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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원-257화 (257/350)

257화

“금태양 고놈이 왔다고? 그런데 고놈이 셋이다?”

바로 장 의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등장했다. 그리고는 나란히 선 우리 셋의 가면을 뚫어져라 한 번씩 쳐다봤다.

“금 총관이 나를 부른 이유가 있고만. 걱정이라곤 하덜 말어. 이 장 모가 금태양 고놈 얼굴을 똑똑히 아니까. 자, 한 놈씩 가면을 벗어 보거라! 일단 네놈부터!”

장 의원이 의기양양하게 헛기침을 하며 첫 번째 금태양을 가리켰다. 한 번에 벗으라고 하면 되지 번거롭게 하나씩 보다니. 신중한 건 좋지만, 솔직히 본인이 이 상황을 좀 즐기는 거 같았다.

하기사,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이라고. 나 없는 동안 최연장자로 어깨 좀 펴고 살았겠지.

거기에 이 꼬장꼬장한 돌팔이도 금리에게는 사족을 못 쓴다. 제 손녀딸이 있었으면 딱 저랬을 거 같다나.

예뻐하기도 예뻐하고, 총관으로서의 지시에도 잘 따르는 그다. 그러니 금리의 곤경을 해결해주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거겠지.

“보자, 이놈이 그러니까―.”

“맨 처음 삼촌이라 주장한 사람입니다. 조금 어색한 점이 있었지만, 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꼼짝없이 삼촌인 줄 알았습니다.”

1번 금태양이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는 멋쩍은 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응? 얼굴이 멀쩡한데? 아냐, 이놈 아냐.”

“아니, 장 의원님. 이건 다 사정이 있어서―.”

“사정은 무슨 사정. 됐고, 가짜는 비켜. 이 얼굴을 봐라!”

3번 금태양이 1번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아주 당당하게 가면을 벗었다.

“!”

금리가 순간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놈의 얼굴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물집이 터져 생긴 흉터가 가득하고, 농익은 고름에서 계속해서 진물이 흐르는 얼굴. 녀석은 그 얼굴이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펴고 이리저리 몸을 돌렸다.

“……이놈 아니냐?”

아니, 저기요. 장 의원님?

근데 장 의원을 탓할 수가 없는 게, 이 정도면 나도 헷갈릴 거 같았다.

솔직히 내 예전 얼굴하고 그렇게 닮은 건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사람이 남의 얼굴 흉터, 고름 위치 하나하나 기억하겠냐고. 흉측하다는 걸로만 기억하면 헷갈릴 법도 하다. 나도 내 얼굴이 끔찍해서 거울이 있어도 잘 안 봤는데.

“이게 금태양의 얼굴이지. 저렇게 뺀질한 얼굴이 아니라. 환골탈태라도 했다면 모를까. 어디서 그런 매끈한 피부로 사기를 쳐?”

“그, 그래! 환골탈태를 해서 그렇습니다! 소림에서 빈사상태에 빠졌다가 깨달음을 얻어서―.”

그 말에 금리와 장 의원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1번은 그래도 제법 내 말투를 따라 하려고 애를 쓰는데 3번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거든. 저건 오히려 김진일 때의 말투와 비슷한 거 같은데.

“환골탈태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놈 무공수위가 보통은 넘으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군.”

“……어렵군요. 당신은?”

금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하아.

녀석들이 가면을 벗는 동안 어떻게 해야 내가 나라고 증명할 수 있나 고민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내 정수리에 대침이라도 꽂지 뭐. 그러면 알아보겠지.

“……!”

가면을 벗자 금리의 눈이 커졌다. 장 의원이 나를 빤히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이놈은 절대 아니다. 확실해.”

뭘 확실해? 이 노친네가 진짜.

“환골탈태 했다고 해도 믿지를 않으니, 하는 수 없군요.”

대침을 꺼내 확 박아버려? 내 머리 말고 장 의원 정수리에? 라는 생각을 잠깐 하고 있을 때 1번 금태양이 나섰다.

“얼굴보다는 실력이 확실한 법 아니겠습니까? 환자를 보도록 하죠.”

그 말이 나오자 3번 금태양의 흉측한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졌지만, 반박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별말은 없었다.

