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원-259화 (259/350)

259화

“어떤 약초죠?”

“가서 얘기하자. 청년회장도 같이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그분이라면, 지금 시간엔 태양객잔에 있을 겁니다.”

청년회장은 내가 소림으로 출발하기 전에 뽑은 마을의 청년 대표다.

동시에 내 밭을 소작 짓는 소작인의 대표이기도 하지.

마을이 커지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늘었지만 여전히 북촌의 대다수는 농사꾼이라, 소작인 대표가 청년회장이 되는 게 당연한 구조랄까.

“근데 이 시간부터 거긴 왜요? 일이라도 도와주나?”

“……그건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빨리들 가! 네놈들은 노인공경도 모르냐!”

“그래서 기다려드리고 있잖아요.”

장 의원이 헐레벌떡 뛰어온 탓에 무슨 일 있냐고 물을 기회를 놓쳤다. 청년회장이 그냥 객잔에 죽치고 있거나 일을 돕는 건 아닌 모양인데…….

뭐, 리의 말마따나 어차피 가면 만나게 될 테니까.

“객잔에 간다고? 어디?”

“태양객잔에요. 북촌객잔에도 들를 예정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구만. 거기도 많이 커졌지.”

“그러게요. 여기서도 보이네요.”

거리가 좀 있지만 태양객잔도, 북촌객잔도 시야에 들어왔다.

태양객잔은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있던, 처음에는 이름조차 없던 객잔이었다.

그러다 객잔주인의 다리를 내가 치료해주고, 그가 오래도록 장 의원에게 속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마을에 자리를 잡는 게 수월해졌다.

이후 나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하오문에 낙점되어 문도가 되고 여러 가지로 왕래가 많아지다가 개방에서 온 객잔이 북촌객잔이라는 이름을 날름 써버려서 내 이름을 객잔의 이름으로 주게 된, 꽤나 인연이 깊은 곳.

내가 소림으로 가기 전까지도 태양의원의 성장세에 힘입어 계속 추가로 숙소를 짓는 등 확장세에 바빴는데.

지금은―

“저 별채가 왜 저렇게 고급지지?”

태양객잔이 새 건물을 지을 때 내가 적잖은 부분을 관여했다. 내 이름을 달았는데 허투루 하면 안 될 거 아냐.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북촌에 방문하는 이들이 그렇게 부유한 게 아니라서 적당히 중저가의 퀄리티를 생각하고 설계를 했다.

분명 그랬는데 말이지.

“저 정도면 무한이나 항주 같은 곳에 갖다 놔도 크게 빠지지 않겠는데?”

물론 초고급 객잔, 주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있는 여행자들이 여독을 풀기 위해 제법 양질의 숙소에 머물고 싶을 경우 고민 없이 선택할 만큼은 됐다. 여기 북촌 일대에서는 아마 제일 훌륭한 퀄리티의 객잔일 거다.

“리 네 작품이야?”

“예, 그렇습니다.”

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북촌객잔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싶은데 뭔가 방법이 없겠느냐고 제게 상의하더군요. 마침 태양의원이 꽤나 멀리까지 소문이 나 부유한 환자들의 방문도 늘어나는 터, 중상 정도의 품질을 노려보는 것이 어떠하냐 조언했더니, 초반에 건물을 올리던 걸 아예 백지화하고 다시 올렸습니다.”

“와, 그거 쉽지 않을 텐데.”

“조금 손해는 있었다 합니다만, 지금은 그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이 일대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묵을 만한 곳이 태양객잔밖에 없으면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반대쪽, 북촌객잔이 보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개방 방주 도개걸이 나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출점한 객잔으로, 항시 개방의 거지들이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곳도 전에 못 보던 건물이 들어섰다. 그런데 태양객잔의 별채와 달리 영 저렴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지붕도 제대로 없고, 거의 컨테이너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창고형으로 된 이 층 건물인데, 그래도 크기는 굉장히 커서 꽤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혹시 저쪽에도 네가 조언한 거야?”

“예, 태양객잔이 중상 이상의 품질을 겨냥하니, 북촌객잔은 중저가로 저렴하게 숙박을 제공하면 좋을 거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실질적인 전주(錢主)가 개방이니 큰돈을 쓰지는 못할 것 같았고, 개방 방도들이 항시 주변에 있으니 돈 있는 손님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요.”

