이 삼생초 중, 붉은 씨앗이 혈생초, 피살이풀입니다.”

그런 자부심이 있어야 일의 진행이 수월하다.

다른 약초였어도 그런 과정을 거쳤겠지만, 삼생초이기에 더더욱 필요한 사람이 됐다.

“키우면 핏빛을 띠는 풀이 자랍니다. 그걸 충분히 키워 즙을 짜면 사람의 혈액과 비슷한 액체가 됩니다.”

“뭬, 뭬야? 지금 네놈이 얘기하는 게 설마?!”

청년회장보다 장 의원이 먼저 반응했다. 어차피 장 의원이 맡아야 할 일이긴 하지.

“지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죠. 이 피살이풀은 수혈의 시작이 될 겁니다.”

청년회장과 금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의술에 조예가 없는 이들이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하지만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아는 장 의원은 다짜고짜 욕부터 내뱉었다.

“미친, 네놈이 지금 무슨, 허이고, 내 살다 살다 이 나이까지 사니까 별 기괴한 짓을―.”

“기괴한 짓이라뇨. 수혈은 과거부터 많은 의원들이 시도했던 방법이잖아요.”

“안다! 아는데, 지금까지 안 했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예예, 압니다.”

기의 흐름과 혈을 중요시하는 중원 의학이다. 그렇다면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쁜 피를 빼고 신선한 피를 공급하는 일에 대한 연구를 안 했을까?

사혈은 전생의 한의원에서도 사용되던 기법이고, 어느 정도 효과도 있다. 당연히 피를 공급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여겼던 선구자들이 과거 긴 세월 동안 실험을 해왔다.

“사람의 피는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었죠. 동물의 피는 말할 것도 없고요. 무엇보다 피를 공급한 자리가 곪아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죠. 피를 제공한 쪽도 그렇고요.”

전생에서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수혈에 있어서 혈액형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안다.

이과를 전공하거나 생물 등으로 대학을 간 사람이라면 좀 더 자세히, 이 시대에서 혈액형을 판별할 법을 알아낼 수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함부로 사람과 사람 간에 피를 수혈하지 않는 정도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혈액을 대체할 액체가 있다면, 안 될 것도 없지 않나?

“화분에 재배한 피살이풀로 제게 피를 꾸준히 주입해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이런 일을 남에게 함부로 시킬 수 있나. 내가 해야지. 여차하면 운기조식으로 몸 상태를 바로 잡을 수 있으니까.

조금 더 안전성이 보장된다면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해 나갈 것이다.

“수혈을 하는 도구는, 금왕공방에 약침을 조금 더 용도에 맞게 변경해달라고 하면 될 겁니다. 살이 곪는 것은 소독을 철저히 하는 쪽으로 하고요. 농도와 투여량 부분은 아직 연구가 많이 필요합니다. 뼈살이풀과 살살이풀도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하고요. 회복용 수액으로 쓰는 건 어떨까 싶은데, 이런 부분은 장 의원님이 맡아서 연구해주셔야 해요.”

“……만에 하나라도 네놈 말대로 된다면, 이건 그냥 수술을 더 성공리에 해낼 수 있다, 그 정도가 아닐 게야. 그걸 알고는 있느냐?”

나는 대답 대신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장 의원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

그 자체로도 영약이었던 삼생화다. 삼생초가 되어 그 효능은 보다 떨어졌지만, 잎을 짜낸 즙이 수혈 가능한 혈액이 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자들이 많을 거다. 불로불사의 약으로 소문이 날지도.

그렇게 되면 영약에 눈이 먼 무림인들이 찾아와 사람들을 해치고 이를 훔쳐갈 수도 있다.

늙어 죽는 것을 그 무엇보다 끔찍해하는 속세의 권력자들이 권위를 앞세워 찍어 누르려고 할 수도 있겠지.

“그 부분은 생각해둔 게 있으니 걱정 마세요.”

내가 본원에 있어도 항상 밭에서 허수아비처럼 허튼 마음을 먹은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다.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삼생초도 그렇지만, 태양의원을, 그리고 이 마을과 사람들을.

매번 밖에 일이 있을 때마다 여기가 걱정되어서 살 수가 있어야지.

“무인을 고용할 생각이십니까. 현재 금왕표국의 표사들로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만, 이런 일에는 충분히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 부분은 걱정할 거 없어. 태양의원에 은혜를 입은 사람이 와주기로 했거든.”

아직 확답은 받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올 거라고 확신했다.

정반합의 회주로서 지시한 사항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도개걸이 내게 들은 과거의 비사를 전부 적어서 보냈거든.

좌수검.

내가 처음으로 수술을 한 사람이자, 홍령의 남편, 그리고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

그가 다시 이곳에 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