“맞아, 맞아. 얼굴이 뭐 중요해? 의원은 실력으로 말하는 거지.”

“어떻게 실력을 증명하려는 걸까?”

“전처럼 의술 대결을 펼치지 않겠나? 장 의원님과 한 판 승부를 벌였을 때 말이야. 그때가 아주 제대로였지.”

“장 의원님이 또 태청독을 꺼내시나?”

태청독 소리에 장 의원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야 나와 잘 지내고 있지만,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긴 할 테니까.

그때 대기하고 있던 환자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앞으로 나왔다.

“금 의원님, 제 아이를 고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이를? 어디가 아픈 건가요?”

“삼 일 전부터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고, 뭔가 잘못 먹은 거 같기도 하고…….”

1번은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맥을 짚었다. 그 태도가 짐짓 진지했다. 나도 아이의 안색을 살폈다.

확실히 표정이 안 좋기는 한데, 어디가 크게 나빠 보이진 않는걸?

아프다기보다는 좀 피곤하고 졸려 보이는 정도랄까.

물론 못 먹어서 피골이 약간 상접하긴 했는데……

“―큰일입니다. 바로 치료해야겠어요.”

“예? 어디 큰 문제라도?”

“일단 치료하고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번이 품에서 침통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손바닥 길이만 한 장침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 침을 어린이의 정수리에 쑤욱 집어넣었다.

“헉……!”

“그 유명한 정수리 침 꽂기!”

“저렇게 망설임 없이 침을 꽂아 넣다니. 저쪽이 진짜인가 본데?”

몰려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이는 머리에 침을 박아 넣자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이내 아이의 입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아, 아빠. 나 이제 괜찮아.”

“괜찮니? 다행이구나.”

그리고 1번은 아이의 정수리에서 다시 장침을 쑤욱 뽑아 회수했다.

나는 그 잠깐의 찰나, 뽑혀 나온 침에 시선을 집중했다.

방금, 침이 움직였다.

“잠시만요.”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침이 꽂혔던 머리를 헤집었다.

“뭐 하는 짓입니까?”

“아, 아빠!”

“별거 아니에요. 잠깐만 볼게요.”

나는 말리는 아이 아버지의 손을 막으며 아이의 두피를 살폈다.

침이 박혔다 빠져나온 자리가 없었다.

아무리 가느다란 침이라도 피부와 살에 상처를 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작은 상처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러십니까?”

1번이 어색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닙니다. 훌륭한 솜씨네요.”

맞아, 훌륭한 솜씨다.

그 훌륭한 솜씨가 의술이 아니라 그렇지.

자세한 건 침을 직접 만져봐야 알겠지만, 방금 가짜가 쓴 침은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 도구인 게 분명했다.

예를 들자면, 눌렀을 때 피부 안으로 박혀 들어가는 대신, 침이 줄어들며 침이 박힌 것처럼 보이는 거지. 우산이나 라디오 주파수를 잡는 안테나의 원리처럼.

이 중원 무림에서 저 가느다란 침을 압축 가능하게 만드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 데서나 만들지도 팔지도 않을 테니, 어쩌면 본인이 직접 만든 걸지도.

이거, 보통 사기꾼이 아닌데?

내가 섣불리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금리와 장 의원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사칭하고 나선 이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정보도 충실히 조사했고, 한 명은 나와 헷갈릴 만한 외모를 가졌고, 또 한 명은 나의 의술을 흉내 내려고 애를 썼다.

평범한 사기꾼이 아니다.

뒤에 배후가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의 단독 범행일까?

배후가 있다면 그 뒤를 캐야겠지만 개인의 범행이라면―

“그러면 이걸로 증명은 끝이 난 것이겠지요?”

“그런 거 같구만. 얼토당토 않는 가짜들 때문에 자네가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그러면 이 가짜들은 적당히 치도곤이나 쳐서 쫓도록 하죠.”

아니, 잠깐만.

지금 저 녀석들이 어디서 왔냐 안 왔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

이러다 진짜인 내가 쫓겨나게 생겼는데?!

“아직 한 명이 남았습니다.”

장 의원이 1번을 진짜라고 판정했지만 금리는 담담하게 그들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고요한 호수 같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당신은 아직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할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지.”