“당장은 그렇게 둘이면 공급은 충분하겠군.”

“예. 그리고 장 의원님 외에도 의원 주변에 집을 지어 나가신 분들이 제법 됩니다. 집을 짓는 비용을 일부 보조해드렸습니다.”

“내부 장원을 수리해서 최고급 환자를 유치하려고?”

“원래 별장으로 권장되던 곳입니다.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의료진이 항시 대기 중이니 매력을 느끼는 부자들이 있을 겁니다. 이미 무한으로 사람을 보내 수리 견적을 냈고, 동시에 그곳의 부자들을 상대로 홍보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척하면 척이군.

관련된 얘기는 소림으로 출발 전 간단하게 앞으로 이렇게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운을 띄웠을 뿐인데 내가 없는 동안 척척 잘 처리를 해 놨다.

앞으로도 이런 부분은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좋겠군.

큰 구상을 내가 말하면 실무는 리가 진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러모로 다른 데 신경 쓸 일이 많으니까 말이지.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금 의원님! 어서 오십시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태양객잔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객잔 주인이 내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빠르게 달려나와 우리를 반겼다.

“별채만 좋게 지은 줄 알았는데, 여기도 깨끗해졌네요.”

“아이고, 벌써 말씀을 들으셨군요. 기왕 하는 김에 여기 내외부도 한 번 싹 공사했습니다. 아무렴, 누구 이름을 받았는데 그 이름값을 해야지요. 헌데 오늘은 어쩐 일로?”

“오랜만에 왔으니 안부도 여쭐 겸, 청년회장이 여기 있을 거라고 해서요.”

“아하, 그렇군요. 저야 의원님 소식은 항주에서 온 걸로도 듣고 있었지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다만 저치가…….”

객잔주인이 말을 흐리며 한편으로 눈을 흘겼다. 탁자가 여럿 놓인 객잔의 1층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나는 일전에 여기서 북촌의 소작인들을 모아놓고 재배 방식을 바꾸자며 설명회를 한 적이 있다.

바로 그 자리에 소작인들의 대표인 청년회장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잠깐만, 술?

이 대낮부터?

말이 대낮이지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았다. 거기에 바닥에 놓인 술병이 벌써 세 병째였다. 그러니까 객잔 문 열자마자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고 있다는 뜻인데.

“……금 의원? 그놈이 왔어?”

때마침 객잔 주인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회장이 몸을 돌렸다.

불콰하게 취한 얼굴에 충혈된 눈, 코와 얼굴 부근의 붉은 얼룩,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걸어오는 불안정한 걸음걸이.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있던 겁니까?”

가까이 다가오자 술 냄새가 풍겼다.

이 시대의 술, 특히 흔하게들 마시는 탁주는 기껏해야 맥주 정도의 도수를 갖고 있다.

정말 제대로 정제된 청주는 되어야 전생의 소주와 비슷한 도수가 나오고, 고도수는 고량주쯤은 되어야 한다.

당연히 손이 갈수록 비싸기 때문에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술은 보통 탁주다.

그런 탁주를 아무리 서너 병이나 마셨다지만 이 정도로 술 냄새가 나다니.

게다가 주변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닌 듯한데.

“얼마나, 오랫동안? 그거는 금 의원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

내가 소림으로 출발했을 때는, 술을 자주 찾는단 얘긴 들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땐 그냥 술을 좀 좋아하나 보다 했지.

농사일은 고되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육체노동을 하다 보면 술이 좀 들어가는 건 예사다. 술로 친해지는 것도 결코 무시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 안 하고 넘어갔는데.

“당신이 말이야, 어? 그놈의 밭을 그냥 놀리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내 밭이 말이야! 지금쯤 곡식이 이마안큼! 여물었을 거라고!”

회장이 내게 삿대질을 하면서 술주정을 부렸다.

그 때문인가.

청화검문이 갖고 있던 북촌 일대의 땅을 전부 양도받은 후, 나는 삼 분의 일은 두고, 나머지만 밀을 경작하자고 그들을 설득했다.

물론 그것도 그냥 경작하는 게 아니라 약재를 비료로 써서 수확량을 늘려보자고 했지.

“딴 놈들 밭은, 꺼억! 그놈의 약재 찌꺼기 써서, 더한 수확이 나왔는데! 내 밭, 내 밭은! 매일매일 풀만 뽑고! 의원 놈들에게 물어보면 맨날, 맨날 찾고 있다, 씨앗이 오고 있다, 이 약초는 아닌 거 같으니 다음에, 다음에!”

“이보세요, 청년회장님.”

“다음에 언제! 내 밭에는 언제 씨를 뿌리느냔 말이야!”

이거 안 되겠군. 그냥은 대화가 안 되겠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어? 억!”

나는 그대로 상대의 뒤로 가 혈 몇 개를 가볍게 눌렀다. 점혈로 몸을 일시적으로 멈춘 후 품에서 침을 꺼내 몇 군데에 침을 푹 찔러 넣었다.

……평소보다 깊이 찔러 넣긴 했는데, 결코 감정이 실린 건 아니다.

그리고는 그의 허리에 대고 살며시 기를 불어넣었다.

“―!”

얼마 안 있어 그의 몸에서 주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점혈로 마비된 몸이 바르르 떨었다. 아혈도 점했기에 이렇다 할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꽤 고통스러우리라.

본인의 기로 술기운을 내보내는 거라면 그리 힘들지 않겠지만, 이건 타인의 기가 몸을 휘젓는 거니까.

“아이구, 술 냄시야. 이놈아. 그런 짓을 할 거면 미리 고하기라도 해라.”

장 의원이 투덜거린 후 나는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심하게 취한 건 아니라 오래 걸리진 않았다. 다시 점혈을 풀어주자 그가 아까보다 더욱 화가 난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아팠죠? 근데 나한테도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요. 솔직히 그쪽 좋은 일 해드린 건데.”

“뭐, 뭐야?!”

“그러다 인생 훅 갑니다. 일시적으로 취기를 날리긴 했는데, 문제가 해결되어도 계속 술을 찾게 될 거예요. 인생 폐인 되는 거 순식간이고.”

“……흥, 그땐 의원에 가면 되겠지. 그런 거 치료하려고 당신 같은 사람이 있는 거 아닌가?”

“말 쉽게 하시네. 의술은 만능이 아닙니다.”

“그, 그러면?”

“중독을 고치고 병든 장기를 낫게 할 수는 있지만, 깎아먹은 내구도까지 어쩔 수는 없어요. 그건 내가 아니라 저기 사대신의가 와도 안 될 겁니다.”

나의 단언에 청년회장이 움찔했다. 정말 날 믿고 그렇게 술을 퍼마신 건가. 의원을 의지해주는 건 고맙지만, 저렴하게, 쉽게 올 수 있게 만들어놨더니 이런 부작용도 있군.

“혼자 술 퍼먹고 중독되어서 사람 구실 못하는 건 그렇다 치는데, 그런 식으로 의원을 만능으로 여기는 태도를 주변에 널리 알리진 마세요. 제일 좋은 건 평소에 잘하는 겁니다. 내가 고쳐놔도 생활 습관이 그대로면 또 병 걸리지. 태양의원에서 제일 강조하는 게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이에요. 그 다음이 의원에 제때 오는 거고. 아시겠습니까?”

뭐, 잔소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사람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아직도 제때 의원을 안 와서 병을 키우는 사람이 몇 배는 더 많은걸.

하지만 싹이 보였을 때 미리 잘라놔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기지.

“그리고 이제 겨우 그 밭에 심을 씨앗을 가져왔는데, 계속 술이나 마시면 되겠어요?”

“뭐? 정말?”

“예, 정말입니다. 그것도 북촌의 밭에 딱 맞는, 최고의 약초죠. 밭으로 가면서 얘기할까요?”

내 말에 청년회장은 멍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서둘러 객잔 문을 나서 밭으로 가는 길로 앞장섰다.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닌데, 한동안 지켜봐야겠군. 알콜 중독은 취기를 날려버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저치가 속을 썩인 데는 내 탓도 있으니 신경 써야지.

“밭이 좋군요.”

“그야 언제든 씨앗을 심을 수 있게 최상의 관리를 해왔으니까!”

매일같이 술을 마시면서도 밭은 최고로 관리해 놨다. 잠시 걱정됐지만 이 정도라면 맡길 수 있겠다.

“이번에 밭에 심을 약초는 이겁니다.”

나는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이 안에 그 씨앗이 들어있다.

“이름은 삼생초. 각각 피와 살, 뼈를 살리는 약이 될 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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