“당신이 설령 삼촌을 모방한 가짜일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진짜라 설득할 만한 무언가를 준비했을 겁니다. 그것을 보여주십시오. 판단은 그 다음에 하겠습니다.”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거군. 나는 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 조카는 열심히라니까.

“오늘이 보름이니까, 남 의원이 있는 날인데. 수술 잡힌 거 없어?”

“……!”

“나를 증명할 방법이라면 역시 수술밖에는 없겠다 싶어서. 본원에서 나를 빼고는 남 의원의 실력이 제일이니, 예정된 수술이 있을 거 같은데.”

“있습니다만, 아무에게나 수술을 맡길 수는―.”

“내가 진짜 금태양이니까 아무나는 아니지.”

금리는 곤란한 눈치였다. 하긴, 내가 진짜가 아니라면 어쩌겠냐고. 신중한 건 좋은 일이지.

“고민하는 건 좋은데, 일단 저기 지켜보고 있는 의원들은 다 들여보내고. 구경거리가 되는 건 상관없는데, 의원이 제대로 안 돌아가잖아.”

“……! 알겠습니다. 여러분, 들어가서 다시 업무에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금리는 뒤를 돌아, 무슨 일이 일어났나 구경 중이던 의원들을 다시 진료실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내게 말했다.

“남 의원이 할 예정인 수술이 있습니다만,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면?”

“말입니다. 금왕표국의 말로,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말이라면 수의 출장소를 할 때 많이 고쳐봤지.”

오히려 잘됐다. 사람이라면 타인의 앞에서 수술하기 애매한데, 말이라면 입회인을 여럿 세울 수 있지.

“어디 가세요, 금태양 여러분? 함께 가셔야죠.”

예를 들면 나를 사칭한 1번, 3번 금태양 두 명이라든가.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3번의 팔을 잡고, 어쩔 줄 몰라 하는 1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자, 같이 가시죠. 이 ‘가짜’의 실력이 어떤지, 두 금 의원님께서 판별해주시면 되겠네요. 그죠?”

두 사람은 내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나는 아예 내공을 불어넣어 두 사람을 옴짝달싹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어디서 시킨 건지, 아니면 혼자 단독으로 사기를 치려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두 금태양의 낯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도망은 못 갑니다. 대가는 치르셔야죠. ‘금태양’이라면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테니까요. 그렇죠, ‘금태양’ 님들?”

나는 두 사람을 반쯤 강제로 끌고 갔다. 말이나 동물의 수술을 사람과 같은 장소에서 할 수는 없었기에 마구간에 전용 장소를 마련해두었다. 다리를 다친 말은 그곳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현재 마비산으로 통증을 누르고 재워두었습니다. 어떤 거 같습니까, ‘금태양’님.”

“다리를 다친 게 아닌데?”

나는 말의 여기저기를 촉진하고 맥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 이쯤. 종양 같은 게 있어. 만져봐. 딱딱할 거야.”

금리가 말의 골반에 해당하는 부분에 손을 가져다댔다. 내가 말하는 감각을 느꼈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다리는 크게 문제가 없어. 이 정도 크기면 약을 쓰기보단 그냥 수술하는 게 낫겠네. 압박이 사라지면 다시 걸을 수 있을 거야. 칼과 실, 바늘, 소독용 술을 부탁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금리가 나가자 밖에서 곧바로 금왕표국의 표사들이 들어와 문을 지켰다. 금태양 1번, 3번의 얼굴이 걱정과 두려움에 물들었다.

리는 정말 바로 돌아왔다. 손에는 내 전용 수술 도구들이 들려 있었다.

“저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나는 빙긋 웃었다. 아직 칼도 안 댔는데, 너무 성급하게 확신하는 거 아냐?

물론 그 정도는 해줘야 내가 안 섭섭하겠지만.

“적당히 가둬놔. 아, 남 의원도 들여보내 주고. 부위가 커서 보조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금리는 그렇게 말하고 표사들에게 손짓으로 지시했다. 건장한 체격의 표사들이 각각 금태양 1번, 3번을 단단히 붙들고 마구간을 나섰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아, 아니! 내가 진짜라니까! 저게 가짜야!”

하나는 더 이상 우겨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잘못을 빌었고 한 명은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금리는 아랑곳 않았다.

“그러면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이따 보자.”

“네.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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